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 리스트' 유일 목격자 윤지오 얼굴 내놓고 대폭로

수사기관·유력인사 부조리 고발…죽은 장자연이 ‘산 가해자’ 잡을까?

김혜연 기자 | 기사입력 2019/03/07 [18:43]

'장자연 리스트' 유일 목격자 윤지오 얼굴 내놓고 대폭로

수사기관·유력인사 부조리 고발…죽은 장자연이 ‘산 가해자’ 잡을까?

김혜연 기자 | 입력 : 2019/03/07 [18:43]

술자리 추행 목격한 동료 윤씨, “장자연 사건 수사 부실했다

장자연 유서 원래 없고 문건만 남겼다그 문건은 투쟁수단

    

‘죽은 장자연’이 10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평소 고인의 동료였던 탤런트 윤지오(32)씨가 고(故) 장자연의 10주기를 이틀 앞둔 지난 3월5일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언론 앞에 나타나 “장자연 사건 수사는 부실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 장자연은 지난 2009년 3월7일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글과 “배우 장자연의 피해 사례입니다”라는 문건을 남긴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해 대한민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생전의 장자연을 두고 “언니는 맑고 여린 사람이었다”고 기억하는 윤씨는 책까지 펴냈다. 장자연 사건과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그는, 경찰과 검찰에 12번이나 불려다녔지만 진실이 거짓 속에 묻히자 장자연이 숨진 3월7일자에 맞춰 <13번째 증언>(가연)이란 제목의 책을 통해 수사 당국과 가해자들의 부조리를 세상에 고발하고 나섰다. ‘죽은 장자연’이 10년 만에 ‘산 가해자’들을 잡을 수 있을까. 윤씨가 밝히는 10년의 기록과 언론 인터뷰 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

 


▲ 장자연 사건과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탤런트 윤지오씨가 ‘자연 언니’ 사망을 이틀 앞두고 ‘마지막 증언’을 하고 나서 파장이 일고 있다.    ©KBS 뉴스 화면 갈무리


장자연 사건과 리스트의 유일한 목격자였던 탤런트 윤지오씨가 ‘자연 언니’ 사망을 이틀 앞두고 ‘마지막 증언’을 하고 나서 파장이 일고 있다. 장자연의 소속사 동료였지만 그동안 A씨 또는 ㅇ씨란 익명으로 언론에 등장했던 윤씨가 지난 3월5일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마이크 앞에 앉아 지난 10년간 거짓 속에 묻혀 버린 진실들을 조곤조곤 털어놓았다.


장자연은 2009년 3월7일 유력 인사들의 술자리와 성접대를 강요받고 욕설, 구타를 당했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고인이 남긴 명단에는 재벌그룹 총수, 방송사 프로듀서, 언론사 경영진 등이 들어 있어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은 바 있다.


장자연 사건은 지난해 2월 국민 청원으로 인해 다시 주목 받았다. 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검찰에 재수사를 권고하면서, 대검찰청 진상조사단이 사건의 전모를 다시 조사 중이다.

 

“피해자가 숨는 현실 한탄스러워”
윤씨는 유력인사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장자연이 당한 추행을 직접 목격했고, 자신이 보고 겪은 것을 수사기관에 진술하고 법정에 나가서 증언까지 했던 주인공. 지난해 장자연 사건이 다시 불거진 후 얼굴을 가리고 목소리를 변조했으며 가명인 채로 JTBC, MBC <PD수첩>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윤씨는 이날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지난 10여 년간 이름과 얼굴을 감춰 온 것에 대해 “부득이하게도 그렇게 살아왔다”면서 “솔직히 10년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짧은 시간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윤씨는 “(그동안)숨어 살기 급급했었다”면서 “솔직히 잘못된 것인데, 당연시 되는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살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서 해외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았다”고도 했다. 그러나 “가해자가 움츠러들고 본인의 죄에 대한 죄의식 속에 살아야 되는데, 피해자가 오히려 책임감과 죄의식을 가지고 사는 그런 현실이 한탄스러웠다”면서 “이제는 조금은 바뀌어졌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용기를 내고 이 자리에 나오게 됐다”고 밝혔다.


윤씨는 원래 가족들과 함께 캐나다에 살고 있었다. 연예계 일을 하고 싶어 하던 차에 캐나다에서 캐스팅이 되어 한국으로 건너왔으나 ‘장자연 사건’을 겪는 등 혼자 지내는 것이 너무 힘들어 다시 캐나다로 가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있다. 
윤씨는 “솔직히 내가 계속 국내에서 거주를 했다면 이런 결정(공개 인터뷰)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거주하면서 본) 캐나다 같은 경우는 피해자나 가해자의 이름과 얼굴이 다 공개가 된다”고 전하면서 “그런 것이 당연시 여겨지고, 피해자가 숨어서 사는 세상이 아니라 존중을 받는 것을 보면서 어찌 보면 한국도 그래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가해자들이 너무 떳떳하게 사는 걸 보면서 좀 억울하다는 심정이 많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유서는 없고 문건은 있다”
윤씨는 이날 ‘장자연 문건’에 대해 의구심을 표시하며 “유서는 없고 문건이 있었다”는 새로운 증언을 내놨다.


