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회사를 사랑하는 바보들

두 달째 접어든 YTN ‘공정 방송’ 파업…동료들과 함께라면 공정 언론 기대 접을 수 없다

장아영 YTN 정치부 기자 | 기사입력 2018/04/05 [11:33]

[기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회사를 사랑하는 바보들

두 달째 접어든 YTN ‘공정 방송’ 파업…동료들과 함께라면 공정 언론 기대 접을 수 없다

장아영 YTN 정치부 기자 | 입력 : 2018/04/05 [11:33]

▲ ▲장아영 YTN 정치부 기자   ©장아영 YTN 정치부 기자

 

“회사는 나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회사는 사랑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신문 기자 출신이 쓴 책 ‘퇴사하겠습니다’(이나가키 에미코 지음)에는 이런 문구가 나온다. 

 

어느덧 입사 12년차. 충격적인 해직 사태와 길었던 복직 투쟁, 회사의 고소·고발, 사내 징계와 기수 성명, 파업으로 점철된 지난 시간 동안 “여기 아닌 다른 곳에서 신나게 일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회사에 대한 불평과 불만을 회사 밖 사람들에게 늘어놓을 때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느니, 철이 없다느니, 회사는 너의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는 등의 충고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떠날 수 없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입 다물고 살 수도 없었다. 희망을 버릴 수 없었다. 동료들을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복직 기자들을 포함해 ‘나를 사랑하지 않는 회사를 사랑하는’ 동료들이 이곳 YTN에는 너무나 많다. 그래서 이 동료들과 함께라면 좋은 보도를 하는 좋은 언론사를 만들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접을 수가 없었다.

 

파업 두 달째에 접어들었지만 아침 집회 분위기는 활기차다. 모두가 서로에게 기운을 주기 위해 경쟁하듯 밝은 모습이다. 하지만 속으로 삼키는 조바심과 상실감은 작지 않다.  

 

집회가 주로 열리는 회사 1층 로비의 대형 전광판에는 YTN 실시간 방송이 흘러나온다. 우리는 바닥에 앉은 채로 ‘최남수 아웃’ 구호를 외치면서 평창 동계올림픽과 북측 대표단 방남, 이명박 전 대통령 소환 조사 등 굵직한 뉴스를 흘려보냈다. 애가 탄다. ‘방송쟁이’로서는 오래 기다린, 다시 없을 취재·보도 기회를 날린 것이다. 

 

보도는 못해도 현장은 지키겠노라며 달려간 동료들도 있다. 그러는 동안 외부 패널 출연으로 땜질한 보도는 엉망이 됐다. 사측은 이런 우리의 조바심을 겨냥해 남북·북미 정상회담과 6월 지방선거 준비는 안 할 거냐고 다그친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조준희 전 사장이 사퇴한 지난해 5월 이후, 얼른 새로운 보도국에서 일하고 싶어 조바심을 냈던 결과가 어땠는지를. 검증 없이 내정된 최남수씨는 사장 타이틀을 달자마자 얼굴을 바꾸고 우리가 눈물로 합의한 사안들을 패대기쳤다. 겉으로는 대화하자고 하면서 뒤에서는 소송 준비를 하고 거짓 선전물을 뿌리고 있다. 

 

자신은 적법 절차를 거쳐 뽑힌 사장이라며 낙하산 사장들의 오랜 변명을 되풀이하고 있다. 최 사장이 입성한 뒤 사내에는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내세운 제2노조가 생겼고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 ‘대화 채널은 두 곳’이라며 우리를 압박한다. 최남수 체제는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이러려고 지난 10년 동안 싸우고 버틴 게 아니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한 인사는 파업을 해도 시청률이나 보도의 질에 차이가 없다고, 대놓고 말했다고 한다. 생각할 여유 없이 내보내는 시뻘건 속보, 누락된 기사가 없는지에만 혈안이 된 보신주의, 어젠다 세팅이 될 만한 큰 특종보다 그림 되는 사건·사고에 치중하는 보도 행태…. 그런 관점에서 보면 파업 전후가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른다.  

 

그동안 YTN은 기자의 개인기와 제보에만 의존해왔고, 그나마도 몸 사리는 간부들 탓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바로 그 점을 바꾸지 않고는 더 이상 기자 개인도, 회사도 살 수 없기에 우리는 지금 파업하고 있는 것이다.

 

최남수 체제의 인사들은 자신이 적폐로 불리는 것이 억울하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고, 노조가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리의 파업을 ‘사내 정치’로 선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 말하겠다. 당신이 살아온 과거는 더 묻지 않겠다. 당신은 바로 지금, 당신이 적폐라고 인정한 사람들과 똑같은 일들을 저지르고 있다.  

 

자신의 명예가 너무나 소중해서 소송을 남발하고 이대로는 회사를 나갈 수도 없다는 당신들과 달리, ‘나를 사랑하지 않는 회사를 사랑하는’ 바보들은 “내가 떠나는 것으로 YTN이 바로서고 후배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다면 기꺼이 떠나겠다”고 말한다. 특종 압박보다 어떤 기사가 나갈 수 없는지를 먼저 배운 후배들은 “이제 기레기는 싫다”고 선언하고 있다. 지난 10년 짝사랑을 끝내게 해달라. 우리는 이제 제대로 일하고 싶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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