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가 또다시 ‘공회전’하고 있다. 여야는 예산 심사기한인 12월 1일을 바로 앞둔 가운데 소위 의석 배분부터 의견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민생법안 처리도 미뤄졌다. 보수 야당은 예산 소위를 놓고 정수 확대를 문제 삼아 목소리를 높이고 있고, 환경부 장관 인사 처리와 서울시 교통공사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본회의를 보이콧했다.
▲ 11월15일 본회의는 보수 야당의 불참으로 개의되지 못했다. 이날 처리되기로 했던 무쟁점 민생법안 역시 불발됐다. © 문혜현 기자
|
한국당 예산 소위 증원 반대…“관례상 안 돼”
본회의마저 무산…문희상 의장 “국민께 부끄러워”
예산통과 법정기일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여야의 갈등으로 국회가 마비됐다. 뿐만 아니라 당초 본회의에서 논의되기로 했던 민생법안도 처리되지 못했다. 음주운전 처벌 강화를 주 내용으로 하는 ‘윤창호법’과 어린이집 평가인증을 확대하는 영유아보육법 등은 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의 ‘국회 보이콧’으로 미뤄졌다. 문 의장은 약속을 어긴 보수 야당에 유감을 표했다.
장제원, 민주당에 예산소위 불만 제기
앞서 장제원 한국당 의원은 예산 소위 의석 배분을 놓고 민주당에 합의를 촉구한 바 있다. 11월14일 국회 예결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장 의원은 기자회견을 열고 더불어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을 향해 “당리당략을 떠나 예결소위 인원 정수에 합의해 내년도 예산 심사에 즉각 임해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 의원은 “민주당은 작년 소위 구성 당시에도 최대인원이 15명이라 하고 19대 국회부터 지난 5년간 관례를 존중한다고 해왔다”면서 “어떤 정략적 배경 때문인지 소위 정수 문제로 시간 끌기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기존 예산 소위 인원은 관례상 15명으로 유지되어왔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비교섭단체인 정의당의 몫을 요구하면서 16명으로 늘리자는 입장을 밝혔고 한국당은 이에 반대했다. 장 의원은 “국회에서 제시하는 정당 간 의석 배분 기준에 따르면 20대 국회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기준으로 민주당 6석, 한국당 6석, 바른미래당 2석, 비교섭단체 1석, 예결위원 50명의 정수를 기준으로 민주당 7석, 자유한국당 6석, 바른미래당 1석, 비교섭단체 1석을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 의원은 “어떤 경우의 수를 적용하더라도 저희 자유한국당이 무조건 수용하고 소위심사에 임하겠다”며 법정기일 내에 예산안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했다. 이어 장 의원은 “민주당은 원내 제1당이자 문재인 정권의 국정운영에 무한책임을 가지고 있는 집권여당으로서 책임을 망각하고 국회 의석 비율에 따른 소위 의석 한 석조차 소수당에 양보하지 못하는 옹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국회 선진화법 뒤에 숨어 2019년도 예산심의라는 국회의 가장 핵심적인 본분을 회피하며 시간 끌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한편 바른미래당은 당초 자당 몫으로 논의됐던 2석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교섭단체인 만큼 비교섭단체 몫으로 주어지는 것의 배는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여야는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원내지도부는 비교섭단체를 배제한 예산소위 구성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 분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한국당이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는 것”이라며 선을 그었다. 또 민주당 내에선 한국당이 사실은 이달 말까지 예산심사를 마무리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시각을 보이기도 했다.
국회 예결위 여당 간사를 맡고 있는 조정식 민주당 의원은 11월15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당이 2019년 예산안 심사에 몽니를 부리고 있다”며 “예산안 소위심사 파행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당 몫만 챙기려 하는 한국당에 있다”고 비판했다.
