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디태치먼트’…교육이란 시스템, 그 앞에서 무력한 개인. 교사

미국 교권 하락 다룬 영화, 한국 교육계 상기시키는 점 많아

문병곤 기자 | 기사입력 2018/05/31 [10:06]

[리뷰] ‘디태치먼트’…교육이란 시스템, 그 앞에서 무력한 개인. 교사

미국 교권 하락 다룬 영화, 한국 교육계 상기시키는 점 많아

문병곤 기자 | 입력 : 2018/05/31 [10:06]

영화 <디태치먼트>는 미국 교육계를 다룬 영화다. 하지만, 주로 교권 침해에 대한 지적이 이어진다는 점에서 한국의 교육계의 현실을 비추기도 한다. 지난 9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발표한 교권 침해 사례를 담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교권 침해 상담 건수는 508건으로 10년 전인 2007년(204건)에 비해 2.5배 증가했다. 교사도 결국 노동자다. 특히 학생,학부모들과 감정적으로 얽힐 일이 많다는 점에서 비교적 강도가 높은 ‘감정노동자’에 해당될 것이다. <주간현대>는 영화 <디태치먼트>를 통해서 ‘감정노동자’로서 교사가 겪는 어려움을 전달하고자 한다.


 

▲ 영화 <디태치먼트>는 미국 교육계를 다룬 영화다. 영화 <디태치먼트> 포스터.     © 다음영화


-줄거리

뉴욕 교외에 있는 학교에 새로 배치된 임시 교사 헨리 바스(에이드리언 브로디)는 학생들을 다루는 데 능숙하지만 과거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유난히 문제아들만 모여있는 학교는 교사도 학생도 서로를 포기한 암담한 상황이다. 교육감이 방문해 교장 등과 학교의 존폐 여부를 상의하는 가운데, 헨리는 자신이 맡은 학급의 외톨이 메레디스(베티 케이)와 거리에서 몸을 팔며 연명하는 가출소녀 에리카(사미 게일)를 만나게 된다. 

 

▲ 교육계의 이방인처럼 보이는 헨리는 에리카와의 만남을 통해 동질감을 느낀다.     © 다음 영화

 

1998년 <아메리칸 히스토리 X>로 인종차별을 다루고, 2006년 <레이크 오브 파이어>로 낙태 문제를 다뤘던 토니 케이 감독의 2011년 작품. <디태치먼트>는 교육문제를 다루고 있다.  

 

<디태치먼트>는 기존의 교육, 학교관련 영화들과는 다소 다른 점을 보이는데, 이 영화에서 교사는 아이들을 변화시켜줄 계도자가 아닌 답 없는 시스템 속에서 헤매는 한 명의 감정노동자일 뿐이다.

 

기존 영화들은 ‘교육’이란 수단의 희망을 보여줬었다. 예를 들어, <죽은 시인을 위한 사회>, <굿 윌 헌팅>같은 영화들에서 에너지 넘치는 ‘참된 스승’은 단순히 학생들에게 지식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학생과의 거리를 밀접하게 좁힘으로써 학생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냈다. 이 과정에서 문제아들은 그저 자신의 개성을 발굴해내지 못한 아이들로 묘사됐고, 선생은 학생들의 ‘영웅’이 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디태치먼트>는 마치 이런 ‘영웅서사시’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하다. 이 영화 속에서의 ‘영웅’들은 더 이상 영웅이 필요 없는 사회의 퇴물에 불과하다. <디태치먼트> 속에 등장하는 교사들은 낮은 자존감과 찌든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 작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였던 알베르 까뮈. 그리고 그의 작품 <이방인>     © 주간현대

 

이방인이 바라보는 교육 시스템의 몰락

영화는 미국의 교육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인 학교를 통해서 문제점을 얘기하고 있다. 문제아들만 모인 학교에서 이미 교권은 바닥이다. 선생들은 학생들에게 인격적인 모욕을 당하기 일쑤다. 학교에서 열리는 학부모의 날 행사에 참석하는 부모들은 한 명도 없다. 교육을 통해 아이들을 바꿔보겠다는 선생들의 희망찬 다짐은 매번 구겨진다. 

 

영화의 주인공 헨리는 ‘이방인’처럼 이들을 관찰한다. 헨리(애드리안 브로디)도 그들과 같은 교사이긴 하지만, 정규직인 그들과 달리 헨리는 임시직 교사다. 영화 제목의 뜻이 ‘분리’인 것처럼 헨리는 현 교육시스템에서 분리된. 혹은 한 발짝 떨어져있는 인물처럼 보인다. 

