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000일 특별기획-1] 우리는 아직 4월16일에 산다

REMEMBER 4.16, 그날을 잊지 말자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7/01/06 [15:07]
▲ 지난 2014년 4월6일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가 전남 진도 부근 해역에서 침몰해 탑승자 476명 중 무려 304명이 희생된지 1000여 일이 됐다. <그림=석정현 일러스트레이터>     © 주간현대

 

온 국민을 안타깝게 했던 세월호 참사가 1월10일로 1000일을 맞이하게 된다. 그간 우리나라에는 셀 수 없을 정도의 수많은 사건·사고가 발생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현 시대에서는 대부분의 사고들이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각각의 삶을 살아간다. 국민들을 큰 슬픔에 잠기게 했던 지난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수많은 어린학생들이 잠겨가는 뱃속에 갇혀 사망했고, 아직도 일부 실종자들이 차가운 바다 속에 빠져있지만, 인양이 늦어지면서 사체 수습도 요원하다. 무엇보다 정부와 여당에서는 제대로된 진상규명을 막으며 유족들의 가슴만 찢어지게 해왔다. 하지만 강고히 진상규명을 막아오던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 당하고, 각종 세월호 관련 의혹이 진실에 가까워지면서 우리가 원하는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김범준 기자>
 


 

 

‘선내 대기’라는 상식밖에 안내방송 인해 참사 키워
언론보도와 달랐던 초기 구조상황…‘골든타임’ 놓쳐
어른 통제 잘 따라 23%에 불과했던 단원고 생존율
전 국민적 ‘트라우마’ 남아…권위 대한 불신감 커져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1000일 전인 지난 2014년 4월16일 오전 전라남도 진도군 관매도 부근 ‘맹골 수도’라고 불리는 해상에서 청해진해운이 운영하는 인천-제주 정기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2014년에 발생한 재난사고 중 단연 최악의 참사로서 해양 재난이자 대한민국 수학여행 관련사고 중 역대 최대의 참사로 기억되게 됐다.


세월호 참사는 사주인 유병언 일가의 부도덕한 경영,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부실한 선박 관리와 안전교육, 이러한 현실이 발생하도록 방치한 승무원들, 특히 선장 이준석과 항해사의 판단 착오와 늑장 대응, 그리고 그로 인한 시간 지체, 잘못된 안내 방송과 그 방송을 별다른 의심 없이 수용한 승객들의 안타까운 판단과 대처가 복합적으로 얽힌 그야말로 참사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박근혜 정부의 어처구니없는 판단 착오로 모든 구조 가능성이 물거품으로 사라져 버린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건이다.


특히 대형재난의 경우 불특정 다수가 희생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세월호 참사는 안산단원고등학교 2학년이 단체 수학여행을 가던 도중에 발생한 사고로, 수많은 어린 학생들이 희생되어 전국민을 비통함에 빠져들게 했다. 이에 단원고 학생들의 거주지인 경기도 안산시와 사고현장인 전라남도 진도군은 이 사고 때문에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됐다.

 