이른바 ‘장자연 문건’은 그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 세상에 남긴 유서로 알려져 있다. 이 문건은 유가족과 해당 문건을 가지고 있던 기획사 측 등이 모여 소각했다. 그러나 장자연 사망 일주일 후 KBS가 “쓰레기통을 뒤져 찾았다”며 문건 내용을 보도해 세상에 알려졌다.


하지만 윤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언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 때 유서가 단 한 장도 발견되지 않았다”면서 “만약 싸우기 위해서 작성된 문건이었다면 유서를 남기면서 ‘이런 문건이 있다’고 명시를 한다든지 그 문건 자체를 더 쓸 텐데 그러지 않았다”고 설명해 장자연이 소속사를 나오기 위해 문건을 작성한 후 싸우려고 하다가 어느 순간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임을 암시했다.


윤씨는 “언니가 가고 싶어 했던 기획사 대표를 장례식에서 만난 적이 있는데 그때 처음 문건에 대해 듣게 됐다”면서 “(장자연이 가고자 했던)기획사의 대표도 그 문건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혼자 보려고 문건을 작성한 게 아니라 그 당시 소속되어 있던 기획사를 벗어나 새로운 기획사로 가려고 했지만 기존 소속사에서 놓아주지 않자 ‘당신들이 나에게 이런 일까지 시키지 않았냐’며 정리한 문건을 만들었다는 것.


그리고 해당 문건의 존재는 기존 소속사도, 새로운 기획사도 알고 있었으며, “누가 유서를 쭉 나열하고 지장을 찍고 그러겠느냐” “살기 위해, 법적으로 싸우기 위해 만든 문건이며 그 문건은 다른 누군가가 갖고 있고, 공개를 다른 분이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진행자가 ‘죽음에 관한 새로운 정황인 것 같은데 이 내용을 혹시 조사위에서도 이야기했느냐’고 묻자 “(문건에 대한)생각을 말하는 건 처음”이라면서 “(경찰이나 검찰의 조사과정에서 장자연이 문건을)왜 작성한 것 같으냐라든지 그런 질문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문건을 왜 작성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고 그 질문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윤씨는 이어 “리스트 자체에 거론된 인물들이 사회적으로 굉장히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었으므로 그 문건을 세상에 알린 분도 걷잡을 수 없이 (파문이 커지자) 혼자 감당하기 버거워서 ‘지오 네가 이걸 갖고 있다 공개했다고 이야기를 해주면 안 되겠냐’고 했다”고 밝히면서 “그 당시 녹음을 한 것도 경찰·검찰에 넘겼다”고 말했다.

 

 

소각 전 장자연 리스트봤다동일한 의 언론인 3명 등장

장자연이 옮기려던 기획사 대표도 장자연 문건은 유서 아닐 것

 

▲ 장자연은 지난 2009년 3월7일 “저는 나약하고 힘없는 신인배우입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는 글과 “배우 장자연의 피해 사례입니다”라는 문건을 남긴 후 극단적인 선택을 해 대한민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사진은 SBS 뉴스 화면 갈무리.

   

“동일한 姓 언론인 3명 이름 봤다”
윤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소각되기 전 ‘장자연 명단’을 본 적이 있다”고 증언하면서 “당시 (소속사) 대표가 유가족에게 문건을 전달하기 전에 먼저 보여줬다. 현재 거론되는 언론사 관계자들의 이름이 있었다. 동일한 성을 가진 세 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고 증언했다.


윤씨는 ‘소각됐다고 알려진 장자연 문건을 직접 보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당시 문건을 공개한 소속사 대표가 유가족과 원활한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중간에서 전달자 역할을 했다”면서 “(소속사 대표가)‘자연이가 남긴 글이 있다’고 이야기를 해서 가게 됐고, 유가족들이 보기 직전에 내가 먼저 확인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사회자가 ‘명단에 거론되는 이름들이 아주 많은데 그중 대표적으로 언론사 관계자들 이름이 계속 거론되지 않는가, 그분들 이름도 거기서 봤느냐’고 묻자 “봤다”고 짧게 답한 뒤  “딱 한 차례 봤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 나는 이름도 물론 있고 아닌 이름도 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한 언론사의 동일한 성을 가진 세 명이 거론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윤씨는 경찰과 검찰, 과거사 조사위 등 13번의 조사를 받는 동안 소각되기 전 문건에서 한 언론사의 세 사람의 같은 성씨를 가진 언론인들의 이름을 본 것에 대해 “사실에 근거해서 항상 성실하게 대답을 했다”고 밝혔다.


