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모(43)씨는 3주 앞으로 다가온 아버지 생신을 맞아 식당을 알아보던 중 새삼 높아진 물가를 체감했다. 가려고 했던 식당이 최근 음식값을 올리면서 초등학생을 포함한 가족 여섯 명이 식사할 경우 25만 원이 훌쩍 넘었던 것이다. 부모님 생신에 맞춰 찾아오는 친척들까지 고려하니 부담이 커져 다른 식당을 다시 알아봐야 하나 고민이 앞섰다.
지난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1개월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물가 수준은 여전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농산물 가격 상승이 주춤하고 축산물 물가도 하락세를 보였지만,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는 여전히 고공행진을 하며 소비자들의 부담감을 높였다.
6월 물가 상승률 21개월 만에 2%대…외식물가 25개월 연속 전체물가 웃돌아
7월부터 본격 장마로 농산물 작황 피해…상등급 상추 포기찹 가격 139% 폭등
▲ 서울 용산구의 한 마트에서 소비자가 수박을 고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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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1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6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1.12(2020=100)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2.7% 올랐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대를 기록한 건 2021년 9월 이후 21개월 만이다.
물가 상승 폭은 5개월 연속 둔화하는 등 표면적으로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서민들의 실생활과 밀접한 가공식품 물가의 경우 1년 전보다 7.5%나 오르며 전체 물가 상승률을 두 배 이상 웃돌았다.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지난 2월(10.4%) 정점을 찍은 후 3개월 연속 축소됐다가 지난 6월 다시 확대됐다.
물가 내림세? 무슨 소리!
품목별로 살펴보면 73개 품목 중 가격이 하락한 품목은 이유식(-0.9%), 건강식품(-1.0%), 유산균(-1.4%)뿐이었다.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보인 맥주(0.0%)까지 제외하면 총 69개 품목의 가격이 모두 오른 셈이다.
특히 라면(13.4%)은 5월(13.1%)보다 상승률이 높아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2월(14.3%) 이후 14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찍었다. 다만 이달부터 일부 라면 업체가 가격을 인하한 만큼 이르면 다음 달 지표부터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치즈는 1년 전보다 22.3% 올랐다. 치즈 가격은 지난해 5월부터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이며 상승폭을 키웠다.
무더위에 소비가 늘어나는 아이스크림 가격도 9.4% 올랐다. 드레싱(32.4%), 잼(31.0%), 맛살(21.7%), 어묵(19.7%), 초콜릿(18.5%), 혼합 조미료(17.7%), 참기름(17.5%), 당면(16.8%), 파스타면(16.3%), 물엿(16.1%), 부침가루(14.3%), 설탕(13.2%), 사탕(12.6%), 빵(11.5%), 생수(10.8%), 스낵 과자(10.5%) 등도 두 자릿수 상승률을 보였다.
외식 물가 상승세도 좀처럼 꺾이지 않는 모양새다. 6월 외식 물가 상승률은 6.3%로 전체 소비자물가를 크게 웃돌았다. 농산물과 축산물 가격은 안정세를 찾았지만, 외식 물가는 2021년 6월부터 25개월 연속 전체 물가 상승세를 웃돌고 있다.
품목별로 보면 6월 쇠고기 외식 가격은 2.9% 올랐지만 국산 쇠고기와 수입 쇠고기는 각각 5.1%, 8.0% 하락했다. 돼지갈비와 삼겹살도 6.4%, 5.4% 상승했지만, 돼지고기 가격은 오히려 7.2% 내려갔다. 피자(11.1%), 햄버거(9.8%), 김밥(9.0%), 냉면(7.0%), 자장면(6.6%) 등 외식 물가를 구성하는 품목 모두 가격이 올랐다.
