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처연한 낙관이 만든 진짜 가족…‘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칸 황금종려상 안긴 작품

문병곤 기자 | 기사입력 2018/07/13 [13:07]

[리뷰] 처연한 낙관이 만든 진짜 가족…‘어느 가족’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칸 황금종려상 안긴 작품

문병곤 기자 | 입력 : 2018/07/13 [13:07]

칸영화제와 깊은 인연을 자랑하며 ‘칸이 사랑하는 감독’으로도 불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디스턴스>(2001),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그리고 올해 <어느가족>까지 칸영화제 경쟁부문에만 5번 초청됐고, <아무도 모른가>를 통해 야기라 유야가 남우주연상을,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심사위원상을 받았다. 이어 올해 <어느 가족>으로 황금종려상을 안으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가족영화 결정판이 완성된 느낌이다. 


 

▲ 영화 <어느 가족>의 포스터     <사진 제공= 티캐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칸 영화제 최고 영예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어느 가족>으로 올 여름 국내 극장에 돌아온다.

 

오는 26일 개봉하는 <어느 가족>은 할머니의 연금과 훔친 물건으로 살아가는 한 가족이 우연히 실에서 만난 다섯 살 소녀를 데려와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그동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걸어도 걸어도>와 같은 작품에서 현재 일본 사회의 가족의 의미에 대해 말해왔다. 비록 현실을 차갑고 냉정하지만, 그가 바라보는 가족에 관점과 시대에 대한 깊이는 항상 따뜻했다.

 

이번 작품 <어느 가족>은 그의 이런 가족영화들의 집대성 같은 영화다. “10년 동안 생각해온 가족의 의미를 담았다”고 말한 그는 이번 영화에서 ‘진정한 가족의 유대란 무엇일까’라는 물음을 관객에게 던지고 있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오는 29일과 30일 양일간 내한해 한국 팬들과의 만남을 가질 예정이다.     <사진 출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홈페이지>

 

칸이 사랑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도쿄 출신으로 와세다 대학교 문예학과를 졸업하고 텔레비전 맨 유니온에 입사하여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처음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장편 영화 데뷔작인 <환상의 빛>은 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가 재혼을 하고 자신의 아이와 함께 새로운 집에 안착한다는 내용을 담은 영화다.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제 52회 베니스영화제에서 촬영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이어 2004년 <아무도 모른다>로 칸영화제에 진출해 호평을 받았을 뿐 아니라 주인공 야기라 유야은 당시 후보로 오른 <올드보이>의 최민식을 제치고 제 57회 칸영화제에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국내 관객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은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로 제 66회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전 세계적인 감독 반열에 올라섰고, 매년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그의 2018년도 작품인 <어느 가족>은 “한층 성숙하고 마음을 훔치는 가족영화 복귀작"(Variety), "소리치기보다 속삭이기를 택한다. 미묘하고 힘있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갈등과 이슈를 포착해내는 감독이 고레에다 히로카즈 말고 누가 있을까”(Hollywood Reporter) 등과 같이 해외 언론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이번 <어느 가족>을 보고 있으면 감독의 전작들이 떠오르는데 이 영화를 고레에다 히로카즈표 가족영화의 집대성이라고 부르고 싶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는 배우 '릴리 프랭키'와 '키키 키린'     <사진 제공= 티캐스트>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페르소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에서 서민적이고 친구 같은 아버지 역할인 ‘유다이’가 인상에 남았다면 이번 <어느 가족>에서도 그의 그런 모습을 만날 수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고 있는 릴리 프랭키는 일본을 대표하는 엔터테이너로 음악, 미술, 연출, 라디오 DJ, 사진까지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여주고 있는 배우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이후,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을 거치면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의 호흡을 맞춰갔고, 감독의 페르소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아버지 ‘오사무’역할을 맡은 릴리 프랭키에 대해 감독은 “그를 한 번 더 찍고 싶었다. 인간 속에 있는 작지만 조금 나쁜 부분, 조금은 한심한 감성을 표현하는 것에 릴리 프랭키는 익숙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번 작품에서 그는 아이들에게는 다정하다가도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도둑질하는 양가적인 모습을 연기하는데 이따금씩 서늘한 느낌까지 보여주면서 그의 연기력을 입증한다.

 

두 번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페르소나인 키키 키린은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지니고 있는 50년 연기 경력을 자랑하는 일본 배우다. 국내 영화 평론가인 이동진도 감독의 전작인 <걸어도 걸어도>에서의 키키 키린에 연기에 대해 호평하기도 했다. 

