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北어린이 도와 온 이기범 교수가 전하는 북한의 사람들

어린이들 위한 대북지원…우유공장·소아병원 지어

문병곤 기자 | 기사입력 2018/10/30 [09:33]

20여년 北어린이 도와 온 이기범 교수가 전하는 북한의 사람들

어린이들 위한 대북지원…우유공장·소아병원 지어

문병곤 기자 | 입력 : 2018/10/30 [09:33]

대북지원과 협력 사업에는 여러 갈래와 방법론이 있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식량, 현금, 물품, 교육 등의 다양한 대북지원 활동을 해왔다. 하지만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했던 대북지원들에 대해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 ‘퍼주기’논란이 계속된 것도 사실이다. 대북지원의 목표인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북한 주민들에 대한 생활적 개선이 목적이 돼야하는데, 대북지원이 남측이 목표한 바와 다르게 북한에서 가장 부유한 평양에서만 대북지원이 이뤄지고 있으며 오히려 이 것이 북한 체제 선전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에 반해 실제로 북한의 아이들은 열악한 상황에서 추위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다. 어린이들은 사상과 체제를 넘어서 인권적인 차원으로 바라봐야한다. 더욱이 한민족인 북한의 아이들이라면 우리는 더욱 북한의 아이들을 함께 돌보아야 할 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기범 “북 어린이 돕는 일, 사회 변혁 첫걸음 될 것”

북녘 사람들의 속내와 살아가는 모습 생생하게 담아

“사람들의 만남이 남북이 평화의 길로 가는 지름길”

‘사회적 상상력’, 남북 간 그어진 수많은 경계 없앨 것

 

▲ 책 <남과 북 아이들에겐 철조망이 없다>의 표지 <사진제공=보리 출판사>

 

“왜 어린이를 위한 대북활동을 하냐구요? 대북 활동을 처음 하던 시기인 1990년 중반에 북녘의 형편이 어려워서 어린이들이 가장 크게 희생을 당했습니다. 예를 들면, 누구나 어린 시절에 설사를 겪고 수액을 맞아서 금방 낫지만 북녘 어린이들은 약이 없어서 설사로 많이 죽어 갔어요. 약품과 식품을 보내서 생명을 살리고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울 수 있으니 그런 일은 가장 먼저 해야 할이라고 보았습니다. 또 아이들은 조금만 도움의 손길이 닿아도 잘 회복합니다. 어린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인데다 도움의 효과도 가장 크니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것이지요.”

 

책 <남과 북 아이들에겐 철조망이 없다>의 저자 이기범의 말이다.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콩우유공장, 연필공장, 어린이병원을 만드는 일을 해오고 있는 그는 남북 어린이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북녘을 오가면서 분단의 경계를 낮추는 일을 스무 해 넘게 해 오고 있다. 해송어린이걱정모임(1978)을 시작으로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1996), 어린이어깨동무(1996)를 꾸려 남한의 어린이뿐만 아니라 북한의 어린이들을 위한 일을 계속해 오고 있다. 현재는 숙명여대 교육학부에서 교육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북한어린이 지원단체인 ‘어린이어깨동무’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어린이들을 돕는 이유에 대해 위와 같이 얘기하며 어린이들에게 있는 잠재력을 믿는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어린이들에게 조금의 심리적 보살핌과 물리적 여건을 제공하면 그 잠재력이 스스로 성장하는 힘으로 나타난다”며 “개인에서 사회로 시야가 넒어지면 그렇게 개인이 성장하는 힘이 사회를 변혁하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 어린이를 위한 대북지원 사업을 20여년 간 펼쳐온 이기범 교수 <사진제공=보리 출판사> 


사람, 체제 이상의 존재

이기범 교수는 책 <남과 북 아이들에겐 철조망이 없다>를 통해 ‘북의 공산주의’와 ‘남의 자본주의’라는 체제를 넘어, 사람과 사람이 만나 마음을 열고 함께 협력 사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는, “모든 협력 사업에서 남북의 사람들이 함께 계획을 짜고 일정을 짚으며 현장을 챙긴다. 일이 늦어지면 같이 걱정하고 의견이 달라 다투다가도 일이 잘 끝나면 같이 기뻐한다. 농촌에 처음으로 인민병원을 세우면서는 서로 얼마나 책임을 다하려고 애썼는가를 알기에 존중하고 믿게 된다.

