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②] 재벌 가계도-범LG家

형제부터 사돈까지 …유교 정신으로 쌓아올린 ‘성공신화’

손성은 기자 | 기사입력 2015/04/13 [11:26]

재계에서 LG그룹으로 대표되는 범LG가만큼 복잡하게 얽혀있는 가계도를 찾아보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미 잘 알려진대로 범LG가의 역사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로부터 시작됐다. LG그룹은 현재 국내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굴지의 기업집단이다. LG그룹은 철저한 유교적 가풍으로 후계 경영인들을 교육시키고,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때문에 범LG가의 본류 LG그룹은 창립 이래 경영권 승계 문제로 인해 이렇다 할 분쟁을 겪은 역사가 없어 진정한 의미의 ‘친족 경영’으로 평가받고 있다. LG그룹에서 갈라져 나온 범LG가 역시 경영권 다툼 등 분쟁이 비교적 적은 편이다. 조용하지만 강하게 재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범LG가의 가계도를 들여다봤다. <편집자주>




유서 깊은 양반가 출신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
범LG가 창업주 직계 자손들 이끄는 LG그룹 본류


창업공신 형제·사돈 일가…LS·GS그룹도 한 가족
그룹 분리 과정에서 잡음 없어…완벽한 교통정리



[주간현대=손성은 기자] 대한민국 굴지의 대기업 대부분이 족벌 경영을 통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전 국민이 아는 사실이다. 일제 강점기 이후 한국전쟁 등 굴곡진 현대사 속에서 급속도로 성장한 재계의 중심에는 철저히 혈족 중심으로 운영된 재벌그룹이 자리 잡고 있다.


멀게는 일제 강점기 가깝게는 한국전쟁 이후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기업의 역사. 반백년의 역사를 가진 기업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다. 족벌체제로 경영이 이뤄지는 만큼, 역사가 길어짐에 따라 그 가계도 역시 방대해졌다. 그중에서도 LG로 대표되는 범LG가의 가계도가 눈길을 끈다. 복잡하게 얽혀 재계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범LG가는 방대하고 복잡한 가계도만큼이나 독특한 가풍으로 유명하다.

양반가의 독특한 일탈


▲ LG그룹을 본류로 하는 범LG가의 가계도는 재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 주간현대
범LG가의 가계도는 복잡하기 그지없다. 역사와 전통에서 내로라하는 대기업과 비교하더라도 그 방대함과 복잡함은 단연 1등이다. 이러한 범LG가의 복잡한 가계도를 이해하기 위해선 범LG가의 본류인 LG의 창업과정을 살펴봐야 한다.

LG 창업주는 故 구인회 창업회장이다. 구 창업회장은 1907년 경남 함안 출신이다. 구 창업회장의 집안은 뼈대있는 양반 가문이었다. 구 창업회장의 할아버지는 조선 말기 고종 황제 곁에서 왕자들을 교육시키던 높은 관료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낙향한 인물이었다. 이러한 내력으로 인해 LG가에 유교적 가풍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

낙향했다곤 하지만 뼈대 있는 양반가 출신인 구 창업회장이 사업가로서 첫 출발한 것은 지난 1926년.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를 수료하고 귀향해 지수협동조합의 이사로 취임하면서다. 이후 구 창업회장은 1931년 진주에서 구인회포목상점을 열면서 본격적인 사업가의 길을 걷는다.

포목점 사업 시작 당시 구 회장은 동업관계를 맺게 됐다. 동업자는 사돈 관계에 있던 현GS그룹의 소유 집안인 허씨 일가. 이때 맺은 사업 관계로 인해 범LG가의 가계도는 한층 복잡해지게 된다. 구 회장은 이후 나름의 성공을 거두게 된다. 포목 사업 외에도 여러 사업들을 거쳤고, 진주에서 사업을 정리하면서 많은 토지를 매수했고, 이를 재매각한 돈으로 부산으로 진출해 크림 생산 사업을 추진했다.

