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현장 밀착취재]18명의 장애인 영정과 정부가 5년만에 마주했다

박능후 복지부 장관 “먼 길 돌아 이제야 마주하게 됐다”

성혜미 기자 | 기사입력 2017/09/01 [15:54]

지난 8월25일 장애인들의 목소리에 정부가 응답했다. 장애인과 시민사회단체가 5년 동안 주장한 복지제도 철폐 요구에 보건복지부 장관이 “함께 해결해보자”며 손을 내민 것이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미약한 현 장애인 복지제도의 개선 방향 등을 논의하자고 말했다. 한편, 불과 며칠 전 장애인 단체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발표한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반쪽짜리 정책’이라며 자신들을 ‘우롱하지 말라’고 반발한 바 있다. 그런 이들이 5년 동안 이어온 투쟁을 ‘중단’한 계기는 무엇일까. <편집자주>


‘인간답게’살고 싶어 2012년부터 시작된 광화문 지하농성

장애인이 거부하는 복지정책, 부양의무제·장애등급제·시설

5년 만에 장애인 요구에 응답한 정부 “현 제도 미약하다”

공동행동 “모든 합의 마친 것 아냐…존엄한 삶 투쟁 계속”

 

 170여개 단체로 구성된 장애등급제폐지부양의제폐지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은 박 장관의 방문을 환영하면서도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존엄한 삶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농성이 아닌 다른 형태로 더욱 치열하게 계속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무료 이미지 사이트 픽사베이>

 

[주간현대=성혜미 기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달 5일 오전 서울 종로 광화문역 지하도에 설치된 장애인 단체의 천막농성장을 방문했다. 부양의무자 기준, 장애등급제 단계적 폐지, 탈시설 등이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발표됨에 따라 정부가 시민사회단체에 협력해 나갈 것을 당부하기 위함이다. 

 

장관은 “정부가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을 통해 부양의무제 폐지를 향한 단계적 폐지 첫 발을 놓았지만 앞으로 더 가야 할 길이 남아있다”면서 “모든 국민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복지사각지대를 완전히 해소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5년 간의 외침, 닿았다

보건복지부 장관의 방문은 지난 2012년 8월21일부터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를 광화문 지하도 농성장에서 외친지 1831일 만의 성과다. 

 

농성장 앞쪽에 놓여진 18개의 영정 앞에서 박 장관은 “저는 오늘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문재인 정부를 대표하여 이 자리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와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 탈시설화를 주장하며 지난 5년 동안 농성을 이어오신 장애인단체, 빈민단체 등과 말씀을 나누기 위해 찾아왔다”라며 “가까운 거리인데,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정부와 단체가 마주하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사회단체가 ‘반쪽 폐지’라고 비판했던 제1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 발표에 대해서는 “더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음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오는 2차 종합계획이 나올 때는 완전 폐지가 포함됐으면 하는 강한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상임대표는 “오늘 만남이 장애인의 완전한 통합과 참여를 꼭 실현시키는 행동이 되기를 바란다”며 “오늘 장관님의 방문은 우리에게 새로운 변화의 기점이 될 것이라 믿는다”라고 답했다. 

 

박 대표는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위원회’와 ‘장애등급제·장애인수용시설 폐지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며 “그것이 약속이 된다면, 공동행동은 그동안 우리를 지지해 주신 시민 여러분과 연대해주신 여러 단체에 감사의 뜻을 전하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10주년이 되는 9월 5일에 기념행사를 마치고 이곳 광화문 농성장은 철수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공동행동은 광화문 농성장의 철수가 투쟁을 중단하겠다는 뜻은 아니라고 단호히 말했다. 이들은 “정부가 의지를 표명한 지금, 우리는 농성이 아닌 더 다양한 공간과 방식으로 완전폐지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계속적인 투쟁을 예고했다. 

 

만족스럽지 못했던 제1차 계획

앞에서 언급했지만 공동행동은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은 장애인 인권 단체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계획이 구체적이지 않고 폐지가 아닌 완화라는 이유에서다. 

 

공동행동에 따르면 최근 정부 발표를 보면 부양의무자 기준과 관련해서는 노인과 중증장애인에 대해서는 소득하위 70%인 경우에 한해 부양의무자 기준 적용을 제외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공동행동은 “가난한 이들을 나누고 선별하는 인구학적 기준의 꼼수가 아니라 급여별 폐지 계획을 수립할 것을 촉구한다”며 부양의무제 완전폐지를 요구했다. 

 

또 장애등급제와 관련해서는 여전히 박근혜 정부의 시범사업이 진행되고 있고, 현 정부의 국정과제에서도 원론적 수준의 언급만 있을 뿐이라는게 공동행동 측 주장이다. 장애인 수용시설 폐지 역시 마찬가지다. 