 

실제로 영화는 시작하면서 작가이자 실존주의 철학자인 알베르 까뮈의 말. “어느 하나에 이러한 깊이를 느끼지 못했고, 내 스스로 격리되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느낌이다”을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그렇게 보자면 헨리는 마치 까뮈. 혹은 까뮈의 작품인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의 현신(現身)처럼 보인다. 영화는 마치 ‘까뮈가 현 교육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답이 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실존주의 철학이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 주관성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결국 ‘학교는 시스템이 아닌 개인과 개인의 문제로 봐야하지 않을까?’라는 식으로 치환된다. 영화가 묘사하는 학교의 문제점은 대부분 ‘시스템’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단 헨리가 부임한 학교에 문제아들만 모이게 된 것부터가 시스템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학습의지가 없는 학생들에게 교육으로서 변화를 이끌어내기란 힘든 일이다. 교육부는 이러한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려하지 않은 채, 학교 주변 집값이 폭락한다는 식으로 교사들을 탓하기에 바쁘다. 결국 이 혼란스러운 시스템은 학교를 폐쇄하게 만든다. 불량학생들도 결국 학교를 떠나야만하는 피해자에 불과할 뿐이다.

 

▲ 메레디스는 가족과 학교라는 시스템들 모두에서 적응을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러던 중 만난 헨리는 그녀가 유일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인물이었다.     © 다음 영화

 

근본적인 문제는 가족에 있다?

영화는 학교 뿐 아니라, 가족이라는 ‘시스템’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불량아를 만들어내는 건 부모들의 잘못도 있다는 식이다. 부모들의 무관심과 잘못된 자녀 교육방법이 아이들을 불량아로 만들고, 그런 불량아들은 학교에서 선생들에게 반항하며, 선생들은 그 스트레스를 혼자 고통스럽게 견디거나, 사회 속 다른 누군가에게 뒤틀린 방식으로 풀어낸다.

 

주인공 헨리가 타인들과 거리를 두는 식으로 삶을 살게 된 원인도 ‘가족’에 있다. 그는 어렸을 적 엄마의 자살을 직접 목격함으로써 큰 트라우마를 겪게 됐고, 그로 인해 타인과의 감정 교류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가 정규직 교사가 아닌 임시직 교사로 여러 학교를 전전하는 이유도 누군가와 오랫동안 깊게 감정이 형성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교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것도 엄마의 자살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헨리는 메레디스의 자살 후 진행 된 것으로 보이는 영화 속 인터뷰 장면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학생들이 최악의 선택을 하지 않게, 그들을 돌봐야 할 의무가 있어요…어른이 되기 위해선 가이드가 필요하죠. 복잡한 세상의 이치를 알려주는 것도요. 전 그런 가르침을 받지 못했어요”마치 엄마의 자살을 막을 수 없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탓하기라도 하는 듯. 이렇게 말한 그는 속죄를 위해서라도 아이들의 변화를 만들기 위해 교사가 되었어야만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는 가족이라는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 원인을 어디서 찾는가. 결국 건드리게 되는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문제아들이 모이는 학교. 넓게는 문제 있는 가족들이 모인 동네(영화 속에서 ‘정상적’인 가족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를 만든 것은 자본주의 시스템이 만든 빈익빈 부익부 현상 때문이다. 사회가 만드는 불우한 가족. 불우한 가족이 만드는 불량아. 불량아들이 만드는 학교. 학교가 다시 학생과 선생들에게 퍼뜨리는 스트레스 가득한 피로감. 그리고 다시 그 피로감이 만드는 불우한 가족과 사회. 이 악순환은 사회라는 시스템 안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이다.  

 

▲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헨리가 교감하는 인물인 에리카도 헨리처럼 시스템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다. 헨리는 그렇기에 그녀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가족처럼 지냈을 것이다.     © 다음영화


시스템 바깥에 서 있는 이방인들

한편, ‘이방인’ 헨리는 이 시스템에서 한 발짝 떨어져있는 인물이다. 임시직 교사로 이리저리 ‘팔려다니는’ 신세인 그는 딱히 가족이라 할 만한 것도 없고, 학교에서 불량아들을 계도시키고자하는 희망도 없다. 그는 아이들을 그저 개인 대 개인으로 대할 뿐이다. 근데 문제는 학생들이 이 방식에 반응을 한다는 점이다. 영화가 묘사하는 불량아들은 결국 시스템의 피해자라는 것인데, 헨리의 방식은 ‘피해자 대 피해자’로 개인적으로 느꼈던 감정을 교류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헨리는 아이들에게 “혹시 너희는 복도를 걷거나 수업을 들을 때, 마음의 무게를 느껴본 적 있니?”라고 묻는다. 그리고 스스로 답한다. “난 있어” 아이들도 공감하며 모두 손을 든다.

 

영화 속에서 유일하게 헨리가 교감하는 인물인 ‘에리카’ 또한 같은 맥락이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그녀는 딱히 가족도 없다. 즉, 그녀도 헨리처럼 시스템에 얽매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인데, 헨리는 그렇기 때문에 동질감을 느껴 그녀와 가족처럼 지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디태치먼트>는 ‘개인’을 망가진 시스템의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일까. 결론적으로는 아니라는 대답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회의적인 듯하다.

