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자마자 리뷰] 영화 ‘국가부도의 날’
1997년 경제위기 소재…이성과 감성의 맹렬한 간극 보여줘
문병곤 기자 | 입력 : 2018/11/19 [18:58]
▲ 영화 <국가부도의 날> 포스터 <사진제공=영화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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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발생했던 경제위기를 소재로 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은 구조적으로 완성도 있는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깊은 인물 이해도를 보여주는 영화다. 다소 감성적이고 정치적일 수 있는 메시지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말하는 방식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기 때문에 영화는 ‘감성팔이’처럼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적인 공감과 이성적인 냉철함이 맹렬하게 맞서면서 그 간극을 보여주는 완성도 있는 영화였다.
<국가부도의 날>은 시나리오의 측면에서도 영리함을 보여주는 영화지만, (최근 한국영화에서 작가의 존재감이 이렇게 컸던 영화는 오랜만인 듯 하다.) 배우들이 불어넣은 감정의 깊이도 상당하다. 단순해질 수 있는 인물의 캐릭터들은 배우들의 몇몇 순간의 빛나는 연기로 입체적으로 변한다.
▲ 영화 <국가부도의 날> 스틸 <사진제공=영화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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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김혜수가 연기하는 한서현이라는 인물은 “이때부터 우리가 시스템이야”라는 그의 대사나서 그가 ‘팀’으로 움직이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시스템적인 인물이다. 그는 협동과 책임이라는 ‘공동체적인 이유’를 믿는 인물이다. 때문에 다소 고루해지고 단순해질 수 있는 캐릭터다.하지만 여기에 감정적 깊이를 더하는 것은 김혜수의 연기다. 끊임없이 시스템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캐릭터인 한서현은 자신이 건드릴 수 없는 또 다른 시스템에 의해서 계속해서 좌절한다. 이럴 때마다 한서현은 이성적인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려하지만, 이를 감정적으로 ‘힘들다’는 표현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를 보여주는 것은 김혜수가 보여주는 그늘지고 초췌한 모습이다. 이는 한서현이 보여주지 않는 감정의 누적이 김혜수라는 배우를 통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가 이렇게 끝까지 시스템을 고수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시스템에 대한 믿음은 협동과 책임이라는 ‘공동체적인 이유’에 기인하기 때문이다.
▲ 영화 <국가부도의 날> 포스터 <사진제공=영화사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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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유아인이 연기하는 윤정학이라는 인물은 자신이 가진 이성을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 힘쓰는 인물이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속담이 있듯이 그는 위기를 기회로 여기고 ‘국가의 부도’에 배팅해 큰 이득을 얻는 인물이다. 이 캐릭터가 깊어지는 순간은 유아인의 연기를 만나는 순간부터다. 그때부터 윤정학은 단순히 국가를 믿지 않고 세속적으로 부를 추구하는 인물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얻은 부가 ‘정부를 믿지 않음’에서 온다는 것을 알고 이따금 스스로를 자조하는 인물이다. 그리고 이를 연기하는 유아인의 복합적인 표정은 관객에게 여러 생각이 들게 한다.
영화는 계속해서 관객에게 ‘믿음’에 대해 묻는다. 여기서 이 영화의 영리한 점이 드러난다. 1997년 있었던 경제위기의 원인은 한국경제에 대한 외국시장의 ‘신용도’ 하락이었다. 이로 인해 대규모의 외국 돈이 유출됐고 그것이 귝가 경제의 파산을 불러온 것이다. 영화는 여기서 ‘믿음’이라는 단어에 영감을 받은 듯, 믿음의 문제를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람에 까지 끌어와서 이야기한다. 정치권을 얼마나 믿을 것이냐, 사람을 얼마나 믿을 것이냐, 영화는 끊임없이 묻는다.
<국가부도의 날>이 경제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정치적인 문제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지난 2015년 개봉한 영화 <내부자들>이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국가부도의 날>은 조금 더 이성적이고 구조적인 접근으로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달한다.
한국영화에서 경제문제를 이렇게 심도 있고, 치밀하게 다루는 영화는 없었다. 잘 쓰여진 시나리오 덕분이다. 혹자는 어려운 경제용어들이나 수치 등에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감정적인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한줄평: 영리한 시나리오에 배우들이 숨을 불어 넣는다. ★★★★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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