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 보러 갔다가 봉변당할 뻔했네”

20대 女 인질강도극, 악몽의 51시간 추적

이영광 기자 | 기사입력 2012/05/30 [10:13]

“면접 보러 갔다가 봉변당할 뻔했네”

20대 女 인질강도극, 악몽의 51시간 추적

이영광 기자 | 입력 : 2012/05/30 [10:13]
허위 업체직원들로 둔갑한 남성2명이 인터넷 허위 구직 광고를 미끼로 20대 여성을 납치한 뒤 가족들에게 5000만원의 몸값을 요구해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보문역 납치사건’이 사회적 충격을 주고 있다. 이 사건은 구직난을 겪고 있는 젊은이들의 절박한 심정을 악용한 것으로 범인들이 구직사이트에 올린 아르바이트 구인 글을 읽고 면접을 보러 찾아온 여성을 미리 준비한 차량으로 납치하는 치밀함까지 보여줬다. 납치 51시간 만에 일단락된 악몽의 인질강도극 현장을 추적해봤다. <편집자 주>


 
무직자 남성, 허위 업체직원으로 둔갑 ‘20대女 납치’
“딸 통장으로 5000만원 입금해라” 인질강도극 벌여

현금 인출하려다 덜미…잠복한 경찰 추격 끝에 검거
 
[주간현대= 이영광 기자]
지난 4월 초, 평소 납치를 소재로 한 영화들을 보며 독수공방하던 무직인 김모(30)씨, 그는 카드빚과 옛 애인에게 빌린 돈 5300여만원을 청산하기 위해 후배 허모(26)씨와 구직사이트에 ‘무역회사에서 사원을 채용한다’는 내용의 구직광고를 올리며 피해자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구직광고가 올라간 후 몇몇 여성 구직자들에게 전화가 왔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신용상태 등의 이유로 면접을 보러오지는 않았다. 초조했다.

어둠의 덫
이직을 준비하던 학습지교사 A씨. 그는 한 유명 인터넷 구직사이트에서 ‘사무직 여직원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무역업체 사무직 및 보조, 주 5일 오전 9시~오후 6시 근무, 급여 월 200만~250만원’이란 게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다. 전화 통화에서 자신을 사장이라 소개한 김모씨는 다음 날 오후 면접을 보자고 했다. 김씨는 “차량을 타고 사무실로 이동해야 하니 일단 보문역 4번 출구로 나오라”고 요구했다.

# 5월16일 오후 7시 10분 김씨는 별다른 의심 없이 약속장소에 나온 A씨를 “차를 타고 사무실로 이동하자”며 승합차 카니발에 태웠다. 김씨가 앞에 타고 있었고 A씨더러 뒤에 타라고 했다. A씨가 뒤에 타니까 허씨가 바로 A씨 옆으로 앉고 문을 닫았다. 하지만 승합차에 오르는 순간 이들은 돌변했다. A씨가 전화로 아는 언니한테 통상적 전화를 마치자 허씨가 A씨의 이마부분을 세게 쳐 A씨의 정신을 잃게 만들었다.
허씨는 A씨를 흉기로 협박하며 손을 노끈으로 묶고 청테이프로 눈과 입을 가렸다. 이어 머리에 담요를 씌웠다. 흉기를 들고 있는 걸 감지한 A씨는 범인들 협박에 소리 한번 지르지 않고 계좌번호와 비밀번호를 묻는 질문에 차분히 답했다. 김씨 등은 A씨를 태우고 중랑구 망우리 묘지까지 카니발로 이동한 뒤 미리 준비한 에쿠스로 갈아타고 다시 올림픽공원으로 향했다.

악몽의 시간
# 사건발생 5시간 경과 0시 5분 올림픽공원에서 A씨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현금 “5000만원을 입금해야 딸을 살릴 수 있다”고 협박한 이들이 A씨를 데리고 경북 칠곡의 한 무인 모텔로 향했다. 눈이 가려진 A씨는 이들의 손에 이끌려 모텔에 투숙했다. 김씨는 다시 서울에 올라와 A씨 가족에게 몸값을 요구했고, 허씨는 모텔에서 A씨를 감시하는 등 역할을 분담했다. A씨는 그렇게 모텔에 감금된 채 악몽과도 같은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사건발생 44시간 경과 오후 3시 김씨는 1000만원이 입금된 사실을 확인하자 스쿠터로 동대문과 중랑구, 을지로 등을 돌며 현금자동입출금기(ATM)로 한 번씩만 2분 이내에 돈을 인출했다. 금액도 100만~200만원으로 나눠 모두 610만원을 뽑았다. 그 시각 경찰은 A씨의 계좌에서 돈이 인출된 곳에서 폐쇄회로(CCTV)를 확보했다. 김씨의 인상착의를 확인한 경찰은 각 지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 동대문구 용두동 도로에서 스쿠터를 타고 이동하는 김씨를 발견, 뒤쫓기 시작했다.

# 사건발생 47시간 경과 오후 7시 45분 김씨는 스쿠터를 타고 도주했지만 추적을 따돌리려다 도로에 주차된 차량에 부딪혀 넘어졌다. 경찰은 2.5㎞의 추격 끝에 용두동 동부시립병원 앞에서 김씨를 검거했다. 이후 김씨를 추궁한 경찰은 5월18일 오후 10시. 무인모텔에서 A씨를 감시하고 있던 공범 허씨를 검거하고 A씨를 구출했다. 인터넷 허위 구직 광고를 미끼로 20대 여성을 납치한 남성 2인조가 범행 51시간 만에 경찰에 붙잡힌 순간이었다.

이같이 경찰 조사결과 김씨 등은 카드빚과 전 애인에게 빌린 돈 5300만원 상당의 빚을 해결하기 위해 4월 초 여성을 납치해 돈을 요구하기로 마음을 먹고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드러났다.

치밀한 범행
이들의 범행은 치밀했다. 김씨와 허씨는 범행 한 달 전부터 납치사건을 다룬 영화를 보면서 범행을 계획했고 범행 일주일 전부터는 PC방에서 도용한 주민등록번호로 인터넷 구인구직사이트 세 곳에 허위 구인광고를 올렸다.

A씨를 감금할 모텔까지 알아보는 등 사전준비를 마친 범인들은 A씨로 범행대상을 정하고 계획했던 범행을 실행했다. A씨를 납치한 그들은 이동과정에서 경찰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대포차를 사용했고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미리 준비해둔 승용차로 갈아타는 치밀함도 보였다. 범인들이 협박할 때 사용한 휴대폰도 대포폰을 사용해 경찰의 추적을 피했다. 또한 이들은 입금된 1000만원을 인출하는 과정에서도 100만~200만원씩 나눠 인출했으며 한 현금인출기에 2분 내외만 머무는 방법으로 경찰의 추적을 피했다.

그러나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던 범인들에게도 옥에 티가 있었다. 바로 김씨의 복장이었다. CCTV에서 청바지에 하얀 헬멧을 쓴 특이한 복장의 김씨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던 것. 이에 덜미가 잡힌 김씨와 허씨가 붙잡히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사건발생 51시간 만이었다.

wingslyk@hyunda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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