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이 해체시킨 ‘비운의 기업’

비자금 마련에 협조하지 않는 기업 ‘손봐주기’

김유림 기자 | 기사입력 2015/05/18 [13:59]

전두환이 해체시킨 ‘비운의 기업’

비자금 마련에 협조하지 않는 기업 ‘손봐주기’

김유림 기자 | 입력 : 2015/05/18 [13:59]

1980년 5월18일 광주. 전두환과 신군부에 의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었다. 전두환 정권은 ‘민주화운동’을 진압하기 위해 완전 무장한 대한민국 국군 2만 명 이상을 투입했고, 실제로 정부의 발포 허가와 함께 항공기 30대, 전차 7대, 장갑차 17대, 차량 282대가 사용되었다. 당시 희생자는 사망 207명, 부상 2392명, 기타희생 987명으로 집계됐으나, 어디까지나 추정치이고 현재까지도 정확한 집계는 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2015년 현재, 광주학살의 원흉인 전두환은 “29만원이 전 재산”이라고 주장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이 부과한 추징금은 2205억원이며, 전두환의 불법은닉 재산은 9334억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두환은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군인이었고, 대통령 월급은 일반 고위 공무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도대체 그는 어디서 그 많은 돈을 모았을까? 1980년대에 잘나가던 그룹인 삼호그룹과 국제그룹. 두 기업이 해체되는 과정과 그 배경을 살펴보면 전두환이 어떻게 ‘재산불리기’를 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두 거대 기업이 한순간에 왜 공중분해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내막을 조명해봤다. <편집자주>


부실기업정리 명목으로 해체된 국제그룹·삼호그룹
실상은 전두환 재산불리기에 ‘비협조’ 미운털 박혀


[주간현대=김유림 기자] 지금은 사라졌지만 ‘국제기업’은 1970년대 말부터 1980년대 중반까지 21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한때 국내 재계 순위 6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전두환 정부 당시 정권에게 밉보였다는 이유로 한순간에 공중분해돼 ‘비운의 기업’이라 불리고 있다.


▲ 전두환은 정권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삼호그룹’과 ‘국제그룹’을 한순간에 공중분해시켰다     © 주간현대


프로스펙스 ‘국제그룹’의 해체

1985년 2월21일, 당시 국제그룹의 주거래 은행인 제일은행의 이필선 행장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국제그룹 정상화대책’을 발표하면서 국제그룹의 해체가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이 행장은 어떠한 질의답변도 받지 않고 국제그룹의 해체와 정상화 대책을 짤막하게 읽은 후 기자회견장을 서둘러 떠났다. 그러나 국제그룹의 해체작업은 제일은행이 일절 간여하지 않았으며, 이 행장 또한 재무부 사무관에게 발표문을 당일 건네받고 대신 읽었을 뿐이라고 알려졌다.

관련 보도에 따르면 국제그룹 해체 최종결정은 같은 해 2월7일 전두환 전 대통령과 김만제 재무장관의 밀실 단독회동에서 이루어졌고 그룹 인수자까지 결정됐다. 국제그룹의 해체배경에 전두환이 있었다.

해체되기 전 국제그룹은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재벌이었으며 부산 제1의 향토기업이었다. 지난 1982년 서울국제무역박람회에 설치된 전시관 규모는 롯데그룹보다 큰 규모였을 정도로 재계에서의 위상이 대단했다. 지난 1984년에는 서울 용산구에 20층이 넘는 국제빌딩(현 LS용산타워)을 완공했고, 화학·섬유·건설·종합상사 등 알짜배기 분야에 진출해 있었다. ‘왕자표 고무신’, ‘프로스펙스’가 국제그룹의 대표 브랜드다.

하지만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은 다른 대기업들과 다르게 전두환 정권에 정치자금을 건네는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전해진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 따르면 전두환은 비자금 확보를 위해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 순직자 유자녀를 위한 장학재단 ‘일해재단’을 설립해 재벌 기업들에게 자발적으로 기부하기를 권유한다.

