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트럼프 국빈방문 속 승부수

미군기지·독도새우·위안부…“모든 행동 의미 있었다”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7/11/10 [15:04]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돌발발언으로 유명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국내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북한으로 인한 정세악화가 심화되고 있었고, 한미FTA 등으로 양국이 협상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입이 어떤 발언을 할지 예상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에 머무르는 시간은 2박 3일이지만, 우리나라 체류시간은 그보다 짧은 1박 2일이라는 점에서 미국과의 동맹 깊이 면에서 일본에 밀린 게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이 제기도 있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떠난 후 분석해보면 체류시간은 짧았어도 효율적인 일정 조율로 성공적인 손님맞이를 했다는 평가에 큰 이견이 없다. 문재인 정부가 과하지 않으면서도 짧은 시간을 낭비 없이 활용하는 의전을 보여준 덕이라는 게 중론이다.

 


 

트럼프 국빈방한 순간부터 철저 준비한 계획대로 진행

평택기지 ‘조성비용 92% 한국 측 부담’ 자연스레 설명

독도새우·위안부 할머니 등장 국빈만찬…日 문제 상기

영부인 외교노력…평창 차 함께 마시며 올림픽 알리기

 

▲ 지난 11월7일 한미 정상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갖는 트럼프·문재인 대통령. <사진제공=청와대>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월7일 낮 경기 평택시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K-55)에 내리는 순간부터 국빈 방한에 걸맞은 예우를 받았다.

    

철저 계획 속 진행

 

차관급 인사가 영접하던 과거와 달리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직접 영접했고 예포 21발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다음 행선지인 평택 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에 미리 도착해 예정에 없던 ‘깜짝 환대’를 했을 때부터 두 정상은 1박 2일동안의 ‘찰떡 공조’를 예고했다.

 

이어진 청와대 공식 환영식은 트럼프 대통령이 “뷰티풀 세러모니”라는 표현과 함께 “어디를 가도 볼 수 없는 환영에 감사하다”고 할 만큼 깊은 인상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여사는 트위터에 “문 대통령, 김 여사, 한국인의 멋진 환영에 감사하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태운 전용차는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부터 본관까지 전통의장대의 호위를 받았고 환영식에 두 정상이 입장할 때는 미국 대통령 전용 공식 입장곡인 ‘헤일 투 더 치프’가 연주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환영식에 참석한 청와대 비서진, 정부 부처 인사들과 인사하며 친밀감도 다졌다.

 

특히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에게는 “당신이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책임자인가. 일할 준비가 돼 있느냐”며 ‘기습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우리 측 협상 대표에게 뼈있는 농담을 건넸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FTA 재협상과 관련해 사석에서 한국 측 통상협상 실무자가 더 뛰어난 것 같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곧바로 이어진 단독·확대정상회담을 마친 양 정상은 청와대 녹지원을 걸으며 ‘친교 산책’을 즐겼다. 두 정상이 청와대 경내의 잔디밭을 걷는 장면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골프를 치는 장면과 오버랩됐다.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화기애애한 분위기는 공동 기자회견장에서도 이어졌다. 양 정상의 모두발언이 마무리되고 미국 기자가 “대통령에게 질문하겠다”고 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에게 질문할 건가(Which one?)”라고 되물었고, 그 순간 회견장에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한국이 미국의 무기를 구입하기로 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성 발언이 있었지만 이런 언급은 그동안 계속 있어왔다는 점에서 ‘안보 청구서’가 주는 부담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거스를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가 나온다.

 

공동 기자회견 후 열린 국빈만찬·문화공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수행원들이 사물놀이에 가벼운 어깨춤을 추는 등 ‘리듬을 탔다’고 한 청와대 관계자의 전언은 이런 평가를 뒷받침한다.

 

하루 사이에 두터워진 양국 정상 간의 신뢰는 새로운 역사를 쓸 뻔했다. 기상 악화로 무산되긴 했지만 문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를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에 트럼프 대통령이 화답한 것은 한미 동맹이 강력하다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장면이라 할 만하다. 두 정상이 나란히 DMZ에 섰다면 한미 대통령이 동시에 DMZ를 방문하는 첫 사례가 될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머무는 동안 곳곳에 있던 소소한 ‘디테일’도 방한의 성과를 키우는 데 한몫했다.