조 의원은 “국회는 관례적으로 상임위 소위원회 구성에서 해당 상임위의 교섭단체별 위원 수 비율에 따라 소위원회 인원수를 배분하고 있다”며 “예결위 의석비율에 따라 비교섭단체도 소위원회 구성에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의원은 “예산소위 16인 구성안을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정당이 수용했다”며 “한국당은 다른 당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15인 구성과 자당 몫 6명 확보만을 주장하면서 예산 소위조차 구성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민주당의 비교섭단체 포함 주장이 여권 세력을 확장하려는 게 아니냐는 질문엔 “비교섭단체를 포함하면 오히려 여당 하나와 야당 셋이 되는 것”이라면서 “예산 소위 구성은 각 당이 가진 정치적 이해에 따라 하는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무쟁점 민생법안’ 처리 결국 연기
이러한 가운데 민생법안 처리를 위한 본회의마저 여야 간의 합의 불발로 열리지 못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은 조명래 환경부 장관의 임명 처리와 예산심사 중 경제인사 교체를 강하게 비판하며 본회의 참석 거부 의사를 밝혀 왔다. 당초 11월15일 오후에 열리기로 되어 있던 본회의는 한국당 의원과 바른미래당 의원의 불참으로 개의되지 못했다.
앞서 이날 오전 민주당 홍영표·자유한국당 김성태·바른미래당 김관영 원내대표는 오전에 회동해 합의점을 찾고자 했다. 이번 회동에서 두 야당 원내대표는 여야정 상설협의체 재가동 조건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의 사과 및 책임 있는 조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해임 ▲고용세습과 채용비리에 대한 국정조사 수용 등을 내걸었다. 홍 원내대표는 이 같은 요구에 대해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예산과 민생법안을 볼모로 내걸었던 야당은 합의 불발의 책임을 여당으로 떠넘겼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회동 직후 “상당히 오랜 시간 국회 정상화에 대해 논의했지만 홍영표 민주당 대표의 독선과 아집만 있었다”면서 “합의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두고 “국회를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문 대통령의 청와대 출장소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힐난했다. 김관영 원내대표도 “홍 대표를 설득하려 했지만 민주당이 아무것도 변한 게 없다”며 “진정으로 책임 있는 여당의 모습인지 국민들이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영표 원내대표는 이와 같은 야당의 반응에 “여야 간 합의한 것을 (두 야당이) 일방적으로 파기, 통보하고 있다”면서 “본회의는 예정대로 한다”고 분명히 했다. 결국 이날 본회의는 민주당, 민주평화당, 정의당만이 착석한 채 시작했다. 한국당은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았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유감을 표했다. 본회의 시작 후 의장석에 자리한 문 의장은 “법안 처리에 필요한 의결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한 상황”이라면서 “안타깝게도 오늘 본회의 개의는 어렵다”고 말했다. 국회는 본래 오늘 회의에서 ‘윤창호법’을 비롯한 무쟁점 법안 90개를 처리할 예정이었다. 문 의장은 “교섭단체 간 합의는 약속이다. 약속은 신의와 성실로 지켜야 한다”며 “이를 깨려면 천재지변 같은 사전 변동이 있거나 새로운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는 “국민 생명과 직결된 시급한 민생법안을 처리하지 않는 것은 국회의 책무를 어기는 것이고 의장의 임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들 보기에 너무나 부끄럽고 의장으로서 매우 유감스럽다는 점 말씀드린다. 본회의에 참석해주신 의원 한 분 한 분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퇴장했다. 착석한 민주당 의원들은 그래도 개의는 할 수 있지 않느냐면서 “개의해요!”라고 공허한 외침을 하기도 했다.
같은 시각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간담회를 열어 입장을 밝혔다. 김 원내대표는 다시금 조명래 환경부 장관 임명 강행과 서울교통공사 등의 고용세습 국정조사 거부에 대해 불만을 표하며 “더불어민주당은 국정조사를 받고 ‘양심의 세계’로 돌아오라. 그래야 협치의 문이 열릴 것이다”라고 밝혔다.
penfree@hanmail.net
|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