이때 그룹별 기부금은 장세동이 쓴 책 <일해재단>에 구체적으로 나와있다. 장세동은 전두환 대통령 재임 당시 경호실장과 중앙정부부장직을 맡고 있었으며, 전두환의 그림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이 책에 따르면 전두환에게 가장 많이 기부금을 낸 사람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으로 51억5000만원을 출연했고, 2위는 45억원을 기부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박태준 포항제철(현 포스코) 명예회장이다. 이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40억원, 구자경 LG그룹 회장 30억원, 최종현 SK그룹 회장 28억원, 이희건 신한은행 회장 25억원, 이준용 대림산업 부회장 23억원, 조중훈 한진그룹 회장 22억원,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 20억원 등의 순이다.

하지만 당시 재계 7위었던 국제그룹 양 회장은 다른 재벌들보다 턱없이 적은 금액 5억원을 출연했고, 결정적으로 출연금을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제공한 것이 화근이 되어 전두환에게 찍히게 된다. 그로인해 지난 1985년 부실기업이라는 오명을 쓰고 ‘그룹이 전면 해체된다’는 결정이 발표됐고, 그해 7월부터 21개 계열사가 모두 다른 기업에 합병되거나 정리된다.

국제그룹은 지난 2003년에서야 법원으로부터 “국제그룹 해체가 강압에 의한 것이다”라는 인정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당시 강탈당한 그룹 계열사들은 이미 다른 기업으로 넘어간 지 너무 오래 되어 다시 소유권을 반환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결을 받았다.

가수 조덕배 일가 ‘삼호그룹’

삼호그룹은 당시 국내 최대 면방직기업으로 1980년대 초반 13개 계열사를 이끌며 한국 재계 순위 9위의 대기업이었다. 하지만 ‘삼호그룹’도 국제그룹과 비슷한 이유로 한순간에 공중분해됐다. 삼호그룹 해체와 관련된 뒷이야기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지난 1998년 3월25일 <뉴욕타임스>가 조봉구 삼호그룹 회장 일가가 미국에서 벌인 소송을 보도하면서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984년 8월24일 김만제 당시 재무부 장관은 조 회장 아들 조용시씨를 장관실로 불렀다. 조 회장은 뇌출혈 치료를 위해 미국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삼호그룹 경영을 조용시씨가 맡고 있었다.

김만제 장관은 조용시씨에게 “우리나라 일부 기업들의 부실 상태가 감당할 수 없는 선까지 이르렀기 때문에 고위층과 협의해 산업합리화 조처를 마련했다”며 “삼호그룹은 대림에 합병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고 삼호그룹 해체 통보를 했다. 조용시씨는 곧바로 송기태 조흥은행장을 만났으며 “위에 로비를 하지 않으니 이 지경까지 오지 않았느냐”라는 말과 함께 위임장이라는 제목만 쓰인 백지에 ‘서명’을 강요 받았다고 전했다.

이에 1997년 조 회장 일가는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지방법원에 한국정부와 조흥은행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조 회장 일가는 “신군부에 자금을 대지 않아 미운털이 박혀 당시 국제그룹과 함께 그룹이 해체됐고, 약 2조5000억원을 신군부에 의해 몰수당했다”고 주장했다.

또 조 회장 일가가 소송을 제기하고 일주일 뒤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김대중씨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당선되자마자 국민통합을 명목으로 전두환을 사면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한편 삼호그룹 일가로 알려진 가수 조덕배는 지난 2011년 한 언론을 통해 삼호그룹 해체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조덕배는 “1984년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끄는 신군부와 5공 정권에 의해 공중분해된 삼호그룹의 조봉구 회장이 나의 작은아버지”라며 “그룹이 해체될 때 가족이 전부 해외로 피신을 해야 했고, 나 역시 출국금지를 당하는 동시에 내가 운영하던 회사가 없어지는 등 큰 고초를 겼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룹 해체 발표가 나오기 직전에 이순자 전 영부인이 서울 방배동에 위치한 작은아버지(조 회장)의 저택 ‘강남원’을 찾아왔고, 정원에 500년 된 미루나무를 본인 정원으로 가져가고 싶어했다”며 “숙모님이 그 자리에서 무안을 줬는데 공교롭게도 그 다음날 합동수사본부에 사촌형이 끌려갔고, 또 그 다음 날 각 신문에 삼호그룹 해체기사가 나왔다”고 말했다.

urim@hyunda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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