 

남포시소아병원 현대화가 중단됐을 때 서로 얼마나 마음 아파하는가를 알기에 말을 아끼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음을 기약했다. 북녘 사람들에게 ‘믿어 달라’는 말보다 ‘믿게끔’ 행동하고 실천하는 과정들을 이어 오면서 ‘신뢰’는 협력의 결과이지 협력의 조건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시간들이 책 속에 빼곡하게 담겨 있다. 그러면서 북에 지녔던 마음의 경계를 낮추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경험들을 진솔한 목소리로 들려주고 있다.

 

남북이 체제는 달라도 함께 일하느라 애쓴 사람으로, 믿을 만한 동반자로 여기며 마음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존중하는 이야기를 통해 사람은 체제 이상의 존재이고, 한 사람은 또 하나의 세계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나와 함께 일했던 북측 관계자는 한 아이의 아버지이다. 그 사람과 같이 오늘 저녁은 뭘 먹나 고민하고 밤늦은 시간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사람 사는 일로 대화를 나눈다. 나는 왔다가 가는 방문객이고 그이 또한 나에게는 일로 지나가는 방문객이지만 그런 일상을 통해 마음의 경계를 넘어 서로 다가갈 수 있었다.”_(11~12쪽)

 

“강냉이 막걸리 개져오라” 

마흔아홉 번에 걸친 방북 과정에서 이기범 교수는 북의 고위급 인사부터 식당 접대원, 건축 노동자, 승무원, 혁명사적지 강사선생, 농촌 진료소와 평양의학대학병원 의사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들과 만나 협력 사업을 꾸려 왔다. 북을 오가며 접한 사람들 이야기에서 그동안 쉽게 알기 어려웠던 북녘 사람들의 속내와 살아가는 모습까지 생생하게 엿볼 수 있다. 

 

피곤에 젖어 북녘 비행기에 오른 글쓴이에게 나지막한 노래로 위로를 건넨 승무원, 남녘의 한 사람이 평양을 떠나는 마음이 아쉬워 쓸쓸한 노래 한 곡을 뽑자 그럴 때일수록 씩씩한 노래로 사업을 개척해야 한다고 타이르던 작은 술집 복무원, 인터넷이 안 된다고 항의하던 남녘 기자가 술에 취하자 자기 허벅지에 눕혀서는 토닥토닥하던 민족화해협의회 참사, 공장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해 필기구 생산이 어려워지는 바람에 학생들을 위한 사명을 다하지 못한다는 걱정을 털어놓던 수지연필공장의 당 비서와 지배인, 백숙을 어찌 맨입으로 먹느냐며 강냉이 막걸리 한 사발을 건네던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일꾼, 남녘 아이들과 그림편지를 주고받고 돌발 사진도 함께 찍으며 반가움을 나누었던 북녘의 어린이들까지. 

 

글쓴이가 마음을 열고 만난 북녘 사람들 이야기는 애잔한 감동과 함께, 그네들을 ‘체제’로 바라보지 않고 나와 같은 ‘사람’으로 여기며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기대감을 안겨 준다. 이처럼 북녘 사람들에 대해 지녔던 편견과 경계심을 스스럼없이 허물 수 있도록 이끄는 애틋한 사연들이 곳곳에 가득하다.

 

한여름 어느 날 동네 여맹 일꾼이 점심으로 닭백숙을 내왔다. 게다가 백숙을 어찌 맨입으로 먹느냐며 따라온 젊은 처자에게 냉큼 가서 “강냉이 막걸리 개져오라” 하니 황감하기까지 했다. “인차(금방) 옵네다” 하더니 정말 금세 받아온 막걸리 한 사발을 내밀어 무척 달게 마셨다. 구수한 옥수수 내음에 실린 푸근한 정이 마음 깊은 곳까지 촉촉하게 적셔 왔다._(168쪽) 

 

사람이 만난다, 남북이 웃는다

이기범 교수는 남북 교류와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삶의 질을 높이는 일에 도움이 될 전문가와 실무자의 일상적인 만남이 늘어나야 한다고 제안한다. 남북 전문가들이 만나 힘을 모아 공동 과제를 해결하는 가운데, 다투기도 하고 의기투합하면서 뜻있는 성과를 만들며 보람을 나눌 때 진정한 교류가 형성될 수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이기범 교수가 북녘 사람들과 일을 하면서 의미 있게 일구어 낸 협력 성과들을 책 전반에서 고르게 만날 수 있다.