악몽의 날, 4월16일


사고 당일인 4월16일, 세월호에는 차량 150여대와 승무원 29명, 화물기사 33명을 포함해 총 476명이 탑승해 있었다. 이 중에는 3박4일 일정으로 제주도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시 단원고등학교 학생 325명과 교사 14명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전에 발표된 해운사의 브리핑에서는 탑승자가 477명이라 했지만, 오후 브리핑에서 승선권과 탑승명부를 조회한 결과 462명으로 조정되었다. 하지만, 이후 23시경 해운사는 CCTV로 탑승자를 일일이 헤아려 475명으로 총인원수를 정정하였다. 그러다가 4월18일 오후 10시경에는 476명으로 정정되었다. 외국인은 중국 국적의 조선족 두 명을 포함하여 총 5명이 탑승했으며 필리핀 가수 2명은 구조되었으나 중국인과 조선족, 그리고 러시아 출신 학생은 4월21일 수색작업에서 발견되었다. 러시아 출신 학생은 단원고 유학생인데, 주니어 수영 선수 출신으로 수영에 매우 능숙했다고 한다. 객실에서 있으라는 방송만 아니었다면 생존 가능성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고 당일 오전 8시 58분경 해양경찰이 관매도 인근 남서방 1.7마일 해상에서 인천에서 출발한 제주행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 중이라는 신고를 접수받고 경비정과 헬기를 총동원하여 급히 출동하였고, 군 당국 또한 구조를 위해 현장에 함정 20여 척과 공군 수송기, 해군 SSU, UDT/SEAL, 육군 특전사 잠수요원 등을 투입하였다. 인근 상선이나 어선들도 조난자 구조에 적극 협조했다. 실제로 사고 초기에는 인근 상선과 어선들이 세월호 탑승자들 구조에 가장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안타까웠던 점은 승무원이 ‘객실에서 대기하세요’, ‘움직이지 마세요, 움직이면 더 위험합니다’, ‘객실이 더 안전 합니다’라는 상식 밖 안내 방송을 한 점이다. 구명조끼를 입은 상태에서는 잠수가 어렵기 때문에, 침몰하는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면 탈출이 더 어렵다. 물에 빠졌을 때 구명조끼를 입는다면 생존율이 크지만, 폐쇄된 공간에서 구명조끼를 입어봐야 물이 천장까지 차버리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영화 타이타닉에서도 나오듯이 설계자의 판단에 의해 배의 침몰이 확실시 된 이후에는, 모두 갑판으로 나오라는 선장의 지시가 있었다. 그리고 객실 안으로 다시 승객들이 상황을 오판해서 들어가지 못하도록 문을 잠궜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구명조끼를 입은 후에는 일단 폐쇄된 실내에서 빠져나와, 바로 바다로 뛰어들 수 있는 탁트인 공간으로 나가는 것이 국제 해운계에서 통용되는 기초 상식이다. 그래서 배를 여러 번 타본 화물차 운전기사들은 방송을 믿지 않고 탈출해 대부분이 구조되었지만, 이를 몰랐던 단원고 교사와 학생들은 대부분 안내 방송을 믿고 선내에 있었던 탓에 피해가 늘었다.


실제로 세월호를 구조하러 간 배들 중 가장 먼저 도착한 유조선 두라에이스(2720t)호가 세월호에 200m 지점까지 접근했을 시점인 9시 23분경에, 선장의 퇴선명령이 내려져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로 뛰어들기만 했다면 대부분 구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9시 23분경에는 배의 좌현 쪽도 거의 침수가 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태평양 한복판 같은 망망대해도 아니고 육지인 ‘동거차도’에서 불과 1.5km 떨어져 있을 정도로 가깝고 더욱이 구조하기 위해 경비정과 근처에 있는 수십 척의 배들 대부분이 세월호가 있는 곳으로 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원들의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대처와 승객들의 해난 긴급 상황에 대한 지식 부족으로 인해 일어난 판단 착오가 대형 참사를 부른 것이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9일 뒤인 4월25일에 스페인에서 여객선에 불이 나는 바람에 긴급 회항한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 때 선원과 승무원들은 승객들을 객실 밖에 나와 있으라고 했고 침착하게 대피시켰으며, 전원 구조되었다. 이 사건과 비교해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다.

 

▲ 박근혜 정부의 어처구니 없는 상황 방치로 인해 수많은 아이들이 수장됐다. 사진은 세월호 유가족 이선미 씨가 올린 사진으로 “눈을 감고 있는 아이가 내딸 주희”라고 말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 주간현대

 

놓쳐버린 골든타임


사고 당시 세월호 참사 현장은 사고 발생 당일 이후부터 커다란 슬픔에 빠져있었다. 상황이 점차 악화되고 구조가 사실상 힘들어지자 사고자 가족들의 감정이 북받쳐 울음바다가 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당시 학부모들은 현장 상황이 언론이 전파하는 상황과 많이 다르다고 주장했다. 수색이 지지부진한건 둘째치고 의지조차 있는거냐며 학부모들의 불신이 커졌던 것이다. 오죽하면 현장책임자가 경비정에 탑승하고 있는 학부모들을 통해 상황파악을 하고 있을 정도였다. 현장에서 한 학부모와의 인터뷰 내용 결국 여러 가지 일로 실종자 가족들은 불신이 커졌고, 4월20일에 청와대로 가겠다는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 와중에 2013년에 대서양에서 선박 전복 사고로 바다 밑에 갇혀있던 선원이 선내에 남아있는 공기(에어 포켓)로 연명하다 3일만에 구조된 경우도 있기 때문에 최종결과가 나오기까지 모두 사망했다는 판단은 금물이라는 주장이 구조 초반에는 지지를 얻었다.


