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청학련 피해자 다치카와 마사키 “일본어 전남가이드 책 만든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0개월간 투옥 “한국민주화 운동 알림이 역할”

이래권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09/16 [15:15]

민청학련 피해자 다치카와 마사키 “일본어 전남가이드 책 만든다”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10개월간 투옥 “한국민주화 운동 알림이 역할”

이래권 칼럼니스트 | 입력 : 2018/09/16 [15:15]

▲ 민청학련사건 피해자 다치카와 마사키 기자는 “일본어 전남관광가이드 책"을 만들기 위해 전남지역 취재에 분주하다.

와세다대 영문학부 출신인 일본의 일간현대 대기자가 본 한국의 빨갱이 논리는 잘못된 정권의 도구였다. 쉽게 국민을 우민화(愚民化) 도구로 흉폭하게 민주화운동 탄압책으로 덧씌워 탄압한 역사를 열었다.


1974년 4월에 발표된 민청학련(全國民主靑年學生總聯盟, 약칭 민청학련) 사건으로 180명이 기소 됐다. 중앙정보부는 1973년 8월 김대중(金大中)을 일본에서 납치해왔다. 이 사건으로 자극되어 반유신체제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대통령 박정희는 1974년 1월 8일 긴급조치 1, 2호를 공포하고 일체의 개헌논의를 금지시켰다. 위반자를 심판할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한 것. 4월 3일 중앙정보부는 "반체제운동을 조사한 결과,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이라는 불법단체가 불순세력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확증을 포착하였다"고 발표했다. 기소장에 의하면, 이들은 1973년 12월부터 폭력으로 정부를 전복하기 위한 전국적 민중봉기를 획책하였다는 것. 아울러 긴급조치 제4호를 발동, 학생들의 수업거부와 집단행동을 일체 금지시켰다. 한 자료는 “구속된 180명은 비상군법회의에서 인혁당계 23명 중 8명이 사형을, 민청학련 주모자급은 무기징역을, 그리고 나머지 피고인들은 최고 징역 20년에서 집행유예까지를 각각 선고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일본 일간현대 기자로서 한국민주화 과정을 40년 넘게 지켜온 일본인 다치가와 마사키씨를 만나게 됐다.

 

그는 와세다대 영문과를 졸업했다. 당시 프리랜서 였던 그는1974년 당시,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반공법과 긴급조치위반법으로 남산의 중정에 체포됐다. 군사재판으로 좌익사범 동조세력으로 몰아 20년 징역형을 언도 재판을 속전속결로 진행시켰다.


반공법 관련 사범은 빨강명찰을 가슴에 달아줬다. 긴급조치위반 사범은 노랑명찰을 달아 정치범으로 20년~사형에 이르는 중형을 선고하고 독방에 내던졌다.

 

인류역사의 폭압시대 광풍시대에는 민주화세력을 억누르려 주홍글씨-이마에 죄인문신 새기기-이스라엘 국기 달아 히틀러가 600만의 유대인 처형 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박정희 정권은 까막눈 국민을 쉽게 설득하기 위한 방편으로 국사범을 관리하기 쉽게 만드는데, 그것이 노랑색과 빨강색으로 일반죄수와 다르게 하고 쉽게 판별하기 위한 방법으로 민주화운동 세력을 반공법과 긴급조치위밥법에 의거 무던히도 무고한 민주인사들에게 중형과 사형선고를 내려 무고한 인명을 합법적(?)으로 탄압했다.

 

1974년에 벌어진 민청학련 사건조작으로 중정 대공 5과 수사과장은 군사법정에 이철, 유인태에게는 반공법 위반으로 빨강 수인번호를 매겨 사형을 언도했다. 또한 수경사령관 윤필용 중장과 장영달 일본인 기자 다치가와 마사키씨에게는 각각 20년을 언도했다. 긴급조치명령 위반으로 명찰이 노랑색이었다. 박정희 정권은 서울구치소 5개월 수감 후 군사재판 2심 때 안양교도소로 이감시켜서 독방에 처넣었다.

