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고용률 절벽?’…누구를 위해 통계수치는 사용되고 있나

고용률, 그저 숫자일 뿐…체감되는 건 ‘분위기’

문병곤 기자 | 기사입력 2018/10/25 [09:14]

‘최악의 고용률 절벽?’…누구를 위해 통계수치는 사용되고 있나

고용률, 그저 숫자일 뿐…체감되는 건 ‘분위기’

문병곤 기자 | 입력 : 2018/10/25 [09:14]

최근 취업률은 ‘절벽’이란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취업자 수, 취업자 ‘증가’수와 같은 단어들로 ‘최악’과 ‘최악은 면했다’를 나누고 있다.  최근 국정감사 과정에서도 통계청이 고용률 관련 통계자료를 공식 공표 전에 했는지 여부에 대해, 혹은 통계청장 인사 논란 등으로 고용률과 관련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논란들은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고용과 관련된 것이니만큼 고용에 대한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을까. 


 

정치·언론계, 고용률 수치 관련해서 “최악 아니면 차악”

취준생 “취업 어렵다는 공포감, 취업준비 몰두하게 한다”

 

▲ 영화 <족구왕>의 한 장면. 주인공 만섭의 기숙사 룸메이트이자 선배 형국은 3년을 ‘꿇고’ 공무원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광화문시네마>  

 

“공무원 시험 준비해라”. 복학 후 기숙사에서 만난 선배 형국은 다짜고짜 만섭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학점은 2.1, 토익 시험은 본 적도 없고 그저 연애가 하고 싶은 식품영양학과 복학생 만섭에게 비수처럼 날아드는 이 말은 꿈보다는 생계가 먼저인 작금의 캠퍼스 현실을 보여준다.

 

영화 <족구왕>의 주인공 만섭은 잘난 것 하나 없지만 족구만큼은 좋아하는 복학생이다. 군대 전역 후 학교에 돌아왔는데 족구네트가 없자, ‘족구네트 재건’을 위한 서명을 벌일 만큼의 열정도 있다. 하지만 이런 그를 바라보는 ‘3년 꿇은 공무원 수험생 선배’ 형국의 시선은 따뜻하지 않다. 심지어 그도 한 때 족구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음에도 말이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고용절벽’ 문제에 대해서 여야의 진영 간 싸움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고용절벽’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청년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임을 직시해야한다. 취업준비자들에게 고용문제는 지표가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 영화 <족구왕>의 포스터. <족구왕>은 최근 캠퍼스 내에서의 취업과 꿈에 대한 블랙코미디 영화다. <사진제공=광화문시네마>  

 

고용 절벽

지난 10월12일 통계청이 발표한 9월 고용동향을 보면 9월 취업자 증가수는 4만5000명으로 전년 동월 31만4000명 증가에 비해 26만9000명 적다. 9월 고용률은 전년 동월 61.4%에서 61.2%로 0.2%p 감소했고, OECD기준(15~64세) 고용률은 66.9%에서 66.8%로 0.1%p 감소했다. 실업률은 3.3%에서 3.6%로 0.3%p 증가했다.

 

이에 언론들은 제각기 반응을 내놓았다. 한 언론은 이 같은 상황에 대해 ‘최악 위기’, ‘고용 충격’, ‘참사 수준’이라며  ‘실업 대란이 최근에는 나이에 상관없이 악화 일로를 걷는 모양새’와 같은 다소 과격한 단어까지 사용하고 있다. 

 

보수 언론으로 유명한 한 언론은 “국내 민간 연구기관뿐만 아니라 국책 연구기관, 해외 기관까지 모두 경기 하강을 진단할 때에도 회복세 판단을 고집했으나 지속적인 경제지표 악화에 손을 들고 말았다”며 현재 고용문제에 대해 정부 탓하기에 전념하고 있다. 

 

반면 진보적인 색채로 분류되는 한 언론은 “지난 9월 취업자 수가 한해 전보다 4만5천명 늘어나면서 7~8월 두 달 연속 1만을 밑돌던 ‘고용 참사’ 수준을 겨우 피했다”며 “취업자 수 증가폭이 마이너스로 전환될 것이란 우려가 컸지만, 추석 연휴로 일부 제조업와 도·소매업의 취업자 수 감소폭이 둔화하면서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며 현 상황에 대해 평했다. 