 

빈곤사회연대 정성철 상임활동가는 “맞춤형 급여를 도입하고자 하면서 소득기준을 완화하려는 계획이다. 이러한 계획은 9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을 사각지대에 계속 방치하게 만들게 될 것”이라며 “수급자들은 앞으로도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부양의무자의 소득과 재산으로 수급권이 떨어지지 않을까 삭감되지 않을까 고민할 것이고, 부양의무자 역시 자신의 소득과 재산으로 가족의 수급권이 박탈되지 않을지 걱정하며 미래를 저당 잡힌 채 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장애인 인권 단체가 농성을 중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고위직 공무원이 한번 광화문 농성장에 찾아와줬기 때문일까 

 

이에 대해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민관협의체 때문에 (농성을)푼다는 것은 아니다. 아직 장애등급제, 부양의무제 폐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지만 문재인 정부를 대표해서 온 것이고 강한 의지를 갖고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며 “인정한 것을 믿고, 본인들의 책임이라고 선언한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더불어 “농성이라는 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을 알리고 싶었고, 더 나아가 해결을 촉구하기 위해서였다”며 장외농성은 많은 방법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앞으로는 지하농성장을 떠나 새로운 방식으로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보호를 주장하겠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방문한 당일 진행한 면담에서는 3년 뒤 진행할 2차 기초생활보장 종합계획안, 장애등급제, 시설에 대한 얘기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비록 실무적인 얘기가 아닌 선언적인 수준이었다고 한다. 

 

김 사무국장은 “진전된 사항은 장관이 3년 뒤 2차 계획안 때 부양의무자 폐지를 넣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것”이라며 “약속은 아니지만 이를 위해 향후 공동으로 노력하자는 언급이 있었다. 이는 지금 마련된 것보다 보폭을 좀 더 빨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겐 하루, 이틀이 매우 길지만 지금 당장할 수 있지 않다면 최대한 빨리 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행동 자체는 긍정적이란 평가다. 

 

장애등급제와 장애인수용시설의 경우 부양의무제 기준 폐지와 달리 구체적인 얘기를 나누지 않았다. 김 사무국장은 “장애등급제의 경우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한 시범사업이 오는 10월에 종료가 된다. 때문에 그 이후에 이를 평가하고 계획안을 내야하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구체적인 안이 나오기 어렵다”고 말했다. 

 

장애인 수용 시설과 관련해서도 ‘약속’보다는 ‘선언’수준이었다. 그는 “탈시설은 민감한 이슈라는 것에 공감했고, UN장애인권리협약에 있는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통합, 지역사회에서의 공존, 사회복지 등을 목적으로 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당시 면담과 관련해 보건복지부 정순길 사무관은 “실무적인 얘기는 아직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앞으로 개선해야할 부분에 대해 장외투쟁이 아니라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이곳에서 논의하자고 제안했고, 받아들인 정도”라며 “실질적인 정책은 향후 있을 협의체에서 논의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내년도 예산안 64조2416억 원

한편, 복지정책은 항상 ‘예산’과 직결된다.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직접 현 제도가 ‘미약’한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필요한 것들은 논의를 통해 보완하자고 한 만큼 다음해 예산편성에 관심이 쏠린다. 

 

보건복지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64조2,416억 원 편성했다. 이 가운데 사회복지분야인 기초생활보장과 취약계층지원, 공적 연금, 보육·가족·여성·노인 등에는 53조7,000억 원이 투자된다.

 

장애인과 관련해서는 연금 확대와 건강 사업 등에서 예산이 확대된다. 장애인 연금은 내년 4월부터 기초급여액이 20만 원에서 25만 원으로 인상되고, 지원 대상이 3,000명 추가된다. 이에 복지부는 올해 5,600억 원의 예산에서 756억 원을 늘려 6,356억 원을 배정했다.

 

장애인 활동지원과 장애아동 발달재활 서비스 등 가족 지원을 확대하고 건강보건관리 사업 시행도 예산이 배정됐다.

 

장애인활동지원은 6만5,000명 대상자에서 4,000명을 추가 지원하고 활동급여 단가를 9,240원에서 1만760원으로 인상하기 위해 올해 대비 1,255억 원이 오른 6,717억 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장애아동가족지원은 발달재활서비스에는 871억 원의 예산으로 3,000명 늘린 4만8,000명을 지원한다.

 

장애인건강보건관리 사업은 관련 법 시행에 따라 신규로 9억 원 예산이 배정되며, 장애인건강검진사업 10개소 장비비 지원과 지역장애인보건의료센터 3개소 운영 및 간호사와 사회복지사 등 전문 인력 채용에 사용된다.

 

일자리와 관련해서는 복지형 청년 장애인 일자리 1,000개를 확대해 1만개를 운영하며, 예산은 18%가 오른 957억 원이 투입된다.

 

ahna10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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