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이 뭔지 얼마나 알겠어?” ‘풋내기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오리지널 버전

박소영 기자 | 기사입력 2015/03/09 [10:01]
가공하지 않은 레이먼드 카버의 목소리 들을 기회!
“하여간 내가 보기에 사랑에 순전히 풋내기들이야”

 
<풋내기들>은 레이먼드 카버의 두 번째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원본이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에 포함된 17편의 단편이 편집자의 손을 거치지 않은 상태의 오리지널 버전 그대로 실렸다.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고든 리시의 편집본으로 출간되었고, 카버는 언젠가 오리지널 버전의 원고로 책을 출간할 것을 다짐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2009년, 카버의 미망인 테스 겔러거가 너무 빨리 고인이 된 남편의 오리지널 버전 원고를 모아 <풋내기들>을 펴냈다. <편집자주>


[주간현대=박소영 기자] 미니멀리즘, 리얼리즘, 냉혹한 정직성, 건조하고 적확한 문체. 레이먼드 카버를 말할 때 으레 따라다니는 단어들이다. 그런데 카버 자신은 이러한 수식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미니멀리스트’라는 말에는 비전과 완성도가 미약하다는 느낌이 있어서 싫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과연 작가는 자신이 싫어하는 스타일에 정통할 수 있는 걸까? 거꾸로, 자기 작품이 대표하는 스타일을 싫어하는 게 가능할까? 미니멀리스트 카버의 명성은 과연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진짜 카버’ 논란에 맞서다

레이먼드 카버가 폐암으로 50세의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소설집 처음 두 권을 편집한 편집자이자 작가이며 카버의 친구이기도 한 고든 리시에게 대중의 이목이 집중됐다. 레이먼드 카버의 초기 작품들을 이른바 ‘카버 스타일’로 만든 것이 바로 고든 리시라는 주장 때문이었다. 1998년 저널리스트 D. T. 맥스는 카버와 리시가 주고받은 편지와 고든 리시의 교정 원고 내용 등을 근거로 한 <뉴욕 타임스> 기사를 통해, 소문처럼 떠돌던 이야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풋내기들>과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을 비교해 읽어보면 논란의 맥락을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오리지널 버전인 <풋내기들>은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보다 좀 더 너그러운 시선을 견지한다. 생략과 감추기로 생기는 서사 사이의 빈 공간이 상대적으로 적다. 고든 리시가 등장인물의 감상적인 대사나 친절하고 전형적인 서사 혹은 극적인 사건을 대부분 삭제하는 식으로 카버의 원고를 간결하게, 그리고 훨씬 모호하게 다듬었다는 것을 파악하기란 어렵지 않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카버의 명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는 것이다.

하지만 테스 겔러거는 오히려 <풋내기들>을 통해 작가 레이먼드 카버의 문학적 성취에 관한 논란에 정면으로 맞섰다. 레이먼드 카버가 쓴 오리지널 버전을 정확히 복원해 편집만으로는 만들어낼 수 없는 걸작의 면모를 소개하는 한편, 고든 리시가 터부시했던 작품 속 희망적 요소를 세상에 드러내어 카버 작품을 읽는 보다 넓은 틀을 마련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관심이 두 가지 버전 중 무엇이 더 나은지를 비교하는 데 있지 않고, 카버의 두 번째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과 세 번째 소설집 <대성당> 사이를 잇는 결합 조직과도 같은 카버의 오리지널 버전을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것에 있다고 밝혔다. 


우린 사랑에 풋내기들이야

<풋내기들>은 레이먼드 카버가 오랜 알코올중독을 이겨내고 ‘두번째 인생’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쓴 소설집으로, 그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는 소설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말하고 제 영혼을 치유하려고 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풋내기들>에는 “가슴을 압박하는 아픔”만 있지 않다. 등장인물들은 여전히 알코올과 싸우고 있거나 결혼생활이 파탄나 있거나 더는 희망이 없거나 뜻하지 않은 불행을 겪지만, 거기에는 절대 과하지 않지만 결코 묵인해서는 안 될, 막 꿈틀대기 시작하는 작은 희망이 엿보인다. 이는 카버가 고든 리시와 결별한 후 발표한 세 번째 소설집이자 카버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대성당>과도 맥이 통하는, 카버 작품세계의 주요한 축이다.

절제하고 모호하게 말하고 머뭇거리고 멈추는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의 인물들과 달리, <풋내기들>속 인물들은 감정을 쏟아내고, 후회하고, 눈물을 흘린다. 가족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고, 기회를 청한다. 그리고 신께 기도한다.

오직 미니멀리스트로서의 카버만을 보고 싶은 독자에게 <풋내기들>은 조금 당황스러운 작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카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싶어 하는 독자에게 <풋내기들>은 분명 예기치 못한 반가운 선물이 될 것이다. 알코올중독, 결혼 실패, 경찰서와 법정을 들락거리던 삶, 요절한 천재. 그동안 불운한 카버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했다. 이제는 <풋내기>와 함께 회복의 의지를 품었던 카버, 희망을 노래하고 싶었던 카버에 대해 이야기해볼 때다. 감춰졌던 레이먼드 카버의 또 다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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