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2기 미국 행정부가 본격 출범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취임 하루를 앞둔 1월 19일(현지 시각) “취임하자마자 불법 입국 차단, 미국 에너지 산업 부흥 등의 공약을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이날 오후 워싱턴DC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개최한 대선 승리 축하 집회에서 “나는 내일(1월 20일)을 시작으로 리나라가 직면한 모든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역사적인 속도와 힘으로 행동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내일 정오 우리나라를 되찾을 것”이라며 “우리는 워싱턴의 실패하고 부패한 정치 기득권과 행정부의 군림을 끝내겠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공식적으로 미국 동부 시간 1월 20일(현지 시각) 낮 12시부터 시작됐다. 한국 시간으론 1월 21일 오전 2시부터다. 4년 만에 대통령 자리에 돌아온 트럼프를 놓고 각국이 이해득실을 따지기 분주하다. 우리나라 유통 기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런 만큼 트럼프 대통령과 돈독한 인맥을 쌓고 있는 유통기업 총수들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편집자 주>
취임식·만찬 초대받은 정용진, “트럼프 주니어가 주요 인사 소개시켜 줄 것”
트럼프 행정부 2기 맞은 유통·식품 업계, 미국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 확장
SPC→텍사스, CJ제일제당→사우스다코타, CJ푸드빌→조지아 생산기지 건설
美수출 의존도 높은 K뷰티·식품, 관세 예의주시···고환율로 제조원가 상승 우려
▲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1월 1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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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유통업계 리더로는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이 꼽힌다. 정 회장은 만찬 무도회 초청장까지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은 1월 20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DC ‘캐피탈 원 아레나’에서 열렸다. 정 회장은 취임식 참석을 위해 1월 17일 미국 뉴욕으로 출국해 워싱턴DC에 도착했다. 정 회장의 미국 출국 길에는 부인 한지희 씨도 동행했다.
앞서 정 회장은 트럼프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12월 16~21일 트럼프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의 초청을 받아 미국 플로리다 팜비치 마러라고 리조트에 머무르며 트럼프와 함께 환담을 나누기도 했다. 트럼프 주니어는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재집권에 공을 세운 ‘킹메이커’로 떠오르며, 트럼프 행정부 2기의 막후 실세로 거론되는 인물이다.
정 회장은 우선 1월 20일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 생중계 현장에 참석했다. 미국 동부의 한파로 인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식이 당초 국회의사당 실외 공간에서 실내로 변경되면서 국회의사당 로툰다 홀에는 상·하원 의원과 대법관, 정부 주요 인사 약 600여 명만 참석했다.
‘캐피탈 원 아레나’에서 진행된 생중계는 트럼프 정부가 대외 VIP를 대상으로 초대하는 사실상 유일한 공식 자리였다. 당초 배부된 25만 장의 취임식 티켓 소지자 중 약 8% 수준인 2만여 명을 별도로 선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현지에서도 아레나에 초청된 인사들의 기준이 밝혀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정용진 1월 17일(현지 시각) 미국 뉴욕 JFK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미 관계에서 정 회장에게 민간 차원의 가교 역할을 기대하는 여론이 많다’는 질문을 받자 “(한미 관계의) 가교 역할이 되거나 국익에 보탬이 되면 좋겠다”고 답했다.
정 회장은 “나는 기업인이니까 맡은 부분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그게 가교 역할이 되거나 국익에 보탬이 되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외교관이나 행정가가 아니어서 국가 어젠다를 말할 처지는 아니다”면서도 “다만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미국이라는 큰 시장에 다양한 창구가 만들어지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2024년 12월 마러라고 방문 당시 트럼프 당선인이 한국에 관심을 가졌느냐’고 묻는 질문에는, “없진 않은 것 같았다”며 “한국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했다”고 전했다.
다만 정 회장은 트럼프의 질문에 대해, “거기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서도 “(정치적 상황) 이외의 것으로, 그 자리가 비공식적인 자리였기 때문에 그렇게 정치적인 얘기를 할 수 있는 자리는 아니었다”고 덧붙였다.
취재진이 ‘관세 정책과 관련해 나눈 이야기가 있는지’ 묻자, 정 회장은 “그것에 대해서는, 정치적·외교적 문제에 대해서는 얘기한 바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정부나 재계에서 전달을 요청한 메시지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없다”며 “나는 그냥 일개 기업일 뿐이고 대미 창구가 빨리 개선돼서 내가 아니더라도 더 좋은 자리, 높은 자리에 있는 분들이 만나야 되겠다”고 말했다.
