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 투 JSA’, 남북 평화, 번영, 소통의 장으로 발전시키기를...

판문점은 대결이 아니라 평화이고 낙관이고 미래의 실험장

이계홍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8/10/26 [10:09]

‘웰컴 투 JSA’, 남북 평화, 번영, 소통의 장으로 발전시키기를...

판문점은 대결이 아니라 평화이고 낙관이고 미래의 실험장

이계홍 칼럼니스트 | 입력 : 2018/10/26 [10:09]

 

▲ 판문점. ©사진공동취재단

▲판문점.     ©사진공동취재단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남북 초소와 병력·화기 철수 작업이 25일 완료됐다.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으로 JSA 무장화 조치가 취해진 지 42년 만에 비무장 지대로 되돌아온 것이다. 남북이 '9·19 군사합의서' 이행 조치로 초소와 병력·화기가 철수됨으로써 JSA 비무장화 조치가 마무리됐다.

 

JSA의 초소와 병력, 화기철수가 완료되고, 남북 민간인이 다음달부터 자유왕래가 가능하다고 하니 자연스럽게 제2웰컴 투 동막골시대를 꿈꿀 수 있다.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병력·화기 철수작업이 완료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이 떠올랐다. 노무현 정권시절 본 영화가 아픈 추억으로 뇌리에 남아있는 것은 영화가 주는 아련한 감동 때문이다. 머리가 돌아 살짝 맛이 간 소녀(강혜정)의 순수성과 마을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이 오래도록 머리 속에 각인되었었다.

 

동막골은 물론 가상의 마을이다. 그러나 지상에 없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와 소망에 따라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는 공동체다. 삶은 관성적 태도보다 상상력이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본다.

 

동막골 사람들의 순박하고 인간미 넘치는 삶은 비정하고 냉정한 분단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상상 속에서 꿈꿔왔던 그리운 유토피아였다JSA에 병력과 화기가 철수하고, 남북 주민과 관광객이 자유로이 내왕할 수 있다고 하니 결코 비현실적인 마을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둡고 답답하고 꽉 막힌 길도 선한 의지가 작동하면 뚫릴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주는 순간이다.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 전쟁이 한창이던 때, 태백산맥 줄기의 한 산골마을에 미군 전투기 한 대가 추락하면서 시작된다. 추락한 전투기 안에는 연합군 미군 병사가 부상당한 채 꼼짝못하고 있다. 동막골에 살고있는 살짝 맛이 갔으나 순진무구한 소녀가 그를 발견하고 마을로 안내하고, 또 낙오된 인민군 일행, 대오에서 이탈한 국군 일행도 마을로 이끈다. 이른바 국군, 인민군, 연합군이 동막골에 모이게 되고, 이들은 처음 서로 긴장된 대치상황을 보이지만 평화롭게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에 동화되어 더불어 어울려 우정을 나누게 된다. 결국 폭격으로 소녀를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희생되고 마을이 초토화되는 비극을 맞이하지만 바탕에 관류하는 휴매니티는 우리들 가슴을 촉촉이 적셔주기에 충분했다.

 

영화에서, 남한과 북한의 군인이 서로 대치하지만 양측 모두 군복을 벗으면 결국 같은 사람, 같은 민족, 진작부터 친하지 못해 아쉬운 동료, 벗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화에서 남북이 함께 어울리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극장 문을 나서면, 엄혹한 대결의 현실과 맞부딪쳐 더 깊은 슬픔 속에 갇혔던 것도 사실이다. 영화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가도, 지난 이명박 박근혜 시대의 대결주의를 생각하면 절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전쟁과 공포가 일상이 되었던 지난날, 증오와 저주를 심어주던 후유증은 절망 뿐이었다. 영화 속에서나마 치유를 받았던 아름다운 화해들이 곱으로 상처가 되어 가슴을 짓눌렀다.

 

 

▲ 판문점 평화의 집     ©사진공동취재단

 

마침내 정권이 바뀌고, JSA 병력·화기 철수와 비무장 공동 운영이라는 계획이 발표되었다. 견고한 냉전의 빙벽이 녹아내리는 현장을 목격하는 감격은 크다. 따라서 JSA를 제2의 동막골로 설계할 만하다. 치유와 상생의 땅으로 만드는 것이다. ‘웰컴 투 동막골에서처럼 이념상의 갈등도, 전쟁의 아픔도 접는 우리들 마음속에 꿈꾸는 따뜻한 이상향, 누구나 그리워하는 화해와 상생의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유엔사 3자는 JSA 남북지역에 각각 초소 교차 설치 작업을 하는데, JSA 북측지역 '판문점 다리' 끝점에 우리측 초소가 설치되고, 판문점 진입로의 우리측 지역에는 북한 측 초소가 새로 설치된다. 이들 초소 설치가 완료되면 이르면 다음 달 중 남북 민간인과 외국인 관광객이 JSA 남북지역을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고 한다.

