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는 생리컵 안 돼” 순결에 대한 일그러진 고정관념

성혜미 기자 | 기사입력 2017/09/01 [14:51]

 

 

▲ 국내 생리용품에 대한 불신으로 생리컵, 생리팬티 등 대안 생리용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사진=유투브 ‘여성환경연대’ 채널 화면 갈무리>


생리대 발암물질 검출 사태로 ‘생리컵’과 같은 대안용품에 관심을 갖는 여성들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듯한 반응이 제기돼 논란이 되고있다. 

 

최근 시민사회단체 여성환경연대와 김만구 강원대 환경융합학부 교수팀은 ‘생리대 방출물질 검출시험 결과’를 발표하며 시중 생리대 10개 제품에서 벤젠과 스타이렌 등을 포함한 22종의 발암·유해물질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한정열 제일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해당 물질이 여성의 에스트로겐처럼 작용해 인체의 리듬을 깨는 환경호르몬일 가능성이 있다”며 “이러한 물질들은 생리불순뿐만 자궁내막증 등을 유발해 인체에 영향을 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생리대 속 화학물질이 여성의 생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얼마나 유해한지 여부는 현재로선 알기 힘들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생리대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여성들에게 생리대는 기호품이 아닌 필수품인 만큼 발암물질 검출 소식은 파장이 컸다. 건강을 우려한 여성들은 면생리대, 생리컵과 같은 대안용품에 집중했다. 

 

특히 인체에 삽입해 생리혈을 받아낼 수 있는 실리콘 재질의 여성용품 ‘생리컵’에 대한 관심이 컸다. 한번 구입하면 10년 정도 쓸 수 있어 친환경적이고, 해외에서는 이미 안정성을 인증받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부 온라인에서는 ‘질 구멍 넓어져서 성관계할 때 만족감이 떨어지면 어쩌냐’같은 내용의 반응이 제기됐다. 생리용품을 여성의 성(性)생활과 연결시킨 것이다. 

 

아래는 생리대 사태 이후 생리컵 국내 생산과 관련한 온라인 기사에서 발췌한 일부 네티즌 반응이다. 

 

“생리대 때문에 생리주기가 짧아졌네 몸이 안좋네 하지말고 이놈 저놈 만나면서 몸이나 함부로 굴리지 마라”, “더러운 X들이 피나 싸고 기어다녀 더럽게”, “여자들 XX에서 피 흘리는거 극혐”, “애도 안 낳을건데 생리대에 민감한 김치녀는 뭘까”, “왜 이렇게 예민해? 생리 중인가?”, “저렇게 큰 생리컵이 들어가면 어떻겠느냐” 등이다. 

 

여성들에 대한 이같은 비하적인 표현은 탐폰(체내 삽입용 생리대)이 시중에 처음 나왔을 때와 바슷하다. “탐폰은 성관계 한 여자들만 사용할 수 있다” “탐폰 쓰면 흥분하나요”등의 반응이다. 

 

전문가들은 대다수 비판이 질 내 여성용품 삽입 행위에 대해 처녀성 상실과 같은 근거없는 주장인 것에 주목했다. 우리 사회에 잔존하는 성차별 관념과 이에 기초한 혐오감이 생리컵을 계기로 표출됐다는 설명이다. 

 

특히 여성의 순결, 처녀성과 관련한 내용이 많다는 점을 들며 김수아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교수는 “많은 남성이 순결에 대한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성적 주체성을 드러내는 여성을 조롱하고 멸시하는 경향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생리컵과 관련한 최근의 논란들을 보면 여성에 대한 편견과 비하가 전제된 것으로 보인다”며 “충분한 정보를 토대로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하고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여성의 당연한 권리”라고 강조했다.

 

여성을 성욕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거나 남성을 따르기만 하는 종속적인 존재로 여기는 가부장적인 생각과 배치되면서 터져나온 비판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진선 여성민우회 여성건강팀장은 “공교육 과정에서 제대로 된 성교육이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문제의식 없이 비하 발언을 하게 되는 것이라고 본다”며 “여성의 성경험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도 생리컵 논란을 불러일으킨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ahna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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