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만에 밝혀진 진실 ‘나주 드들강 여고생 살인 사건’

법 심판대에 선 살인범…“범죄자는 감옥서도 치밀했다”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7/01/11 [16:28]
▲ '나주 드들강 여고생 성폭행 살인 사건'의 범인이 16년 만에 재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사진=SBS 캡쳐>     © 주간현대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미제사건들이 존재한다. 이 때문에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이 제정됐고, 그 후 최초의 유죄판결이 나왔다. 16년 전 발생한 ‘나주 드들강 성폭행 살인사건’이 그것이다. 저녁에 오락실을 간다고 나갔던 17세의 한 소녀가 강변에서 성폭행을 당한 후 벌거 벗어진 채 사체로 발견된 이 사건으로 인해 소녀의 인생과 그녀의 가정은 파탄났다. 아버지는 딸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어머니는 끝없는 슬픔 속에 살아왔다. 하지만 범인의 인면수심적인 행동으로 인해 수사는 혼선을 빚었고, 결국 단죄를 받게 될 때까지 16년의 세월이 걸린 것이다. <김범준 기자>

 


 

 

오락실 간다고 사라진 딸…강변에서 알몸으로 숨진채 발견
시신에서 성폭행 흔적 발견…‘DNA 일치자’는 이미 수감자
감옥서도 치밀하게 증거인멸 행한 범인…혼선 빠졌던 수사
불기소 오판 했던 검찰…유죄입증 부담감에 수사하지 않아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영구 미제로 남을 뻔했던 ‘나주 드들강 여고생 성폭행 살인 사건’의 진실이 16년 만에 밝혀졌다. 범인은 오랜 세월 치밀하게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검경은 이 같은 범인의 주도면밀함에 DNA까지 확보해놓고도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로 수사가 다시 시작돼 15년 만에 재판이 이뤄졌고 범인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지난 2015년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한 이른바 ‘태완이법’(형사소송법) 시행 이후 첫 유죄 판결이다.

 

16년 만에 유죄확정


지난 1월11일 광주지방법원은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강간등살인)로 구속 기소된 김모(40)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또한 40시간의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와 20년간 위치추적장치 부착을 명령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시민 사회와 격리가 필요하고 극악한 범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며 김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여자 청소년인 피해자를 상대로 강간살해한 것은 죄질이 매우 나쁘다. 피고인은 범행을 끝까지 부인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범행을 은폐하려 피해자의 시신을 물속에 그대로 방치하고, 범행 후 여자친구를 불러 외조모 집으로 데리고 가 사진을 촬영하는 등 행적 조작까지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유족들은 16년간 범인이 밝혀지지 않아 원망할 대상조차 찾지 못한 채 피해자를 잃은 고통과 슬픔을 고스란히 떠안고 살아야 했다”며 “피고인을 무기징역에 처해 사회에서 반영구적으로 격리, 우리 사회를 보호하고 수형기간 피해자와 유족에게 참회하고 자신의 잘못을 반성할 시간을 갖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제출한 증거 대부분 효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검찰은 김씨가 복역 중인 교소소를 압수수색해 소지품을 확보하고 동료 수감자를 전수 조사해 김씨가 범행을 은폐하려 한 정황을 확인했다.


알리바이 확보를 위해 김씨가 사건 당일 촬영한 사진을 보관 중이었고 사건 장소를 잘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다.


수사기록 검토와 전문가 재감정을 근거로 김씨와 피해자가 사건 당일 만났고, 김씨가 피해자 A양을 성폭행하고 곧바로 살해했다고 볼 수 있는 증거를 추가 확보했다.


검찰은 사건 발생 15년 만인 지난해 8월 김씨를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강간 등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같은 달 광주지법에서 재판이 시작됐고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범행을 부인하는 김씨와 치열한 법정 다툼이 벌어졌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시민 사회와 격리가 필요하고 극악한 범죄에 경종을 울려야 한다"며 김씨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이같은 16년 장기 미제사건이었던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 1심 선고 공판이 열린 광주지방법원 형사법정 302호 방청석 맨 뒷자리에는 슬픈 표정으로 재판을 바라보는 피해자 A양의 어머니 최모 씨가 앉아있었다.


