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주노] 임신한 16살 괴짜 소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못생긴 것 치고는 귀여운 영화…엘렌 페이지, 사랑스러운 괴짜

문병곤 기자 | 기사입력 2018/04/28 [13:11]

[영화 주노] 임신한 16살 괴짜 소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못생긴 것 치고는 귀여운 영화…엘렌 페이지, 사랑스러운 괴짜

문병곤 기자 | 입력 : 2018/04/28 [13:11]

▲ 2007년 개봉한 영화 <주노>는 16살 소녀가 임신하고 그 아기를 입양시킨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주노>공식 포스터

 

16살 주노는 임신을 했다. 3번이나 돌린 임신테스트기는 여전히 ‘사악한 핑크 플러스’다. 어딘가 찝찝해서 자살도 포기했고, 원인(?)으로 추정되는 그냥 친구 ‘블리커’에게 가서 어찌할지 물어보기도 했다. “아예 싹을 잘라버릴까 생각 중이야”라는 말에 찌질한 그 녀석의 대답은 “임신은 엄마나 선생님이나 하는 거야. 해야 될 일이라면 해”란다. 이에 대한 주노의 대답은 “너랑 섹스해서 미안해”였다.

 

▲ <주노>에서 엘렌 페이지의 매력은 말 그대로 '반짝반짝'하다     © 영화 <주노> 캡처

 

2007년 개봉한 <주노>는 배우 엘렌 페이지를 세상에 알린 영화다. 이 작품 이후 엘렌 페이지는 많은 영화를 통해 헐리우드에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지만, <주노>만큼 그녀의 개성을 보여준 영화는 아직 없는 것 같다.

 

▲ 2005년 개봉한 영화 <제니,주노>와는 엄연히 다른 영화다.     © 영화 <제니,주노>포스터


‘어린 학생이 임신을 한다’는 내용의 영화가 없던 것은 아니다. 국내만 해도 임신한 고등학생 커플을 다룬 <제니,주노>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들 대부분의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지만, <주노>는 다소 무거운 소재를 단순한 코미디로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다소 괴짜 같지만 귀여운 음악, 엘렌 페이지의 개성 넘치고 사랑스러운 연기는 영화를 반짝반짝 빛낸다.

 

▲ 주노(혹은 헤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최고 신인 제우스의 부인이다.     © <제우스와 헤라> 루벤스 작품

 

제목이자, 주인공의 이름인 ‘주노’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최고의 남자 신 ‘제우스’의 아내에서 따왔다. 신화 속에서 제우스는 수많은 여자들을 건드렸지만, ‘부인’은 단 한 명. ‘주노’뿐이다. 최고의 신이라지만 얼마나 철없는 남자인가. 실제로 이 영화 속에서 주노의 아버지를 제외한 남자들은 어딘가 철없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반면에 ‘가정과 여성의 수호자’이자 ‘그리스 신들의 여왕’와 같은 이름을 가진 주노는 16살 같지 않은 비범함을 보여준다. 

 

▲ '아기에게도 손톱이 있다'는 한 마디는 주노가 낙태를 포기하게 된 결정적 이유이다.     © 영화 <주노> 캡처

 

심장이 아닌 ‘손톱’

다시 영화의 내용을 얘기해 보자. 가족들에게 말도 못 꺼낸 주노는 결국 낙태를 위해 혼자 여성상담소로 향한다. 그리고 그 앞에서 낙태 반대시위를 하는 학교 친구를 만난다. 한창 학교얘기를 꽃피우던 주노는 친구를 뒤로하고 다시 여성상담소로 향한다. 이때 주노에게 친구는 이렇게 외친다. “너의 아기도 심장이 뛸 거야, 고통을 느낀다고!” 주노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때 한 단어가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던 주노의 발을 잡았다. “심장, 고통” 따위가 아니었다. “아기에게 손톱도 있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발을 멈춘 것도 잠시, 주노는 결국 여성상담소로 들어간다. 자리에 앉아 설문지를 작성하기 시작하던 주노의 귀에 신경을 건드리는 어떤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손톱으로 무언가를 두드리는 소리, 손톱으로 무언가를 긁는 소리, 손톱을 가는 소리. 모두 손톱에서 나는 소리들이다. 주노는 이내 이 소리들을 참지 못하고 여성상담소를 박차고 나간다. 결국 주노에게 ‘손톱’이란 단어는 큰 의미였던 것이다.

 

이쯤 되면, ‘왜 하필이면 손톱이었을까?’ ‘주노에게 ‘손톱’은 왜 ‘심장’보다 ‘생명’에 가까운 단어였을까?‘ 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손톱‘을 단순히 주노의 괴짜같은 가치관을 드러내는 소재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좀 더 깊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 '아무 것도 모르는' 혹은 '알고싶지도 않아 하던' 주노의 태도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바뀐다. 주노는 아버지에게 "두사람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 영화 <주노> 캡처

 

‘모른다’는 것

물론 주노가 임신사실을 알고 여성상담소로 향했을 시기인 2주차의 태아엔 손톱이 없다. 태아의 손톱은 17주에나 돼야지 생기는 것이니까. 하지만 친구의 말에 대해 주노는 일언반구의 의심이 없이 그냥 믿는다. ‘무지(無知)’에 의한 믿음일지라도. ‘손톱’에 대한 주노의 믿음은 순수하고 힘이 있다. 

