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베푸는 마음이 남는 장사 아닌가요?

"용서하고 베풀었다고 자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김덕권 시인 | 기사입력 2018/10/30 [07:37]

용서와 베푸는 마음이 남는 장사 아닌가요?

"용서하고 베풀었다고 자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김덕권 시인 | 입력 : 2018/10/30 [07:37]

▲ 김덕권 시인   

혹시 인간관계에서 배신(背信)을 당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젊어서 한 때 여러 가지 사업을 할 적에 배신으로 치를 떨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인간관계에서 배신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 진리가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조금 알 나이가 되어서야 그 배신의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제 자신에게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터는 제 자신에 대한용서(容恕)는 물론 상대방의 배신까지 용서하게 되었고, 그 모든 미움마저 감사한 마음으로 돌렸습니다. 그리고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오히려 더 배려(配慮)하고 더 베푸는 정도가 되었지요.


용서(容恕)란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꾸짖거나 벌을 주지 않고 너그럽게 보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란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미운 감정이 쌓여가는 공격적인 마음을 가지고 복수(復讐)와 같은 부정적인 정서(情緖)를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풂이란 불가(佛家)에서는 보시(布施)라고도 말하는데, 자비심으로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佛法)을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이 보시는 육바라밀(六婆羅密)의 제 1 덕목이지요. 그러니까 자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조건 없이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중생구제를 목표로 하는 이타정신(利他精神)의 극치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보시를 행할 때는 베푸는 자도, 받는 자도, 그리고 베푸는 것도 모두가 본질적으로 공(空)한 것이므로 이에 집착하는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보시에도 세 가지가 있습니다. 재시(財施) · 법시(法施) · 무외시(無畏施)의 세 가지이지요.


재시는 능력에 따라 재물을 보시하여 기쁨을 주는 것을 말하고, 법시는 진리를 구하는 자에게 아는 만큼의 불법을 설명하여 수련을 돕는 것이며, 무외시는 어떤 사람이 공포에 빠졌을 때 어려움을 대신해 그를 공포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이 원망 까지도 감사로 돌린 ‘산삼도둑’이라는 글이 있어 이를 전합니다.


【나무꾼 박씨는 걱정이 태산입니다. 혼기를 한참이나 넘긴 딸이 올해는 가겠지 했는데 또 한해가 속절없이 흘러 딸애는 또 한 살 더 먹어 스물다섯이 되었지요. 사실 따지고 보면 딸년 탓이 아니라 가난 탓입니다. 박씨는 일 년 열두 달 명절과 폭우가 쏟아지는 날을 빼고는 하루도 빠짐없이 산에 올라 나무를 베서 장에 내다 팔지만 세 식구 입에 풀칠하기도 바쁩니다.


가끔씩 매파가 와서 중매를 서지만 혼수(婚需) 흉내 낼 돈도 없어 한숨만 토하다 보낸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세상에 법 없어도 살아갈 착한 박씨는 한평생 배운 것이라고는 나무장사뿐인데, 요즘은 몸도 젊은 시절과 달라 나뭇짐도 점점 작아지네요.


눈이 펄펄 오는 어느 날, 그는 지게에 도끼와 톱을 얹고 산으로 갔습니다. 화력 좋은 굴참나무를 찾아 헤매던 박씨는 갑자기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새하얀 눈 위로 새빨간 산삼(山蔘) 열매가 보석처럼 반짝이는 것 아닌가요! 그 산삼은 자그마치 일백년 묵은 동자삼(童子蔘)이었습니다.


박씨가 백년 묵은 산삼 한 뿌리를 캤다는 소문은 금방 퍼져 저잣거리의 약재상이 찾아왔습니다. “박서방! 산삼을 들고 주막으로 가세. 천석꾼 부자 황참봉이 기다리고 있네.” 박씨는 이끼로 싼 산삼을 보자기에 싸들고 약재상을 따라 저잣거리 주막으로 갔습니다. 황참봉과 그의 수하들이 술상을 차려놓고 박씨를 기다리고 주막을 제집처럼 여기는 놀음 꾼들, 껄렁패들도 산삼을 구경하려고 몰려들었습니다.


마침내 박씨가 보자기를 풀자 일백 년생 동자산삼이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와~! 모두가 탄성을 지를 때 누군가 번개처럼 산삼을 낚아채더니, 이런? 쳐 죽여도 시원치 않은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일백년 묵은 동자삼을 개뼈다귀 같은 노름 꾼 놈이 와그작와그작 씹어 먹는 것이 아닌가요? 주막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황참봉의 수하들이 산삼도둑의 멱살을 잡아 올려보니, 폐병으로 콜록콜록 하는 놀음쟁이 허골 이었습니다. 제대로 놀음판에 끼지도 못하고 뒷전에서 심부름이나 하고 고리나 뜯는, 집도 절도 없는 젊은 놈팡이 허골은 코피가 터지고 입술은 당나발처럼 부어오른 채 황참봉 수하들에 의해 방바닥에 구겨져 버렸습니다.


“이놈을 포박해서 우리 집으로 끌고 가렸다. 이놈의 배를 갈라 산삼을 끄집어 낼 테다.” 황참봉의 일갈에 허골은 사색이 되었습니다. 바로 그 때 박씨가 나섰습니다. “참봉어른, 아직까지 허골의 뱃속에 있는 그 산삼은 제 것입니다요. 이놈의 배를 째든지 통째로 삶든지 제가 하겠습니다.” 듣고 보니 황참봉은 할 말이 없어졌습니다.


박씨는 허골을 데리고 나와 언덕마루에서 그를 풀어줬습니다. 눈발 속으로 허골이 사라진 후 아무도 그를 본 사람은 없었습니다. 박씨는 막걸리 한 사발을 마시며 크게 한숨을 토했습니다. “그걸 팔아 딸애 시집보내려 했는데… 배를 짼들 산삼이 멀쩡할까, 내 팔자에 웬 그런 복이….”


3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봄날, 예나 다름없이 박씨가 나뭇짐을 지고 산을 내려와 집 마당으로 들어오니, 갓을 쓰고 비단 두루마기를 입은 젊은이가 넙죽 절을 하는 게 아닌가요. “소인 허골 입니다.” 피골이 상접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얼굴에 살이 오르고 어깨가 떡 벌어져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허골은 산삼을 먹고 폐병이 완치돼 마포나루터에 진을 치고 장사판에 뛰어들어 거상(巨商)이 되었던 것입니다. 꽃 피고 새 우는 화창한 봄날, 허골과 박씨 딸이 혼례를 올렸습니다. 박씨는 더 이상 나무지게를 지지 않고 대궐 같은 기와집에 하인을 두고 살았다고 하네요.】


어떻습니까? 용서와 베푸는 마음이 남는 장사 아닌가요? 그렇다고 용서하고 베풀었다고 자랑을 해서는 안 됩니다. 복을 지으면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한탄하면 오던 복도 달아납니다. 복을 지으면서 칭찬을 받아 버리면 그 복의 반은 이미 받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내가 복을 지음이 부족함을 생각하고 더욱 원수를 용서하고 더 베푸는 사람이 되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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