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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에디톨로지

“편집된 세상, 이젠 ‘에디톨로지’로 읽는다”

박소영 기자 | 기사입력 2014/11/10 [09:49]

[김정운] 에디톨로지

“편집된 세상, 이젠 ‘에디톨로지’로 읽는다”

박소영 기자 | 입력 : 2014/11/10 [09:49]
시선은 곧 마음이다. 무엇을 바라보느냐,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대상이 정의되고, 세계가 구성된다. 사실 이것은 우리가 여태껏 살아온 방식이며, 이를 통해 자신만의 시각으로 저마다의 세계를 구축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익숙한 방식과 타성에 젖어 습관대로 사고하며 일상을 반복한다. 이 책은 그런 반복됨 속에서 창조를 설명하고 있다. <편집자주>

왜 에디톨로지인가?…창조는 편집에서부터 온다

유쾌한 인문학으로 돌아온 김정운 교수의 ‘신간’



[주간현대=박소영 기자] 모래밭에 나체의 여인이 누워 있다. 풍만한 가슴은 두 팔로 감싸고, 배꼽 아래 그곳은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 ‘그곳’을 가린 ‘그것’은 손바닥만 한 아이팟이다. 당신은 그곳을, 아니 그것을 뚫어지게 쳐다본다. 아니라고? 그렇다면 당신은… 변태다!


▲ 사진 : 김정운의 신작 <에디톨로지>.     © 주간현대


‘에디톨로지’란?

쳐다본 게 변태가 아니라 안 쳐다본 게 변태라니, 황당한가? 억울해할 것 없다. 저자는 변태를 이렇게 정의한다. “창.조.적. 인간!” 생식기에 집중하는 것은 동물적 본능을 가진 인간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본능 너머의 것을 볼 수 있는 자만이 남들과 다른, 창조적 인간이 될 수 있다.

창조란 별 다른 것이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없는 특별한 것도 아니다. 창조는 기존에 있던 것들을 구성하고, 해체하고, 재구성한 것의 결과물이다. 세상의 모든 창조는 이미 존재하는 것들의 또 다른 편집이라는 뜻이다. 저자는 그 편집의 과정을 주목했다.

그는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너무 세분화되어 서로 전혀 소통이 안 된다. 거의 바벨탑 수준이다. 세상을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최소 단위로 나누고, 각 부분을 자세히 분석하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근대의 해석학은 그 한계를 드러낸 지 이미 오래다.

오늘날 통섭, 융합을 부르짖는 이유는 이 낡은 해석학으로는 더 이상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통섭이나 융합이 아니고, 에디톨로지인가? 통섭이나 융합은 너무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뭐 그럴듯해 보이기는 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 구체적 적용도 무척 힘들다.

자연과학자와 인문학자가 그저 마주 보며 폼 잡고 앉아 있다고 통섭과 융합이 되는 게 아니다. 내가 말하고픈 에디톨로지는 인간의 구체적이며 주체적인 편집 행위에 관한 설명이다” 라고 말한다.

“민주주의에는 자유롭고 건강한 언론이 중요하다. 뉴스를 모으고 편집하는 조직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나는 미국이 블로거들의 세상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편집자’가 중요한 세상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의 말이다. 21세기 가장 창조적인 인물로 손꼽히는 그의 탁월한 능력 역시 따지고 보면 ‘편집 능력’이다.

아는 것이 힘인 시대는 지났다. ‘정보의 바다’에서 초딩 ‘지식인’들이 헤엄치는 세상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양질의 정보를 선별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낼 줄 알아야 한다. 바로 ‘지식 편집’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에디톨로지(edit+ology)는 이렇듯 편집을 통해 새로움을 창조하는 방법론이다.

그는 에디톨로지를 총 3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한다. 먼저,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는 마우스의 발명을 중심으로 하이퍼텍스트를 말한다. 도구의 발명이 인간 의식에 가져온 변화를 중심으로 지식과 문화가 어떻게 편집되는가를 살펴본다.

두 번째로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는 원근법을 중심으로 공간 편집과 인간 의식의 상관관계를 말한다. 관점의 변화가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으로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이다.  이는 심리학의 본질을 말한다. 심리학의 대상이 되는 인간, 즉 개인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편집되었는가를 살펴본다.

김정운은 창의성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가장 창의적일 때는 멍하니 있을 때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 없다는 뜻이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멍하니 있을 때, 생각은 아주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가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아니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할 때가 있다.

그러고는 그 생각이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 거꾸로 짚어나간 경험이 다들 있을 것이다. 생각의 흐름을 찾아냈을때, 자신이 그 짧은 시간 동안 날아다녔던 생각의 범위에 놀라게 된다. 보통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창조적인 순간이다.

보통사람은 어쩌다 겪는 ‘날아가는 생각’이지만, 천재에게는 일상이다. 천재와 이야기를 나눠보면 생각이 마구 건너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도무지 쫓아가기가 어렵다. 천재의 생각은 날아다닌다. 그러나 그 날아다니는 생각을 현실에서 구체화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창의성에 관하여

천재와 또라이는 종이 한 장 차이다. 천재는 날아다니는 생각을 잡아 처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또라이는 그렇지 못하다. 생각이 그냥 계속 날아간다. 자신의 생각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마구 날아간다.
 
저자 소개 : 김정운
저자는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고려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디플롬, 박사)했다.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교 전임강사 및 명지대학교 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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