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 TSMC가 인공지능(AI) 칩 시장을 독식하며 역대급 영업이익률을 이어가고 있다. 고환율·고물가 등 시장 불안 요소가 커져 제조사들은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반면, TSMC는 일명 ‘꿈의 영업이익률’을 올리며 경쟁사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TSMC가 어떻게 이처럼 높은 영업이익률을 올릴 수 있는지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업계에서는 크게 고수익 사업 전환, AI 시장의 곡괭이 사업 선점, 가격 협상력 등을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시장에서는 TSMC가 지난해 반도체 업계 불황을 뚫고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한 데 이어, 올해에도 실적 호조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영업익률 49% 불황에도 굳건···’HPC‘ 등 고수익 사업 전환 속도 내기
경쟁사와 초격차로 가격 협상력 커져···이익률 타 업체와 비교 불가능
반도체 침체에도 ’나 홀로 독주’···AI 적수 없어 올해도 시장 독주 가능성
▲ 대만 반도체 제조회사 TSMC 본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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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는 지난해 4분기 매출 8684억6000만 대만달러, 순이익 3746억8000만 대만달러를 올렸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이다. 특히 영업이익률이 무려 49%에 달한다. 전년 동기(41.6%)와 비교하면 1년 새 7.4%p 증가했다. 영업이익률은 지난해 2분기 42.5%, 3분기 47.5% 등 계속 증가세다.
통상 제조업 분야에서 영업이익률이 20%만 넘어도 수익성이 좋은 것으로 평가 받지만 TSMC는 50%에 가까운 영업이익률 올리고 있다.
AI계 ‘곡괭이 기업’ 됐다
TSMC가 꿈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한 요인 중 하나로 ‘고수익 사업 전환’이 꼽힌다. TSMC는 최근 수익성이 높은 ‘고성능 컴퓨팅(HPC)’에 집중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 HPC는 AI로 고성능 연산을 하기 위한 컴퓨터로 고부가 반도체가 필요해 다른 매출처보다 수익이 더 높다.
지난해 4분기 TSMC 플랫폼별 매출 비중에서 HPC는 53%를 차지했다. 반면 비교적 수익성이 낮은 모바일 매출 비중은 35%에 불과했다.
TSMC는 짧은 기간 동안 HPC 매출 비중을 크게 늘렸다. 2023년 4분기만 해도 HPC와 모바일 매출 비중은 각각 43%로 서로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1년 만에 HPC가 모바일보다 20% 가까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삼성 파운드리의 경우 HPC 19%, 모바일 54%로 HPC 매출 비중이 아직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TSMC 꿈의 영업이익률 요인으로는 ‘곡괭이’ 사업모델 선점도 꼽힌다. 곡괭이 사업 모델은 19세기 미국 금광개발 호황 시기 금을 캐러간 사람보다 곡괭이 판매업자가 더 큰 수익을 벌었던 것처럼, 핵심 도구 및 서비스를 팔아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는 것을 말한다.
TSMC는 AI 칩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된 상황에서 AI에 직접 뛰어들기보다 칩 위탁생산이라는 서비스를 AI 기업에 안정적으로 팔고 있다. 위탁생산이라는 고난도 기술을 무기 삼아 AI 기업의 수요를 모두 흡수하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 자산운용사 GAM의 잔 코르테시 매니저는 “TSMC가 곡괭이 역할을 한다는 것을 투자자들도 깨달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부르는 게 값···강한 ‘가격 협상력’
강력한 ‘가격 협상력’도 TSMC의 영업이익률을 지탱하고 있다. TSMC는 파운드리 2위 삼성전자와 점유율에서 55.6%포인트나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만큼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이에 첨단 3나노 공정에서 TSMC가 주요 빅테크 수요를 거의 독점하고 있어 부르는 게 값이다. 특히 TSMC의 2나노 공정 웨이퍼는 장당 최고 3만 달러(4400만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4나노보다 2배 더 높다.
TSMC는 2나노에서 60%가 넘는 수율(양품비율)을 올리고 있는 데다 ‘CoWoS’ 등 첨단 패키징 기술력을 앞세우고 있어 AI 칩의 높은 성능을 보장하고 있다.
TSMC의 안정적인 기술력과 고객 요구에 맞춘 적기 공급을 감안하면 빅테크들은 여전히 낮은 수율을 보이고 있는 경쟁사들에 쉽사리 생산을 맡기기 어려운 상태다. 신뢰성이 중요한 파운드리 특성상 경쟁사들이 낮은 가격을 내밀어도 빅테크들은 당분간 TSMC의 높은 가격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TSMC는 고수익 중심 사업으로 가파르게 전환하고 수율 또한 높아질 것”이라며 “삼성과의 격차가 벌어질수록 TSMC의 영업이익률은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1000원 팔면 500원 남는다고?