딸에게 몹쓸 짓을 저지른 범인에게 16년 만에 단죄가 내려진 순간 최씨는 오랜 세월 기다려온 장면을 응시하지 못하고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만 추슬렀다. 바로 옆에서 오열하는 최씨 어깨를 움켜쥔 또 다른 딸의 눈시울도 붉게 물들어갔다.


법정을 나선 최씨는 소회를 묻는 기자들 앞에서 거친 울음소리를 토해낼 뿐 한마디 말도 하지 못했다. 최씨는 동행한 딸과 팔짱을 끼고 법정동 사이에 드리운 짙은 그늘을 헤쳐나가는 동안 단 한 차례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 '나주 드들강 여고생 성폭행 살인 사건' 피해자 A양 발견 당시 사진 <사진=SBS 갈무리>     © 주간현대

 

알몸의 시신


이 사건은 지난 2001년 2월4일 발생했다. 피해자 A양은 조만간 고3이 될 학생이었다. 이날 오후 3시쯤 나주 드들강 변에서 지나가던 농민에 의해 발견된 A양은 나체 상태로 엎드린 자세를 하고, 숨진 채 발견됐다.


A양이 발견된 드들강변은 자택에서 16km나 떨어진 곳으로 납치를 당하거나 누군가에 의해 속아 넘어가 차량을 통해 이동했을 가능성이 유추됐다.


국과수 부검 결과 사인은 익사였다. 죽기 전에 폐에 기포가 형성됐고, 폐와 콩팥에서 플랑크톤이 검출 됐다. 강물을 마셨다는 것이었다. 또 박 양의 얼굴이 굉장히 빨갛게 돼 있었고 목이 졸린 듯한 자국도 있었다. 이는 목이 졸렸다는 확실한 증거였다.


그러나 부검 결과를 종합해 볼 때 살인범은 물고문 하듯이 강물에 그녀의 얼굴을 넣으면서 목을 졸랐음을 유추 할 수 있었다. A양의 사망추정 시각은 2월4일 해가 뜨기 전인 오전 7시 정도였다. 당시 수사수준으로는 익사한 시신에서 지문을 채취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또한 A양이 입고 있던 옷들과 끼고 있던 반지는 사건 현장 인근 어디에서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범인이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모든 것을 감췄음을 추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범인을 특정할만한 증거가 없는 가운데 다행히 사건 17일 후 A양 시신 음부에서 남성의 정액이 검출됐다. 경찰은 이를 통해 남성의 DNA를 발견했다. 경찰은 A양의 남자친구 등의 DNA를 조사해봐도 동일한 것을 찾지 못했다.


또한 A양 사타구니 우측에 멍과 상처가 있었으며 허벅지에도 세로로 길게 난 여러 개의 상처가 남아 있었다. 시신의 손목에서도 숨지기 얼마 전 생긴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상처들이 있었다.


이에대해 지난 2015년 5월 SBS <그것이 알고싶다> ‘사라진 반지’편을 통해 당시 부검의는 “몸의 여러 부분에 난 상처들은 어떤 형태로든 피해자가 범인에게 저항과 방어를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고 말했다.


A양은 숨지기 전날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사건 당일 새벽 1시경 동생에게 집에서 불과 100m 떨어진 오락실을 간다고 말했다. A양은 평소에도 늦은 시간에 해당 오락실을 가곤 했다. 경찰 수사로 17살 남학생이 사고 당일 새벽 3시가 약간 넘은 시간에 오락실 밖에서 A양이 두 남자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목격했음을 확인했다.


그러나 이 목격자는 당시 주변이 어두워 얼굴을 정확히 보지 못했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했다.