 

분단과 대결을 벗어나 협력과 평화로 나아가는 길은, 이처럼 남북의 사람들이 만나는 속에 가능할 수 있다. 글쓴이는 지난 이십여 년의 경험을 토대로 사람들의 만남 속에서만이 남북이 평화의 길로 움직일 수 있다는 확신을 전한다. 더 나아가 남북의 경계, 세대의 경계, 남녀의 경계, 빈부의 경계를 비롯한 모든 경계가 사라졌을 때, 희망이 살아 꿈틀거리는 새로운 평화공동체가 열릴 수 있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남과 북 아이들에겐 철조망이 없다>는 남북의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길에 많은 이들이 함께 나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쓴이가 남과 북 모든 이에게 건네는 초대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기범 교수는 한반도의 평화를 일구는 길에 일본과 재일 조선인들이 공감하고 힘을 합칠 수 있도록 꾸준히 힘써 왔다. 일본의 진보 정치인 도이 다카코 사회 민주당 대표, 미키 무스코 여사(고 미키 수상의 부인)를 비롯한 여러 일본인들과 교류하면서 일본에서 북으로, 북에서 다시 서울로 이어지는 평화 여정을 꾸려 온 이야기와, 아울러 조선학교 선생들이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에서도 빛나는 열성과 책임감으로 재일 조선 어린이들과 서울, 평양, 도쿄를 잇는 삼각교류 실천 과정까지 두루 만날 수 있다. 분단의 아픔이 한반도보다 더 날카롭게 서 있는 듯한 일본에서도 민족 정체성을 기둥 삼아 꿋꿋하게 남북 평화 교류에 동참해 온 조선학교 선생과 어린이들의 이야기는 마음의 분단을 허무는 진한 감동을 전해 준다.

 

어린이를 위해

“교수 선생이라던데 강의를 해야지 여기 이렇게 자꾸 오면 되갔습네까?” 나는 애써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는 어린이들에게 미쳐서 이렇습니다.” 나중에는 오히려 어깨동무를 잘 모르는 자기 쪽 사람들에게 “어깨동무 사람들은 어린이에게 미친 사람들”이라고 소개하는 것을 들었다._(93쪽)

 

이기범 교수는 어린이 현장에서 일한지 25년 쯤 될 무렵 북한 주민들에게 질문을 받고 이 같이 답했다고 한다. 그는 그동안 어린이들과 일을 한다고 하면 그 일을 하는 어른도 ‘어린이’로, 즉 유치하고 ‘순진’하게 보는 시선을 자주 느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는 그냥저냥 어린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미쳐서 일한다고 과장해서 말했다고 한다. 미쳤다는 표현은 우리는 꼭 할 것이고, 계속 할 것이고, 끝까지 할 것이라는 의지를 담은 표현이었노라고 북측 사람에게 설명한 것이다. 결국 이기범 교수 일행들이 ‘못 말리는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이런 설명이 북녘 어린이들 향한 진심과 의지를 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기범 교수는 북녘이 고향인 아버지(평안남도 용강)와 어머니(황해도 연백) 밑에서 자랐다. 학교와 보육원을 세워 어린이 사랑을 몸소 보여 주고 마음에 심어 준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숙명적으로 교육자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어린이어깨동무 사무총장을 시작으로 이사장을 맡은 지금까지 글쓴이는 남북 어린이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북녘을 오가면서 분단의 경계를 낮추는 일을 스무 해 넘게 해 오고 있다. 

 

북쪽 사람들에게 “어린이에게 미친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열 번 넘게 북에 다녀온 어느 해에는 ‘그쪽에 새살림 차린 것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를 들을 만큼 끊임없이 남북을 오가며 북녘 어린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고자 노력했다. 북측과 여러 번 만나며 끈질기게 어린이들에 대한 마음을 전달한 끝에 1998년 첫 방북을 이끌어 냈고, 2004년에는 분단 뒤 반세기 만에 처음으로 남녘 어린이들이 평양을 방문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오로지 어린이들을 위한 마음 하나로 20년 넘게 고군분투한 삶, 그리고 이 책의 인세 전부를 북녘 어린이들을 위해 쓰겠다는 이기범 교수의 진심 어린 마음은 깊은 울림을 안겨 준다.

