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비대위원장 조부 ‘김병로 선생’은 누구?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사법권 독립의 상징...이승만과 각 세워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6/01/28 [17:27]

김종인 비대위원장 조부 ‘김병로 선생’은 누구?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사법권 독립의 상징...이승만과 각 세워

김범준 기자 | 입력 : 2016/01/28 [17:27]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비대위원들과 국립현충원을 참배한 가운데, 개인적으로 김병로 선생의 묘소도 찾아 참배해 그의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 지난 1957년 12월17일, 퇴임한 김병로 전 대법원장(오른쪽)이 경무대를 방문해 이승만 대통령(오른쪽)과 자리를 함께 했다.     © e-영상역사관

 

독립운동 인권변호사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조부로 알려져있는 김병로 선생은 호는 가인(街人)으로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역사적 인물이다.

 

1887년 전라북도 순창에서 태어난 김병로 선생은 1910년 일본으로 건너가 메이지 대학 법학과에 입학하여 법에대해 공부했다.

 

이후 학업을 마치고 귀국한 뒤 경성전수학교(현 서울대학교)와 보성법률상업학교(현 고려대학교)의 강사로 형법과 소송법 강의를 맡았으며 1919년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했다.

 

김병로 선생은 변호사시절 수많은 독립운동 관련 사건을 무료 변론하였으며, 다채로운 사회활동으로 독립운동에 공헌했했다. 또한 1927년 좌우합작 성격의 합법적인 단체였던 신간회에서도 적극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 1931년 신간회가 해체되자, 이듬해인 32년 경기도 양주군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으며 광복될 때까지 은둔생활을 했다.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고, 조선총독부 배급도 받지 않은 것이다.

 

사법부 독립의 상징

 

1945년 8.15광복이후 김병로 선생은 건국준비의 다양한 줄기 속에서 고민하다 대한민국 민주당계 정당의 시초격인 한국민주당 창당에 참여했다.

 

이후 48년 대한민국 정부 초대 대법원장을 지냈고, 53년 2대 대법원장이 되어 57년 70세로 정년퇴임 했다. 임기 중 골수암 때문에 한쪽 다리를 절단하기도 했으며, 6.25전쟁으로 북한군에게 아내를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으니,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순탄치 않은 대법원장 임기였다.

 

무엇보다 당시 제왕적 사고를 가지고 있었던 이승만 대통령과 김병로 대법원장은 대립관계였다.

 

기본적으로 김병로 대법원장 자체가 보수주의자이긴 했지만, 국가보안법 폐지도 주장하기도 하는 등 반공보다는 인권을 우선시 하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사람 대립의 대표적 사례들로는 김병로 대법원장은 반민특위 활동을 적극지지했고, 반민족행위 처벌 재판 판사로 활동하며 이승만과 자주 대립각을 세웠다. 또한 52년 이승만이 일으킨 '발췌개헌'에도 반발했다.

 

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법원의 판결을 비난하자 '억울하면 절차를 밝아 항소하라'고 맞받아친 것은 오늘날 까지도 '사법부 독립'의 상징적인 발언으로 남아있다.

 

또한 그는 '사법부의 수장'으로서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대표적인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세상 사람이 다 부정의에 빠져간다 할지라도 우리 법관 만큼은 정의를 최후까지 사수하여야 할 것이다"

"사법관으로서의 청렴한 본분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될 때는 사법부의 위신을 위하여 사법부를 용감히 떠나야 한다"

"아무리 배가 고프고 옷이 차다고 할지라도, 일시라도 사법관이라는 것을 망각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사법 종사자에게 굶어 죽는 것을 영광이라고 그랬다. 그것은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는 명예롭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대 대법원장으로서 사법부의 독립을 강조하고, 판사들을 보호한 덕에 사법부는 비교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후임 대법원장들의 역량부족과 정권에 아부한 탓에, 사법부의 독립은 크게 훼손되고 말았으며, 이는 지금까지 폐해로 남아있을 정도다.

 

퇴임 후에는 박정희 반대

 

57년 70세의 나이로 정년퇴임을 한 후 60년 총선 때 고향인 순창군에 국회의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5.16 군사쿠데타 발생 이후에는 박정희의 군정을 지속적으로 반대해 왔다.

 

63년에는 박정희가 만든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군정에 반대하는 '민정당'에서 활동했으며, 이후 '국민의당' 창당에 참여하면서 야당통합, 대통령 단일후보 조정작업 등에서 활동했다.

 

하지만 이듬해 1964년 1월13일 간장염으로 서울 중구 인현동 자택에서 향년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kimstory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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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병로 선생 약력

 

1888년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하리에서 출생
1902년 간재(艮齋) 전우(田愚) 문하에서 성리학 사사
1906년 순창에서 최익현의 의병에 가담
1919년 부산지방법원 밀양지원 판사 임용
1920년 변호사 자격 취득, 항일사건 1백여 건 변론
1924년 조선변호사협회 이사장
1930년 신간회 중앙집행위원장
1946년 미군정 사법부장 취임
1948년 초대 대법원장 취임
1957년 대법원장 퇴임
1963년 민정당, 국민의 당 대표최고위원
1964년 76세로 사망

바람 16/02/09 [21:30] 수정 삭제  
  이 분이 우리 어렸을때 들은 바로는 출장가서도 가방에 아령을 넣고 다닌다고 해서 나도 철물점에서 아령 사 시금까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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