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해병 특검법’ 정국에 ‘VIP 격노설’이 더해지면서 여권을 집어삼킬 태세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 재의를 요구한 ‘채 상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안)을 두고 여야의 수싸움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가 특검법 재표결에서 ‘반대표’ 당론 방침을 세운 것을 두고 여권 내부의 반발 기류도 읽힌다.
이런 가운데 이른바 ‘VIP(대통령) 격노설’을 뒷받침하는 증언이 추가로 나와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사건 초기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수사 결과를 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크게 화를 냈다는 ‘VIP 격노설’이 수사 외압의 실제 배경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윤 대통령 ‘채해병 특검’ 거부권 행사→‘반대표’ 방침에 여권 내부 반발 기류
공수처, ‘VIP(대통령) 격노설’ 뒷받침할 또 다른 해병대 간부 증언 확보해 파문
▲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은, 사건 초기부터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 수사 결과를 들은 윤석열 대통령이 크게 화를 냈다는 ‘VIP 격노설’이 수사 외압의 실제 배경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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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채 해병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한 가운데, ‘VIP(대통령) 격노설’을 뒷받침할 또다른 해병대 간부의 증언이 나온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커지고 있다.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을 조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른바 ‘VIP 격노설’을 들었다는 또 다른 해병대 관계자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5월 22일 전해졌다. 법조계 등에 따르면, 공수처는 최근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으로부터 ‘VIP가 격노했다’는 말을 들었다는 취지의 해병대 관계자 A씨 진술을 추가 확보했다는 것.
‘VIP 격노설’ 뒷받침할 진술
JTBC는 5월 22일 저녁, “공수처가 최근 해병대 고위 간부를 소환했는데 이 간부가 ‘지난해 8월 1일 회의를 전후해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이 ‘VIP 격노’에 대해 말을 했다‘고 진술했다”고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이날은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이 ‘채 상병 사망 사건’을 경찰에 넘기는 걸 보류하라고 지시한 바로 다음 날이다.
앞서 지난해 7월 30일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해병대 조사 보고서를 결재했다가 다음 날인 7월 31일 보고서 경찰 이첩 대기를 지시했다. 박정훈 전 수사단장이 이를 따르지 않고 경북경찰청에 조사 보고서를 넘긴 2023년 8월 2일, 국방부 검찰단은 당일 곧바로 보고서를 회수하고 박 전 수사단장을 집단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했다.
박 전 수사단장은 지난해 8월 1일 회의에서 “김 사령관이 ‘대통령실 회의에서 VIP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됐다’고 말하며 조사 보고서 경찰 이첩을 막아섰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JTBC는 “박정훈 전 단장이 이 얘기(VIP 격노)를 들었다는 시점은 이보다 딱 하루 전인 지난해 7월 31일 김계환 사령관 독대한 자리”라고 짚고는 “결국 김 사령관으로부터 해병대 고위 간부 두 명이 하루 간격을 두고 ‘VIP 격노’ 발언을 들었다고 주장하고 나선 셈”이라고 전했다.
<중앙일보>도 5월 22일 비슷한 논조의 보도를 이어갔다. 이 매체에 따르면 공수처가 김계환 사령관에 대한 조사에서 이 같은 진술을 근거로 박정훈 대령과의 대질 신문을 요구하자 김 사령관이 “대질을 시키면 조사실에서 나가버리겠다”고 강력하게 항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앙일보>는 “공수처 수사팀은 이 같은 추가 진술 확보를 김 사령관에게 알리며 추궁했다”고 전하며 “결과적으로 중앙군사법원에서 VIP 격노설을 부인한 김 사령관으로서는 모해위증죄 처벌을 우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고 분석했다.
‘VIP 격노’와 관련해 김 사령관은 ‘VIP 격노설’을 언급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박 전 수사단장 외 해당 발언을 들었다는 군 관계자가 추가로 등장하면서 곤혹스런 입장에 처했다.
공수처는 VIP 격노설에 관한 김 사령관과 A씨의 통화 녹취 파일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A씨는 “김 사령관이 해당 발언을 했다고 하더라도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공수처는 5월 21일 김 사령관과 박 전 수사단장의 대질 조사를 시도했으나, 김 사령관 측의 반발로 불발됐다. 당시 김 사령관 측은 “해병대가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해병대를 책임지고 있는 최고 지휘관과 부하가 대면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은 해병대에 더 큰 상처를 줘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데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 대질을 거부한다”고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김 사령관은 “대질이 이뤄지면 조사실에서 나가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VIP 격노설’ 여권 해석 엇갈려
문제는 ‘VIP 격노설’을 바라보는 여당 내부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는 점이다.
신동욱 국민의힘 당선인은 5월 23일 오전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VIP 격노설’에 관한 질문을 받자 “대통령이 격노하면 안 되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하면 화를 잘 낸다는 이른바 불통설에 기반한 얘기”라고 설명했다.
신 당선인은 “대통령이 국가를 운영하면서 본인의 생각과 맞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표시하는 것을 두고 모두 다 격노설이라고 포장을 해서 무슨 심각한 직권남용을 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반면 비윤계인 조해진 의원은 “격노 정치는 장기적으로 대통령에게 독”이라고 지적했다. 5월 23일 조 의원은 페이스북에 “대통령도 화를 낼 수 있지만 그것이 채 상병 사건의 본질로 부각된 것은 대통령의 분노 때문에 행정 과정이 왜곡되거나 불법이 저질러졌을 것이라는 인상 때문”이라고 적었다.
조 의원은 이어 “대통령이 감정 개입 없이 일상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처리했다면 이 사안이 전혀 이슈가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지금 대통령은 ‘격노 정치’의 역작용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서 두 번 다시 격노 운운하는 것이 보도되거나 시중에 오르내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며 “회의 석상에서는 물론이고 개인적 업무 대화에서도 불필요한 감정 표출이 없도록 삼가고 조심해야 한다”고 쓴소리를 날렸다.
민주당 “격노설 전말 속속 드러난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실의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과 관련해 “모든 의혹의 진실이 대통령실과 윤석열 대통령을 가리키며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임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민석 민주당 대변인은 5월 15일 국회 소통관 브리핑을 통해 “해병대원 수사외압 사건의 핵심인 ‘VIP 격노설’의 전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힐난했다.
최 대변인은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해병대원 사망사건 수사 브리핑 보도자료가 대통령실에 먼저 보고되었고 해당 자료에는 사단장의 과실 판단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이를 확인한 ‘VIP’의 격노로 수사 브리핑과 사건 이첩이 중단됐다고 한다”고 전했다.
최 대변인은 “해당 자료를 입수해 간 대통령실 관계자는 ‘절대 이쪽에 전달했다고 말하면 안 된다’고 해병대 측에 당부했다고도 한다”고 짚으며 “결국 윤 대통령은 자신의 ‘격노’로 대통령실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하게 해놓고 이를 들킬까 두려워 특검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윤석열 대통령의 ‘격노’ 이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과 이시원 대통령실 비서관 사이엔 통화 등 여러 차례 연락이 집중됐고, 주고받은 문서엔 ‘업무상 과실 불인정’ 사례만 6건이 보고됐다고 한다“고도 덧붙였다.
최 대변인은 “VIP의 ‘수사 지침’에 따라 대통령실과 국방부가 판례까지 뒤져가며 임성근 사단장을 구하기 위한 수사 외압에 나섰던 것”이라며 “윤 대통령이 끝내 해병대원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면, 자신이 수사 외압의 범인임을 국민께 자백하는 꼴이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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