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新 남방정책’ 숨은 의미

‘스트롱맨 경쟁’서 탈피…진정한 다자외교 시작

김범준 기자 | 기사입력 2017/11/17 [15:20]

취임 후 혼란스런 나라 상황을 진정시키는 등 내치에 집중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본격적인 국제외교 무대에 나서며 외교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대북문제, 중국사드, 미국FTA재협상 등 수많은 난제가 쌓인 현 상황을 돌파하는 방안에 현 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이번 11월 동남아 순방은 긍정적 의미가 크다고 호평한다. 그간 거리상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등한시 했던 동남아 외교에 집중하면서 그간 ‘한·중·일·러’에만 집중됐던 우리나라 외교 카드에 다각화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현재 급성장 중인 동남아시아와의 경제 연대는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미래 먹거리’와 절대적으로 연결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천명한 ‘신 남방정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와더불어 이번 아세안 순방의 또다른 의미는 중국과의 관계개선에 첫 발을 내딛었다는 점도 있다.

 


 

첫 동남아 순방 다녀온 문재인…‘新 남방정책’ 발표

한반도 경제지도에 동남아 포함…‘북방정책’과 연결

‘미중일러’ 중심 외교서 탈피…북핵 대비 연계 강화

중국과 관계 개선 시발점…사드 ‘미래 지향적’ 해결

 

▲ 인도네시아 도착한 문재인 대통령 내외. <사진제공=청와대>

 

[주간현대=김범준 기자] 지난 11월8일부터 7박8일간 인도네시아·베트남·필리핀으로 무대를 옮기며 숨가쁜 외교행보를 이어간 문재인 대통령의 첫 동남아 순방은 이른바 ‘신(新) 남방정책’을 성공적으로 데뷔시키는 성과를 낳았다.

 

4강(强) 중심의 외교 틀을 다변화해 세계 경제회복의 엔진이자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아세안을 상대로 ‘전면적 협력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각국 정상으로부터 커다란 공감과 지지를 얻어냈다는 평가다.

이는 극동지역과 유라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신 북방정책과 동남아, 인도를 대상으로 하는 신 남방정책을 ‘J커브’ 모양으로 연결됨으로써 한반도 경제지도에 새로운 ‘번영축’을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원대한 구상이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번 순방은 또 문 대통령이 새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열린 아·태경제협력체(APEC)과 아세안(ASEAN) 등 역내 다자외교 무대를 활용해 한반도 안보와 직결된 ‘북핵 외교’와 국내 기업의 활로 개척을 돕는 ‘세일즈 외교’를 효과적으로 펼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문 대통령의 ‘사람 중심 지속성장’ 전략은 아세안이 추구하는 ‘사람지향, 사람중심’의 공동체 비전과 APEC이 지향하는 역내 포용성 증진 기조와의 화음을 이뤄내면서 미래 협력을 꾀할 수 있는 '가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新 남방정책

 

문 대통령은 7박8일간 인도네시아, 베트남, 필리핀 등을 순방하며 각종 정상회담과 아세안 경제협력 정상회의 등에 참여했다.

 

문 대통령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서 임기 내 아세안 관계를 한반도 주변 4대국(미국·중국·러시아·일본)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아세안 10개 회원국(태국·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싱가포르·브루나이·베트남·라오스·미얀마·캄보디아)을 방문하며 아세안 우호를 다지고 협력 폭을 넓히겠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5월 취임하자마자 역대 정권 처음으로 아세안 특사를 파견하며 정권 초부터 아세안 국가들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조해왔다. 당시 아세안 특사로 임명된 박원순 서울시장은 아세안 주요 회원국을 예방하며 새 정부 아세안 비전을 전했다.

 

실제로 이번 순방에서도 문 대통령은 첫 순방국이자 아세안의 ‘맹주’ 격인 인도네시아를 무대로 신 남방정책의 포문을 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월9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포럼에서 이른바 ‘3P’로 대변되는 신남방정책이 추구하는 비전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사람 중심’이라는 공통가치를 기반으로 한국과 아세안이 ‘미래 공동체’, 즉 ‘사람(People) 공동체’ ‘평화(Peace) 공동체’ ‘상생번영(Prosperity) 공동체’를 함께 만들어나간다는 비전을 내놓고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전면적 협력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신 남방정책의 보다 구체적인 밑그림이 드러난 것은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가 열린 마지막 순방국 필리핀에서였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월13일 아세안 기업투자서밋을 계기로 신 남방정책의 비전과 실행 로드맵을 담은 '한·아세안 미래공동체' 구상을 직접 소개하며 ‘화룡점정’을 찍었다.