 

멜라니아 여사는 공식 환영식 때 어린이 환영단이 선물한 트럼프 대통령 내외의 그림에 유독 기뻐했다. 문 대통령 내외가 선물한 놋수저에는 ‘함께 갑시다’라는 뜻의 ‘We go together’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방한 성과를 논하면서 언제 터질지 모를 돌발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한 청와대 직원들의 노고도 빼놓을 수 없다. 정상회담을 취재하는 풀 기자의 명단은 경호상 이유로 며칠 전에 청와대 측에 넘겨줘야 하는데도 백악관은 당일 오전에야 이를 통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충분히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었지만, 청와대 측은 취재 편의를 위해 신속하게 풀 기자 등록 과정을 마쳤다고 한다.

    

▲ 11월7일 저녁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초청 만찬에 제공된 ‘독도새우 잡채를 올린 송이 돌솥밥 반상’. <사진제공=청와대>

 

극진대접 국빈만찬

 

이처럼 치밀하게 준비해 성공적으로 치러진 트럼프 미국 대통령 국빈방한의 백미는 ‘국빈 만찬’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을 국빈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 내외와 수행원 등 120명을 초청해 만찬에 대해 치밀하게 준비해 내놓은 흔적이 여럿 보였던 것이다.

 

일단 국빈만찬 메뉴로는 트럼프 대통령의 식성을 고려해 가자미구이와 한우갈비 등이 제공됐으며 만찬 뒤 이어진 공연에서도 양국간 우애를 다지는 의미를 담은 곡들이 선곡됐다.

 

아울러 문 대통령 내외는 트럼프 대통령 내외에게 긴밀한 유대감과 굳건한 한미동맹의 뜻을 담은 공예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청와대에 따르면 만찬장 입장곡은 공식 환영식 때와 마찬가지로 미국 대통령 전용 공식 입장곡인 ‘Hail to the Chief’(미국 대통령 찬가)가 연주됐다.

 

이후 참석자들이 자리에 앉자 미국 국가와 애국가가 연주됐고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각각 만찬사와 건배제의를 했다. 양국 정상의 건배 제의에 사용된 만찬주로 중소기업이 제조한 청주 ‘풍정사계(楓井四季) 춘(春)’이 테이블에 올랐다.

 

국빈만찬 메뉴는 ▲옥수수죽을 올린 구황작물 소반 ▲동국장 맑은국을 곁들인 거제도 가자미구이 ▲360년 씨간장으로 만든 소스의 한우갈비구이와 독도새우 잡채를 올린 송이돌솥밥 반상 ▲산딸기 바닐라 소스를 곁들인 트리플 초콜릿 케이크와 감을 올린 수정과 그라니타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거제도 가자미구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요리이자, 지난 6월 방미 당시 백악관 만찬에서 문 대통령을 위한 메뉴이기도 했던 가자미를 활용했다. 특히 문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도의 가자미를 사용해 의미를 더했다.

 

‘한우갈비구이와 독도새우, 잡채를 올린 송이돌솥밥 반상’은 고기를 좋아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호와 한국의 색깔을 조화시킨 요리다. 독도 인근에서 잡히는 ‘독도새우’를 메뉴에 넣은 것도 각별한 의미를 담았다.

 

수정과와 초콜릿이 조화를 이루는 디저트까지 마친 참석자들은 김형석 작곡가가 헌정한 문 대통령 전용곡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를 들으며 만찬장에서 나왔다. ‘특별한 입·퇴장곡’은 각각 양 정상에 대한 예우와 존중의 의미가 있다.

 

만찬이 끝난 뒤 문 대통령 내외와 트럼프 대통령 내외는 영빈관 1층으로 이동해 트럼프 대통령 방한 기념 문화공연을 관람했다.

 

먼저 KBS교향악단이 여자경씨의 지휘에 맞춰 ‘경기병서곡’을 연주했다. 첫 공연을 클래식으로 한 것은 동서양의 정서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됐다.

 

이어 피아노 연주자 정재일씨와 국립창극단의 소리꾼 유태평양씨는 축원과 행복을 기원하는 ‘비나리’를 사물놀이 가락 위에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선보였고, 박효신씨는 자신이 직접 작사·작곡하고 노래한 ‘야생화’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KBS교향악단이 레오나르드 번스타인의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메들리’를 연주했는데 올해는 미국의 대표적인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번스타인의 탄생 100주년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 내외는 트럼프 대통령 부부를 위한 만찬 선물로 한국을 대표하는 공예품인 놋수저와 돌그릇을 선물했다. 돌그릇은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만찬은 국빈방문의 격에 걸맞은 최고의 예우와 격식에 맞춰 한미 양국 정상 부부의 긴밀한 유대감을 강화하는 한편 굳건한 한미동맹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게 준비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행사에 우리 측에서는 3부 요인(국회의장·대법원장·국무총리)을 비롯해 정부 및 군 관계자, 정계·학계·언론계·문화계·체육계 인사, 한미관계에 기여한 인사,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주한 미국인 등 70여명이 참석했다.

