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월 27일로 취임 2주년을 넘겼다. 국내 최대 기업인 삼성전자는 11월 1일로 창립 55주년을 맞았다. 또 10월 25일은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의 네 번째 기일(忌日)이었다. 이 회장은 위기 때마다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며 리더십을 발휘했던 부친과 달리 조용한 행보를 이어왔다. 취임 1주년인 지난해 10월 27일 별도의 취임식도, 메시지도 없이 조촐하게 넘겼다.
다만 지난해 10월 21일 일본 내 주요 협력사 모임인 ‘이건희와 일본 친구들(LJF)’을 삼성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 초청해 30주년 교류회를 열었을 뿐인데, 이 행사가 사실상 1주년 기념행사로 여겨졌다.
이 회장은 2022년 회장 승진에 앞서 가진 계열사 사장단 오찬에서는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며 “어렵고 힘들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삼성전자가 전사적 위기에 놓인 만큼 쇄신에 나설지 주목된다. 이 회장 취임 이후 삼성전자는 유례 없는 위기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10월 25일 이건희 기일→27일 취임 2주년→11월 1일 삼성전자 창립 55돌
이재용, 강력한 메시지도, 별도의 행사도 없이 조용한 행보···올해는 과연?
31년 만에 회장 올랐지만 사법 리스크&리더십 부재···2년 만에 총체적 위기
AI 칩 시장 ‘기회’ 놓치고 조직문화 경직···우수 인재 외부로 빠져나가 악순환
“기존 사업 흔들려 신사업 성과 보일 때···늦어지면 경영 위기 더욱 커질 것”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0월 27일로 취임 2주년을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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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희 삼성전자 경영진은 먼저 송구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과로 근원적인 기술 경쟁력과 회사의 앞날에 대해서까지 걱정을 끼쳤습니다.”
지난 10월 8일 삼성전자는 3분기 잠정실적 발표와 함께 이례적인 반성문을 공개했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이끌고 있는 전영현 디바이스 솔루션(DS) 부문 부회장이 부진한 주가 및 실적에 대한 사과 메시지를 공개한 것이다.
이는 그만큼 삼성전자가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방증이다. 총체적 위기 와중에 삼성 이재용 회장은 10월 27일 취임 2주년을 맞았다.
이 회장은 지난 2022년 10월 27일 10년 동안 유지한 부회장직에서 ‘부’자를 떼고 회장으로 취임했다. 2012년 부회장 승진 이후 10년 만에, 1991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지 31년 만에 회장 자리에 오른 것이다.
‘초일류’ 다짐했지만 나홀로 겨울
이 회장은 당시 취임 관련 대내외 행사도 취임사 없이 “우리 앞에 놓인 현실은 엄중하고 시장은 냉혹하다”며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이다. 오늘의 삼성을 넘어 진정한 초일류 기업, 국민과 세계인이 사랑하는 기업을 꼭 같이 만들자. 제가 그 앞에 서겠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러나 이 회장 취임 이후 삼성전자는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유례 없는 위기 상황에 놓였다. 회장 자리에 오른 지 2년이 지나가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나홀로 겨울’이라는 냉혹한 평가를 듣는다.
메모리 반도체 경쟁업체인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시장을 선점하며 승승장구하고 있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경쟁업체인 대만 TSMC는 60%대의 글로벌 점유율을 기록하며 독주 체제를 굳혔다.
그 반면 삼성전자는 글로벌 AI 칩 시장을 이끌고 있는 엔비디아에 HBM3E 납품이 사실상 불발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파운드리 사업부 적자는 조 단위에 이른다. 한때 ‘10만 전자’ 소리를 듣던 주가는 5만 원대까지 추락했다. 가전 사업의 경우 경쟁업체인 LG전자에 밀린다는 평가까지 들린다.
재계에서는 이번 위기가 이 회장이 늘 강조해왔던 ‘기술’ ‘인재’ ‘조직’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풀이한다.
그동안 삼성은 ‘초격차 기술’을 유지해왔지만 AI 칩 시장에서 ‘기회’를 놓쳤고, 조직문화는 경직됐으며,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우수 인재들이 외부로 빠져나가 악순환이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 년째 이어지고 있는 이 회장의 재판으로 리더십 부재 또한 컸다는 지적도 일고 있다.
