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방문을 거부하는 보수 야당에 보내는 편지

야당이 정부의 ‘절차 무시 무례’를 뛰어넘어 평양에 간다면 더많은 국민지지를 받을 것

이계홍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9/11 [22:08]

평양 방문을 거부하는 보수 야당에 보내는 편지

야당이 정부의 ‘절차 무시 무례’를 뛰어넘어 평양에 간다면 더많은 국민지지를 받을 것

이계홍 칼럼니스트 | 입력 : 2018/09/11 [22:08]

 

▲ 이계홍 칼럼니스트     ©브레이크뉴스

조선조 17대 왕 효종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를 두고 조정 신료들간에 논쟁이 붙었다. 어전회의에서 새 임금인 현종에게 서인 송시열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전하, 선왕(효종)은 둘째 아들이므로 1년간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 따라서 대왕대비께서는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하옵니다.”

 

그러자 남인인 허목이 반대했다.

 

전하, 그렇지 않사옵니다. 선왕께서 차남이셨지만 왕위를 계승하였으므로 3년동안 상을 치르는 것이 맞은 법도입니다. 대비께서도 3년간 상복을 입어야 마땅하옵니다.”

 

이 논쟁은 지방에까지 번져 전국이 들끓었다. 현종이 1년상에 방점을 찍어 문제는 일단락되었지만, 반대파인 남인이 몰락하는 후유증을 앓았다. 그런데 또 피터지게 싸울 일이 생겼다. 이번에는 효종의 비가 세상을 떠났는데, 시어머니인 대비가 언제까지 상복을 입느냐로 다시 논쟁이 붙었다.

 

상감마마, 예로부터 둘째 아들의 부인이 죽으면 그 어머니는 9개월 동안 상복을 입었나이다.대비께서는 9개월만 상복을 입으시면 될 것이옵니다.”

 

서인의 이러한 주장을 듣고 남인이 반격했다.

 

아니되옵니다. 왕후께서는 대비의 둘째 며느리이긴 하나 중전마마셨습니다. 당연히 1년 동안 장례를 치르고, 대비께서도 1년간 상복을 입으셔야 하옵니다.”

 

그런데 현종이 이번에는 남인의 손을 들어 주었다. 그 결과 서인세력이 위축되었다. 서인의 두목인 송시열이 유배지를 떠돌다가 사약을 받고 죽었다. 이후에도 국상을 당했을 때, 갓끈을 오른쪽으로 돌려쳐야 하느냐, 왼쪽으로 돌려쳐야 하느냐로 피터지는 싸움이 벌어졌다.이런 무의미하고 무모한 싸움으로 조선조는 국론이 분열된 채 멍들어갔다.

 

그때의 쟁투가 오늘의 우리 정치상황과 꼭같이 굴러간다. 상복을 9개월 입으면 어떻고 1년 입으면 어떤가. 갓끈을 오른쪽으로 돌리면 어떻고 왼쪽으로 돌리면 어떤가. 되지도 않는 형식논리로 서로 죽고 죽이는 증오의 대결이 유치하고 어린애 장난같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끔찍하게 정적을 죽이는 등 그 후유증이 심대했다. 삼족을 멸한 경우도 있었으니 후손이 멸절돼버린 집안도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는 길에 여야당 대표가 함께 가자고 제의했다. 보수야당이 격식과 절차를 들어 반대했다.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공동번영을 꾀하는 역사적인 방문인데 함께 축하하며 박수를 보낼 일을 이런 형식논리로 돌아서버린다.

 

모양새로 보면 격식과 절차를 밟으면 좋았을 것이다. 뽀대나게 추켜세워 모시고 가면 한결 모양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대의를 저버린다면 소인배거나 옹졸하다는 평을 듣는다. 평화라는 시대정신에 충실하다면 그런 섭섭한 대접이 있더라도 대범하게 함께 가주는 것이 오히려 집권여당을 엿먹이는 일이 될 것이다.

 

못난 조상을 만난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확인하고, 그런 조상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것이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그때나 이때나 똑같이 이익을 탐한 나머지 어떻게든 토 달고 반대하고, 그러면서 저주와 증오의 언어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나라를 파편화·형해화시키는 행위야말로 매국 아니겠는가.

 

이제 우리는 쪼잔하고 옹졸한 국민이 아니다. 격식을 갖췄느니 안갖췄느니로 국력을 낭비할 시간도 없다. 사실 어떤 사안도 굳이 따지자면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늘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고 하지 않던가. 지도자라면 지향하는 가치와 시대정신에 투철할 필요가 있다.정략으로 대세를 비틀고 훼방놓는 것은 시대정신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그것은 국민지성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남북 화해와 협력, 공동 번영, 평화의 시대정신에 가닿는다면, 여야 모두 대승적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우리는 이번 평양 정상회담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다시 한 번 큰 걸음을 내딛는 결정적인 계기로 만들어내야 한다""중차대한 민족사적 대의 앞에서 제발 당리당략을 거둬주시기 바란다"며 여야 정당 대표들의 동참을 촉구했다.

 

그런 면에서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의 발언은 새겨들을만 하다. 박 의원은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왜 한국당이 반대하나? 왜 바른미래당이 주저하나? 손학규 대표는 YS 정부에 있으면서 DJ의 햇볕정책을 지지하신 분이다. 손 대표의 리더십이 비준도 동의하고 또 대통령이 함께 가자고 하면 방북할 것이다, 라고 하셨다. 한국당도 가서 보고 확인하고 반대하더라도 반대해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비핵화·개방·남북대화를 원했다고 말했다.

 

여야 대표가 함께 격식과 절차의 섭섭함을 뛰어넘어 평양을 방문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하고, 남북대화, 차후 있을 북미대화를 미리 살펴보고 평화로 가는 시대정신의 거보를 내딛는다면 문 정부의 들러리가 아니라 평화를 만들어가는 대안정당의 주역으로서 더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khlee0543@naver

 

*필자/이계홍, 소설가. 칼럼니스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
포토뉴스
3월 둘째주 주간현대 1244호 헤드라인 뉴스
1/3
광고
광고
광고
광고
많이 본 기사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