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완의 따뜻한 성찰 자서전 4]자서전 잘 쓰는 법은 ‘자존심 곧추세우는 것’

너무 뻔한 스토리 말고 나만 겪었던 일, 나만의 감성 기술을

글/양승완(작가) | 기사입력 2017/07/18 [13:52]

[양승완의 따뜻한 성찰 자서전 4]자서전 잘 쓰는 법은 ‘자존심 곧추세우는 것’

너무 뻔한 스토리 말고 나만 겪었던 일, 나만의 감성 기술을

글/양승완(작가) | 입력 : 2017/07/18 [13:52]

나를 성찰하고 치유하는 자서전 쓰려면 오롯한 내 존재 드러내야

죽음 앞두고 있단 사실 직시할 때 생기는 인간 본래의 모습이 자존심
죽음의 미소 보는 순간 난 비로소 온전한 나로 선다…이게 바로 자존심

신 앞에 서보자. 신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자존심뿐이다. <사진출처=Pixabay>


이 연재를 시작할 때 자서전을 쓰는 기술을 알려드리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난 회까지 성찰이니 치유니 하면서 소크라테스가 나오고 정언명령이 나오고…. 독자들의 머릿속을 헝클어 놓은 듯하다. 일단 자서전 쓰는 일이 왜 좋고 선한 일인가를 어설프게나마 이야기해주고픈 욕심이었다. 사실 강의를 할 때는 좀 더 많은 성인들의 의견을 살펴본다. 그 다음 수강생들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그들이 써온 글을 가지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하면 강의의 열매가 열린다. 신문 연재 강의는 즉각적인 피드백이 없는 대신 ‘내 맘대로’라는 장점도 있다.

 

 

치밀하게 계산해야 잘 쓴 글
‘난 1958년 충청도 미여리에서 태어났다. 마을은 안개가 많았는데 사람들이 부지런히 일하는 곳이었다,’
썩 나쁜 첫 문장은 아니다. 그러나 처음 말한 대로 필자는 기술을 알려드리고 싶다.


‘새벽에는 마을에 안개가 가득했다. 간밤의 꿈이 멀어지듯 안개가 걷히면 집집마다 하루를 준비하는 소리가 덤벙덤벙 새어나온다. 나는 느티나무 옆 파란 대문 집에서 태어났다. 1958년 충청도 미여리였다.’


물론 어떤 글이 잘 된 것인지 선택은 자신이 하는 것이다. 화장을 하는데 안한 듯 자연스럽게 하는 게 예뻐 보인다. 그래서 남성용 비비크림도 나왔다. 현란하게 꾸민 글이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마저도 치밀하게 계산한 글이 잘 쓴 글이다.


1958년 개띠면 산업화·민주화 등 우리나라 현대사의 질곡을 헤쳐온 전사들로 유명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구로공단에서 쌍욕과 명랑(당시 유명한 각성제)을 먹으며 청춘을 보냈고, 노조라는 걸 알게 되어 머리에 띠 두르고 주먹 쥐며 고함을 친 분들이 많다. 분명 드라마틱한 인생이다. 그러나 이 스토리는 너무 식상하다. 1958년 개띠의 삶은 너무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국의 현실과 적절하게 잘 조화시켜 뛰어난 글로 완성시킨 자서전으로 나는 김대중 자서전을 꼽는다. 그 분의 삶이 시국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같은 일반인이 그렇데 쓴다면 읽는 사람은 ‘개뿔…’이다. 


나만이 겪었던 일. 나만의 감성을 찾아보자.
‘김반장이 오늘도 순옥이 옆에 섰다. 일을 가르쳐 준답시고 고개를 주욱 디밀더니 니글니글 어디 아픈 덴 없어? 하고 물었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얼굴에 복면을 하고 김반장을 아프게 했다.’


