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란 인격의 표현이며 사람 그 자체”

[국 고전 연구가 이정랑의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今疏通] 6. 허언공어(虛言空語)

글/이정랑(중국고전 연구가) | 기사입력 2018/06/20 [16:22]

“말이란 인격의 표현이며 사람 그 자체”

[국 고전 연구가 이정랑의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今疏通] 6. 허언공어(虛言空語)

글/이정랑(중국고전 연구가) | 입력 : 2018/06/20 [16:22]

역사에선 공허한 논의로는 나라 잘 다스릴 수 없음을 증명
정치 지도자는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로 비웃음 사지 말아야

▲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는 6월14일 "오늘부로 당 대표직을 내려놓는다"며 6·13 지방선거 참패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사퇴했다.     © 김상문 기자

 

흔히 말은 마음의 소리라고 한다. 이것은 폐부(肺腑)에서 우러나온 진실한 말을 가리키며 이런 말은 힘차고 상대를 감동시킨다. 이것 이외에 폐부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빈말(虛言)이 있다. 하나는 섬세하고 알아듣기 어려우며 미묘하고 비실용적인 말이다. 또 다른 하나는 끝없이 크고 심오한 말이다. 이 두 가지는 다 과장된 말로서 화제를 무한대로 축소(縮小)하거나 확대(擴大)한다. 그래서 여론을 오도(誤導)하고 왜곡(歪曲)시킨다. 어쩌면 우리들 주변의 사이비 정치꾼이나 어용학자군(御用學者群), 수구언론(守舊言論)이 즐겨 사용하는 수법이기도 하다.


 

어떤 통치자는 각료의 말을 들으면서 화려한 변설(辨說)을 좋아하고, 행동을 관찰하면서 진부하고 비실용적인 것을 현명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여러 각료와 참모들이 과장된 말과 현실과 동떨어진 행동을 하는 것이다. 말이 섬세하면 알아듣기 어렵고 미묘하면 실용적이지 못하므로 긴요한 일에는 쓸모가 없다. 논의가 끝없이 크고 심오하기만 하면 전혀 실제적인 효용이 없다.

 

합종과 연횡의 투쟁
전국시대의 종횡가(縱橫家)가 그 전형적인 예다. 당시는 제·진·초·조·위·한·연, 일곱 나라가 천하를 놓고 승부를 겨루던 시대였다.


그 가운데 진나라가 효공이 상앙을 등용해 정치·경제·군사 방면의 개혁을 이룬 다음부터 몇 대에 걸친 노력 끝에 최고의 강국이 되었다. 지리적 분포 면에서 남북을 종(縱), 동서를 횡(橫)이라 하므로 서쪽에 위치한 진나라가 다른 여섯 나라 중 한 나라와 손을 잡는 걸 연횡(連橫), 여섯 나라가 뭉치는 걸 합종(合縱)이라 불렀다.


진나라는 연횡의 전략을 택해 먼 나라는 사귀고 가까운 나라는 공격하는 이른바, 원교근공(遠交近攻)의 정책을 펴면서 여섯 나라를 잠식해 들어갔다. 그리고 여섯 나라는 합종을 꾀하여 진나라의 공격에 대항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합종과 연횡의 투쟁이다.


종횡가는 이런 시대적 흐름에 맞춰 출현했다. 합종을 주장한 이는 합종에 성공하면 틀림없이 천하를 제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연횡을 주장한 이도 똑같이 연횡에 성공하면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쉬지 않고 이런 주장을 떠들어 댔지만 정작 진정으로 군주를 위해 공을 세우고 천하의 패왕이 되게 해준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것만 봐도 공허(空虛)한 논의로는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다시 이전 시대로 시선을 돌리면 인정(仁政)과 왕도(王道)에 관한 맹자(孟子)의 역설이 눈에 띈다. 그는 말하길 자기 집 노인을 존경하면 그 존경이 다른 집 노인에게까지 미친다면서, 천하를 군주의 손바닥 위에서 굴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5무(5畝, 150평 넓이의 면적을 말함) 크기의 밭에 뽕나무를 심어 쉰 살이 된 사람에게 비단 옷을 입게 하고, 때맞춰 닭·돼지·개를 길러 일흔 살이 된 사람에게 고기를 먹이며, 농사 때를 안 어기고 100무의 밭을 일궈 여덟 식구를 먹이라고 했다. 여기에 학교를 세워 효도와 우애의 도리를 가르치면 머리 흰 사람이 길에서 짐을 지는 일이 없어질 거라고도 했다.


이처럼 나이든 사람이 비단 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백성들이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는 일이 없으면 그들의 군주는 천하를 제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가 맹자의 인정과 왕도로 천하를 통치했는가? 공허한 논의는 아무리 감동스럽게 들려도 결국 빈말일 뿐이다.

 

송나라 사람이 연나라 왕에게 가시 끝에 암원숭이 한 마리를 새겨 바치겠다고 청했다. 그는 자신이 일을 마치면, 연왕이 석 달간 목욕재계를 해야만 그것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연왕은 송나라 사람에게 땅을 하사하고 조각에 전념하도록 했다. 연왕의 측근 중 쇠그릇을 만드는 시종 하나가 이 일을 알고 왕에게 물었다.


“군주는 열흘을 목욕재계하는 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왕께서는 석 달이나 목욕재계를 한 뒤, 그 쓸모없는 물건을 본다고 하십니다. 자, 소신의 말을 한번 들어보십시오. 조각을 하려면 당연히 조각칼이 조각할 것보다 더 작아야 합니다. 쇠그릇을 만드는 저로서는 그렇게 작은 조각칼을 만들 방법이 없습니다. 이 송나라 사람의 말은 틀림없이 거짓일 터이니 부디 다시 한 번 살펴주십시오.”


연왕은 곧 송나라 사람을 붙잡아 사실 여부를 따졌고 결국 새빨간 거짓말임이 드러나자 그를 사형에 처했다.


본래 가시 끝에 암원숭이를 새기는 건 불가능하다. 이것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허황된 이야기에 불과하다. 그 자체로 불가능한 것들에 신비함을 덧씌우고 자신들도 못하는 일을 거론 하는 건 오직 자신들의 지혜를 드러내 조금이라도 이득을 얻기 위해서다.


통치자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의 진위와 유용성 여부를 살펴야 한다. 통치자가 진실과 유용성을 추구하지 않으면 저 불가능한 가시 끝의 암원숭이도 그의 마음속에서는 가능한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조각할 칼도 없는데 어떻게 가시 끝에 원숭이가 새겨질 수 있겠는가?

 

말이란 인격의 표현
근거 없고 쓸모없는 말은 누구든 말할 수 있다. 정(鄭)나라 사람 둘이 누가 나이가 많은지 논쟁을 한 적이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요(堯) 임금과 동갑이야.”
다른 사람이 맞받아쳤다.
“나는 황제(黃帝)의 형과 동갑이다.”


이런 식의 말다툼이 끝없이 이어지면 시간과 정력만 낭비될 뿐, 누가 이기고 지든 별 의미가 없다. 가시 끝 암원숭이 같은 일은 항상 생기게 마련이니 여야를 대표하는 정치 지도자들은 말하는 데 신중해야 하고 특히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처럼 가벼이 말하거나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로 타인의 비웃음을 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말이란 인격의 표현이며 품격이고 사람 그 자체란 것을 홍·조가 어찌 모른다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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