부산에서 성공적인 성과를 거둔 구 창업회장은 1953년 LG그룹의 모태인 락희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한다. 이후 1959년 금성사를 창립 전자제품 생산 사업에 뛰어들었고 이 과정에서 전화기, 선풍기, 에어컨, TV, 냉장고 등을 대한민국 최초로 생산하는 데 기여했다. 뿐만 아니라 럭키사를 통해 치약, 칫솔, 비누, 합성세제 등도 한국 최초로 생산했다.

현재 LG의 기틀을 닦아 놓은 구 창업회장의 뒤를 이은 인물은 구자경 LG 명예회장이다. 구 명예회장은 구 창업회장 슬하 6남4녀 중 장남으로 LG의 2대 회장을 역임했다. 그 뒤를 이은 인물이 3대째이자 현 회장인 구본무 회장이다. 구본문 회장 역시 구 명예회장 4남2녀 중 장남이다.

장자승계의 원칙

LG그룹은 본래 장자 계승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장자들이 경영권을 이어받았고, 여성들이 경영에 참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문 케이스다. 이는 기본적으로 구 창업회장으로부터 시작된 LG가가 강한 유교 가풍을 특징으로 하고 있기 때문. 이에 LG가는 경영승계를 둘러싼 잡음이 들리지 않는다.

3대 구본무 회장의 뒤를 이을 4세 경영인으로 지목되는 인물은 구광모 (주)LG 상무다. 구 상무는 지난 2004년 구본무 회장의 양자로 입적했다. 구본무 회장의 친아들 구원모씨가 지난 1994년 19세의 나이로 해외유학 중 사망한 이후, 구본무 회장의 첫째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외아들 광모씨를 양자로 들였다. 구 상무는 지난 2006년 LG전자 대리로 입사한 이래 공개석상에 모습을 보인 적이 없으나, 올해 초 임원으로 승진하며 경영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현재 범LG가의 핵인 LG의 대권은 장자승계 원칙에 따라 구 창업회장의 직계 혈통 중 장자인 구본무 회장이 잡고 있다. 그렇다면 구 창업회장 슬하 6남4녀 중 장남 구본무 회장의 형제들은 어떤 활동을 벌이고 있을까.

구본무 회장의 첫째 동생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이다. 희성그룹은 지난 1995년 LG그룹에서 분리돼 나왔다.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은 셋째 구본식 부회장과 함께 그룹을 이끌고 있다. 구본무 회장의 셋째 동생인 구본식 희성전자 부사장은 25.4%의 지분을 보유, 2대주주로 등재돼 있다. 구본무 회장 동생 중 LG에 남아있는 인물은 둘째 구본준 LG전자 부회장뿐이다.

창업주의 형제들

구 창업회장은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사돈 일가뿐만 아니라 형제들의 재계 진출을 이끌어냈다. 구 창업회장은 그룹의 기틀을 닦는 과정에서 5명의 동생을 사업가의 길로 인도했다. 현재는 구 창업회장의 형제 중 1명을 제외하고 모두 작고했으나 그 직계 자손들이 각각의 사업 분야에서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구 창업회장은 철회, 정회, 태회, 평회, 두회 5명의 동생을 두었고, 이들 모두는 그룹 경영에 관여했다. 첫째 동생인 故 구철회 사장은 구 창업회장과 함께 진주에서 포목상을 시작하며 LG그룹의 기틀을 닦았다. 그는 지난 1975년 66세의 나이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셋째 故 구정회 금성전기 사장 역시 지난 1978년 61세로 타계했다. 다섯째 구평회 E1 명예회장은 1967년 호남정유(GS칼텍스)를, 1984년에는 여수에너지(E!)를 설립했다 그는 2002년 월드컵 유치위원장을 맡아 한국의 첫 월드컵 개최에 기여했다.