하지만 에어포켓 생존자설은 허구였던 것이 대서양 선박 전복 사고의 경우 비교적 따뜻한 바다였고, 유속도 느리고 무엇보다도 배가 작아서 수색이 어렵지 않았다. 그래서 잠수부가 비교적 빠르게 3일안에 진입할 수 있었다. 세월호는 훨씬 큰 배이기 때문에 구조 작업 자체가 훨씬 어려워서 단순하게 비교하는 것은 애초에 무리였다.


기본적으로 세월호는 에어포켓이 존재할만한 여건이 되지 않았다. 배가 한 시간에 걸쳐서 180도 회전하면서 침몰하는 바람에 골고루 물이 차올랐기에 천장 쪽에 에어포켓이 생기는 것이 여건상 불가능했던 것이다. 생존자들이 촬영한 영상에 의하면 배가 옆으로 누운 상태에서 탈출하려 할 때 열려있는 문 쪽에서 물이 빠른 속도로 차오르는 것이 확인된다. 다시 말하자면, 배가 누운 상태에서 문은 천장에 해당한다. 이미 이 천장까지 물이 차올랐던 것이다. 즉 한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에 배는 이미 물이 가득 찼고, 심지어 해경이 찍은 영상 중에는 배 안에서 물이 분수처럼 솟아오르는 영상까지 존재한다.


이런 정황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마저 착각하게 만든 요인은 세월호의 뱃머리가 떠있었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이 부분에 에어포켓이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이곳은 원래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가 채워져야 할 공간이었다. 검경합동수사본부의 수사 결과, 세월호는 평형수를 권고 기준의 4분의1 정도만 채운 것으로 드러났다. 평형수가 부족한 사실을 몰랐던 상황에서 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이유를 에어포켓에서 찾게 된 셈이다.


언론의 에어포켓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은 국민들과 실종자 가족들을 상대로 한 희망고문과 구조방식의 왜곡이라는 좋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특히 후자의 경우, 사건 초기에 민간인 잠수사가 창문으로 사망자를 확인한 뒤 창문을 깨고 시신을 인양하려고 했으나 창문을 깨면 바닷물이 들어가 에어포켓이 사라진다는 논리로 시신 구조를 막은 일, 에어포켓을 유지하기 위해 공기를 주입해야 한다며 수색에 지장을 준 일 등이 벌어졌다.


결국 최종적으로 세월호가 침몰한 뒤 한 달이 넘는 시간이 지나면서 애시당초 실종자들이 당일 거의 사망했을 거라는 사실이 표면화되었다. 설령 배 안에 생존자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공기와 물 등이 충분치 않기 때문. 그 동안 잠수사 한명이 순직했을 정도로 철저했던 수색 작업에도 불구하고 여지껏 단 한명의 생존자도 발견하거나 구조하지 못했으며, 실종자 중 생존이 보고된 사람도 없었던 만큼 잔혹하고 슬프게도 모든 실종자들이 사망했다는 것은 기정사실이 되어 버린 것이다.

 

미안하다 아이들아


결국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사망자 수로만 따지면 1970년 319명의 사망자를 발생시킨 남영호 침몰사고보다는 적지만, 사망자 중 대다수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 안산단원고 학생들이기 때문에 사회적 파장을 감안한다면 한국 역사상 최악의 선박 사고로 기억될 가능성이 크다.


단원고 학생들의 경우 2학년 학생 325명(남 175명, 여 150명)과 인솔자 14명(단원고 교감 1명+일반 교사 12명+여행사 인솔 담당 직원 1명)이 수학여행에 참가했는데, 학생 325명 중 75명(남 34명, 여 41명)만이 구조되고 인솔자는 14명 중 3명(교감+단원고 일반교사 2명)만이 구조되었다. 1~3반은 인문계 여자반, 4~6반은 인문계 남자반, 7~8반은 자연계 남자반, 9~10반은 자연계 여자반이다. 숫자가 높은 반으로 갈수록 생존자가 적어지는 이유는, 각 반 본래 정원이 자연계열 반이 인문계열 반보다 적었으며, 자연계열 학급은 배의 안쪽 객실을 배정 받아서 빠져 나오기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단원고 2학년 학생 중 비행기편으로 제주도에 갔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안산으로 복귀한 특수반 학생들과 수학여행 대신에 탁구 대회에 참가한 탁구부 여학생 3명, 그리고 항암 치료로 수학여행에 불참한 남학생 1명 등 13명만이 이 끔찍한 사고를 경험하지 않았다. 단원고 수학여행단의 책임자였던 강모 교감(51세, 윤리 전공 교사)은 구조되었으나, 학생들을 구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통감한다는 취지의 유서를 남기고 4월18일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강 교감이 당시 사고 현장에서 최소 7~8명을 구조했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사고 당시 구조된 사람들은 정신적 충격이 심했지만 단원고 학생들의 정신적 충격은 특히 심각했다. 구조된 단원고 학생들 중에서 거의 PTSD에 가까운 증상을 보이는 학생도 있었다. 이에 따라 수학여행을 가지 않은 단원고 1학년과 3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PTSD 검사를 실시했다. 배에 탑승한 2학년 학생들의 PTSD 증상이 매우 심한 관계로 교육부에서는 학교가 아닌 병원에서 수업을 하도록 조치했으며 수업과 치료를 병행했다.