 

본래 JSA에는 정전협정의 정신에 따라 군사분계선(MDL) 표식물도 없었고 자유롭게 양측을 넘나들 수 있었다. 남북 경비 초소도 혼재되어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 이후 군사분계선 표식물로 콘크리트 턱을 설치하고 남북 초소도 각각 분리됐다. 상호 대화도 금지됐고, 서로 감시하고자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서로를 노려보았고, 권총을 차고 근무를 했다.

 

이것이 42년만에 원래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기왕에 돌아온 JSA라면, 상호 불신과 분노의 마음을 녹이고, 대결의 마음을 정화시키고 치유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기를 바란다. 이를 위해 JSA를 '동막골'처럼 남북 화해의 이상향으로 건설하라고 제안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비무장지대가 군사분계선을 기본 선으로 남측 2km, 북측 2km로 설정되었으니 남북 4km, 동서 4km를 공동경비구역으로 확장, 조성한다. 그 안에 국내 및 해외 관광객은 물론 남북의 주민들이 들어와 서울이나 평양에서와 같이 시장을 세우고, 물물교환을 하고, 만남의 장소로 활용한다. 남북의 청춘 남녀가 만날 수 있는 데이트 코스도 만들고, 공연장 전시장 연주회장을 만든다. 국제회의를 할 수 있는 컨벤션센터를 만든다. 서울과 평양의 축소판을 만드는 것이다.

 

순수한 마을이라고 해서 갈등이 없을 수 없다. 서울의 저자거리처럼 물건을 흥정하며 다투기도 하고, 술 먹고 행패를 부릴 수도 있다. 이런 것도 폭넓게 수용하면서 합의에 도달해가는 과정을 밟는다. 보수언론은 부정적인 것만 부추겨 갈등을 증폭시키겠지만, 그러거나말거나 인간사에서 있을 수 있는 일상을 살아간다.어느 세상이나 무결점의 사회는 없으니까.

 

이를 계기로 휴전선의 몇군데, 즉 동해안, 내륙지방, 서해안 쪽에도 똑같은 공간을 만들어 평화를 일상화하는 실험을 한다. 굳이 통일이란 말을 내세우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관통하고 이념이 용해되는 계기로 삼는다. 한마디로 장을 보러 가는 것처럼 남북 주민이 만나 소통하면서 70 수년의 거리를 메우는 것이다. 생태환경은 보존하되 남북의 이질적 요소를 줄여나가고, 시장을 통해 상품을 거래하는 또다른 동막골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그러면서 웰컴 투 동막골에서 나온 대화들도 곱씹으며 웃음을 나누기도 한다.

 

머리가 살짝 간 소녀(강혜정)

봤나? 팔을 이래이 이래이 빨리 막 휘저으면 이 다리가 빨라지미, 이 다리가 빨라지면 팔은 더 빨라지미~ 그러면 저 땅이 뒤로 막 지나가미~ ....빨라..”

 

남측 표소위(신하균)가 북측 리수화(정재영)에게 한 말.

"이렇게 말고 다른 곳에서 만났으면 우리 진짜 재미있었을 텐데...안 그래요? "

 

 

▲ 이계홍 칼럼니스트

그 어떤 이념과 갈등도 순화시키는 마법과 같은 곳, 동막골. 그렇다고 그 마법이라는 게 특별한 것도 아니다. 전쟁 비극 속에서 각박하게 대치하며 살아오다 보니 까맣게 잊어버렸던 것 뿐이다시대가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서 노무현 시대에 키웠던 상상력을 현실화할 수 있다는 데 사는 희망을 느낀다.

 

미국의 사회학자 그레그 이스터브룩은 역저 역사의 방향성(원제:The Arrow of history)에서 낙관주의는 역사의 화살을 추진시키는 활과 같다고 했다(이 책은 국내에서 비관이 만드는 공포 낙관이 만드는 희망:낙관주의적 상상력 없이 인류의 진전은 없다라는 이름으로 움직이는 서재가 출판했다).

 

어쨌든 증오와 대결을 부추기며 이익을 추구해온 음험한 냉전주의자들의 비관주의(국내든 외세 누구든)는 낙관주의를 결코 이길 수 없다. 비관주의적 역사관에서 출발한 냉전의 시대를 끝내고, 낙관주의적 상상력으로 한반도의 평화 비전을 실천하는 실험장을 JSA에서부터 시작해보자.

 

khlee0543@naver.com

 

*필자/이계홍. 소설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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