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걸어가야 할 소통의 길, 언로

“언로, 신하들이 임금에게 말을 올릴 수 있는 길”

정아임 기자 | 기사입력 2018/05/18 [11:23]

언론의 나라라고 불리는 조선은 일반 백성들의 상언과 격쟁을 비롯해 왕과 신하가 함께 다스리는 정치 모습을 보였다. 이는 조선이 활발한 언론 활동을 이룬 국가임을 증명한다. 한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왕은 판단을 내리기 전 가장 좋은 답을 찾기 위해 한 가지 대책을 마련했다. 소통의 길, 언로다. 언로란 신하들이 임금에게 말을 올릴 수 있는 길을 의미한다. 이를 통해 조선은 왕과 신하가 함께 다스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편집자주>


대간은 말하는 것을 직무로 삼아 조선시대 언론 관리

국가를 개인에게 독점되지 않는 올바른 방향으로 추구

 

▲ 대간은 말하는 것을 직무로 삼는 사람들로 조선시대 언론을 관리했다. <사진제공 = 역사채널 e 화면 갈무리>     

 

언로의 중심, 대간

언로의 중심에는 대간이 존재한다. 대간은 말하는 것을 직무로 삼는 사람들로 조선시대 언론을 관리했다. 이들은 하루 종일 왕 옆에 머물러 국왕을 견제하곤 했다. 도끼로 죽을지언정 말을 물리지 않겠다는 결의를 담아 왕과 다른 의견도 거침없이 내놓아야만 했던 무거운 자리였다.

 

비록 대간의 지위는 낮았으나 역할은 재상과 동등했다. 이들은 군주와 백관의 과실을 탄핵하며 관리의 인사에 서경권을 행사하는 일을 담당했다. 대간은 궁궐에서 왕과 더불어 시비를 다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와 같은 위치가 되려면 엄격한 검증이 필요했다. 문학적, 정치적 식견, 20-30대의 젊은 연령, 명문가 자제 출신이 요구됐다. 특히 앞의 두 개 부분이 통과될지라도 가족에게 결격 사유가 있으면 임용 불가했다. 가족의 약점이 드러날 경우 비판이 주된 업무인 대간이 떳떳하지 못해 입을 다물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간은 말의 무게를 짊어져야만 했다.

 

국왕은 자유로운 발언을 위해 대간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처벌하지 않고 그 출처를 묻지 않았다. 왕은 활발한 언론 활동을 추구했다. 이를 잘 보여주는 대간들의 특별한 제도는 풍문제도. 풍문제도란 다른 사람을 풍문만으로 탄핵하는 것이다. , 증거 없거나 사실이 아닌 소문만으로도 지위를 박탈시킬 수 있는 권한이다. 이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고위 관료 탄핵에 풍문의 출처를 묻는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진 제도다. 보복이 두려워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언론을 대비해 만든 것이다. 대간들은 이를 실시할 때 자신들의 직분을 걸어야 했다. 만일 소문이 사실이 아닐 경우 모든 책임을 떠안고 자리를 떠나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대간들은 제멋대로 악용할 수 없는 환경 가운데 여러 차례 여론을 모아 탄핵 대상을 결성했다. 이는 책임과 사명의식이 없이는 걸을 수 없는 길이다.

 

언로의 문

<선조실록-195479>을 보면 언로를 활짝 열어 미천한 것이라 해서 그것을 가벼이 여기지 말고, 진부하다 하여 소홀히 하지 말고 비위에 저촉된다 하여 죄주지 말아야 합니다. 사방을 보는 눈이 밝게 하고 사방을 듣는 귀가 트이게 하여 국가의 맥이 서는 터전을 마련하소서라는 말이 있다. 언론의 순기능을 명시하고 있다.

 

이를 잘 보여준 것이 성종시절의 한명회 탄핵 사건이다. 한명회는 당시 비선실세와도 같았다. 그는 세조를 왕으로 만들었던 정계의 실력자였으며 예조와 성종의 장인이었다. 또한 네 번의 공신 책봉으로 막대한 토지와 노비를 소유한 임금에 버금가는 인물이었다. 국법 위에 존재했던 그가 명나라 사신을 압구정에 초대해 잔치를 벌이고자 했다. 당시 그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소문난 압구정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한명회는 잔치에 왕이 사용하던 천막 용봉차일을 요구했다. 이에 대간은 무례하다는 판단과 함께 불충으로 간주했다. 대간은 탄핵을 시도했고 성종 역시 동의해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렸다.

 

임금에게는 사방을 보는 눈과 들을 수 있는 귀가 필요하다. 이에 대간이 눈이 되어 국가의 미래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할 것이며 귀가 되어 백성들의 한숨을 들어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생각하고 목소리를 높여야만 한다. 그래야만 부정부패를 일삼는 권신의 출현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고 나아가 나라를 개인에게 독점되지 않는 올바른 방향으로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대간이 과실을 바로 잡는 일 때문에 죄를 받는다면 언로는 막힌다. 소통이 없는 국가의 군주는 고립된다. 1515, 조광조는 중종에게 언로를 넓혀야 한다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언로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지극히 중요한 문제다. 언로가 열리면 나라가 다스려져 평안하다. 하지만 언로가 막히면 정치가 어지러워져 끝내 나라는 망해 버린다. 따라서 현명한 왕은 언로를 최대한 넓히려고 애쓴다. 재상부터 시정잡배에 이르기까지 자기 생각을 있는 대로 다 말하게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막상 제 뜻을 제대로 아뢸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간관(諫官)을 두어 언로를 맡기는 것이 현실이다. 간혹 간관의 말이 도에 지나칠 수도 있다. 그럴 때조차 왕은 마음을 비워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게 법도다. 왕다운 왕은 언로가 막힐까봐 늘 염려한다.” 이는 언로의 문이 열려있어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선이 500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우연이 아닐 것이다. 역사의 고비마다 언론은 중심에서 끊임없는 토론의 장을 마련해왔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언론 역시 대한민국 최초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다. 언론 탄압을 일삼던 암흑기 속 지도자의 잘못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존재했기 때문에 민심을 하나로 집결시킬 수 있었다. 이는 조선시대의 모습과 유사하다. 오늘날 언론 역시 조선시대의 모습처럼 대통령과 국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나라를 위해 눈과 귀를 열어야 한다. 선조들의 모습을 거울삼아 비춰봐야 한다. 왕에게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대간들의 모습은 수고와 노력은 오늘날 언론이 지향해야 할 푯대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언로와 관련해 조선시대라고 생각하면 토론이나 대화가 왕 중심일 것이란 선입견이 있지만 그렇지 않았다면서 이런 시스템은 조선 전에도 있어왔다고 말했다.

 

안 소장은 과거부터 이어져온 이런 토론의 장은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도 이어졌다면서 지난 10년간 이런 문화가 억압된 측면이 있지만 정권이 바뀌더라도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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