단원고 학생들의 생존율은 불과 23% 였다. 일반 승객에 비해 턱없이 낮았는데, 이는 일반 승객들은 안내 방송을 듣고 침몰 중임을 직감하고 자체 판단을 해서 생존 대책을 간구했지만, 단원고 학생들은 안내 방송을 믿고 따른 교감 및 각반 담임 교사의 지시를 그대로 이행해 침몰 직전까지도 학생 대부분이 꼼짝 안하고 객실 안에서 대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들 대부분은 구명조끼를 입고 객실 안에서 대기할 때, 배가 침몰 중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전달 받거나,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학교나 선사 측에서 학생들을 집결하여 간단한 선박 안전교육이라도 했었다면 수 십명이라도 더 살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하는 의견을 표하기도 한다.


생존학생 수는 75명으로 이 중 추가치료가 필요한 4명을 제외한 70명이 4월30일 부모와 함께 안산 합동분양소를 찾아 희생된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넋을 위로했다. 의료진은 말렸지만, 분향소가 마련된 시점부터 학생들은 조문을 원했다.

 

▲ 세월호 참사는 전국민적인 트라우마를 안겨주었다. 사진은 세월호 탑승자로서 20여명의 아이들을 구했던 ‘세월호 영웅’ 김동수 씨. 그는 이 날의 기억으로 자살시도를 할 만큼 큰 트라우마를 안고 살고 있다.     © 주간현대

 

국민적 트라우마


정신적인 측면에서 세월호 사고는 이를 지켜보았던 대부분의 국민들에게도 깊은 정신적 상처로 남았다. 나름 구조시간과 구조기회가 있었음에도 거듭된 삽질대처와 어른들 말을 잘 따른 결과로 학생들이 어이없이 천천히 수장되는 모습을 TV방송으로 지켜봐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학생 희생자들과 비슷한 자녀를 가진 부모들, 현직교사들 중에서는 TV뉴스 등을 보면 눈물을 흘리거나 우울감을 겪는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또한 세월호 안내방송으로 상징되는 위급상황에서 정보를 쥔 관리자 측의 기만과 그 결과를 지켜보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비슷한 상황 또는 유사한 상황에서 대중의 관리자 측 또는 권위에 대한 불신이 자리 잡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또한 진상 파악이 늘어지며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던 경기 활성화도 사실상 아무 소용이 없게 됐다. 2014년 당시 연초 민간소비와 건설투자가 회복되던 가운데 그야 말로 찬물을 끼얹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출이 세월호의 사고 수습에 집중되고 있었고 시민사회는 애도의 분위기로 회식이나 야구장의 응원도 자제할 정도였다.


결국 국내 경기가 회복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2014년 1분기 GDP는 전년대비 3.9%의 성장을 보였으나 2분기는 3.4%로 감소했고 이는 전분기 대비 0.5% 성장에 불과했다. 미국과 일본의 경기가 회복인 시점에서 벌어진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사후처리가 정쟁화 되고 정부의 대응이 세월호 유족들의 요구를 무시하면서 장기화되자 2014년을 넘어 2017년 까지 지연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4년 3, 4분기 GDP 성장률은 각각 3.3%, 2.7%까지 하락하여 연초 기대감과 달리 점차하락을 보였다. 동기간 유럽과 미국은 경기가 회복임에도 불구하고 해외 경기에 민감한 한국으로써는 이례적인 저성장을 뜻한다.


통상 국가적인 재난의 경우 빠른 수습과 원만한 해결이 관건이다. 길어질수록 사회구성원의 본업 복귀가 늦어지고 그만큼 경제의 활성화는 늦어지게 된다.


결국 대통령 박근혜와 정부 여당이 세월호 진상규명을 야당 탓, 유족 탓을 하며 미루는 바람에 전 국민적 트라우마는 물론, 자신들이 강조해 오던 경기 활성화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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