 

추웠다. 다치가와씨는 일본에 연락하여 내복과 슬리핑백을 영치받아 비교적 따듯한 겨울을 보내던 중 하루 15분 정도 허락되던 운동시간에 한국의 민주화 투사 장영달이 너무 추워서 얼어 죽을 것 같다는 하소연을 듣고 스스로 미안하다는 마음을 억누르며 수형생활을 견뎠다.

 

당시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김지하의 오적 사건과 김동길 교수의 수감은 당시 민주화 투쟁을 위한 진실성이 현재에 이르러 변절자 혹은 보수우파의 입도구가 되어 과거와는 전혀 다른 극우파적 행보로 변절자의 말로를 스스로 보여주고 있어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는 유신 치하 한국이 민족해방 계급투쟁이 아닌 단지 민주화운동으로 파악했다. 민주화 운동 세력을 도왔을 뿐이었는데, 남산 중정의 대공 5과 과장이 반공으로 몰아 박정희를 반대하고 적화통일을 선동하는 세력으로 몰아붙이다 도무지 답변이 변하지 않자 긴급조치 위반 20년 언도를 받아 서울구치소와 안양교도소를 거쳐 10개월 만에 강제추방 당했다.

 

다치가와씨에게 물었다. 억울하지 않냐고? 없단다. 한국을 사랑해서 강원도 춘천 여인과 결혼했다. 그후 이혼을 겪고 지금껏 혼자 살아왔어도 서운함은 전혀 없다고 했다. 두 살 아래, 감방동기인 장영달씨(전 의원, 우석대학총장)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지금도 형제처럼 지낸다고 했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이철, 유인태 등도 사형을 언도받았다. 라면이나 사 먹으라고 35$을 전달했는데, 대한민국 국가전복 자금으로 반공법 적용을 받아 사형을 언도받았다고. 수감 후 이듬해 석방된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법치국가로 여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이 나라 현재의 보수와 진보는 반공법에 각인된 군부독재 정권의 유산을 고스란히 물려받아 민주화운동과 통일세력을 빨갱이로 내모는 역사적 사법적 후진성과 사법부의 타락 관행에 젖어 있어 선진화된 국민을 위한 입법마저도 마타도어 하는 안타가운 나라라고 말한다. 

 

다치가와씨는 일본의 일간현대 기자를 명퇴한 후 프래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DJ)을 여러 번 인터뷰하기도 했다. DJ가 미국망명 시부터 한국의 민주화 운동을 알려온 알림꾼 역할을 해왔다. 그는 수감생활로 부모에게 고통을 안겼다. 나이 73세. 전남 명예도민으로서 한국을 위한 숨은 조력자이다. 또한 지한파(知韓派)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받아야 할 일본인이임에 틀림없다.


백천명의 우군을 만드는 것보다 단 한명의 적군을 보듬는 것이 정치요 외교다. 국회의원 대통령 도지사 등 명망가들도 가까운 식솔들의 변심으로 권좌에서 내려오게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글로벌 무역장벽과 통신장벽 제거시대에 아직도 진보를 반공법 사형수 긴급조치 위반 사범으로 만들려는 시도가 이명박근혜 정권부터 내밀히 추진돼왔다는 사실에 실로 경악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다치가와씨는 호프타임에서 내게 말했다. “내가 죽기 전에 일본을 한번 방문해달라고...” “일본은 좋은 나라”라고 말했다.

 

다치가와씨야말로 이제 그레이트 전남 명예도민이자 일본인 노장 기자이다. 그는 일본어 전남 관광가이드 책을 만들기 위해 현지 취재를 다니는 등 동분서주하고 있다. 혼(魂)을, 한국에서 40년 간 불태운 인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해온 올바른 언론인의 전형이다.  

 

samsohun@hanmail.net

 

*필자/삼소헌 이래권. 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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