 

▲ 콩우유를 마시고 있는 북한의 어린이 <사진제공=보리출판사>  

 

희망의 10년, 절망의 10년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지나면서, 1990년대 후반부터 남북이 서로를 이해하며 함께 좋은 일을 펼치려고 애썼던 10년 가까운 기간은 점점 없는 시간이 되어 갔다. 어른들은 기억하지 않으려 하고, 어린이들은 알지 못하는 그 어둠의 시간들을 지나며 이기범 교수는 남북관계의 기억을 되살리는 일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절감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지난 희망의 10년과 더불어 절망의 10년까지 함께 꿰어 미래를 내다보고자 했다. 앞으로 남과 북이 어떻게 살아갈지 선택하기 위해 희망과 절망의 기억 모두 잊지 않아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울러 글쓴이는 남과 북 그리고 남녘 사회에 그어진 수많은 경계를 없애고 더불어 살길을 찾는 방법으로 ‘사회적 상상력’을 제안한다. 사회적 상상력은 개인과 일상의 고통이 분단과 경계에서 비롯됨을 인식하게 하면서 스스로를 성찰하고, 상대를 공정하게 바라보도록 이끄는 몫을 한다. 그 과정에서 경계에 구속된 남루하고 고립된 ‘나’가 아니라 더 커진 나, 바로 ‘공동체’로 안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분단에 따른 고통을 공동체 정신으로 뛰어넘을 수 있게 이끄는 대안이자, 한반도 평화를 길어 올리는 힘으로서 ‘사회적 상상력’을 강조한다. 또한 우리가 살아갈 새로운 평화 시대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사회적 상상력으로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이어깨동무’ 

이기범 교수가 이사장을 맡은 ‘어린이어깨동무(이하 어깨동무)’는 1996년 설립된 북녘 어린이 지원 단체다. 지금은 유명을 달리한 권정생(아동문학가), 김수환(추기경), 박완서(소설가)를 비롯하여 대중가수 서태지, 영화인 안성기, 축구인 차범근 등이 어깨동무의 첫걸음에 힘을 보탰다. 어깨동무는 1997년 북쪽 어린이들을 위한 의약품과 이유식 3억 원어치를 북에 직접 보내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껏 330번에 걸쳐 북에 물품을 보내는 긴 여정을 이어 왔다. 또한 1998년부터 지금까지 135번에 걸쳐 어린이들을 포함해 1,000명이 넘는 사람들과 방북을 진행하면서 북과 협력 사업을 펼쳤다. 

 

어깨동무가 활동을 시작한 1990년대 중반은 북녘 어린이들을 살리는 일이 급박했던 시절이었다. 북은 그때 계획경제의 약화, 구소련과 동구권 사회주의경제 집단의 해체 그리고 거듭되는 자연재해로 말미암아 식량난을 겪는다. 특히 1995년 8월 대홍수로 식량 생산에 치명타를 입고 나서는 최악으로 치닫는 식량 위기와 대기근에 처하면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른다. 북은 1995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를 ‘고난의 행군’ 시기로 부를 만큼 힘든 시절을 보내야 했다. 

 

이러한 시기에 어깨동무는 북녘 어린이들에게 다가서는 일을 세 단계로 진행했다. 첫 단계는 영양 증진 사업으로 콩우유 급식이 중심이었다. 2001년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에 ‘평양 어깨동무 콩우유공장’을 세운 것이 첫 출발이었다. 그 뒤로 2007년에는 ‘평양 어린이식료품공장’을 현대화하면서 북을 대표하는 식품 공장을 협력의 근거지로 삼는 뜻깊은 성과도 이루었다. 

 

다음으로는 보건의료 활동을 펼쳤다. 2004년 어린이영양관리연구소와 협력해 당시 북을 통틀어 최첨단 의료 체계를 갖춘 ‘평양 어깨동무어린이병원’을 만들었다. 뒤이어 2008년 북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되고 규모도 제일 큰 평양의학대학병원과 함께 소아병동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교육 지원 활동으로 여러 보육 시설들을 고치는 것과 함께 2005년에는 평양수지연필공장과 ‘평양 어깨동무학용품공장’을 만들어 대북협력을 교육 분야까지 넓힐 수 있었다. 이 세 단계의 정점에는 남북 어린이가 서로 만나야 한다는 근본 목표가 늘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어깨동무는 일상과 평화를 연결하는 평화교육을 여러 갈래로 펼치면서, 통일은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는 공감대를 넓혀 왔다. 아울러 지난 20년 동안의 평화교육 경험을 다듬어 2016년 평화교육센터를 열었다. 앞으로도 그는 아름다운 자연과 천진난만한 아이들을 닮은 평화. 그 씨앗이 싹틀 작은 공동체가 널리 퍼지도록, 시민 한 명 한 명이 평화의 씨앗이 되어 더 큰 평화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어깨동무는 한 걸음씩 뚜벅뚜벅 계속 나아갈 것이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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