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백혈병’ 11년 만에 마침표…‘또 하나의 약속’ 지켜지다

삼성전자 “조정위의 중재안,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

문병곤 기자 | 기사입력 2018/11/23 [11:15]

‘삼성전자 백혈병’ 11년 만에 마침표…‘또 하나의 약속’ 지켜지다

삼성전자 “조정위의 중재안, 조건 없이 수용하겠다”

문병곤 기자 | 입력 : 2018/11/23 [11:15]

소위 ‘삼성전자 백혈병 문제’는 11년이나 지속된 분쟁이었다. 지난 2007년 사건이 발생한 이후로 삼성전자측은 2014년과 2016년 두 차례 유족들에게 사과하면서 상황을 타개하려했지만 세부적인 사항에서 유족들과 구체적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이 지나버렸다. 그리고 지난 11월 1일 삼성전자 측은 사태 해결을 위해 출범된 '조정위원회'가 내놓은 최종 중재판정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중재안을 만들어준 조정위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조건없이 수용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이며 서둘러 구체적인 이행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포스터 <사진출처= 다음영화>    


평범한 아버지인 택시기사 상구는 딸 윤미가 대기업에 취직한 것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렇지만 넉넉치 못한 형편에 대학도 못 보낸 것이 미안할 뿐이었다. 윤미는 오히려 자기가 돈을 벌어 차도 바꿔드리고 동생 공부도 시키겠다고 한다. 그러나 입사한지 2년도 되지 않아 윤미는 큰 병을 얻어 집으로 돌아오고, 아버지 상구는 윤미가 제대로 치료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가슴이 미어진다. 결국 윤미는 아버지의 택시 안에서 숨을 거두고 만다. 윤미의 차가운 손을 잡고 아버지는 윤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겠다고 다짐한다.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환자가 발생한 뒤 산업재해로 판정 받기 위해 법정 싸움을 벌였던 실화, 일명 삼성 황유미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줄거리다. 

 

그리고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약 10년이 지난 2018년 11월23일, 삼성전자는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삼성 반도체 백혈병 분쟁'이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사과에는 삼성전자 디에스(DS) 부문 김기남 대표 명의로 ‘위험 관리 부족’을 시인하고 사죄하는 내용이 담겼다. 늦었지만 삼성전자는 유가족에게 사과했다. 이로써 故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의 ‘또 하나의 약속’도 이루어졌다.

 

삼성전자 백혈병

삼성전자 반도체공장 백혈병 논란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7년 3월 기흥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황유미 씨(당시 23세)가 급성백혈병으로 사망한 것이 논란의 발단이었다. 황 씨가 사망하자 그의 부친 황상기 씨는 같은 해 6월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 유족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측은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았고 급여지급도 거절됐다.

 

이를 계기로 그해 11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대책위원회’인 반올림이 발족됐고, 그동안 황씨 등의 피해에 대한 삼성의 사과와 대책을 끊임없이 요구해 왔다. 삼성전자의 백혈병 문제는 외국 언론과 학자들의 관심을 받으며 국제적인 이슈가 되기도 했다.

 

이 사안에 사회적 관심을 끌게 된 것은, 지난 2014년 2월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하면서부터다. 황유미 씨의 실화를 스크린에 옮긴 영화는 대기업에 얽힌 민감한 소재 탓에 어느 투자 제작사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영화는 완성됐다.

 

삼성전자도 이를 의식한 듯 지난 2014년과 2016년 두 차례의 공식사과를 하기도 했다. 지난 2016년 권오현 부회장은 반도체 백혈병 문제와 관련해 삼성직업병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 송창호 대표 등 가족들을 만나서 사과하고 위로의 뜻을 전했다. 가대위는 반올림과 함께 협상대표로 참여했던 8명 가운데 6명의 발병자와 유가족이 따로 독립해 구성한 단체다.

 

이 자리에서는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도 함께 전달됐다. 이 서한에는 "아픔을 헤아리는데 소홀한 부분이 있었고, 진작 이 문제를 해결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사과드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날 권오현 대표이사는 "2014년 5월 기자회견을 한 뒤 꼬박 20개월 만에 여러분을 직접 마주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리게 됐다"며 "여러분의 깊은 이해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사실상 보상 기준에 해당하는 사람 대부분이 신청해 보상금을 수령하고 사과를 받은 것”이라며 “12일 예방 문제가 3자간 합의로 타결된 데 이어 이날 당사자들에게 사과문까지 전달됨으로써 정의 3대 쟁점은 모두 해결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가장 강경한 입장의 반올림은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는 세 가지 교섭(조정) 의제인 사과, 보상, 재발방지대책이 모두 합의돼야 한다”며 “삼성은 이제라도 반올림과의 대화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반발했다.

 

▲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재 판정 이행 합의 협약식’에 참석한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가 사과문을 낭독 중이다.     <김상문 기자>

 

지켜진 약속

“10여년 동안 저희가 해결하지 못한 관계를 사회적 관계로 해결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문제를 풀기 위해 성실히 논의에 참여해 주신 반올림 관계자 분께 감사드립니다. 소중한 동료들이 고통을 받으셨는데 삼성전자는 일찍 보살피지 못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직원들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중재 판정 이행 합의 협약식’에 참석한 김기남 삼성전자 대표의 사과발언이다. 이로써 지난 11년간 사회적으로 깊은 상처를 남긴 삼성전자 반도체 백혈병 사건은 삼성전자가 공식 사과하면서 끝맺었다. 삼성전자측은 피해자 측과 합의한 보상 및 지원도 이행하기로 약속했다. 

 

이날 김 대표는 “병으로 고통받은 근로자와 그 가족분들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더욱 건강하고 안전한 일터로 거듭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피해 근로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보상 방안 논의는 제3의 독립기관인 법무법인 ‘지평’에 위탁하기로 했으며, 위원장은 지평의 김지형 대표변호사가 맡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원보상위원장이 정하는 세부 사항에 따라 2028년까지 보상이 차질없이 이뤄지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전자산업을 비롯한 산업재해 취약 노동자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고 중대 산업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500억원 규모의 ‘산업안전보건 발전기금’을 출연하고, 이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기탁하기로 했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 1일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는 보상 범위와 액수 등을 담은 중재안을 삼성전자와 피해자 대변 시민단체 ‘반올림’에 각각 전달했다. 보상 대상은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제1라인이 준공된 1984년 5월 17일 이후 반도체·LCD 생산라인에서 1년 이상 근무한 현직자와 퇴직자 전원으로, 보상액은 근무장소, 근속 기간, 질병 중증도 등을 고려해 산정하되 백혈병의 경우 최대 1억5,000만원으로 각각 정해졌다

 

이날 협약식에는 故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 또한 반올림의 대표로 참석했다. 그는 인사말에서 "삼성전자 대표이사의 사과는 솔직히 직업병 피해 가족들에게 충분하지는 않다"면서도 "오늘의 사과를 삼성전자의 다짐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황 대표는 "이제는 산재보험제도와 근로복지공단을 개혁해서 산재노동자 권리를 보호하는 본연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며 "직업병 보상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노동자가 무슨 화학 물질을 쓰는지 알 수 있게 노동자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알 권리, 참여할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산업안전보건법을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penf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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