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살아온 날들 중 혁명적 사건은 무엇인가?

[양승완 작가의 따뜻한 성찰 자서전 8]

글/양승완(작가) | 기사입력 2017/08/14 [17:42]

당신이 살아온 날들 중 혁명적 사건은 무엇인가?

[양승완 작가의 따뜻한 성찰 자서전 8]

글/양승완(작가) | 입력 : 2017/08/14 [17:42]

국 엎질러 화상 입은 날, 한글 깨친 날, 어머니가 집 나간 날
살아온 시간들 중 거창하게 혁명이란 이름 붙여 사건 정리를

▲ 사진은 장예모 감독의 영화 <내 책상 서랍 속의 동화> 한 장면.   


다독·다작·다상량.
송나라의 구양수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고 했다. 수많은 후배들이 이 말을 진리처럼 받아들였고 지금도 글 좀 쓴다하는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우리는 시간이 없다. 이 할 일이 태산 같은 시절에 언제 책을 읽고 언제 습작을 하고 언제 생각을 하냔 말이다. 그러나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이미 다독·다작·다상량을 충분히 하고 있다.


매일같이 스마트폰을 본다. 축구선수 손흥민이 부상 당해 올 시즌 출전이 불분명하고, 영화배우 송강호가 택시 타고 광주에 갔다는 소식을 읽는다.


쓰기는 덜할까? 카톡과 페이스북을 통해 이 라면이 맛있고, 저 새끼는 재수없고, 그것들은 지들만 웃는다고 시시때때로 글을 작성하고 ‘좋아요’ ‘나빠요’ 점검까지 받는다.


생각이야 두 말 하면 피곤하다. 집 걱정, 돈벌이 걱정, 노후 걱정, 애들 걱정, 발가락을 다쳐 종합병원에 간 여인 걱정까지 해야 할 판이다.


송나라의 구양수가 지금 옆에 있다면 ‘그냥 쓰세요. 당신은 이미 충분한 공부를 마쳤습니다’라고 하지 않을까?

 

글 쓸 때도 설계도 필요하다
이제 노트를 앞에 두고 펜을 쥐거나 컴퓨터를 켜고 키보드 앞에 앉는다. 그래도 선뜻 글이 써지지 않는다. 집을 지을 때 설계도가 필요하듯 글을 쓸 때도 설계도가 필요하다.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이 정도 쓰고 군대 이야기도 넣고 와이프 만나기 전의 영숙이 이야기는 넣을까? 말까? 고민하는 일이다. 이때 자신이 살아온 시간 중에 혁명적 사건을 미리 정해두면 좋다. 아주 좋다.


혁명은 위대한 사람이나 맑스주의자들만 하는 게 아니다. 나도 수많은 혁명을 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인류 역사의 혁명적 사건이나 인물들과 나를 나란히 펼쳐놓아 보는 일은 즐거운 작업이다.


우주의 기원이 빅뱅이라고 한다. 나의 기원은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이다. 수 억 마리의 정자 중에 오직 하나의 정자가 잉태되는 순간이 나의 빅뱅이다. 어머니 아버지는 그 순간 쾌락을 느꼈을 것이다. 빅뱅의 아주 밀도 있는 점 하나도 ‘빵~’하면서 엄청난 쾌락을 느꼈을 것이다.


빅뱅이 있고 우주는 팽창했다. 나도 엄마 뱃속에서 팽창했고 지구가 생기는 일처럼 나도 탄생했다.


인류가 불을 발견한 건 혁명적 사건이다. 내가 뜨거운 국을 엎질러 화상을 입은 사건도 혁명적이다. 인류가 글을 만든 것은 내가 한글을 깨친 사건이고, 1차 세계대전은 아버지가 술 먹고 집에 들어와 난장을 핀 일이고, 2차 세계대전은 어머니가 집을 나간 일이다. 내가 사춘기를 보내면서 학교를 그만두고 가출을 선언했다면 이는 너희들이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고 말한 노동자 계급의 성숙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쓰려는 것은 논문이 아니므로 검증의 책임에 대해 자유로울 수 있다. 그냥 내가 보낸 시간 중에 거창하게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사건을 정리해보자는 의미다.