앞서 언급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헨리와 아이들은 마치 ‘모두가 느끼는 마음의 무게’를 매개로 공감하는 듯 하다. 에리카와도 만남을 이어가는 것으로 보아 개인으로써의 교감을 통해 시스템에게서 받은 상처를 서로 치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헨리의 소설 <어셔가의 몰락> 낭독을 어떻게 끝맺는지 보자. 모난 성격과 가난 때문에 평생을 고통 받고,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도 받지도 못했던 작가 ‘애드가 앨런 포’의 소설을 낭독한다는 점은 꽤나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귀족 집안이었던 ‘어셔가’의 몰락이란 결국 한 때 위엄을 구가했던 ‘교육 시스템’의 몰락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서 화자가 무너져 가는 어셔가를 바라보는 것은 마치 헨리가 시스템의 몰락을 지켜보는 것으로 치환된다.

 

그리고 그 몰락을 지켜보는 헨리는 자신의 마음을 <어셔가의 몰락>을 빌려 “구역질나는 마음의 냉정함” 얘기한다. 이방인으로 밖에 머물 수 없는 자신에 대한 자조인 것이다. 그는 왜 자조하는 것일까. 이는 개인으로써 아무것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헨리는 개인으로써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가 그런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거대하고 불가항력적인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이를 보여주는 게, 메레디스라는 인물이다.

 

<디태치먼트>가 기존의 교육영화 같았다면, 메레디스는 가족들에게 마저 조롱받던 자신의 재능인 사진찍기를 헨리를 통해 인정받고 꿈을 펼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디태치먼트>는 그녀를 참혹하게 끝낸다. 

 

메리디스는 가족과 학교라는 시스템 안에서 고통을 받는 인물이었다. 뚱뚱한 외모로 놀림을 받았고, 그녀의 재능을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헨리는 그녀를 알아봐줬다. 문제는 메리디스가 헨리의 위로를 사랑으로 오해했다는 점이다. 헨리도 ‘접근하는’ 메리디스를 ‘분리’하기 어려웠다. 결국 ‘개인 대 개인’에서조차 상처의 해결책을 얻지 못한 메리디스는 지극히 ‘개인’적인 해결 방법인 ‘자살’을 선택한다. 

 

헨리에게 메리디스의 자살은 ‘개인과 개인’의 교류가 시스템으로 인해 생긴 상처까지는 치료할 수 없다는 걸 깨닫게 한 사건이다. 영화는 결국 이 개인과의 교류가 시스템에 대한 답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면서 끝을 낸다. 당연한 얘기지만, ‘시스템은 시스템적으로 해결되야’한다는 것이 영화가 내린 대답이다.

 

▲ 영화의 연출은 다소 과해서 휘황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연출은 영화가 강약조절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 <디태치먼트> 갈무리

 

휘황하게 묘사된 비참함은 비참함이 아닐수도

<디태치먼트>는 사회문제에 대한 사실적인 서술을 위해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를 많이 쓰고 있다. 인터뷰 장면을 넣는다거나, 대부분의 촬영을 핸드헬드(카메라를 어깨에 들쳐 매고 손으로 그립을 잡은 채 찍거나, 휴대용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촬영 기법. 고정해두고 찍는 것에 비해 불안정한 느낌이 들지만, 보다 사실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묘사를 할 수 있다.)로 하고 있다. 

 

다만, 다소 영화의 연출이 지나치게 휘황하다. 핸드헬드는 사실적인 역동성을 넘어서 혼란스러움을 영화에 더해주는데, 영화가 전하고자하는 교육 시스템의 혼란스러움을 말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내용 자체도 꽤나 심각하고 무거운데, 연출마저 이러하니 관객에게는 피로감이 쌓인다.

 

또한, 연출이 과한 장면들. 예를 들자면, 교장이 복도 끝에 서있고 카메라가 빠른 속도로 들어가 그녀를 잡는 장면이라든지, 익스트림 클로즈 업(이를테면 손톱, 코, 귀, 눈 등 한 부분만을 극도로 확대하여 촬영한 것. 긴장, 불안 등 심리 묘사에 주로 사용)을 사용하고 80년대 주로 사용됐던 영화 필름인 슈퍼 8mm로 찍은 과거회상 장면들은 연출이 과해 의도를 알기 어렵다.

 

이 같은 강한 연출의 남발은 영화가 강약조절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영화 내내 힘을 주고 있다는 느낌은 힘을 줘야할 곳에 못 주고 있다는 인상을 남긴다. 결국 힘이 빠진 영화가 던지는 질문들은 중구난방이다. 

 

<디태치먼트>는 교사의 가치가 바닥을 치고 있는 미국교육계의 비참한 현실을 화려하게 다룬 영화다. 이 점에서 <디태치먼트>는 한동안 회자될 영화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다소 감독의 자의식이 과잉된 연출은 전달력이 떨어진다. 비참함은 굳이 화려하게 다루지 않아도. 그저 다루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진진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어쩌면 이런 교훈을 알려줄 반면교사이지 않을까.

 

한줄평 : 교육이란 시스템, 그 앞에서 무력한 개인. 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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