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기획-1]막 내린 경제신화 ‘흥망성쇠’

맨손으로 시작, 입지전적 ‘샐러리맨 신화’ [웅진 윤석금]

김길태 기자 | 기사입력 2016/03/07 [14:17]

말단 월급쟁이로 사회에 뛰어들어 조 단위 매출의 기업을 키워냈고, 샐러리맨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히던 ‘샐러리맨 신화’의 아이콘들이 부진 끝에 줄줄이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그 신화가 종결되자 그들의 성공신화가 다시 재조명되고 있다. 모두 내실을 기하지 못한 채 과도한 인수합병 등으로 몸집을 불리다 좌절하고 말았지만 그들이 보여준 성과가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한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무려 3명의 샐러리맨 출신 CEO가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면서 이들 ‘샐러리맨 신화’들의 성공과 실패의 드라마를 들여다본다.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입사 1년 만에 세일즈맨 중 최고실적을 거둬 ‘영업의 신’으로 불리기도 했다.<주간현대>     © 주간현대

 

[주간현대=김길태 기자] 재계에선 최근 몇 년간을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강덕수 STX조선해양 회장, 박병엽 팬택 부회장 등 ‘샐러리맨 신화’의 주역들의 ‘몰락기’로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퇴진을 거듭한 격동기였다. 윤 회장이 법정관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웅진홀딩스 대표에서 내려온 뒤 강 회장 또한 경영책임을 물어 STX조선해양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했다. 박 부회장도 경영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신화’의 ‘시초’

    

국내 샐러리맨 신화의 원조로는 단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손꼽힌다. 1960년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한성실업에서 6년간 샐러리맨 생활을 하던 김 전 회장은 1967년 30대 나이에 자본금 500만원과 직원 5명으로 서울 충무로의 10평 남짓한 사무실에서 원단 수출회사인 대우실업을 창업했다.

    

정부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에 힘입어 성공가도를 질주했던 그는 1971년 대미 섬유수출의 40%를 독식하며 업계를 평정했다. 그 이후 대우중공업의 전신인 한국기계와 옥포조선, 대우자동차의 전신인 새한자동차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대우그룹을 재계 2위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김 전 회장을 파멸로 몰아간 것은 다름 아닌 ‘세계경영’이었다. 1990년대 들어 막대한 부채를 끌어들여 무리한 사업 확장과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몰락하기 시작했다. 당시 부채비율 600%가 넘던 대우는 해외 채권자들의 상환 압력을 견디지 못했고, 결국 그는 1999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김 전 회장은 이후 중국으로 떠난 뒤 그길로 장기 해외 도피에 들어갔고, 이후 2005년 귀국해 검찰조사를 받았다.

    

김 전 회장은 2006년 11월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하고, 재산 해외도피 등의 혐의로 징역 8년 6월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8년 1월 특별사면됐다. 특별사면 이후 다시 해외행을 택한 김 전 회장은 지난 9월16일 전격 귀국했고 세간의 관심이 추징금 환수여부에 쏠려 있지만 김 전 회장은 아무 말 없이 다시금 해외로 출국했다.

    

‘영업 신’의 몰락

    

김우중 전 회장 이후 샐러리맨 신화의 주역은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강덕수 STX조선해양 회장, 박병엽 팬택 부회장 등이 꼽혔다. 1971년 브리태니커 한국지사의 백과사전 방문판매원으로 출발해 웅진그룹을 매출 6조원대의 30대 그룹으로 키워온 ‘성공신화’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당시 입사 1년 만에 세일즈맨 중 최고실적을 거둬 ‘영업의 신’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1980년 웅진그룹의 모태인 웅진출판을 세우며 오너가 된 윤 회장은 무리한 사업 확장에 발목이 잡혔다. 주력 계열사의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바닥을 쳤고 ‘엎친 데 덮친 격’ 지난해 10월 극동건설과 웅진홀딩스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인해 윤 회장의 성공신화는 이미 뿌리부터 흔들렸다는 것을 암시했다.

    

앞서 윤 회장은 웅진코웨이 매각 발표 후 웅진에너지 대전 공장과 웅진폴리실리콘 상주 공장을 방문하는 일이 잦았고 태양광 분야 또한 신성장동력으로 삼았지만 워낙 업황이 좋지 않아 그가 직접 원가절감에 매달렸다는 후문이 나돌았다. 극동건설과 웅진홀딩스가 전격적으로 법정관리 신청을 하자 업계는 술렁거리기 시작했지만 당시 크게 요동을 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만큼 법정관리가 예상된 시나리오였다는 것이다.

    

더욱이 경영부실에 의한 법정관리 책임을 지고 경영에서 물러난 윤 회장은 증권선물위원회로부터 기업어음(CP)을 사기 발행한 혐의로 고발당해 검찰 수사까지 받았다. 증선위는 윤 회장 등이 기업어음 발행이 어려운 수준까지 회사의 신용등급이 떨어질 것을 알고도 이를 숨긴 채 수천억원 규모의 CP를 발행한 혐의를 지적한 것.

    

전격적인 법정관리 신청으로 안갯속을 걸어갔던 웅진그룹은 이후 계열사 매각이 본격화되면서 그룹의 정상화 작업이 가속도를 내자 웅진의 신뢰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던 찰나에 또다시 경영진의 사기성 CP 발행 논란으로 웅진 내부는 더욱더 흔들리기도 했다.

    

윤 회장의 입건 이후 1심에선 배임·횡령액 일부를 유죄로 봤지만 사기성 CP 발행 혐의는 고의성이 없었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그리고 지난 2015년 12월 서울고법은 윤 회장의 1심을 파기하고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이후 재기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윤 회장은 그간 쌓아온 방문판매 노하우를 살린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 다시금 정수기 사업과 화장품 사업에 뛰어들기로 했다. 윤석금 회장은 기나긴 회생절차와 법정싸움을 끝내고 그룹 재건에 시동을 걸었고, 업계에선 윤 회장이 또 다른 성공신화를 쓸지 관심을 보이고 있다.

    

kgt0404@hyunda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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