이 회장은 2015년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과정에서 불법적으로 개입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 재판은 피고인만 14명이며, 검찰 수사 기록만 19만 페이지, 증거 목록만 책 네 권에 달할 정도로 방대한 사건이다.
올해 초 1심 재판부는 이 회장을 포함한 피고인 전원에게 무죄를 선고했지만 검찰은 해당 판결에 불복해 항소를 제기했다. 항소심 첫 공판은 9월 30일 열렸으며, 재판부는 내년 초 판결을 선고할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재계에서는 9년째 이어지는 사법 리스크가 이 회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피의자 신분으로 매번 법정에 출두해야 하는 이 회장의 입장에서 회사 경영에 집중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회장이 재판 전 읽어야 할 법정 관련 서류만 매번 수백 페이지가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9월 공소장이 접수된 이후 이 회장은 107차례 열린 재판 중 96차례 법정에 출두했다. 대통령 순방 등에 동행하는 해외 출장 등을 제외한 대부분 재판에 모두 출석한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현재 삼성은 모든 면에서 비상경영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신사업이나 컨트롤타워 재건, 기업 지배구조 개선, 등기이사 복귀 등 굵직한 현안을 앞둔 이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 경영에 집중할 수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 재계에서는 삼성전자의 총체적 위기가 이재용 회장이 늘 강조해왔던 ‘기술’ ‘인재’ ‘조직’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풀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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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결단’ 메시지는 과연?
“기존의 잘못된 제도와 관행은 물론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을 바꾸자. 잘못된 것, 미흡한 것, 부족한 것을 과감히 고치자.”(2020년 부회장 시절)
“어렵고 힘든 때일수록 앞서 준비하고 실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 할 때다.”(2022년 10월 회장 취임)
삼성전자가 조만간 위기 돌파를 위해 전면 쇄신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이 회장의 ‘입’에 재계의 시선이 쏠린다.
재계에 따르면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 기일과 이재용 회장 취임 2주년, 11월 1일 창립기념일을 맞아 이 회장이 별도 메시지를 낼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삼성전자는 10월 8일 부진한 3분기 잠정실적을 발표하며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특히 이례적인 반도체 수장의 반성문까지 공개되며 초유의 위기 사태를 인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에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동행했던 이 회장은 10월 11일 공항 귀국길에서 부진한 실적과 연말 인적 쇄신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굳은 표정으로 자리를 떴다.
이 회장은 이건희 선대회장 4주기에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물산 사장 등 온 가족과 선대회장을 기리는 추모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는 가족 외에 전영현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 부회장, 한종희 디바이스경험(DX) 부문장 부회장 등 삼성전자 주요 경영진도 참석했다. 이 회장은 매년 추모식 이후 경기 용인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주요 경영진과 오찬을 함께 했다.
국정농단 사태 이후 해체됐던 컨트롤타워 부활과 등기이사 복귀 필요성도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삼성은 2017년 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하던 미래전략실을 폐지하고 삼성전자·삼성생명·삼성물산 등 3개 부문의 태스크포스(TF)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재계 일각에서는 그룹 문제 전반을 관리하는 구심점이 사라지면서 경쟁력이 저하됐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 회장이 책임경영 차원에서 등기이사에 복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 회장은 지난 2016년 10월 임시 주총을 통해 등기이사인 사내이사로 선임됐으나,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2019년 10월 재선임 없이 임기를 마쳤다.
이후 5년째 미등기 이사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4대 그룹 총수 중 미등기 임원은 이 회장뿐이다.
올해 초 이 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 사건 1심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으면서 등기이사 선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검찰이 항소하면서 사법 리스크는 또 한 번 이어지고 있다.
이찬희 삼성 준법감시위원장은 10월 18일 “사법 리스크라고는 하지만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진 책임경영에 최선을 다하는 게 옳다”며 이 회장의 등기이사 복귀를 촉구했다.