‘미국 사업 확장 계획’에 대해서는 “미국 사업과 관련한 얘기는 트럼프 주니어와 해본 적이 없다”며 “미국 사업이든, 한국 사업이든 열심히 해야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회장은 이어 “나는 내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할 따름”이라며 “그렇게 해야지만 많은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기부금에 대해서도, “내가 알고 있기로 외국 기업의 기부는 안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또 이번 취임식 참석 후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 계획에 대해, “아시는 바와 같이 트럼프 주니어 초대로 가기 때문에 취임식에 참석하고, 향후 일정에 대해서는 사실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트럼프 주니어와의 만남을 어떤 식으로 계속 이어갈지’를 묻는 질문에는 “원래 친한 사이”라며 “스스럼 없이 대화하고, 스스럼 없이 만나는 사이이기 때문에 계속 만남을 유지하면서 둘이 같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겠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주니어가 주요 인사를 많이 소개시켜 줄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국내 대표 이커머스 쿠팡의 창업자 김범석 쿠팡Inc 의장도 트럼프 취임식과 무도회에 참석했다.
김 의장은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취임식에 참석해달라는 요청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한 쿠팡Inc는 미국 현지에서 인재 채용을 하는 등 한미 경제협력을 다져왔다.
허영인 SPC 회장 역시 트럼프 초청을 받아 취임식에 참석했다. 이번 초청은 한·미 경제 협력 활동을 활발히 펼쳐온 ‘한미동맹친선협회’가 허 회장을 추천해 이뤄졌다.
허 회장과 트럼프는 2019년 방한 당시 ‘한국 경제인과의 간담회’에서 만난 적이 있다.
SPC그룹이 운영하는 파리바게뜨는 2005년 미국에 진출해 현재 약 200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최준호 패션그룹 형지 부회장도 까스텔바작 대표이사 자격으로 취임식에 참석했다. 최 부회장은 패션그룹 형지 창업주 최병오 회장의 장남이다. 패션 관련 재개 인사로서는 유일하게 취임식 초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이번에는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신 회장은 트럼프와 두 차례 만나 ‘최다 접촉 총수’로 불린다. 신 회장은 2017년 트럼프 방한 당시 청와대 국빈만찬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등과 함께 참석해 트럼프 당선인을 만났다.
이어 2019년에는 롯데케미칼이 31억 달러를 투자해 미국 루이지애나주에 석유화학공장을 설립한 것과 관련해, 한국 기업 총수로는 처음으로 백악관 집무실에 초청을 받아 트럼프와 면담했다.
트럼프가 졸업한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출신으로 ‘한국 재계 트럼프 인맥’으로 꼽혀온 구본걸 LF그룹 회장과 김동녕 한세예스24그룹 회장은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았다.
CJ·SPC K푸드·제빵 공장 투자
트럼프 행정부 2기를 맞아 유통·식품 업계가 미국을 중심으로 글로벌 사업 확장에 나서고 있다.
SPC, CJ제일제당, CJ푸드빌 등은 ‘K푸드’ 열풍에 힘입어 미국에 해외 생산기지 건설에 한창이다.
먼저 SPC그룹은 텍사스주 존슨 카운티에 속한 벌리슨 시에 제빵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지방 정부와 투자 계획 및 지원금에 대해 최종 조율 중이다. SPC그룹이 건설할 예정인 미국 제빵 공장은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향후 파리바게뜨가 진출할 예정인 중남미 지역까지 베이커리 제품을 공급하기 위한 생산 시설이다. 이 공장은 투자 금액 약 1억6000만 달러(약 2363억 원), 토지 넓이 약 15만㎡(4만5000평)로 SPC그룹의 최대 해외 생산 시설이 될 전망이다.
▲ SPC그룹은 미국 현지에 제빵공장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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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슨 카운티와 벌리슨 시 지방 정부는 이번 공장 투자 유치를 위해 파리바게뜨에 약 1000만 달러(약 147억 원) 규모의 지원금을 제공한다.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 매장 200여 개를 운영 중인 파리바게뜨는 북미 지역 매장 수가 빠르게 늘면서 제품 공급량도 꾸준히 늘어나는 추세다. 파리바게뜨는 텍사스 공장을 기반으로 2030년까지 북미 지역에 매장을 1000개까지 늘리겠다는 목표다.
만두·즉석밥·냉동치킨 등 K푸드를 미국 현지에서 판매 중인 CJ도 북미시장에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7000억 원을 투입해 2027년 완공을 목표로 미국 중서부 사우스다코타 주 수폴스에 ‘북미 아시안 푸드 신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이 공장은 축구장 80개 규모(57만5000㎡)의 부지에 건설된다.
2027년 완공 시 북미 최대 규모의 아시안 식품 공장이 된다. 찐만두·에그롤 생산라인과 폐수처리 시설, 물류센터 등을 갖춘 북미 최대 규모의 아시안 식품 제조시설로, 미국 중부 생산거점 역할을 할 예정이다.