 

주노의 많은 행동은 모두 ‘무지’에서 비롯된다. 주노는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임신 과정’ 혹은 ‘생명의 소중함’과 같은 것들 따위는 아무것도 모른다. 락음악 덕후인 그녀는 ‘어떤 밴드의 1집이 최고’인 것은 알지만, 겨우 16살 소녀일 뿐이다. 그녀의 첫 성관계가 ‘사랑’이 아닌 그저 ‘궁금하다’는 이유에서 이뤄졌던 것처럼. 그리고 자신이 ‘성적 활성’인줄 몰랐던 것처럼. 그녀는 모르는 게 너무 많다. 그리고 별로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이 같은 주노의 무지에서 오는 당돌함이 인물의 매력을 터뜨린다. 그녀는 알아서 뭔가 행동을 망설이는 인물이라기보다, 몰라서 행동을 저지르는 인물이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는 점점 그 무지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 영화가 하나의 성장영화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 과정에 있다.

 

알아간다는 것이 마냥 유쾌한 일만은 아니다. 주노에게도 그랬다. 임신의 과정은 영 불편했고, 아기를 입양시킬 부부의 집에 불쑥불쑥 찾아가는 일이. 그리고 그 남편과 친구처럼 지내는 일이 얼마나 위험할 수도 있는 일인지 주노는 알게 된다. 

 

그래도 주노는 자신이 궁금했던 것들에 대한 답을 찾아 나간다. ‘인류에 대한 믿음을 잃어간다’는 주노는 아버지에게 찾아가 질문한다. “저는 궁금해요. 두사람이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는지요” 여기에 대한 아버지의 대답은 이렇다. “얘야. 내 생각에 최선의 방법은 네 자신 그대로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찾는 거야. 진짜 네 짝이라면 니 엉덩이에서 빛이 난다고 생각할 걸. 그런 사람이 곁에 있을 가치가 있는 거지”

 

▲ 이 영화가 ‘엄마’라는 단어에 대해 소박하게 건내는 이미지는 ‘딸의 손톱을 다듬어주는 엄마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 영화 <주노> 캡처

 

사랑이라는 ‘사실’

그렇다. 이 영화에서 주노가 가장 몰랐던 것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다. 무슨 디즈니 공주 애니메이션처럼 오글거리고 뻔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야속(?)하게도 주노는 사랑을 깨닫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다시 앞선 얘기로 돌아가 보자. ‘왜 손톱이었을까’라는 질문이다. 이에 대해 개인적으로는 주노에게 사랑이란 이미지는 ‘손톱’에 있었다고 답을 하고 싶다.

 

먼저 주노의 새엄마가 ‘손톱’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눈여겨 볼만 하다. 주노의 새엄마 브랜은 주노에게 있어서 훨씬 엄마의 이미지에 가깝다. 영화의 초반 만해도 주노에게 새엄마는 그냥 개를 엄청 좋아해서, 사진을 스크랩하거나 개 모양의 십자수를 하는 아줌마, 혹은 이상한 항아리나 모으는 아줌마였다. 

 

하지만, 주노의 아기를 보고 행복함에 눈물짓는 모습을 보이거나, 주노를 무시하는 간호사에게 대신 화내는 모습. 그리고 좋아하는 강아지를 키우지 못하는 것도 사실은 개 알러지가 있는 주노를 위함이었다는 사실들이 영화에 나오면서, 그녀가 좋은 엄마임을 알게 해준다.  

 

좋은 엄마는 손톱관리사다. 이 영화가 ‘엄마’라는 단어에 대해 소박하게 건내는 이미지는 ‘딸의 손톱을 다듬어주는 엄마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이들의 듀엣 기타곡은 정말이지 사랑스럽다.     © 영화 <주노> 캡처

 

주노가 손톱을 사랑의 의미로 생각하는 이유는 또 있다. 주노가 기타를 좋아하는 소녀라는 사실이다. 주노는 밴드활동에서 블리커를 만났다. 그녀는 어서 빨리 애를 낳고 밴드 생활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주노에게 아기는 그저 밴드생활을 방해하는데 걸리적거리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주노의 아기를 입양하기로 결정한 부부의 집을 돌아볼 때 주노의 이목을 잡아끄는 것은 역시나 ‘기타’다. 이 장면에서 주노는 손톱으로 기타를 치고 있다.

 

결국 주노에게 손톱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하기 위한 도구다. 쉽게 말해 주노에게 ‘손톱도 있대’라는 의미는 ‘아기도 기타를 칠 ’수‘도 있대’라는 말도 안 되는 의미. 혹은 ‘아기도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존재래’라는 의미인 것이다. 주노에게 ‘하고 싶은 걸 하는 것’이란 ‘살아있는 것’보다 먼저 다가오는 의미다. 

 

주노에게 기타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란 의미 외에 다른 의미도 있다. <주노>의 마지막 장면은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 없다. 기타를 등에 매고 자전거를 달리던 주노는 블리커의 집 앞에 다다른다. 그리고 블리커는 기타를 들고 주노를 기다리고 있다. 이어 주노가 기타를 메고 앉자, 둘은 같이 기타 합주를 시작한다. “너는 가끔씩 연인이고 언제나 친구야…우리는 못생긴 사람치고는 귀여워”라는 그들의 노래 가사처럼 소담하고 귀여운 마무리다. 주노가 결국 기타를 치는 이유는 ‘사랑하는’ 블리커 때문이었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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