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 ‘골목 인문학’…그 골목이 품고 있는 삶의 온도

역사와 예술, 누군가에겐 고향인 골목에 대하여

문병곤 기자 | 기사입력 2018/10/28 [11:39]

[이주의 책] ‘골목 인문학’…그 골목이 품고 있는 삶의 온도

역사와 예술, 누군가에겐 고향인 골목에 대하여

문병곤 기자 | 입력 : 2018/10/28 [11:39]

▲ <골목 인문학>의 표지 <사진제공=인물과사상사>


부부 건축가가 말하는 '골목이 품고있는 인문학'

도시의 모세혈관 '골목'이 건강해야 도시가 산다

 

“나의 어린 시절을 키운 것은 ‘팔 할이 골목’이다” 책 <골목인문학>의 공동저자 임형남·노은주 건축가는 서정주 시인의 ‘자화상’에 쓰인 유명한 문구를 빌려 이렇게 책을 시작한다. <골목 인문학>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 부부가 태어나서 자라 가장 익숙한 서울의 골목, 여행으로 혹은 일로 다녀온 우리나라 여러 지역의 아름다운 골목, 그리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좋아하는 몇몇 나라의 숨겨진 골목 등을 통해 골목의 풍경과 역사를 그려낸다. 그 풍경과 역사에는 사람 이야기가 있고, 동네 이야기가 있고, 도시 이야기가 있다. 인문학이란 궁극적으로 사람 이야기이며 사람의 자취라고 보면, 골목이야말로 사람의 자취와 사람 이야기가 듬뿍 담겨 있는 나이테와 같은 장소라고 저자들은 말한다. 

 

‘인문학’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어서 최근 유행하는 인문학 서적의 일부처럼 보일 수 있지만 책은 여러 골목 사이사이에 켜켜이 쌓인 ‘우리’의 역사를 설명한다. 어떤 골목을 마주치느냐에 따라 책은 근현대의 역사서가 되기도 하고 에세이집이 되기도, 문학평론집이 되기도 한다. 

 

저자들은 종로나 을지로의 골목길에선 시인이자 소설가 그리고 건축가이기도 했던 이상을 떠올리고 서울 입정동의 부근의 골목에선 자신의 어린시절을 떠올린다. 서울 남창동과 북창동의 골목에선 조선말기 지역별로 거둬들이는 공물을 쌀로 통일하는 제도인 ‘대동법’이 시행된 이후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한다. 저자들은 때로 서울의 골목들 뿐 아니라 지방의 골목들, 그리고 중국이나 일본의 골목들까지 파고들기도 한다.

 

미아리고개에 올랐다. 그런데 정상에 도열하고 있던 호떡을 팔던 가게들도 다 없어졌다. 그 호떡 가게들은 딱 쟁반만 한 크기의 호떡을 팔았는데 하나만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였다. 가격도 저렴하고, 밀가루를 얇게 펴서 그 안에 꿀을 넣어 먹기도 좋았다. 한참 먹성이 좋았던 우리는 그곳에 자주 갔고 가끔 많이 먹기 시합도 했다. 플라타너스가 풍성하게 그늘을 드리우는 곧게 펼쳐진 성신여자대학교 앞으로 난 길을 걸었고, 한옥이 그득했던 골목길을 빗속에서 더듬으며 걸었다. 물론 많은 것이 없어지고 풍경이 많이 변했다. 그러나 나의 기억은 돈암동이라는 공간 위로 예전의 풍경을 복원해 환등기처럼 펼쳐 보여주었다. 나는 ‘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해내며 예전에 친구들과 벨을 누르고 도망쳤던 한옥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본문 268~269쪽)

 

소설가 김영하는 도쿄 번화가를 ‘볼륨을 줄인 대형 텔레비전’ 같다고 했다. 사람이 많고 도시는 크고 넓고 또한 복잡하다. 그러나 그 안은 고요하다. 일본에 가면 문득 그 고요함이 익숙하지 않으며 때론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화창한 일요일 오후 하라주쿠 큰길가 인도를 걸어보면 알게 된다. 대표적인 번화가인 그곳은 일요일을 즐기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그득하지만, 꽤 긴 거리를 걷는 동안 내 가방을 치는 사람도 없고 내 어깨에 부딪히는 다른 어깨도 없다. 극성이 같은 자석처럼 사람들 사이에는 언제나 적당한 거리가 유지된다. 번화가가 소리를 줄인 대형 텔레비전 같다면, 일본의 골목은 그 반대다. 나는 영상은 사라지고 소리만 두런두런 남은 메지로 골목에서 500년도 훨씬 더 된 옛이야기를 오랫동안 듣고 있었다. (본문 198쪽)

 

도시는 사람의 몸과 똑같다. 큰길이 굵은 핏줄이라고 보면 큰길 뒤로 뻗어 있는 길들은 가는 핏줄이다. 큰길 뒤로 이어지기도 하고 끊어지기도 하는 그 길이 골목이다. 도시에는 무수한 골목이 있다. 사람의 몸처럼 모세혈관 역할을 하는 골목이 잘 살아 있고 건강해야 도시도 생기 있게 살아난다. 골목은 도시의 맨얼굴이며 도시의 정체성이며 삶의 여유를 주는 공간이다. 골목에는 달팽이 속도처럼 느리기 그지없는 시간이 시루떡처럼 쌓여 있고, 무수한 집과 흉터 같은 삶의 웅숭깊은 사연이 오롯이 담겨 있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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