윤씨는 진행자가 ‘같은 성씨를 가진 세 명의 언론인과 같은 언론사에 근무한 적이 있던 전직기자가 술자리에서 장자연을 성추행하는 것을 직접 봤다는 내용을 (수사기관에서)진술했느냐’고 묻자 “그렇다”면서 “내 기억 속 인물은 단 한 번도 번복된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 당시 21살인 내가 느끼기에도 수사가 굉장히 부실하게 이루어졌고, 당시 나에게 건네준 사진 속에는 조씨(전 조선일보 기자 조모씨 지칭)가 없어서 지목을 하지 못했다”면서 수사당국 조사과정에서 사진을 제시하지 않고, 본인도 그 자리에서는 이름을 들은 게 아니기 때문에 조금 헷갈렸는데 머릿속에 있는 인물은 “항상 동일한 인물이었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2009년부터 10년간 장자연 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13차례나 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보고 겪은 것을 수사기관에 진술하고 법정 증언에 나섰던 대가는 혹독했다. 윤씨는 “매번 밤 10시 이후, 새벽에 경찰과 검찰로부터 불려갔다. 당시 21세인 내가 느끼기에도 수사가 부실했다”며 “조사가 끝나고 경찰 측에서 집에 데려다 줄 때 항상 미행이 붙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일상생활이 불가능했고 이사도 여러 차례 했다”며 "“장자연 사건을 증언했다는 이유로 캐스팅에서 제외됐다는 이야기를 감독으로부터 직접 들었다”고도 했다.


이날 윤씨는 진행자가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언론사 관계자 이름 때문에 언론사가 뒤를 쫓지 않았냐’는 질문을 던지자 “수사가 몇 달이 진행되고 나서는 아예 미행처럼 따라붙었다”고 답했다.


한편 윤씨는 2009년 장자연씨가 출연한 KBS 2TV <꽃보다 남자>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이후 MBC <선덕여왕>, KBS 2TV <드라마 스페셜-사백년의 꿈>, 영화 <회초리> <너는 펫> 등을 통해 얼굴을 알렸다.


중학생 때 캐나다로 이민을 간 윤씨는 이후 귀국해 한양대 대학원 국제경영 ‘최연소 MBA 석사’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영화, 드라마, 연극 등 다양한 연기를 펼치던 윤씨는 2012년 연극 <뉴보잉보잉>을 끝으로 활동을 중단했다.
윤씨는 현재 모델테이너로 라이브 스트리머, 플로리스트, 플랜테리어 디자이너 강사로 활동 중이며, 오마벨(Omabell) 대표를 맡고 있다.
  
“장자연 문건은 유서 아닐 것”
윤씨가 인터뷰를 한 다음날인 3월6일 오전 장자연이 기존의 소속사를 떠나 옮기려고 했던 새로운 기획사의 대표 김남형씨도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장자연 문건이 유서가 아닐 것”이라는 주장을 펴며 장자연 리스트는 유서가 아니라 투쟁의 수단이었음을 암시해 주목을 끌고 있다.


지금도 연예기획 일에 종사 중인 김씨는 이날 인터뷰에서 “생각도 못 하고 있다가 어제 방송에서 장자연씨 문건이 왜 씌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에 진실을, 내가 알고 있는 부분을 말하기 위해 출연했다”면서 “떳떳하기에 실명 공개 등을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김씨는 “(당시)지인이 ‘괜찮은 연기자가 있다’는 말을 했고, (장자연씨를) 만나게 됐다. 지인과 함께 만난 날엔 드라마를 하던 중이었다. 현재 소속된 기획사와 잘 끝내기로 했다”며 “그 자리에서는 이야기만 좋게 오가고 헤어졌다”고 회상했다. 


김씨는 이어 “이후 전화에서는 당시 소속사와 위약금으로 계약 해지 관련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고 하더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그러다 시간이 지나니 위약금이 높아졌다고 하여 (분쟁을 피하기 위해) 완전히 잘 끝내고 오라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장자연)문건의 성격이 유서가 아닌 걸로 알고 있어 이 자리에 나오게 된 것“라며 “본인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해당 문건을 쓴 날 장자연이 전화를 걸어 왔다. 그래서 ‘남겨두면 배우 인생에 문제가 되니 도로 받아 오라’고 했다”면서 그리고 일주일 후, 장자연씨가 사망한 날 “해당 문건을 보았다”고 털어놨다.


