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아 사건, 진실규명 촉구 기획 시리즈-2]
유가족 두 번 죽인 검·경찰

시작부터 엉터리 수사…“의혹이 낳은 불신”

성혜미 기자 | 기사입력 2015/11/09 [10:54]

[정경아 사건, 진실규명 촉구 기획 시리즈-2]
유가족 두 번 죽인 검·경찰

시작부터 엉터리 수사…“의혹이 낳은 불신”

성혜미 기자 | 입력 : 2015/11/09 [10:54]

2006년 경기도 파주시에 위치한 ㄴ주공아파트에서 당시 25살의 정경아양이 추락해 숨졌다. 사건을 담당한 파주경찰서는 정양의 죽음을 남자친구와의 불화로 인한 자살이라고 규정한 채 수사를 종결지었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다음날 중요한 면접이 있었고, 남자친구와의 관계도 정리된 상태였다며 자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정양의 모습에서 구타의 흔적이 발견돼 사망 전 제3자로 인한 폭행여부에 대해 정확한 수사를 요청했다. 또한 아파트 CCTV에 찍힌 정양과 있었던 일행들의 묘한 행동에 대해서도 조사를 요구했지만 경찰은 재수사를 하지 않았다. 이에 본지는 10여 년간 딸의 정확한 죽음원인을 밝혀 달라고 하는 유가족들의 의심은 왜 아직도 해소되지 않았는지,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멍든 눈, 목 졸린 흔적, 끌린 자국…의혹 ‘한가득’

수사 초반부터 ‘자살’에 포커스, 타살가능성 배제

폴리스라인 미설치, 늦장 현장검증…조사 ‘엉망진창’

검·경찰 유가족에 영장발부…정양 母“포기 안 한다”

 

[주간현대=성혜미 기자] 지난 2006년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떨어져 숨진 정경아양. 사건을 담당한 파주경찰서는 정양이 남자친구와의 다툼으로 ‘충동적 자살’을 한 것이라 결론짓고 수사를 종결한다. ‘충동적 자살’유형 중 연인과의 불화로 목숨을 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므로 경찰의 결론이 터무니없는 말은 아니지만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혹들은 남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주경찰서는 수사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10여년 가까이 정양의 정확한 죽음의 원인을 밝혀달라며 목이 쉬도록 울부짖고 있다.

 

▲ (왼)정경아가 추락해 숨진 ‘ㄴ’주공아파트 모습 , (오) 정경아 사진.     © 주간현대

 

7월21일

지난 2006년 7월21일 정경아는 사회선배 배씨가 소개시켜준 남성 김씨와 저녁을 먹기 위해 집을 나섰다. 저녁을 먹은 정양과 김씨는 경기 파주 소재의 횟집에서 술을 먹고 있던 배씨 일행과 합류해 소주 1~2병을 마셨다.

 

당시 횟집에는 정양, 김씨, 배씨 외에 배씨의 남편 국씨, 국씨 직장후배 조씨, 배씨의 지인 김씨가 있었다. 분위기가 즐겁게 무르익자 일행은 2차로 근처 노래방으로 갔다.

 

노래방에서 정양은 놀고 있는 일행들을 뒤로하고 노래방 아래층으로 향했다. 2~3개월 전 헤어졌던 남자친구 이씨와의 통화를 위해서다. 이 모습을 정양과 소개팅을 했던 김씨는 사건 진술서에서 “정양이 노래방 아래층에서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과 울면서 통화했다”고 말했다. 

 

정양의 행동에 즐거웠던 일행들의 분위기는 가라앉은 것으로 전망된다. 정양과 소개팅했던 김씨와 김씨를 소개시켜 줬던 배씨 지인 김씨는 남은 술을 마시다 가겠다며 노래방에 남았기 때문이다.

 

이들을 뒤로한 채 정양을 포함한 배씨, 국씨, 조씨는 배씨네 아파트에서 자고 가겠다며 배씨 부부의 아파트로 향했다.

 

배씨부부 아파트로 가는 택시 안에서도 정양은 배씨의 휴대폰으로 전 남자친구 이씨와 통화를 계속했다고 함께 있던 일행들은 증언했다. 이 때 배씨는 정양이 아파트에 도착할 때까지 남자친구와 싸우자 자신의 휴대폰을 빼앗아 먼저 701호로 올라갔다고 진술했다.

 

기분이 상한 정양이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국씨와 조씨가 타일러 함께 엘리베이터에 탔다. 당시 CCTV에 찍힌 정양과 국씨, 조씨의 모습은 가벼운 스킨십을 할 정도로 친밀해보였다.

