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조직 잠입하는 경찰 역할에 ‘지창욱 색깔’ 입혀 묵직한 열연

▲ 배우 지창욱은 디즈니 플러스 드라마 ‘최악의 악’에서 조직에 잠입한 경찰 ‘준모’ 역할을 맡았다.

디즈니 플러스가 지난 10월27일 내놓은 드라마 <최악의 악>은 꽤나 익숙한 얘기다. 강남 일대에서 마약을 유통하는 조직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폭력 조직원이 된 경찰, 엇갈린 관계, 다시는 되돌릴 수 없게 된 운명 같은 얘기는 할리우드에선 <도니 브래스코>, 홍콩에선 <무간도> 시리즈, 한국에선 이들 영화에서 전체적인 얼개를 가져왔다고 할 수 있는 <신세계> 같은 작품에서 반복돼 왔다.

<최악의 악>에는 분명 기시감이 있다. 그런데도 이 드라마를 자꾸만 보게 되는 매력이 있다. 지창욱·위하준·임세미·비비 등 젊고 화사한 배우들이 범죄 누아르라는 어두운 세계에 있을 때 돌출하는 이질감이 신선하게 다가오는 데다가 뒤돌아 보지 않고 질주하는 듯한 전개가 몰입감을 높인다. 결정적으로 2시간 짜리 영화가 아니라 12부작 드라마라는 점에서 얽히고 설킨 이들의 관계가 더 깊이 드러나 설득력을 높인다.

배우 지창욱(36)은 이 드라마에서 조직에 잠입한 경찰 ‘준모’ 역할을 맡았다. <도니 브래스코>의 도니 브래스코, <무간도>의 진영인, <신세계>의 이자성이 그의 선배들이다. 지창욱도 <최악의 악>이 어디서 본 듯한 설정의 작품이라는 건 인정했다. 다만 이 작품만의 매력이 있다는 건 분명히 짚었다. 그가 드러내고자 했던 것 역시 인물 간의 관계와 인물이 변화해가는 과정이었다.

“우리만의 색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하면서 기존 누아르물과 분위기 자체가 조금 다른 것도 큰 차이 중 하나다. 무엇보다 다른 건 역시 관계라고 봤다. 이건 영화가 아니라 드라마이니까, 인물과 관계가 더 자세하게 드러난다. 나 역시 그런 부분에서 매력을 느꼈다.”

준모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폭력 조직에 잠입한 게 아니다. 출발은 자격지심이었다. 아내 의정(임세미 분)은 엘리트 경찰 집안 출신의 역시 엘리트 경찰. 가진 것 없고 별 볼일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준모는 지방 파출소를 전전하는 말단 경찰이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아내의 집안에 열등감을 갖고 있고, 어떻게든 성공하려는 열망도 있다. 그래서 이 위험한 임무를 받아들이면서 그는 상부에 조건을 내건다. 두 계급 특진. 하지만 준모는 조직원 생활을 하며 조직원보다 더 조직원에 가까워지고, 삶은 점점 피폐해진다. 의정과의 관계 역시 자꾸만 엇갈린다.

“이 장르를 흔히 남성적 서사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어떤 게 남성적인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이 작품을 택한 건 아니다. 내가 관심이 간 건 준모라는 사람이었으니까. 준모가 변화하는 모습, 뒤틀려 가는 모습이 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 뒤틀림을 합리화하는 마음이 재밌었다. 그 변화 속에서 휴머니즘을 보여주는 게 나의 목표였다.”

지창욱도 또래 남성들이 그렇듯 <무간도>나 <신세계> 같은 작품의 영향을 안 받을 순 없었다. 하지만 그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의 연기를 굳이 참고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유사한 설정이긴 해도 어쨌든 완전히 다른 작품이기 때문에 지창욱은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려고 했다. 아내를 향한 준모의 집착, 조직의 보스 기철(위하준 분)에 대한 준모의 알 수 없는 마음 등을 최대한 정확하게 표현해내면 색다른 인물이 나올 것이라고 봤다. 특히 기철에 대한 준모의 마음은 지창욱만의 해석이 들어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브로맨스를 담아내고 싶진 않았다”고 털어놨다.

“감독님의 연출 의도가 있겠지만, 나는 준모가 기철에게 인간적으로 연민을 느꼈다고 본다. 최소한의 연민, 딱 그 정도라고 봤다. 또 그렇게 연기했고. 굳이 브로맨스를 보여주려고 하지는 않았다. 명확하진 않지만 12부까지 다 보면 준모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지창욱은 <최악의 악> 촬영 현장이 치열했다고 했다. 그는 가장 많은 장면에서 함께 연기하는 위하준에게 파트너로서 부끄럽지 않은 연기를 펼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위하준은 물론이고 한동욱 감독 등 스태프와는 촬영이 끝나면 술자리를 함께하며 못다한 작품에 관한 논의를 끝도 없이 이어갔다. 

“모두 좋은 동료들이었다. 나 역시 큰 자극을 받았다. 다들 ‘미쳤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심히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