진행자가 ‘장자연씨가 당시 어떤 의지를 갖고 있었는지는 거론된 바가 없다.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는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 이런 데 대한 이야기가 없었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하자 김씨는 “딱 한 마디만 더 하고 싶다”며 “장자연씨가 문건을 쓴 과정보다는 문건 내용에만 관심이 쏠려 있어 유가족은 아직도 고통받고 있다. 술접대 등에만 초점을 맞추면 고인과 유가족이 두 번 죽는 상황이 된다”고 세상 사람들을 향해 일침을 가했다. gracelotus0@gmail.com

 


 

윤지오가 책에서 밝힌 나와 장자연


“언니를 외면할 수 없어 다시 진실 밝히기로 했다”

-“가해자 분명 존재하는데…이제는 잘못 저지른 이들 단죄할 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간혹 예상치 못했던 난관에 부딪히고는 한다. 가장 큰 고비는 스무 살 무렵에 찾아왔다. 단단하게 여물지도, 사리판단을 제대로 할 수 있던 때도 아니었다. 장자연 언니의 죽음은 내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슬픔이었다. 언니의 죽음이 남긴 숱한 의문은 나를 오랜 시간 옥죄었다. 사실이 규명된 것은 별로 없었고, 내 진술에도 불구하고 사건은 유야무야 덮이고 말았다. 죽음으로 항변했던 언니의 억울함을 그 누구도 시원히 밝혀주지 않았다.


○…나는 경찰과 검찰에 나가 열두 번이나 진술했다. 또한 피의자들과 대질 신문도 했다. 당시는 아르바이트와 학업 그리고 일을 병행해야 하는 때였지만,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니면 진실을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사명감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를 받는 동안에 겪었던 마음고생을 어떻게 다 말할 수 있을까. 조사 후에도 아주 오랜 기간 고통스러웠다. 정신과 입원 치료까지 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그리고 9년의 세월이 흘렀다. 많은 국민들의 청원에 힘입어 재수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다시 증언대에 서야 했다. 나의 고통을 알 리 없는 누군가는 내가 유명세를 얻기 위해 증언대에 선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고 그보다 더 심한 말로 나를 모욕했다. 가족은 나의 고통을 생생히 지켜봐 왔기에 이번에는 증언을 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고통 속에서 죽음으로 항변했던 자연 언니에 비한다면 나의 고통은 감내해야 했다. 나는 언니를 외면할 수도 잊을 수도 없다. 그래서 다시 진실을 증언하러 한국으로 돌아왔고, 진실을 밝혀야만 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이미 훌쩍 시간이 지나버린, 10년 전 그때의 일들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묻는다.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제일 처음 경험한 것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당시의 나는 그저 꿈이 좌절될까 두려워하던 연예인 초년생이었다. 사회에 나와 생경하기만 했던 첫 경험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 기억 속에는 그때의 모든 일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있다.


○…나는 그 일 이후 연예계에서 퇴출 아닌 퇴출을 당했고 힘든 세월을 겪어내며 한국을 떠나 외국에서 숨어 살듯 숨죽여 지내야만 했다. 나는 또 다른 피해자가 되었고, 계속되는 트라우마로 힘겹게 살아왔다. 다리가 없는데 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목소리를 내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려 해도 아무런 소리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기분. 설사 그렇게 소리를 내지른다 해도 그 누구 하나 들어주지 않는 그런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왔다. 나는 억울했다. 하지만 언니의 죽음 뒤에 서 있던 그들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다. 고통스러운 시간 속에서 나는 그들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고, 시간이 흘러 다시 증언대에 올랐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렀어도 가해자는 분명히 존재한다. 가해자 없는 피해자가 있을 수 있을까? 시간이 피해자의 고통을 사라지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가해자로 처벌받은 사람은 단 두 명에 지나지 않는다. 이제는 잘못을 저지른 이들을 단죄해야 할 때다.


○…올해는 자연 언니의 사망 10주기다. 늘 나를 “애기라고” 불렀던 사람…. 자연 언니가 이제는 진정한 안식에 들길 바라면서 글을 썼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이 무거운 짐을 내 삶에서, 내 어깨에서, 내 머릿속에서 털어내고 싶다. 그간 나를 따라다니던 ‘장자연 사건의 목격자’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은 법정에 설 이유가 없기를 바란다.


○…거짓 속에 묻혀있던 진실이 내 마지막 증언으로 세상 속에 모습을 드러내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이것은 언니와 나를 위한 진실의 기록이다. 또한,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하는 일들의 기록이며, 언니도 나도 맘껏 꿈을 펼치며 나아갈 수 없었던 그 길에 대해 아쉬움과 미련을 담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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