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제19대 대통령 당선자. © 사진공동취재단 |
|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제19대 대통령 당선인으로 가닥이 잡힌 가운데 인권변호사와 청와대 참모를 거쳐 대통령이 되기까지 그가 걸어온 발자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학창시절 모습.ⓒ더불어민주당 제공 |
|
문재인 후보는 1953년 1월 24일에 경상남도 거제군 거제면 명진리 694-1번지에서 아버지 문용형과 어머니 강한옥 사이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문 후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 인권변호사 시절 함께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당선인의 모습 ⓒ 문재인 측 제공 |
|
문 후보는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으나 구속 전력 탓에 그는 원하던 판사가 아닌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됐다. 이에 낙담하고 내려온 1982년 부산에서 운명처럼 노 전 대통령과 만나 인권변호사로 일하게 된다.
▲ 문재인 당선인은 참여정부 시절, 초대 민정수석과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내며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함께 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
|
문 후보는 노 전 대통령과의 기억, 청와대 시절, 퇴임, 서거 당시의 상황을 기록한 ‘문재인의 운명’에서 “당신(노 전 대통령)은 운명에서 해방됐지만, 나는 당신이 남긴 숙제에서 꼼짝하지 못하게 됐다”고 쓴 바 있다. 문 후보 스스로 자신의 정치적 운명이 결국 노 전 대통령에서 시작됐음을 인정하는 대목이다.
문 후보는 노무현과 함께 합동법률사무소를 운영하며 오랫동안 인권변호사 생활을 했다. 또한 부산지방변호사회 인권위원장, 부산민주시민협의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노무현이 정계에 입문하여 청문회 스타가 된 뒤에도 부산변호사협회 인권 위원장을 지내면서 인권 변호사로 일했다.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동의대학교 사건 등 굵직한 시국사건을 변론했다.
그는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비롯해 정치권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2003년 1월 3일 문 후보를 불러 “달리 맡길 사람이 없으니 민정수석을 맡아 달라”고 부탁했고, 이를 계기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하지만 문 후보는 참여정부의 초대 대통령비서실 민정수석으로 지냈으나,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 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민정 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산행 도중 연락이 두절된 상황에서 영자 신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 노 전 대통령 대리인단으로 참여했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안이 헌재에서 기각된 후 그는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 정무특보를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장례 절차와 관련한 모든 일을 도맡았으며, 이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지난 2012년 4·11 총선 때 부산 사상구에서 당선된 문재인은 같은 해 치러진 18대 대선에 출마했다. 당시 안철수 후보와 어렵게 단일화를 이뤄내고 야권 단일 후보가 된 그는 48.02%라는 역대 야권 대선후보 최고 득표율에도 패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 후보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선 이후 문재인은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를 통해 새로운 당대표로 선출됐고, 당의 혁신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나 혁신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문재인이 정치판에 등장한 이후 당의 중진 의원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곤 문재인을 향한 공세작전을 펼쳤다. 안철수로 대표되는 당내 비주류 의원들은 문재인의 대표직 사퇴와 혁신위원회의 혁신안 폐기 등을 요구했다.
자신들의 요구가 통하지 않자 일부 의원들은 대거 탈당을 감행했다. 그러나 문재인은 이에 굴하지 않고 표창원, 손혜원, 조응천 등 당 인재 영입 작업에만 착수했다.
지난해 1월 19일 문 후보는 신년 기자회견을 열어 당의 공천 제도를 ‘시스템 공천(안심번호 국민공천제)’로 새로 도입해 그 간 계파 보스 정치인들이 나눠먹기 했던 국회의원 공천권을 공정하고 투명하게 만들었다고 발표했다.
결국 문 후보는 지난해 4·13 총선을 승리로 이끌며 민주당을 제1당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후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태’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됨에 따라 조기 대선 국면이 시작됐고 문재인은 적폐청산의 기수로 떠올랐다.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