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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시대, 가축이 된 네이티브를 향한 지적 반동

인터넷 20년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인터넷 빨간책’

박소영 기자 | 기사입력 2015/02/09 [11:09]

디지털 시대, 가축이 된 네이티브를 향한 지적 반동

인터넷 20년 발자취를 되돌아보며 ‘인터넷 빨간책’

박소영 기자 | 입력 : 2015/02/09 [11:09]
<인터넷 빨간책>은 ‘똥바다’ 같은 인터넷 세상을 누비며 빅데이터, 인터넷 사찰, 플랫폼 기업, 저작권법 등 인터넷 세상의 악의 고리를 까발리고 조롱한다. 보르헤스, 베냐민, 엘리엇, 매클루언, 푸코, 잡스, 루쉰, 오웰 등을 불러내 치열한 대화를 나누고, 장르와 장르, 과거와 현재, 현실과 몽상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지난 20년간의 한국 인터넷 문화와 현실을 신랄하게 분석하고 비판한다. 사회학자 백욱인의 지적인 패러디로 엮은 이 시대의 금서 빨간책이 ‘비트’와 ‘픽셀’에 홀린 이들의 눈빛에 초롱초롱한 총기를 되돌려 줄 것이다. <편집자주>

인터넷 세상에 교묘하게 은폐된 ‘노동과 자본’ 지적
속물과 잉여가 만들어 낸 인터넷 똥바다 탈옥 교본

 
[주간현대=박소영 기자] 인터넷 상용화 20년. 인터넷은 몸과 기억, 기술과 경제, 자본과 노동, 존재와 시간 등의 관계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고,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즐기기만 하는 ‘가축’들로 가득 찬 가축의 왕국으로 세계를 전락시켰다.



▲ <인터넷 빨간책> 책표지.     ©



인터넷 똥바다 탈옥 교본

인터넷 이용자 4000만 시대, 3300만 명의 스마트폰 이용자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인터넷에 접속해서 정보들 사이를 부유한다. 1986년 데이콤에서 PC통신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1994년 코넷(kornet)이라는 이름으로 인터넷 상용화가 된 지 20년, 정보에의 평등한 접근과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의 도래라는 꿈은 과연 실현되었는가? 하루에도 몇 번씩 악성 댓글 고소를 다룬 기사가 뜨고, 은행 등 공기업에서 개인 정보가 심심찮게 유출되고, 보고 싶지 않은 광고들이 온종일 모니터 화면을 따라다니는 게 인터넷 현실이다.

인터넷과 관련된 디지털 기술은 혁신적 발전을 이뤘으나, 후진적인 이용자 문화나 서비스 기업의 윤리는 좀체 변화될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정보의 바다라 불리던 인터넷은 온갖 잡스러운 정보와 외설이 판치는 ‘똥바다’가 되어 버렸다. 이에 <인터넷 빨간책>은 인터넷이 가져올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놓지 않기 위해 지금이 바로 인터넷 세상의 현실을 직시하고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인터넷 빨간책>은 사이버스페이스와 디지털 문화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연구 주제로 삼았던 1세대 디지털 사회학자 백욱인이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현재 한국 인터넷 문화를 분석하고 이용자, 기업, 지배 장치 간의 지형도를 그려낸 첫 번째 대중서다. 이 책은 SNS 및 플랫폼 기업들이 개인의 일상을 정보화한 빅 데이터를 통해 개인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행위를 제한하며, 개인은 그에 대한 비판 없이 놀이와 소비에 매몰되어 ‘가축’처럼 길들여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터넷 사회의 새로운 균형과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현재에 대한 ‘반동’이다. 이 책은 인터넷이 한국사회를 ‘가축의 왕국’으로 만들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침과 동시에 그 속에 자리 잡은 개인의 활동을 비판적으로 점검함으로써 디지털 문화 분석이 한국사회를 읽는 중요한 프리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터넷 빨간책>에는 디지털 문화를 읽는 날카로운 풍자와 패러디로 가득하다. 한국의 기술 경제 그리고 한국적 주체들이 만든 아수라장인 인터넷 사회를 중첩적으로 읽기 위해, 현실로 진입하는 우회로로써 각종 패러디를 활용한 글들을 엮었다. 다른 시대, 다른 나라의 시인, 소설가, 평론가, 학자들을 만나 그들의 시, 소설, 희곡, 평론, 논문을 섞어 오늘의 인터넷을 풀어헤쳐 놓고 있다.

보르헤스, 베냐민, 엘리엇, 매클루언, 푸코, 잡스, 루쉰, 오웰 등 선인을 불러와 그들의 목소리로 말하고, 현실과 가상을 엮고, 소설과 희곡과 심포지엄과 평론을 뒤섞은 지적인 패러디를 통해 허구와 현실의 접점을 만듦으로써 인터넷을 읽는 방식을 다각화하고 있다. 이 책을 구성하는 스물 세 편의 글은 서로 얽히고 견주면서 과거와 현재, 현실과 몽상이 하나 되는 ‘이상한 세상’을 그린다. 바로 그 이상한 세상은 우리가 대면한 인터넷 세상의 현실이자, 더 이상 특수한 가상세계가 아닌, 사회의 주체들을 형성하고 만드는 한국 사회 그 자체이다.

이 책의 1부 ‘인터넷 사람들’에서는 인터넷 세상에 등장한 새로운 주체인 ‘속물’과 ‘잉여’들을 소개한다. 가축으로 길들여지고 있는 디지털 원주민들의 세태를 <십계>의 형식으로 고발하고, 저성장사회 취업난 속에서 현실에서의 열패감을 온라인상에서 감정적으로 배설하는 잉여 세대들의 비뚤어진 욕망을 <아큐정전>에 빗대기도 한다.

더 이상 변화하려고 하지 않는 자족적 사회와 속물적 지식인들을 비판하기 위해 ‘근대 고릴라’ 미시마 유키오를 불러오는가 하면, 디지털 시대 잉여 세대가 플랫폼 기업 및 인터넷 세계의 속물들에게 착취당하고 있음을 브레히트의 ‘소시민의 일곱 가지 죽을죄’를 빌려 노래한다. 시인 김지하의 ‘똥바다가’를 바탕으로 정보의 바다가 아니라 똥바다가 되고 있는 인터넷 속 세태를 속이 뻥 뚫리도록 시원하게 풍자한 ‘인터넷 똥바다가’는 패러디 미학의 정점을 보여준다. 판소리 장단을 따라 무릎을 탁 치며 웃고 공감하다 보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는 것을 느끼며 세계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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