 

먼저 올라간 배씨는 방문을 잠그고 정양의 전 남자친구인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경아 성격 아니까 전화하지 마라 경아가 지금 술을 마셔 이대로 내버려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배씨의 목소리를 들은 정양은 닫힌 방문을 거세게 두드리며 “무슨 통화를 하느냐, 얼른 문을 열어라”라고 소리쳤다. 경찰조사서 이씨는 배씨와 통화할 당시 문 밖에서 경아의 목소리가 들려 “경아를 바꿔달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방문을 열고 나온 배씨의 휴대폰을 남편 국씨가 대신 받아 이씨에게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을 하며 전화를 거칠게 끊었다. 몇 분후 정양은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갔고 10분여가 채 지나지 않아 추락해 숨졌다.

 

▲ 정양이 추락한 시간대에 찍힌 당시 아파트 CCTV에 잡힌 국씨, 조씨. 동영상 속 두 남성은 머리를 연신 쓸어내리는 등 불안한 행동을 보였다.     © 주간현대

 

해소되지 않은 의혹

정양이 사망한 후 사건을 담당한 파주경찰서는 10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자살’로 결론짓고 종결지었다. 함께 있던 일행들의 진술을 바탕으로 남자친구와의 불화로 ‘충동적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가족들은 이를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다음 날 정양은 중요한 면접을 앞두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남자친구와의 관계가 모두 정리된 상태라고 주장했다.

 

또한 경찰주장처럼 ‘충동적 자살’이라고 해도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문점은 더 존재했다. 우선 정양의 모습이 자살이라 보기 어려운 상처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발견 당시 정양의 왼쪽 눈에는 푸르스름한 멍이 발견됐고, 목 부근에는 누군가에게 졸린 듯한 뚜렷한 손바닥 자국이 발견됐다. 슬리퍼를 신고 나갔다고 하는 발바닥에는 시커먼 시멘자국이 남아있었다.

 

시멘자국은 세멘이 묻어있는 장소를 밞아서 라기보다는 누구로부터 끌려간 끌림의 자국과 같았다. 수상하게 여긴 어머니 김씨는 국립과학수사연구센터에 직접 부검신청을 했다. 딸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대게 유가족들은 꺼려하는 부검 과정에 참여해 딸이 분해되는 것을 지켜봤다.

 

법의학자의 부검감정결과서에 따르면 “추락이전에 해당부위(눈)에 가해진 직접적인 외력을 배제 못한다”며 “높은 곳에서 떨어져 여러 장기 손상으로 인한 사망으로 사료되나 사망하기 전 누군가에게 가해를 당할 정도의 의심할만한 흔적들도 인정된다”고 했다.

 

수상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정양과 함께 있던 배씨의 진술이 엉망인 것이다. 정양의 올케언니 김씨의 진술에 의하면 정양이 옥상에서 추락한 7월21일 오전 9시40분경 정양의 집에 전화한 배씨는 다짜고짜 정양이 들어왔냐고 물어보고는 끊었다.

 

이상하게 여긴 김씨는 다시 전화해 배씨에게 “어제 정양과 함께 있던 언니 아니냐”고 물었다. 그러자 배씨는 “그렇다. 사실 어제 경아가 죽었다고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 경아가 맞는지 확인하려고 가는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 한 배씨는 김 씨에게 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하는 등 횡설수설하며 말을했다고 올케 김씨는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조사서 배씨는 “경아가 죽었다는 사실은 오후 1시 이후 경찰이 알려줘서 알게 됐다”고 진술했다.

 

배씨 외 또 다른 일행의 행동도 의심스러웠다. 사건당시 아파트 CCTV에 찍힌 국씨와 조씨의 행동이 일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경찰조사에 따르면 정양이 뛰어내린 시간은 약 0시30분 즈음이다. 이후 37분, 38분에 국씨와 조씨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는 장면이 찍혔다.

 

CCTV에 찍힌 국씨는 얼굴을 찡그린 채 자신의 머리를 주먹으로 내리치는 이상행동을 보였다. 뒤이어 내려온 조씨도 1층에 도착할 때까지 자신의 손바닥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모습이 찍혔다.

 

1층에 도착한 이들은 인기척이 있는 지 확인하는 것인양 양쪽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정양이 떨어져있는 화단 쪽으로 나갔다.

 

화단 쪽으로 나간 지 1~2분 후 다시 돌아올 적에는 국씨와 조씨가 함께 아파트로 들어오는 모습이 찍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701동으로 올라가는 동안 둘은 어떠한 눈빛도,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 올라갔다. 몇 십 분전 정양과 701동으로 올라갔을 때와 대조적이었다.

 

이처럼 수상한 상황이 많음에도 경찰은 사건당일 일행 중 배씨만을 조사해 수사한 채 ‘자살’로 규정하고 종결지었다.

 

한편, 유가족의 주장에 따르면 국씨와 조씨가 내려와 정양이 있는 화단 쪽으로 간 것은 확인사살을 위해서라는 새로운 의견을 제시했다. 어머니 김씨는 “경아가 추락했을 당시 바로 밑에 소나무가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완화돼 죽지 않았을 것”이라며 “실제로 현장에 있는 소나무는 아래로 향해 꺾여있었다”고 설명했다. 