 

또다른 한 언론은 “취업자 증가 수는 인구 요소를 고려하지 않는 수치로 의미있는 고용 수준은 고용률, 실업률 같은 고용지표를 봐야 알 수 있다”며 “올해 9월 고용 수준은 지난해와 비교하면 청년층을 제외하고 약간 나빠졌다. 하지만 지난해 고용률은 9월 뿐 아니라 상반기와 하반기, 연간 모두 역대 1위를 기록했다는 기저효과를 고려해야 한다. 고용 수준 변동과 현재 고용 수준은 별개로 판단할 문제”라며 올해 고용 상황 변화는 인구절벽 문제가 큰 변수로 작용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현재 언론들은 고용상황에 대해 ‘최악’과 ‘최악은 면했다’라고 선을 긋고 있다. 이는 정치계도 마찬가지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장밋빛 환상만 좇는 정책으로 국민을 들뜨게 했다가, 뒷감당에 허덕이는 모습은 결코 국정을 담당하는 책임 있는 모습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 역시 “문재인 대통령이 결과가 충분하지 못했다는 점을 인정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야당이 정책과 재정 방향 수정을 촉구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같은 비판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소득 주도 성장을 두고 쏟아져 나오는 비판을 정치공세로 규정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고용 여건이 악화한 걸 두고 소득 주도 성장 때문만이 아니라며, 과거 정부가 토목이나 부동산 경기 부양책을 내놨는데 일시적인 효과만 냈을 뿐 근본적인 대책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정부와 여당을 흔들고 발목만 잡으려는 무책임한 정치 공세라고 생각한다. 고용 문제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지, 어느 한 가지 문제 때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보수 정치권에서 ‘경제’와 ‘고용’은 여당의 지지율을 깎는 마법의 단어처럼 여겨지고 있다. 실제로 제3차 남북정상회담(9월18일~20일) 이후 상승세를 이어오던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10월 초 60%대 중반에서 소폭 하락했던 이유도 경제·민생 불안감 관련 보도의 증가 때문이기도 했다.

 

▲ 낮은 고용률에 관한 최근 논란들은 오히려 취업준비자들에 대한 공포감과 두려움만 확산시키고 있다. <사진출처= 픽사베이> 

누구를 위한 최악인가

최근의 고용 지표 관련 논란에서 가장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실업자들이다. 취업률에 대한 체감은 이를 나타내는 지표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이는 지표에 머물 뿐이다. 결국 취업에 대한 체감을 만드는 것은 말 그대로 몸에 직접 와 닿는 ‘사회적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과 언론들은 지표를 이용해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곡학아세’해서 이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정작 정치권과 언론이 제시하고 ‘최악’혹은 ‘차악’으로 치부하고 있는 고용률은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와닿지 않고 있다. 현재 취업준비생인 민 모씨(26세)는 이 같은 지표에 대해 “이런 지표들이 체감이 될 리가 없다”며 “수치가 몇 프로 증가하고 감소하는 것은 그리 느껴지지가 않는다. 일본의 경우처럼 취업률이 눈에 띌 정도로 높지 않은 이상에야 결국 취업률에 대한 체감은 그게 그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오히려 느껴지는 것은 통계나 지표보다 사회적 분위기”라며 “이미 고용이나 취업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최악이다. 취업이 어렵다는 사실에 대한 공포감과 두려움이 취업준비에 몰두하게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민 씨의 말처럼 최근 취업 경쟁에서 낙오한 대학생이 어학연수나 재수강 등을 하거나 졸업을 미루면서, 대학교를 5년 이상 다니는 일은 이미 다반사가 됐다. 또한, 취업의 어려움으로 인해 전문자격 획득이나 편입, 전과 등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여 재학기간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국가 전체적으로 인재의 낭비를 초래하는 일이며, 불필요한 사회적 비용이 지출되는 일이다.

 

이런 현실은 공시족을 양산할 때 단단히 일조한다.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는 인원만 무려 30만 명 내외며, 자격시험에 붙은 사람이 대폭 늘어나서,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도 일자리를 못 얻는다. 자격은 취득했지만 TO가 나는 것과는 별개다. 일단 공석이 생겨 발령이 날 때까지 대기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런 사람들도 고스란히 실업자 신세다.

 

이처럼 정치권과 언론들이 만들어낸 분위기에 가장 피해를 받는 것은 오히려 그들이 걱정하고 위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다. 꿈은 ‘취업의 두려움’이란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마련이다. 이쯤 되면 과연 정치권과 언론들이 주장하고 있는 것들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혹은 누구를 향해 있는 것인지 생각해봐야할 것이다. 과연 고용관련 지표들은 실업자들을 향해 있을까.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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