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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첫 번째 장편소설 '실내인간'

박소영 기자 | 기사입력 2013/08/26 [09:59]

'보통의 존재' 이석원 첫 번째 장편소설 '실내인간'

박소영 기자 | 입력 : 2013/08/26 [09:59]

▲     © 이미지 제공 출판사 달
실연의 충격으로 직장도 그만둔 채 집에서 칩거하던 용우는 어느 날 집주인으로부터 나가라는 통보를 받고 낯선 곳으로 쫓기듯 이사를 가게 된다. 가진 돈으로 서울 안에 살 곳을 찾을 수 없어 이곳저곳을 헤매던 용우는 뜻밖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동네에서 싸고 괜찮은 집을 발견하게 되는데 집주인은 나타나지 않고 관리인이라는 웬 고약한 인상의 노인과 계약을 하고는 그곳으로 이사를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시비를 거는 노인과 신경전을 벌이며 새 집에 적응해가던 어느 날 용우는 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앞집 남자와 친구가 된다.<편집자 주>


원하는 것을 얻기위해 평생을 반대 방향으로 달려오다
한 남자의 이야기 간절함의 어긋남 ‘인생이란 그런 것’

 
[주간현대=박소영 기자]4년 전, 서른여덟의 작가 이석원은 첫 산문집 ‘보통의 존재’를 통해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정밀하게 한 인간의 내면과 일상의 풍경을 보여줬다. 그가 꺼내놓은 내밀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잊고 있었던 외로움과 심연을 맞이했고 그의 이야기가 곧 자신의 이야기와 같음을 느꼈다.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랐을 때 머릿속에는 이 말 한마디가 맴돌았다.

‘우리가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결국에는 보통의 존재로밖엔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그 사실은 특별하지 않는 삶을 사는 우리들에게 위로가 됐고 평범한 생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게 했다. 그렇게 ‘보통의 존재’에 대해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했던 작가 이석원이 4년 만에 장편소설 ‘실내인간’으로 돌아왔다.

한 남자의 고백
스스로를 밀실에 가둬버린 남자의 고백, 우리는 무엇으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이석원의 글은 빠륵 그리고 선명하게 읽힌다. 4년간 치밀하게 설계된 이야기에 재미를 더하는 독특한 사건, 사고들. 그러면서도 ‘보통의 존재’가 그랬던 것처럼 독자를 순간순간 멈춰서게 하는 짙은 여운들. “정말 사랑했던 사람과는 영원히 못 헤어져. 누굴 만나든 그저 무덤 위에 또 무덤을 쌓는 것 뿐이지”

이야기는 실연의 상처를 입은 주인공 용우가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가 앞집에 사는 한 남자를 알게 되면서 시작된다. 활달하지만 의존적이며 유약한 성품을 지닌 용우는 안 그래도 상처투성이인 상황에서 돌과 같이 단단한 성품에 낙천적이며 유머까지 넘치는 남자의 등장에 열광하며 친형처럼 따르게 된다. ‘실내인간’은 바로 용우가 만난 이 사내 김용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소설은 용우의 시선으로 본 한 사람의 기상천외한 삶을 통해 자신이 쌓은 탑에 갇혀버린 한 존재의 허망한 모습을 속도감 있는 서사와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다. 소설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는 누군가의 모습이 사실은 진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면서 아니 어떤 게 진짜인지조차 모르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서 독자들을 웃을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상태로 몰아간다. 그리고 묻는다. 우리가 옳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것, 소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옳고 의미 있는 것인지를. 또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믿는 것이 얼마나 착각인지를. 그리고 정말 사랑했던 사람을 잊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를.

책 속으로
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까짓 옥상 안쓰면 그만이지.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나는 그 길로 부동산 사무소로 달려가 계약을 했다. 집주인은 오지 않았지만 등기부 등본은 대출 하나 받은 것 없이 깨끗했고, 어째튼 서울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된 것이 기뻤다. 여전히 난 서울을 벗어나게 되면 그애와 정말로 멀어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었기에 죽도록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지고 나면 다른 사람과 하는 첫번째 섹스에서 사람은 아득한 슬픔을 느끼지. 난 삼 년전에 이별을 했거든. 좋아했어. 정말 많이. 그런데 헤어졌어. 헤어지는데 이유가 있나? 있다 해도 그건 누구도 알 수 없는 거야.
 
난 내 몸 위에 포개져 있는 여자의 벗은 몸을 보면서도 그녀와 내가 왜 헤어졌어야 했는가를 생각하고 있었지. 아니 오히려 더 또렷해졌다고나 할까? 난 궁금했어. 도대체 왜 이런 곳에서 이 낯선 여자와 내가 한 침대에 있는 거지? 왜 넌 날 이렇게 내버려 두는 거지? 내가 알 수 있는 건 지난 일 년 반 동안 내가 혼자 살아가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을 했다는 것 뿐이다.
 
더이상 누군가의 연락을 목매어 기다리지도 않고, 혼자서 쇼핑하고 밥 먹고 극장에 가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나는 이제 내가 바라던 그런 사람이 된 걸까. 그래서 더는 누군가와 서로의 인생을 포개는 일 같은 건 할 수 없게 된 걸까.

이런 그에게 제롬은 어느 날 ‘실내인간’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실내인간? 실냉만 있으려고 해서?” “아니” 녀석은 말했다. 그런 게 아니라, 자기가 정해놓은 틀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가려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녀석은 그에 대한 정신과적인 해석도 덧붙였다. 그는 자기가 익숙한 곳, 다시 말해 자신의 능력과 자신감이 최고로 발휘될 수 있는 공간에만 있으려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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