 

검찰의 치명적 실수


경찰은 나주 일대 강간이나 살인 등 유사 범죄 전과가 있는 남성들을 대상으로도 DNA검사를 했지만 A양 시신에서 검출된 것과 동일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사건은 미궁에 빠졌고 미제 사건으로 남아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갔다.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고통에 시달시던 A양의 아버지는 수년간 술로 슬픔을 달래다 2009년경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러던 지난 2012년 9월, 사건 발생 11년 만에 A양의 몸에서 검출된 남성 정액과 DNA가 동일한 남성이 발견됐다.


범인은 지난 2003년 전당포 살인사건을 일으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강도살인죄로 목포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무기수 김씨였다. 김씨는 교도소 재소자 동기와 그가 연결해준 전당포 사장을 한꺼번에 돌로 치고 목을 졸라 살해한 후, 1200만원 가량의 금품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었다. 김 씨는 살해한 두 남성을 속옷까지 전부 벗겨 야산에 암매장 했다.  


경찰조사결과 김씨는 A양 사건 당시 불과 100m가량 떨어진 곳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또한 A양이 자주 가던 집근처 오락실에 김씨도 다녔다는 사실이 확인 됐다. 그런데 그의 주소지가 전남 장성의 형 집으로 돼 있었던 이유로 당시 이뤄진 경찰 DNA 검사나 용의자 리스트에 오르지 않았고 수사도 받지 않았던 것이다.


경찰은 이러한 수사결과 등을 종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사람들은 진범이 잡혔고 미제사건이 해결됐다고 생각했지만, 사건을 넘겨받은 광주지방검찰청 목포지청은 김씨를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이와더불어 검찰은 재판에도 넘기지 않았다. 검찰은 김씨가 A양과 서로 좋아했을 뿐 범행과 무관하다는 김씨 주장과, 범인이 아닌 것 같다는 목격자 진술을 토대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SBS<그것이 알고싶다>를 통해 수사를 맡았던 한 경찰관계자는 “김씨는 이미 무기징역형을 받고 있기에 법률적으로 보면 처벌가치가 없다. 그렇다고 지금 사형을 구형하기에는 사회적인 이슈가 된 것도 아니다”면서 “기소가 확실히 떨어질 것 같으면 모르는데 무죄를 혹시라도 받아버리면 자기에게 손해가 오고…검찰이 무기수였기 때문에 부담을 많이 느꼈을 것이다”라고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김씨는 경찰과 검찰에서 앞뒤가 안맞는 증언을 하며 상당히 의심스러운 모습을 보였었다. 경찰이 김씨에게서 A양 몸에서 나온 정액의 DNA와 김씨의 것이 일치한다고 추궁하자 그는 A양이 누군지도 모른다고 부인했으나 이후 검찰 조사에서는 “A양은 내가 성관계를 여러명의 여자 중 한 명일뿐이고 합의하에 성관계를 했다. 박 양을 죽인 적이 없다”고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당시 A양의 가족들은 크게 분노했다. A양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해당 검찰은 김씨 불기소 처분한 사실을 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았을 정도로 사건을 건성으로 다뤘기 때문이다.

 

▲ 범인 김 씨는 지난 2003년 ‘전당포 사장 살인 사건’을 벌였을 당시에도 옷과 소지품을 모두 벗긴 채 암매장하는 동일한 방범을 사용한 바 있다 <사진=SBS 갈무리>     © 주간현대

 

뻔뻔했던 범인


이렇게 끝나는 듯한 이 사건을 지난 2월 나주경찰서가 다시 수사에 나섰다. 이번 경찰 수사과정에서 중요한 사실들이 추가적으로 발견됐다.


A양이 사건 당일 오전 1시14분경 광주의 자택에서 채팅사이트에 접속한 행적을 마지막으로 오락실로 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또한 김씨가 사건 전 이 무렵 해당 채팅사이트를 통해 5~6명의 여성을 만난 정확을 확인했다.