꼭 사건에만 국한시키지 말아야 한다. 생각에도 혁명적인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남녀의 성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정말 남녀가 잠자리에서 손 잡고 자면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다. 그런데 중학교 때 화장실 낙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아이들이 돌려보는 플레이보이지. 분명 그것은 내 사유체계에 혁명을 일으킨 일이고 스무 살 시절에 읽은 황석영 작가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란 책 또한 그러하다.

 

당신의 혁명적 사건은 무엇?
몇몇 정치인의 자서전 인터뷰를 진행할 때 그들의 목적에 맞을 법한 질문지를 작성했다. 당신은 어디서 태어났으며 어떤 학교를 졸업했고 정치에 뛰어든 계기는 무엇이며 지금까지 무슨 공이 있으며 앞으로 어떤 정치인이 될 것인가? 간혹 드러나는 이들의 과오는 뭐 대충,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하고 마무리 한다. 대부분의 자서전 대필 작가들이 이런 방법으로 쓴다. 대부분의 자서전 강의를 보면 이런 질문지를 작성케 하거나 나누어 준다.


나는 좀 마음에 드는 사람이면 질문지를 작성하기 전에 ‘당신에게 혁명적 사건은 무엇입니까?’하고 묻는다. 그럼 좀 덜 정치적인 대답이 나온다.


혁명적 사건을 끄집어내고 자서전을 쓰려고 해도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래서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있는가?


진정한 나를 찾아야 한다는 잠언류의 글들이 판을 친다. 지하철 벽에도 걸려 있고 뜬금없이 날아오는 *톡 문자에도 실려 있다. 그런데 진정한 나는 도대체 어디 있는지 뭐 먹고 사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 스쳐가면 다음날 또 문자가 날아온다. 마음수련 안내, 자아를 잃어버린 현대인 어쩌구 저쩌구…. 진정한 자아를 찾자는 것이 자서전을 쓰는 의미라고 하는데 내 과거를 훑어보는 일로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르트르(1905~1980년) 식으로 말하면 내 안에 지금의 나 말고 또 다른 어떤 실체, 진정한 자아라는 게 있다고 전제하는 오류다. 자아는 내 의식 안에 사는 거주자 같은 것이 아니라 지금 책을 읽는 나, 재채기를 하는 나, 자서전을 쓰려고 하는 나 안에 있고 이들의 총합이다. 지금 나의 모든 상태와 행위와 통일이 자아라고 한다.


사르트르를 인용했으니 내친 김에 니체(1844~1900년)까지 툭 쳐보면, 인간은 세 단계를 거쳐 완성된 인격이 된다고 한다.


1, 권위와 스승에 의존하는 단계(필자의 해석-성인이 되기 전 기존 질서의 학습단계).
2. 자유쟁취 단계(필자의 해석-경제적 독립을 이루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단계).
2-1. 자서전 쓰는 단계(필자가 끼워 넣은 단계).
3. 독자적 가치와 궁극적 목표에 헌신하는 단계(필자의 해석-내던져진 존재인나로부터 자존심을 가진 나로 새롭게 태어나 미래를 설계하는 단계).

 

결혼 못하신 분들, 내년 휴가는 자서전을 들고 가자.
‘무슨 책이에요?’
‘아 이거…제 자서전입니다.’
새로운 빅뱅이 될 수 있다.
<콘텐츠 출처=양승완 작가 블로그 sceney.blog.me>
==============================================
양승완 작가는 누구?
1968년 서울생. 성균관대학교 철학과 졸업. 드라마 작가(MBC 베스트극장, 특집극 등). 어린이 서적 ‘우리 국토 수놓은 식물 이야기’ ‘생각을 뒤집는 논리세상’ 등 출간. 국회의원, 시장 등 다수의 자서전 대필. 연락처 010-7371-1516. e-mail sceney@naver.com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광고
광고
포토뉴스
[포토 스토리] 평화가 깃드는 장소, 판문점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
1/3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