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살해한 어머니 무죄…심신미약 범죄 되짚어보기

임대현 기자 | 기사입력 2017/04/11 [15:50]

악귀가 씌었다라며 자신의 딸을 살해한 어머니가 무죄를 선고받았다심신상실이 인정된 것이다같은 범행을 저질렀던 그의 아들은 정신감정에서 정상으로 나와 징역을 선고받았다같은 사건에서 이처럼 대조적인 판결이 나올 수 있던 이유는 무엇일까그간 논란이 돼왔던 심신미약에 범죄를 재조명해본다. <편집자 주>


 

악귀 씌었다딸 살해한 어머니심신상실 인정

 음주와 약물로 인한 심신미약 인정 여전히 논란

 

▲ 자신의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55)씨가 심신상실을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사진=PIXA BAY>

 

 

[주간현대=임대현 기자] 지난 47일 경기 수원지법 안산지원 제1형사부는 자신의 딸을 살해한 혐의로 기소된 김모(55)씨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치료감호를 명령했다. 재판부는 살해 행위가 인정되지만, 어머니 김씨는 환각, 피해망상,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증세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심신상실 상태에서 범행한 것으로 판단, 처벌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다.

 

살인 범죄자가 무죄를 선고받는 사례는 흔치 않은 일이다. 같은 사건에서 어머니와 함께 여동생 살해에 가담한 김모(27)씨는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두 사람의 차이점은 정신감정에서 갈렸다. 어머니만이 심실상실이 인정된 것이다.

 

형법상 심신상실자란 심신장애로 인해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를 말한다. 심신상실자는 책임능력이 없으므로 책임이 조각돼 무죄가 되므로 형벌은 받지 않는다. 이들에게는 치료감호 등의 보안처분은 가능하다.

 

국립정신건강센터 임상심리 A전문의는 김모(55)씨 모자의 3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했다. A전문의는 어머니 김씨는 종교와 결부된 환각과 망상이 심했다판단력과 행동통제력의 상실이 관찰되는 등 정신병적 징후를 보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범행동기로 애완견에 있던 악귀가 옮겨가 죽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아들의 정신감정 결과는 달랐다. 앞서 2차 공판에 출석한 정신과 B의사는 살인 전 어머니가 정신병에 걸렸다고 판단해 외가에 전화로 알린 점, 여동생에게 악귀가 씌었다며 어머니가 칼과 망치를 가져오라고 했을 때 거부한 점 등 아들 김씨는 범행 직전과 직후 행동의 의미를 알고 행동했다사회 변별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에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고 본다. 범행 당시 심신 미약이나 상실 수준은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고 증언했다.

 

B의사는 범행 당시 사회변별능력, 의사결정능력에 문제가 없어 형사 책임 능력이 건재했다는 점에서 심신미약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는 여동생에게 악귀에 씌었다고 한 어머니 말처럼 그럴듯한 상황에서 아들은 윤리적, 도덕적 판단에 따르지 않고 권위의 대상인 어머니의 지시에 따른 것일 뿐 심신미약 상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아들 김씨에 대해서는 김씨는 심신장애 증세를 보인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다면서 범행에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둔기가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 있음을 예견할 수 있었고 사물 변별력도 있었는데 범행 후 신고조치도 않는 등 죄질이 무겁고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징역형을 내렸다.

 

김씨 모자는 지난해 819일 오전 6시쯤 경기도 시흥의 한 아파트 14층 집안에서 악귀가 씌었다며 키우던 애완견을 퇴마의식을 하는 듯한 방식으로 죽인 뒤 악귀가 옮겨갔다며 딸(당시 25)을 흉기와 둔기로 살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음주도 심신미약?

음주인 상태로 범죄를 벌이는 행위가 심신미약을 인정받아 충격을 줬던 사건이 있다. 지난 2008조두순 사건이 그랬다. 조두순 사건은 등교 중이던 8세 여아를 인근의 교회 화장실로 끌고 가 목 졸라 기절시키고 성폭행한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피해 아동은 생식기와 항문, 대장의 80%가 소실되는 고통을 겪었지만 정작 범인 조두순은 징역 12, 정보공개 5, 전자발찌 착용 7년의 확정판결을 받고 교도소에 수감되는 비교적 가벼운 형량을 받았다. 해당 사건을 계기로 음주나 약물로 심신미약 상태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경우를 형 감경사유에서 제외하는 성폭력 특례법이 제정됐다.

 

과거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2009년 분석 자료를 보면 강간상해 및 치상죄의 경우 음주하지 않은 경우에는 평균 형량이 31개월이지만 만취한 경우’ 26개월에 지나지 않았고, 이는 만취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르면 형법상 심신 미약을 이유로 형량을 줄여줬던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이제 줄어들었다.

 

개정된 성폭력 특례법은 지난 2014114일에 첫 판결이 나왔다. 당시 대전고법 청주형사1부는 전처의 10대 조카를 성폭행하려다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오모(48)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원심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어린 조카를 성폭행하려다 저항하자 살해한 뒤 자신의 욕구 충족을 위해 끝까지 추행하는 등 그 죄질이 매우 나빠 무기징역을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오씨 측이 심신미약 상태를 주장한 것과 관련해서는 “1심은 심신미약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으나 피고인의 정신감정서와 범행 당시 만취해 있던 정황을 종합하면 심신미약 상태였음이 인정된다심신미약 상태였다 하더라도 그런 상황에서 저지른 성범죄는 감경사유에서 제외하는 성폭력 특례법에 따라 형을 감경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조두순 사건은 사회적으로 공분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로 인해 음주 등으로 인한 심신미약 감경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판결도 변화했다. 과거 음주 후 심신미약 범죄에 관대하던 사회적 분위기가 엄격하게 바뀌면서 성범죄가 아닌 일반범죄에 대해서도 법원이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경향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형법 10조의 심신미약 조항에 근거해 형을 낮춰주는 이른바 음주 감경이 여전히 인정된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현행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관련법을 개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

 

술에 취해 가정폭력을 휘두르거나 자녀를 학대하면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음주폭력방지법안 2개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아동학대 또는 가정폭력 범죄를 저지른 경우 심신미약을 이유로 감형 받을 수 없는 내용이 담긴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가정폭력범죄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일부개정법률안’ 2건을 지난 228일 대표 발의했다.

 

각각의 법안에는 형법 제10조에 있는 형 감경 규정을 적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의원은 현재 아동학대 4건 중 1, 가정폭력 3건 중 1건은 가해자가 술에 취한 상태에서 벌어진다두 가지 범죄는 성폭력범죄와 마찬가지로 죄질이 나쁜데 심신장애를 주장해 감형을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심신미약 논란

이른바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돼 재판에 넘겨진 김모(34)씨는 재판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지난해 10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4부는 살인 혐의로 기소된 김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무기징역을 구형했지만, 재판부는 김씨가 심신미약 상태에서 범행을 했다고 판단해 감형했다.

 

재판부는 김씨가 정신병적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후 조현병 진단을 받았고 범행의 계획성을 부인할 수 없지만 조현병 환자라고 해서 일정 수준의 계획적 행동이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김씨의 범행이 조현병의 영향에 의한 심신미약 상태에서 행해졌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강남역 사건은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을 일으켰음에도 심신미약을 인정해 감형된 것을 두고 논란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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