내가 김반장이었도 좋다.
‘그렇게 예쁜 아이는 첨 봤다. 이번에는 나도 장가가서 효도를 해야 한다. 여자는 자신을 아껴주는 남자에게 반한다고 했다. 내가 너를 지켜 주리라. 근데 집에 오다가 어떤 개자식이 습격을 했다. 당수를 쓰려고 했지만 틈이 없었다. 경찰에 신고했더니 없어진 건 없냐고 묻고 집에 가 기다리란다. 잡을 수 있을까?’

 

나에 대해 기술하는 자서전
자서전을 잘 쓰는 방법이 뭐냐고 물으면 나는 자존심이라고 답한다. 자존심이 있어야 내 존재가 성립되고, 그런 나에 대해 기술하는 것이 자서전이다. 그런데 자존심도 세우지 않고 자서전을 쓰려고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쓸 수는 있겠지만 그런 자서전이 뭐 그리…. 다행한 것은 자서전을 쓰면서 자존심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를 성찰하고 치유하는데 오롯한 내 존재가 드러나지 않고 배길 것인가?


‘남에게 굽힘이 없이 자기 스스로 높은 품위를 지키는 마음. 즉 자신의 가치, 능력, 적성 등의 자기 평가가 긍정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자존심은 자기의 능력에 대한 자신 또는 소속집단으로부터의 승인을 기초로 발생한다.’


자서전의 사전적 의미다.


사전에 속으면 안 된다. 자존심은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때 생기는 인간 본래의 모습이다. 죽음이 없다고 생각하면 자존심은 생기지 않는다. 그건 권위고 권력이고 타인에 대한 나의 힘일 뿐이다. 낼 모레, 아니 언젠가 나는 죽는다. 이 사실 앞에 나는 더 이상 남과 같은 나가 아니라, 남을 따라다니는 나가 아니라, 남의 꿈을 내 꿈으로 착각하는 나가 아니라 바로 죽음 앞에 놓인 한없이 초라한 미물일 뿐이다. 지금까지는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살았다. 그래서 잘 몰랐다. 나에 대해서. 그래서 잘 몰랐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런데 이제 죽음이 가까이 와 미소 짓는다. 외면하려 해도 그 미소가 너무 처연하게 아름답다. 죽음의 미소를 보는 순간 나는 비로소 온전한 나로 선다. 이것이 자존심이다.


키에르케고르는 ‘신 앞의 단독자’라고 해서 이와 비슷한 말을 했다.

 

자존심 없는 쪽팔린 삶
그동안 우리는 자존심 없는 너무 쪽팔린 삶을 살았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경우를 잘 나누어 정리한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경향이 있다. 이런 경향이 전혀 없는 소수의 사람은 성인일 것이다).


억압→저렇게 예쁜 여자에게는 애인이 있겠지? 나 같은 놈이 감히….
반동형성→그래 이 더러운 사장 놈아 내 떡도 먹어라.
보상심리→네가 우리 집 앞에 쓰레기를 버렸으니 나는 똥을 투척하리라.
합리화→저 부자 놈은 분명히 마누라를 잘 얻었을 거야.
지적화→아 자식이 바람을 피워? 남자에게 바람은 어떤 의미일까? 인간의 본성을 이성이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인가?
투사→우리 첫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그녀 때문이다.


신 앞에 서보자. 신은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으니 내가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자존심뿐이다.
교회 가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신이 정 싫으면 죽음 앞에 서보자. 자존심 빼고 남을 게 뭐가 있겠는가?
물론 김반장을 팬 것도 자존심이고, 순옥이에게 들이댄 것도 자존심일 수 있다. 
                                                                 <콘텐츠 출처=양승완 작가 블로그 scene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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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완 작가는 누구?
1968년 서울생.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졸업. 드라마 작가(MBC 베스트극장, 특집극 등). 어린이 서적 ‘우리 국토 수놓은 식물 이야기’ ‘생각을 뒤집는 논리세상’ 등 출간. 국회의원, 시장 등 다수의 자서전 대필. 연락처 010-7371-1516. e-mail scen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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