 

그는 “부엌 식탁에 앉아 있던 어머니(키키 키린)가 뜨개질을 하면서 눈도 떼지 않은 채 마음 속 묵은 어둠을 아들에게 넌지시 비추는 모습을 담은 옆모습과 뒷모습 쇼트는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일 것” 이라며 “삶의 피해자인 어머니가 그 장면에서 흔들리지 않는 어조와 시선으로 내밀한 이야기를 마치며 차갑게 확신하는 모습은 섬뜩하면서 아프다”라고 평한 바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과는 벌써 여섯 작품 째인 키키 키린은 <어느 가족>에서 할머니 하츠에 역을 맡았다. 감독은 하츠에에 대해 “처음부터 키키 키린을 생각하고 각본을 썼기 때문에 그녀 외에는 할 수 없는 역할”이라고 말하면서 강한 신뢰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 <어느 가족>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보여준 안도 사쿠라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새로운 페르소나가 될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사진 제공= 티캐스트>

 

이 두 배우 외에도 이번 작품에선 엄마 ‘노부요’ 역할을 맡은 안도 사쿠라의 연기를 눈여겨 볼만하다. 다소 무심해 보이지만 진심으로 아이들을 사랑할 줄 아는 노부요는 본인이 상처를 갖고 있기에 타인의 상처를 그만큼 이해하고 보듬는 인물로 나온다. 

 

칸 영화제 당시에 심사위원장이었던 배우 ‘케이트 블란쳇’도 “그녀의 연기에 대해 뜨겁게 얘기했다”며 “그녀의 연기, 특히 눈물 흘리는 장면의 연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고, 그녀를 따라하고 싶을 정도”라며 극찬했다. 이번 <어느 가족>을 계기로 안도 사쿠라도 고레에다 감독의 새로운 페르소나가 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어느 가족>을 통해 가족의 의미에 대해 관객에게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사진 제공= 티캐스트>


'가족'에 대한 반문

<어느 가족>은 감독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인 ‘가족’을 그대로 이어간다. 영화의 원제인 ‘만비키 가족’에서 ‘만비키’는 상점에 진열된 상품을 훔치는 행위 혹은 행위를 하는 사람을 뜻하는데, 이는 영화에서 가족이 구성되고 운영되는 방식이기도 하다.

 

영화의 초반부 가족들이 ‘만비키’하는 ‘유리’라는 아이가 그렇다. 유리는 마치 길거리에 ‘진열’된 것처럼 진짜 부모의 무관심 안에 자라는 아이였고, 가족은 유리를 가족의 일원으로 맞아들이기를 ‘선택’한 것이다. 반대로 유리에게 가족에게 남겠냐는 질문을 하고 선택을 권하기도 한다.

 

‘만비키’는 훔치기 전에 먼저 ‘선택’하는 일이기도 하다.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이라는 시스템. 특히 아이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다는 부조리에 대해 반문하는 듯하다. 오히려 선택을 통해 꾸려진 가족이 더욱 깊은 유대감으로 맺어지는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어느 가족>은 가족 영화이기도 하지만 가족 구성원 개개인의 이야기도 살아있다. 감독도 "<어느 가족>은 가족이란 무엇인가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이면서, 아버지가 되려는 남자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소년의 성장 이야기이기도 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 영화에서 '진짜인지 가짜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가짜더라도 행복하다면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마치 마술이 진짜가 아니어도 보는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낚시. 특히 미끼라는 소재도 가짜이지만 물고기들을 현혹시키는 물건이다. 

 

영화에서 가족은 '스위미'라는 물고기로 비유된다. 스위미는 떼를 지어 각자의 역할을 맡아 '참치'같은 큰 생선들의 위협을 빠져나가는 생선인데 각자가 스스로의 역할에 충실함으로써 위기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발휘해 살아간다. 이 가족도 스위미처럼 이 생계를 유지하는 도둑질도 각자의 역할을 잘 수행할때만 이루어진다. 그리고 각자가 가족에서 '선택해서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할 때에만 가족이 유지가 된다. 

 

이 가족에게 진짜 가족들과 다른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이들이 자신들이 가짜임을 인식하고 흩어지는 순간 이 마술같은 행복은 깨져버린다는 점이다. 마치 비법을 알아버린 마술이나 스위미가 뿔뿔이 흩어지는 순간 자기들 보다 큰 생선에 잡아먹혀 버리는 것처럼. 

 

감독은 마술같은 행복에 빠져있는 그들을 보여주는 것은 물론, 이들을 낚아채 현실로 끌어올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들 쇼타와 아버지 오사무는 취미로 같이 낚시를 하는데, 낚시는 물고기를 한 마리씩 낚는 것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낚시는 미끼라는 가짜에 현혹되 현실로 빠져나오게하는 일인 것이다. 가족들이 바다에 놀러가는 이유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들의 행복이 처연해 보이는 이유를 생각해본다면 그들이 낚시바늘에 낚여 뭍에 내던져진 물고기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 관객은 도덕적으로 어긋나도 한참은 어긋난 이 가족을 보며 왜 미소가 지어지는 지 스스로 반문하게 될 것이다. 법적으로 ‘가짜’인 가족이 느꼈던 행복은 과연 ‘진짜’가 아니었을까라는 의문도 들 것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처연한 낙관’이 만들어낸 이 가족이 현대 사회에 던지는 질문에 관객은 어떤 답을 내려야 할까. 

 

한줄평 : 고레에다 표 가족영화의 집대성 ★★★★☆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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