대만 TSMC의 영업이익률은 다른 여타 기업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다. 지난해 평균 영업이익률은 45.7%로, 지난해 4분기(10~12월)만 놓고보면 49%에 달한다.
이는 통계청에서 조사한 국내 제조업 평균 영업이익률 6.4%(2022년)를 크게 웃돌 뿐 아니라, 국내 대표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의 같은 기간 반도체 부문 영업이익률 10%(추정치)를 크게 웃돈다.
엔비디아에 HBM(고대역폭 메모리)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보다 높은 수익률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3분기 40%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고, 지난해 4분기는 43%로 추정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지난 2018년 메모리 슈퍼 호황기에 50%를 넘는 영업이익률을 올리기도 했으나, IT 수요 회복 지연으로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시장에서도 TSMC 이익률은 독보적이다. 현재 7나노 이하 첨단 파운드리 공정을 수행할 수 있는 기업은 TSMC 외에 삼성전자와 인텔뿐이다. 하지만 이 두 회사는 현재 업황 침체와 대규모 설비 투자로 파운드리 사업에서 적자가 누적되고 있다.
TSMC의 높은 영업이익률은 글로벌 빅테크(기술 대기업)와 비교해도 우월하다. 애플의 지난해 3분기 영업이익률은 31.5%이며, 같은 기간 마이크로소프트와 메타는 각각 44.5%와 39.9%다.
TSMC와 함께 독점적인 기술력을 앞세워 전 세계에서 ‘슈퍼 을‘로 통하는 네덜란드 장비 회사 ASML도 반도체 업황 둔화와 미중 갈등으로 인해 수익성이 둔화하고 있다. ASML의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영업이익률은 30.7%로 집계됐다.
TSMC는 올해 1분기에도 영업이익률이 46.5~48.5% 수준을 보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어 올 하반기부터 고수익 차세대 제조공정인 2나노(㎚·10억분의 1m) 양산에 들어간다. 2나노 공정은 생산 단가는 웨이퍼(원판) 당 최고 3만달러(4400만원)에 이른다. 이는 3나노 공정보다 50% 비싼 수준이다.
현재 반도체 업계에서 TSMC보다 고수익을 내는 기업은 엔비디아뿐이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10월 말 기준 분기 영업이익률이 62% 수준이다. 굴뚝 없는 엔비디아가 1000원을 팔아 600원을 남기고 있다. 전 세계에 불어 닥친 AI 열풍에 따른 혜택이 극히 일부 기업에만 집중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언제까지 역대급 실적 이어갈까?
대만 TSMC가 지난해 반도체 업계 불황을 뚫고 역대 최대 실적을 경신한 데 이어, 올해에도 실적 호조세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커진다.
TSMC는 7나노 이하 첨단 공정 시장에서 엔비디아를 비롯해 애플, AMD 등 주요 고객들을 싹쓸이 하며 AI 호황의 수혜를 홀로 누리고 있다. 사실상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TSMC는 최근 열린 실적발표를 통해 “지난해 내내 고객으로부터 강력한 AI 관련 수요를 관찰했다”며 “AI 가속기의 수익이 전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 데 이어, 올해에도 2배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TSMC는 엄청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대규모 설비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연간으로 297억6000만달러를 투자했으며, 올해도 380억~420억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TSMC의 낙관적인 실적 전망은 올해 역시 TSMC가 독주를 지속할 것이란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TSMC는 올 하반기 차세대 파운드리 2나노 공정 양산에 들어간다. TSMC는 엔비디아, 애플, AMD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의 핵심 파트너로서 입지를 굳여, 파운드리 시장을 선도해 나갈 계획이다.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은 변수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 인상 정책으로 전 세계 반도체 경기가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올해 TSMC는 미국 시장에서 처음 첨단 공정을 가동한다. 첨단 공정은 생산 난도가 높고, 생산 단가도 대만보다 높은 수준이다. 생산 규모가 작고, 공급망 비용이 더 많이 들며, 미국 시장의 제조 생태계가 아직 초기 단계이기 때문이다. TSMC는 미국 등 해외 공장 가동에 따른 마진 희석 효과가 2~3%가량 발생할 것으로 예측했다.
TSMC는 하지만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앞세워 적극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TSMC는 해외 공장 물량의 경우 원가 차이를 고려해, 고객과 협의를 통해 대만 생산분보다 더 높은 단가로 주문을 받는다. 이에 미국 진출이 오히려 호재가 될 수도 있다. TSMC 매출에서 북미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4분기에 이미 75%에 달했다.
이에 AI 수요 호조로 TSMC의 영업이익률이 올해 50%를 넘길지 여부도 주목된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2021년 40.9% ▲2022년 49.5% ▲2023년 42.6% ▲2024년 45.7%를 기록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