최근 국제 곡물 가격이 하락하고 원자재 가격도 안정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외식 물가 상승률이 높은 흐름을 보이는 배경에는 식당 운영비와 인건비 상승 등의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식재료 가격이 안정세를 보여도 인건비와 영업비용 등 부수적인 비용이 외식 물가에 반영되다 보니 소비자들의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물가 상승 폭이 줄었을 뿐 물가가 하락한 게 아니고 물가지수를 보더라도 아직 높은 수준”이라며 “체감 물가는 소비자가 주로 구입하는 품목에 영향을 받는 만큼 사람마다 느끼는 물가 수준은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밥상 물가 폭등 압력 여전
장마전선이 전국을 덮치고 폭우와 폭염, 추석 등으로 장바구니 물가가 요동칠 전망이다. 역대급 우천으로 농산물 물가 상승이 우려되는 데다 추석 전 먹거리 수요가 늘면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7월15일 기준 가락시장 주요 품목별 가격 동향에 따르면 7월 평균 주요 여름 채소·과일의 가격이 6월 대비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상등급의 상추 포기찹(4㎏)은 6월보다 139% 올라 4만7229원까지 가격이 치솟았다. 상추(4㎏)는 108% 오른 4만4939원, 적상추(4㎏)는 119% 오른 4만4555원이다.
특등급 시금치(4㎏)는 6월보다 124% 올라 4만6572원이고, 쌈배추(1㎏)는 128% 오른 1만6048원이다. 수박 한 통(7㎏)은 6월보다 22% 오른 2만1952원이고, 복숭아 백도(4㎏)는 15% 오른 2만26533원이다.
이는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장마에 따른 영향으로 분석된다. 특히 올해 장마는 곳곳에서 역대 최다 강수량이 예고되면서 농산물 작황에 큰 피해가 갈 거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해 소비자물가동향을 살펴보면 장마철 이후 농산물 물가는 눈에 띄는 상승세를 보였다. 작년 장마는 중부지방 기준 6월25부터 시작돼 7월26일까지 한 달 넘게 이어졌다.
지난해 7월 소비자물가를 보면 농산물이 전년 대비 8.5% 상승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곡물과 기타 농산물은 하락했지만 채소·과일의 가격이 크게 올랐다.
당시 채소류는 1년10개월 만에 가장 큰 폭인 전년 대비 25.9% 상승했다. 전년도에 물가상승률이 낮았던 기저효과도 작용했지만, 잦은 강우와 폭염으로 잎채소의 작황이 특히 좋지 않아 배추가 72.7% 올랐으며, 오이 73.0%, 상추 63.1%, 파 48.5%, 시금치 70.6% 등에서 가격 상승세가 두드러졌다.
원재료인 농산물 물가가 상승하면 외식 물가도 연이어 자극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외식물가의 경우 한 번 오르면 쉽게 떨어지지 않기에 근원 물가가 아직 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물가가 예상보다 더 오를 가능성도 있다.
장마 이후에는 폭염과 여름 태풍, 두 달여 남은 추석도 물가 위험 요인으로 꼽힌다.
추석은 단기간에 먹거리 수요가 급증하기 때문에 상방요인으로 작용한다. 작년 추석이 있었던 9월 소비자물가에 따르면 생선, 해산물, 채소, 과일 등 가격 변동이 큰 55개 품목의 물가를 반영하는 신선식품지수는 전년 같은 달 대비 12.8% 올랐다. 특히 외식물가는 9.0% 껑충 뛰면서 30년2개월 만에 최대폭으로 증가했다.
여기에 최근 우유의 원료인 원유 가격 인상도 불안 요소 중 하나다. 원유 가격이 상승하면 우유를 원재료로 쓰는 빵, 아이스크림 등의 가격이 줄줄이 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편 정부는 태풍과 명절 특수 등으로 일시적인 물가 상승은 있겠지만 하반기 평균 물가가 2% 중후반대에 머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합동 브리핑에서 “특별한 돌발요인이 없다면 하반기에 (물가가) 평균 2% 중·후반대에 머물 것으로 생각한다. 일시적으로는 2%대 중반 아래로도 갈 수 있다”면서 “다만 통상 8월에 태풍이나 폭염 등으로 인해 농산물 수급에 일부 애로가 있을 수 있고, 또 9월 말에 추석이 있다. 이럴 때는 늘 명절 특수가 있기 때문에 대체로 일시적인 물가 상승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