 

아마추어 경찰?

유족들은 경찰이 처음부터 타살혐의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살에만 포커스를 맞추고 수사에 착수했다고 주장했다.

 

이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로 유족이 거짓말탐지기를 동원해 수사해줄 것을 요청하자 경찰은 “이미 자살인 사건을 뭐하러 거짓말탐지기까지 동원하느냐”고 말했다.

 

유족은 초동수사부터 문제가 많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정양이 추락한 지점을 두고 유족과 경찰의 주장이 엇갈린다.

 

경찰은 정양이 아파트 8층 창문에서 떨어졌다고 했지만 유족은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졌다고 주장한다. 사건이 발생했던 7월21일 ㄴ주공아파트 주민들이 옥상부근에서 여자비명소리가 들렸다고 증언했으며 어머니 김씨가 찍은 옥상 사진에서 난관부근에 정양의 청바지가 쓸린 자국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은 당시 옥상문은 잠겨져있어서 주민들은 들어가지 못했으며 당시 8층 창문 앞에서 정양의 소지품을 발견했다며 유가족의 주장을 묵살했다.

 

또한 경찰은 8층 창문 앞에서 정양이 신었던 슬리퍼 한 켤레와 라이터2개를 발견했다고 말했지만 지난 2011년 정보공개요청으로 얻은 수사보고서에는 슬리퍼 한쪽, 라이터3개라고 기록되어있는 등 앞, 뒤가 여러모로 맞지 않았다.

 

파주경찰은 이뿐만 아니라 사건현장 보존과정에서도 허술한 행동으로 유족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선 주민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들과 경찰들은 정양의 시체에 흰 천을 덮은 채 반나절을 그 자리에 내버려뒀다.

 

이뿐만이 아니라 폴리스라인을 전혀 치지 않는 등 사건현장 보존을 위한 노력은 기울이지 않았다. 이어 이들은 현장검증을 위해 1시53분경에 아파트로 들어간 파주경찰서과학수사대직원, 팀장, 지구대원은 2시에 아파트를 빠져나왔다. 다시 말해 현장검증시간이 10분이 채 되지 않는 것이다.

 

유족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장갑도 끼지 않은 맨손으로 증거품을 만졌다. 또 정양의 몸에 붙어있던 분비물에 대한 DNA검사조차하지 않고 넘어가려고 했다.

 

유족들은 나중에서야 경찰이 어물쩍 넘어가려고 했다는 것을 알고 수사이의신청을 한 후에야 국립과학수사대에 의뢰할 수 있었다.

 

유족들의 재수사요청에 경찰은 유력한 용의자 조씨, 국씨를 피의자 신분이 아닌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했다. 그리고 CCTV에서 나타난 수상한 행동에 대해 엄정한 수사를 한 것이 아니라 “안그랬어?”, “네”가 오가는 형식적인 조사만 했을 뿐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정양의 전 남자친구 이씨는 경찰진술서 “경아와 통화하고 있을 때 밖에서 싸우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고 진술했지만 경찰은 이를 누락시켰다.

 

이 같은 사실을 이씨에게 전해들은 어머니가 경찰에 항의하자 오히려 경찰은 이씨에게 왜 말했냐며 ‘공무집행방해죄’로 기소하겠다고 오히려 협박했다.

 

그러자 다시  이씨는 어머니에게 전화해 “왜 경찰한테 말씀하셔가지고 그러세요”라며 자신이 말 한 내용을 취소해달라고 했다. 이러한 유족들의 주장에 대한 사실 확인을 위해 파주경찰서에 수차례 통화했지만 연결이 되지 않았다.

▲ 어머니 김순이씨는 딸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10여 년간 뛰어다녔지만 자신의 목소리는 전혀 전달되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사진=김상문 기자>   © 주간현대

 

진실을 밝힐 때까지

사건이 발생한 지 10여년 가까이 흘렀지만 아직도 밝혀진 사실이 처음과 비슷한 정양의 어머니 김씨는 “내가 몇 년 동안 경찰수사는 처음부터 잘 못됐다고 주장해왔지만 아무도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경아가 죽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 혼자 경찰, 검찰, 변호사 등을 만나 정확한 사건경위를 밝혀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나를 업무방해죄로 고소했다”며 “힘 있는 사람은 다들 한 통속”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지금까지 김 씨는 정양이 죽은 후 홀로 사건의 정확한 진실을 밝혀달라며 시위를 해왔다. 대검찰청 앞에서 사법피해 유족들과 함께 집회를 열었을 때에는 ‘명예훼손’죄로 검찰로부터 영장을 받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씨는 딸의 정확한 사인을 알 때까지 수사당국과의 투쟁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ahna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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