막내인 구두회 전 예스코 명예회장은 1963년 금성사 상무를 시작으로 LG그룹의 전자계열사를 두루 거쳤고, 지난 2011년 향년 83세로 별세했다. 구 창업회장의 동생들 대다수가 별세했지만 그 직계 존속들은 각자의 사업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현재 구 창업회장의 형제 중 생존 중인 인물은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뿐이다.

구 창업회장의 동생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구태회 LS그룹 명예회장. 창업회장 형제들 중 유일한 생존자일 뿐만 아니라, 재계 순위 15위의 LS그룹을 일궈낸 인물이다. LS그룹은 지난 2003년 11월 LG그룹에서 계열 분리돼 LG전선그룹으로 떨어져 나왔다. 이후 지난 2005년 사명을 LS그룹으로 바꾸고 LS전선, LS산전, LS니꼬동제련, E1, 예스코 등 전선 및 에너지 전문 그룹으로 사업을 유지해오고 있다.

LS그룹의 그룹 구성에서 알 수 있듯이, 구 창업회장의 동생이 구태회, 넷째 동생 구평회, 다섯째 동생 구두회 집합체로 구성됐다. 세 사람의 이름 앞자를 따서 ‘태평두 일가’로 불리기도 했다. LS그룹의 대표 인물인 구태회 명예회장의 뒤를 이은 인물이 그 장남 구자홍 니꼬동제련 회장이다. 구자홍 회장은 지난 2013년까지 LS그룹 회장을 역임한 이후 최근 다시 경영전면에 나서 업계의 이목을 끌었다.

주목할 만한 대목은 구자홍 회장의 동생이자 전 니꼬동제련 회장이었던 구자명 회장의 아들 구본혁 전무가 경영수업을 받고 있어 경영승계를 통한 경영전면에 나설 수 있었음에도 구자홍 회장이 직접 나섰다는 것이다. 이는 LS니꼬동제련이 그룹에서 차지하는 매출 규모나 상징성이 큰 만큼 다소 침체기인 경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구자홍 회장의 재등장으로 이내 LS그룹은 구태회 명예회장은 장남 구자홍 회장과 둘째 아들 구자엽 LS전선 회장, 4남 구자철 예스코 회장 등 형제들이 경영 일선에서 활약하고 있다.

형제들뿐만이 아니다.  구 회장 형제들은 사촌인 구자열 회장 등과 함께 ‘3각 편대’ 진용을 갖추면서 ‘사촌 경영’을 확고히 하게 됐다. 구자열 회장은 지난 2014년 그룹 회장에서 물러난 구자홍 회장의 바통을 이어받아 그룹 경영을 도맡아해오고 있다. 이때 LS그룹은 큰 잡음없이 그룹 경영권을 사촌에게 넘기면서 재계 60년사에도 유례없는 ‘사촌경영’을 완성했다. 

만만치 않은 사돈가

범LG가로 분류되는 동시에 LG그룹의 완성에 지대한 공헌을 한 사돈 기업 허씨 일가는 GS그룹을 설립했다. LG그룹 설립 과정에서 구인회 창업회장은 사돈 관계에 있던 허씨 일가의 조력을 받았다. 그룹 성장 과정에서 구씨 집안과 허씨 집안의 친족들이 지속적으로 참여했고, 그 비중은 구씨 일가가 65%, 허씨 일가가 35%를 유지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허씨 일가의 자손들이 많아졌고, 이에 따라 양측에서 후손들의 몫을 준비해 놓아야겠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 LG그룹은 LIG그룹, LS그룹, GS그룹으로 분리된다. 주목할 만한 점은 이 같은 대규모 분리 과정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한 분쟁 등의 잡음이 전혀 없었다는 점. 재계 역사상 보기 드문 이별 과정이었다. 이 중 GS그룹은 정유, 유통, 건설부문을 허씨 집안에서 맡아 독립한 그룹이다. 현재 GS그룹 허창수 회장으로 전경련 회장도 맡고 있다.