 

‘더불어 잘 사는 사람중심의 평화공동체’를 구현한다는 청사진을 내걸고 아세안 회원국들로부터 전폭적 지지와 동의를 끌어낸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심적인 개념은 ‘사람 공동체’다. 그동안 한국과 아세안 협력이 ‘정부 중심’에 치중했었다는 자성에서 출발해 다양한 문화·인적교류를 추진해나간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임기 내에 아세안 회원국 10개국을 모두 방문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위기에 공동 대처하는 ‘평화공동체’를 만드는 것도 미래공동체 구상의 또 다른 콘셉트였다. 양자·다자차원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테러·폭력적 극단주의, 사이버 폭력 등 비전통적 안보위협에 대처해나간다는 게 문 대통령의 구상이다.

 

아세안 미래공동체 구상과 관련해 주목하는 또 다른 키워드는 ‘상생협력 공동체’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교통 ▲에너지 ▲수자원 관리 ▲스마트 정보통신을 4대 중점협력 분야로 정하고, 우리 정부의 ‘글로벌 인프라 펀드’에 1억 달러를 추가로 조성하는 등 재정적 뒷받침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이 같은 ‘미래공동체’ 비전을 토대로 한국은 아세안의 최대국가인 인도네시아와의 협력관계를 크게 격상시켰다.

 

문 대통령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지난 2006년 맺었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전략적 협력 ▲실질협력 ▲인적교류 ▲지역·글로벌 협력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의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업그레이드하는데 합의한 것이다.

 

특히 양국은 전략적 파트너십의 상징인 방산 협력을 잠수함 분야 등으로 확대하고 교역과 투자, 교통, 인프라, 해양, 환경 등 다방면에 걸쳐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의 제1위 해외투자 대상국이자 아세안 전체 국내총생산(GDP)·인구·면적의 40%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와의 이 같은 관계격상은 앞으로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신 남방정책을 펴는데 있어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양국의 미래지향적 협력관계는 ‘한·아세안 공동번영과 평화를 위한 공동비전 성명’으로 더욱 가시화됐다. 한국이 동남아 국가와 공동비전 성명을 채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1월8일 자카르타에서 동포간담회를 가진 모습. <사진제공=청와대>

 

아세안 연대강화

 

이처럼 신 남방정책을 천명한 문 대통령은 동남아 순방 마지막날인 지난 11월14일 필리핀에서 동포 간담회를 갖고 “자랑스러운 동포 여러분께 이번 순방의 성과를 보고 드리고 싶다”면서 “이번 순방을 통해 대한민국 외교 공간이 더 넓고 크게 확장되었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대한민국 외교가 미·일·중·러 4대국 중심이었던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이번 순방으로 아세안과의 교류·협력을 4대국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더 긴밀히 협력해 가기로 했다”면서 “북쪽으로는 러시아와 유럽, 남쪽으로는 아세안와 인도까지 우리의 경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 다자 안보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을 다졌다. 우리 정부의 사람중심 경제정책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도 실천적 대안이 되고 있다는 말씀도 드린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나라 외교는 ‘4강’으로 불리는 미국·일본·중국·러시아 관계에 큰 비중을 할애했다. 이같은 전략이 냉전 시대를 지나는데 유효하긴 했지만 점점 고조되는 한반도 정세의 해법을 모색할 때 검토할 선택지 또한 좁아진다는 맹점이 존재했다.

 

문 대통령이 아세안 협력을 4대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배경에는 경제 성장이란 실리적 이유도 있지만 현재 한반도 상황을 헤쳐나가는데 아세안과의 든든한 유대가 절실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성장 잠재력이 큰 아세안 협력을 강화해 우리나라 외교통상의 보폭을 넓히면서 4대국 의존도를 분산시키겠다는 포석으로도 풀이된다.

 

북한의 잇따른 핵미사일 도발뿐 아니라 중국과의 사드 갈등, 일본과의 역사 문제 등으로 한반도 주변 4대국 관계 설정이 복잡해지자 새 정부 외교 외연을 넓혀야한다는 목소리가 아세안으로 눈을 돌리게 한 것으로 관측된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월14일 필리핀 마닐라의 한국 기자단 기자실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동남아 순방 성과 관련 “우선 아세안과의 관계를 대폭 강화하기 위한 신 남방정책을 천명했고, 그에 대한 아세안 각국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고 생각한다”면서 “아세안과 인프라, 금융, 서비스, 방산, 중소기업, 스마트시티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야들에 대해서 협력을 확대하기로 했다. 2020년까지 교역액을 2000억 불로 늘리기로 합의하는 실리도 얻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은 아세안 관련 정상회의에서 베트남, 필리핀, 싱가포르, 러시아, 중국 등 참가국 정상들과 연달아 회담을 가지면서 양국 관계를 다지는 시간도 가졌다.