 

특히 ‘코리안 특급’ 패션모델 한혜진씨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영화감독 이창동씨와 배우 전도연씨도 만찬에 초대됐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인 이용수 할머니와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미국 유학을 가는 탈북자 출신의 이성주씨도 함께했다.

 

이용수 할머니가 초대된 것을 두고 청와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위안부 문제나 한일 역사 문제와 관련해 균형 있는 시각을 가져달라는 의미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만찬 시작 전 참석자들과 인사하는 과정에서 이 할머니와 포옹하며 인사를 나눴다.

 

이 할머니는 청와대 관계자와의 대화에서 “감사하다”며 “문 대통령이 200살까지 살았으며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에선 존 켈리 백악관비서실장, 허버트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재러드 쿠슈너 특별보좌관, 마크 내퍼 주한미국대사대리 등 50여명이 참석했다.

 

헤드테이블에는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정세균 국회의장과 김명수 대법원장, 이낙연 국무총리, 강경화 외교부 장관, 조윤제 주미대사가 앉았고 미국 측에선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마크 내퍼 주한미국대사대리가 자리했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포옹하는 모습. <사진=청와대 영상 캡처>

 

숨겨진 의도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1박2일 국빈방문을 철저하게 준비하고 실행한 문재인 정부는 하나하나 마다 의미를 담으려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청와대가 외교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한 모습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방한 하루 전날 청와대 국정감사가 이루어져 임종석 비서실장 등 핵심 참모들이 밤 11시 30분까지 국회에 잡혀있었던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행사마다 의미 있게 치러졌다는 평가다.

 

먼저 문재인 대통령이 평택미군 기지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깜짝 영접했다. 국민 방문 환영식은 청와대에서 열리지만, 이같은 파격을 택한 것은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또 이날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은 트럼프에게 한 브리핑에서 “총면적 1467만7000m² 규모로, 한국 정부는 100억 달러에 달하는 캠프 험프리스 조성 비용의 92%를 부담했다”고 밝혀 한국이 주한미군방위비를 이미 상당히 부담하고 있다는 것을 알리는 효과도 거뒀다.

 

청와대는 또 국민 만찬 코스요리 중 하나로 독도 새우를 내놓았다. 독도 새우는 독도 주변에서 주로 잡히는 심해 새우들을 통칭해 부르는 말이다.

 

그저 요리중의 하나로 볼수 있지만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갈등을 고려 한다면, 세계 이목이 집중되는 트럼프 만찬에서 독도새우 요리를 내놓은 것은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독도는 한국 땅’임을 은근히 상기시킨 셈이다.

 

청와대 만찬에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초청해 트럼프 대통령과 가볍게 포옹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용수 할머니는 최근 개봉했던 영화 <아이 캔 스피크>의 실제 주인공이다. 1928년 대구에서 태어난 그는 유모로 일했던 어머니 대신 동생을 돌보며 면사 공장에 다니다 16살 때인 1944년 일본군 위안부로 대만에 끌려갔다. 이 할머니는 2007년 2월 미국 하원 의회 공개 청문회에서 같은 피해자인 고 김군자 할머니와 함께 일본의 만행을 증언했고, 이에 미 하원은 5개월 뒤 일본정부에 위안부 문제의 책임을 인정하고 공식 사죄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할머니가 소개되자 다가가 포옹했다.

 

이는 결국 일본이 2015년 한일 양국의 위안부 합의가 됐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은 수용할수 없다는 메시지를 세계를 상대로 알린 것이라고 볼수 있다.

 

일본은 독도새우와 이용수 할머니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일본 관방작관이 직접 나서 독도새우가 포함된 메뉴가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이 든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또 이용수 할머니가 초청된 것에 대해서도 ”외교 루트를 통해 일본의 입장을 제시할 것이다“고 밝히는등 민감한 반응 보였다. 일본 정부의 불만에 관해 청와대 관계자는 “거기에 관해선 우리 입장은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 뿐 만아니라 김정숙 여사의 행보도 의미가 있었다. 김 여사는 멜라니아와 함께 평창동계올림픽을 알리고자 특별히 제작된 ‘평창의 고요한 아침’ 차를 마시면서 모란도, 평창올림픽 등을 주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등 간접적으로 평창동계올림픽을 홍보했다.

 

‘평창의 고요한 아침’ 차는 외국 정상에게 접대하고자 제작된 차로 평창 발왕산에서 자란 수국과 동서양의 허브를 블렌딩한 홍차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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