앞서 이 위원장은 준감위 연간 보고서를 통해서도 “조직 내 원활한 소통에 방해가 되는 장막의 제거와 최고경영자의 등기임원 복귀 등 책임경영 실천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이 있어야 한다”며 “경영 판단의 선택과 집중을 위한 콘트롤타워 재건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 바 있다.
이제 남은 결단은 이재용 회장의 몫이다.
6G·로봇 사업 꽂혔지만
“새로운 기술 확보에 우리 생존과 미래가 달렸다. 어려울 때일수록 선제적 연구개발(R&D)과 흔들림 없는 투자가 필요하다.”(이재용 회장, 지난 1월 삼성리서치 방문 당시)
반도체를 중심으로 삼성전자의 위기감이 커지는 가운데, 이 회장이 직접 삼성의 미래 먹거리로 꼽은 사업들에 관심이 쏠린다.
이 회장은 올해 첫 행보부터 삼성리서치를 찾아 차세대 6세대(6G) 통신 사업을 점검하는 등 사업 발굴에 힘을 쏟았다. 그는 휴머노이드(인간형) 로봇 등 차세대 지능형 로봇 개발도 직접 주문하며, 로봇 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회장이 지속적으로 차세대 기술 개발과 R&D를 강조한 만큼 이들 신사업이 삼성전자의 위기 극복 돌파구가 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일본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 ‘NTT 도코모’와 차세대 통신 인공지능(AI) 기술 업무협약(MOU)을 맺고, 6G와 AI를 융합한 기술 연구에 나섰다.
두 회사는 AI 연구에 속도를 높이며 실질적인 네트워크 품질 만족도를 끌어올리고 6G 시대에 대비해 시장 요구사항을 충족하기 위한 협력을 강화한다. 이를 통해 동영상 스트리밍 끊김을 막는 등 통신 서비스 체감 성능을 더욱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6G 통신은 이 회장이 각별히 신경쓰는 미래 먹거리로 실제 실적도 속속 가시화하고 있다.
앞서 이 회장은 지난 1월 올해 첫 행보로 6G 통신기술을 연구하는 삼성리서치를 찾았다. 그는 당시 6G 통신기술 개발 현황, 6G 및 5G 어드밴스드 등 차세대 통신기술 트렌드를 직접 살폈다.
삼성전자는 6G를 회사 경쟁력을 좌우할 신기술로 보고, 선행기술 연구를 지시했다.
이 회장이 공을 들이는 또 다른 신사업은 ‘로봇’이다.
이 회장은 휴머노이드 등 차세대 지능형 로봇 개발을 직접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반도체 생산 공정에 투입할 가능성도 제기된 바 있다.
이 회장의 사업 의지에 따라 삼성전자의 각종 로봇 제품들은 조만간 시장에 나올 수 있다.
삼성전자의 첫 보행보조 로봇인 ‘봇핏’은 이르면 이달 출시될 전망이다. 초기 생산물량은 10만 대 수준으로 관측된다. 봇핏을 기업간거래(B2B)부터 판매를 시작하며 곧 기업·고객간 거래(B2C)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올해 안으로는 가정용 집사 AI 로봇 ‘볼리’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볼리를) 갤럭시 웨어러블 제품과 연계하는 방안을 고민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이 회장은 최근 삼성 위기의 진원지인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 대해서도 분사 가능성을 일축하며 강한 사업 의지를 드러냈다. 삼성전자는 ‘턴키(메모리·파운드리 일괄제공)’ 등 독자 서비스들에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출범한 신사업 발굴 조직인 ‘미래사업기획단’도 움직이고 있다. 이 조직은 최근 게임·음악 등 콘텐츠 기업으로 위기를 벗어난 소니그룹과 제조에서 IT로 사업 재편에 성공한 히타치제작소 등을 연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시장의 전통 기업들의 신사업 발굴 사례도 참고해 빠른 시일 안에 삼성에 걸맞은 신사업을 내놓을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그동안 삼성전자에서 실종된 대형 인수합병(M&A)도 적극 추진해야 한다고 진단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사업들이 흔들리는 만큼 신사업이 성과를 보일 때”라며 “신사업 추진 시기가 늦어지면 향후 경영 위기는 더 커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