 

문 대통령은 아세안 현장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 사회의 지지와 평화적 해결책의 중요성을 확인하는 시간도 가질 수 있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월14일 현지 기자간담회에서 “모든 나라들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그리고 그 평화적 해결을 위한 제재와 압박의 강도를 더 높게 한다는 점에 대해서 완벽하게 의견들이 일치했다”면서 “중국과 러시아도 북핵 문제 불용이란 우리의 입장에 대해서 완전하게 지지를 해주었고, 유엔 안보리 제재 결의에 대한 철저한 이행을 약속했다. 앞으로 북핵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아세안 순방 성과를 언급했다.

    

세일즈도 확실히

 

또한 신 남방정책 만큼이나 중요한 이번 동남아 순방의 숨은 키워드는 문 대통령의 ‘세일즈 외교’였다. 해외에 진출한 대기업의 민원사항을 소관 부처에 맡기지 않고 대통령이 직접 상대국 정상에게 전달하고 관심을 환기시키는 ‘정공법’을 구사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1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와 회동한 자리에서 국내 기업이 생산하는 전기차 배터리 보조금 문제를 거론하면서 '사드 경제보복' 조치를 철회해줄 것을 요청했다.

 

지난 11월14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라는 특정 대기업을 직접 거명하고 시베리아 횡단철도(TSR)를 이용할 수 있도록 통관 절차를 간소화해달라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11월9일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포럼 기조연설에서 “자동차 분야에서 특별히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고 강조하며 국내 자동차기업의 현지 시장진출에 크게 힘을 실었다. 문 대통령을 수행한 백운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언론 브리핑에서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를 생산거점으로 아세안에 300만대 정도의 시장에 진출하고자 하는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1월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한중관계 정상화의 신호탄을 올렸다. <사진제공=청와대>   

 

대중관계 개선

 

특히 이번 순방에서 문 대통령은 지난 11월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을, 지난 11월13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리커창 중국 총리와 회담을 갖고 한중 관계 정상화를 논의하는 성과도 거뒀다. 문 대통령은 다음달 중국 베이징을 방문해 시 주석과 취임 세번째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실제로 이번 순방기간동안 문 대통령이 중국과의 관계 복원을 위해 쏟았던 노력들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곧 가시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을 남겼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 리커창 총리와 회담을 갖는 등 중국 지도부와 연쇄 만남을 통해 한·중 관계복원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두 정상이 문 대통령의 연내 중국 방문을 합의하고, 내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 기간 시 주석이 방한을 검토한다는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양국이 모든 분야에서의 교류 협력을 정상 궤도로 조속히 회복하고, 각급 차원에서의 전략대화를 해나가기로 했다.

 

9월 중순부터 계속됐던 한·중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양측 실무진들의 물밑접촉 노력까지 더한다면 2개월 이상 공을 기울인 끝에 두 정상이 어렵사리 마주할 수 있었다.

 

관계를 중시하는 중국 특유의 문화적 특수성을 감안할 때 한반도 사드 배치를 계기로 차갑게 굳어버린 중국과의 관계를 한 번에 사드 배치 이전으로 돌릴 수 없다는 게 청와대의 인식이다.

 

때문에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문 대통령이 시 주석, 리 총리와의 연쇄 회담을 통해 적어도 한·중 간에 새로운 관계 형성을 논의할 여건을 마련한 것 자체만으로도 이번 순방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했다고 청와대는 보고 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문 대통령의 이번 순방기간 중 호전돼 가는 중국과의 관계를 확실하게 확인하고 미래지향적으로 열어갈 수 있는 한·중 정상회담이 열렸다”면서 “큰 틀에서 미래지향적 관계로 가기 위한 정상 간의 합의가 있었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시 주석이 정상회담의 공식 의제에 오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됐던 사드 문제를 직접 언급하는 등 실제 회담은 그리 녹록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이 회담에서 중국 입장을 되풀이하며, 한국이 책임 있는 태도를 취하고 결정을 내리도록 촉구하기도 했다.

 

이에 청와대는 지난 10월31일 우리 정부가 밝힌 ‘3불(不)정책(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 편입, 사드 추가 배치 검토, 한·미·일 군사 동맹 등 불가)’을 계기로 한·중이 사드 문제를 봉인하기로 한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시 주석은 ‘현재 입장에서 양국 간의 미래지향적 관계 발전이 중요하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사드 문제를 봉인하는 과정에 마지막으로 관련 내용을 다시 상기하는 측면이었다는 것이다.

한·중 관계에 있어 완전한 복원에 유보적 입장을 보이고 있는 시 주석을 설득하고 온전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는 것은 여전한 과제라는 평가도 적지 않다. 문 대통령의 12월 방중이 한·중간 진정한 관계 회복을 위한 가늠자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아무래도 이번 순방기간에는 한·중 정상회담이 실질적으로 열리는 것이 굉장히 중요했던 측면이 있다”면서 “결과적으로 문 대통령의 방중이 합의가 이뤄진 만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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