경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무기수 김씨는 180m가 넘는 큰 키에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상당히 잘 생긴 얼굴의 소유자였다. 게다가 범행 당시 나이도 24살가량이었다. 나이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호남형 남성과 채팅을 토해 오락실 주변에서 만났을 가능성을 유추할 수 있다. 김씨도 직접 A양을 채팅을 통해 만난 것 같다고 말했다. 


A 양의 휴대전화 등 각종 통신 기록에도 김씨의 흔적은 전혀 없었기에 사건 당일 채팅을 통해 오락실 근처에서 가까이 살던 두 사람이 만났을 수 있다는 유추도 가능했다.


무엇보다 김씨의 주장과 달리 합의하에 성관계를 하지 않았을 정황은 많았다. A양은 살해당한 당시 생리 중이었다. 박 양의 당시 부검의는 “생리 기간 중 성관계를 가졌다면 DNA가 검출될 수 있는 시간은 3~4시간에 불과하다”고 설명한 바 있다.


A양 시신에 있던 멍과 상처 등을 모든 정황과 증거를 종합해 볼 때 저항했지만 범인에 의해 강제로 성폭행을 당하고 살해된 것으로 볼 수 있는 것.


또한 김씨의 주장 등을 종합하면 생리 중인 여고생이 유선 전화나 휴대 전화 등 공식적인 통신기록이 한 번도 없는 남성과 갑자기 만나서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맺고 곧바로 다른 남성에게 살해만 당했다는 것인데 이는 상식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재수사를 통해 추가적인 의심스러운 정황들도 발견됐다. 사건 당시 김씨가 용의선상에 오르지 않은 또 다른 이유가 발견 된 것. 사건 직후 김 씨는 자신의 차량을 팔아 넘기고, 개 12마리를 훔쳐 절도범으로 잡힌 것이다. 그는 이전에도 절도 등의 전과가 있어 징역살이를 했다.


출소 후 2003년 전당포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체포 될 당시에도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듯해보였다. 말투가 어눌했고 살인을 위해 특별한 도구나 수면제 등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이러한 정황들이 더욱 계획적으로 위장한 것으로 의심할 수 있었다.


A양의 살인범과 전당포 살인사건의 범인 김씨는 동일하게 증거 인멸을 위해 피해자들의 옷가지를 전부 벗겨 감췄고, 그들이 갖고 있던 반지 등도 전부 없앴던 것이다.


전문가들은 노련한 범행 수법으로 봤을 때 A양의 살인범은 절도나 강도 전력이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실제로 김씨는 A양 살인사건이 있기 전에도 수차례 절도나 강도 전과가 있었다. 김씨가 전당포 살인 사건에서도 친구를 끌어들여 살인을 저지르는 등 이처럼 손쉽게 사람을 죽인 정황이 처음 살인을 저지른 사람으로 보기 어려웠다.


의심스러운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이 알고싶다’ 취재진이 김씨를 찾아가 대면을 했다. 취재진은 김씨에게 억울함을 도와주겠다며 요청할 것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나 김씨는 “다른 부분은 제가 도움 받을 부분이 없을 것 같다. 서신이나 한 번 보내달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을 뿐이었다.


본인이 정말 A양을 죽인 살인범이 아니라면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리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방송 취재진에게 면담 요청을 하고,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게 정상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김씨의 당시 태도에 대해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김수정 교수는 “(지금 상황은 김씨처럼) 나한테서 더 많은 걸 알려고 하지 마라 하고 휙 들어갈 상황이 아닌거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오히려) 억울함을 호소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하며 김씨의 행동에 의문을 표시했다.


결국 기소를 하지 않았던 검찰과 뻔뻔하기 짝이 없었던 범인으로 인해 영영 밝혀지지 못할 것 같았던 ‘나주 드들강 성폭행 살인사건’은 결국 16년 만에 법원 판결이 나면서 어느정도 사실이 밝혀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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