2019년 미국 식품업체 슈완스를 인수한 CJ제일제당은 현재 미국에 20개의 식품 생산기지를 두고 있다. 미국은 CJ제일제당의 해외 식품사업 매출 중 80%를 차지하는 핵심 시장이다.
지난해 11월 진행된 수폴스 공장 착공식에는 트럼프가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지명한 크리스티 노엄 사우스다코타 주지사도 참석해 관심을 모았다.
CJ푸드빌도 올해 하반기 완공을 목표로 약 700억 원을 투자해 조지아주에 생산공장을 건립 중이다. 이 공장은 약 9만㎡의 부지에 건설된다. 연간 1억 개 이상의 냉동 생지와 케이크 등 생산능력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본격적으로 생산을 시작하면 북미 지역 뚜레쥬르 가맹점의 생산 거점 역할을 맡게 된다.
조지아주는 미국 전역으로의 시장 접근성이 뛰어난 곳으로, 공장이 완공되면 국내 식품 업계 최초로 미국 동남부 지역에 진출하게 된다. 이를 통해 미국 내 뚜레쥬르 매장 수를 지난해 말 기준 150개 수준에서 2030년까지 1000개로 늘린다는 방침이다.
식품 업계가 미국 내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은 현지 경쟁력을 강화해 ‘관세 리스크’를 피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K푸드를 무관세로 수출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관세를 부담하게 돼 부담이 늘어날 수도 있게 됐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정부 집권 이후 보편관세가 적용될 경우 식품 수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에 따라 미국에 생산기지를 짓고 현지 생산에 나서는 등 보편관세를 대비하기 위한 현지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K뷰티·푸드 트럼프 파고 넘을까
트럼프 정부가 출범하면서 그동안 미국 시장에서 호황을 누렸던 K뷰티·푸드 업계 전망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식품·화장품 업계의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아 트럼프 당선인의 정책 방향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뷰티 기업들은 “보호무역으로 인한 관세 등의 영향이 일부 있을 수 있다”며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국내 화장품 누적 수출 규모는 74억 달러로, 전년 동기 누적 수출액인 62억 달러(약 8조3706억 원) 대비 19.3% 증가했다.
자동차나 반도체 만큼의 직접적 영향은 아닐지라도 미국이 K뷰티의 주요 수출국인 만큼, 트럼프가 내세우는 보호무역주의는 국내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가성비를 내세우는 인디 브랜드를 중심으로 K뷰티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는 만큼 관세로 인해 가격이 올라갈 경우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뷰티 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화장품을 규제할 정도의 산업군으로 보고 있는 상황은 아니다”면서도 “관세가 미국 수출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콜마·코스맥스 등 국내 대표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업체들은 오히려 호조를 보일 것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미국 현지에 생산공장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관세를 피해 미국 공장에 직접 주문을 넣는 업체들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콜마는 미국 제 1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다음 해 제 2공장을 완공할 예정이다. 미국 뉴저지에는 코스맥스 공장이 위치해 있다.
식품업계 역시 보호무역 주의를 내세우고 있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예의 주시하고 있다. 국내 식품기업의 경우에도 라면·과자·음료 등 K푸드가 미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전체 수출액의 16% 가량이 미국에서 나오는 상황이다.
트럼프가 자국 우선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만큼 향후 높은 관세와, 까다로운 검역절차 등이 예상돼 K푸드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게 업계 전반적인 시각이다.
이와 함께 트럼프 행정부 집권 여파로 나타난 고환율 역시 업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 돌파를 눈 앞에 두고 있다. 자국 우선주의 강화로 원화 약세 현상이 지속돼 환율이 오를 경우 밀가루 등 수입 비중이 높은 원·부자재 비용이 증가해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수출을 위주로 하는 화장품·식품 업계 역시 환율 급등으로 원재료 비용이 오를 경우 제조 원가가 높아져 손해가 커질 수 있다.
화장품 업계의 경우 팜유·글리세린 등 화장품에 쓰이는 원료의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환율 상승이 장기화되면 제조 원가가 상승할 수밖에 없다. 라면·과자 같은 식음료 업계도 원재료의 70% 가량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원가 상승 압박을 피하기 어렵다.
한 식품 업계 관계자는 “단기적으로는 수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널뛰기 환율보다는 안정적인 환율이 수출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며 “밀가루·팜유 등 많은 원자재를 수입해서 쓰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부담이 클 수 있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 현지에 법인과 공장을 둔 기업들은 관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만큼 반사이익을 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국내 식품 업체 가운데 미국 현지에 공장을 두고 있는 곳은 농심·CJ제일제당·대상·풀무원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