▲ 구인회 LG그룹 창업회장에서 시작된 범LG가는 GS그룹(허창수 회장)과 LS그룹(구자홍 회장)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 주간현대
잘 알려진 대로 GS그룹은 약 60년 3대에 걸쳐 지속돼온 구씨, 허씨 간 동업관계가 유종의 미를 거두면서 지난 2005년 LG그룹에서 분리해 나왔다. 대주주인 허씨 일가는 허창수 회장을 GS그룹의 대표로 추대했고, 이에 따라 허 회장은 지주회사인 GS홀딩스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다.

허씨 일가를 대표하는 허창수 회장은 고 허준구 명예회장의 장남이다. 허준구 명예회장은 과거 구인회 LG 창업회장에 사업 자금을 대준 허만정씨의 셋째 아들. 허만정씨는 살아생전 구 창업회장에 허준구 명예회장의 경영 수업을 부탁한 바 있다. 때문에 허창수 회장이 현재 허씨 일가를 대표하게 된 것이다.

허씨 일가 가운데 현GS그룹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은 허창수 회장을 포함해 모두 6명. 허동수 GS칼텍스 회장,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 허진수 GS칼텍스 부회장, 허명수 GS건설 부회장,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 그들이다. 이외에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널 회장 등이 있긴 하지만 이들 회사는 법적으로만 GS 계열사로 분류될 뿐 실질적으로는 허창수 회장 영향권 밖에 있다.

허창수 회장은 삼촌인 허승조 GS리테일 사장이나 사촌형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을 깍듯이 모시는 것으로 유명하다. 중요한 사안은 항상 협의해서 처리할 뿐 아니라 GS리테일이나 GS칼텍스 경영은 전적으로 일임한다. 두 사람의 경영 능력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허동수 회장은 GS홀딩스의 등기이사이기도 하다.

이례적인 분열

범LG가의 가계도는 방대하기 그지없다. 본류인 구인회 창업회장의 LG에서 그 형제들이 씨를 뿌린 LS그룹에, 창업 과정에서 지대한 공헌을 허씨 일가의 GS그룹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태. 주목할 만한 대목은 범LG가의 분리 과정에서 분쟁 등의 잡음이 없었다는 점이다.

지난 2003년 분리된 LS그룹의 경우 구태회·평회·두회 형제가 LG 창업공신일 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적지 않아 복잡했던 상황. 하지만 구태회·평회·두회 세 형제는 당시 보유 지분과 비슷한 가치를 지닌 회사를 묶어 나가면서 별탈 없이 마무리됐다. GS그룹의 경우에도 깔끔하게 분리하는데 성공했다. 앞서 이야기 했듯이 허씨 일가는 LG그룹의 설립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거기에 허씨 일가 중 적지 않은 인물들이 LG 경영에 참여하는 등 적잖이 공을 들인 상황. 하지만 동업 당시의 상호 출자 비율에 따라 깔끔하게 마무됐다.

LG그룹을 본류로 하는 범LG가의 분리는 재계에서 굉장히 이례적인 경우다. 업계 안팎에선 범LG가의 깔끔한 분리의 원인으로, 유교적 가풍을 지목하고 있다. 양반가 출신인 구 창업회장은 유교적 가풍을 기반으로 기업을 이끌었고, 이는 구 창업회장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구인회 창업주로부터 이어받은 강한 유교 강풍이 LG그룹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나아가 범LG가의 분리에 있어서도 좋게 작용했다는 분석.

범LG가는 철저히 혈연을 중심으로 설립된 대기업이다. 최초 사업 시작부터 창업주의 형제들과 사돈들과 함께 시작했던 상황, 자손도 적지않은 만큼 자칫 이해 관계로 인한 분열이 있을 수도 있었으나 이를 특유의 가풍으로 원천차단했기에 범LG가는 재계에 모범적 친족 경영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son25@hyunda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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