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정신 깃든 곳으로 떠나는 여행

3월엔 애들 손 잡고 만세 함성 생생한 ‘거길’ 가보라!

정리/김수정 기자 | 기사입력 2019/03/15 [11:51]

3·1정신 깃든 곳으로 떠나는 여행

3월엔 애들 손 잡고 만세 함성 생생한 ‘거길’ 가보라!

정리/김수정 기자 | 입력 : 2019/03/15 [11:51]

“3월 하늘 가만히 우러러 보며 유관순 누나를 생각합니다♬” 삼일절 노래의 한 구절이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99돌이었던 지난 3월1일에는 3·1정신을 기리는 행사들로 나라 곳곳이 북적였다. 올해 삼일절에는 극장가에도 만세 함성이 울려 퍼졌다. 3·1운동의 아이콘 유관순 열사의 삶을 그린 영화 <항거: 유관순 이야기>가 3월 초순 극장가를 달군 것. 3·1혁명은 일제 식민통치를 거부한 민족의 자주독립선언이자, 봉건군주체제를 끝내고 민주공화주의를 지향하는 근대의 횃불이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런 3·1혁명의 가장 큰 성과였다. 기미독립선언서에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했으니 이를 대변하는 민족의 대표기구를 설립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런데 3·1혁명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의 관계를 잘 모르는 청소년들이 많다. 심지어 이 둘이 별개의 사건이라 알고 있는 성인들도 수두룩하다. 그런 의미에서 올 봄에는 아이들 손을 잡고 3·1정신이 깃든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세계 역사에 유례 없이 인구의 10분의 1 이상이 만세시위에 참여한 3·1정신을 기리며 대한민국의 뿌리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자. <편집자 주>

 


 

천안엔 독립운동의 함성과 제강점기 고통 되새길 만한 곳 여럿
독립기념관 주변 편의시설 갖춰져 한나절 가족 소풍지로도 그만


독립유공자 기린 추모벽에 끝없이 새겨진 이름 읽노라면 가슴 먹먹
500년 역사 서린 임청각 고택에서 묵어가는 하룻밤 그야말로 특별

 

1. 천안의 3·1정신 찾아서

 

▲ 국민 모금 운동으로 건립한 독립기념관. 사진은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 설계한 ‘겨레의집’이다.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봄, 아이들 손잡고 충남 천안으로 떠나보자. 감동과 교훈이 함께하는 여행이다. 천안에는 독립운동의 함성과 결의, 일제강점기의 고통을 되새겨볼 만한 곳이 여럿 있다. 먼저 목성읍 흑성산 아래 들어선 독립기념관으로 가자. 독립기념관이 탄생한 계기는 1982년 일본 고교 역사 교과서 검정 당시, 문부성이 한국에 관련된 내용을 일본 측에 유리하게 수정한 역사 왜곡 때문이다. 1982년 8월28일에 독립기념관 건립 계획을 발표했는데, 이날은 국권피탈 72년 하루 전날이다. 이후 기념관 건립을 위한 모금 운동 결과 500억 원이 모였다. 우여곡절도 있었다. 1986년 8월 15일 개관 예정이었지만, 열흘 남짓 앞두고 화재가 난 것. 결국 이듬해 8월15일 개관했다.


독립기념관은 이름 그대로 무수한 외침을 극복하고 자주독립을 지켜온 우리 민족의 국난 극복사를 살펴보고, 겨레의 독립 의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가장 먼저 ‘겨레의탑’을 만난다. 높이 51미터로, 고개를 힘껏 젖혀야 꼭대기를 바라볼 수 있을 정도다. 주차장에 설 때부터 방문객을 압도하는 위용을 자랑한다.


겨레의탑을 지나면 또 한 번 놀란다. 방문객 앞에 버티고 선 ‘겨레의집’은 웅장함 자체다. 길이 126미터, 너비 68미터, 높이 45미터에 달하는 동양 최대 기와집이다. 수덕사 대웅전을 본떠 설계했으며, 기념홀 같은 역할을 한다. 기와는 구리로 제작했으며, 현판은 서예가 일중 김충현이 썼다. 겨레의집 내부에는 ‘불굴의 한국인상’이라는 조각상이 있다. 한 무리 사람들이 힘찬 동작으로 앞을 향해 나아가는 형상이다. 온몸을 바쳐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연 순국선열을 상징한다. 겨레의집 앞으로 태극기 815기를 연중 게양하는 ‘태극기한마당’이 펼쳐진다. 2005년에 광복 60주년 기념으로 조성했다.


독립기념관은 7개 전시관과 입체영상관으로 구성된다. 자료가 워낙 방대하고 전시관이 넓어, 꼼꼼히 둘러보려면 5시간 정도 걸린다. 미리 정보를 알고 동선을 짜서 가는 것이 좋다. 7개 전시관에서는 일제의 잔인한 침략상과 각지에서 펼쳐진 독립운동을 시기별로 살펴볼 수 있다. 다양한 문헌 자료와 미니어처, 영상물이 이해를 돕는다.


제1전시관은 선사시대부터 조선 후기인 1860년 이전까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과 외세 극복의 역사를 정리한다. 고인돌 모형, 가야 기마 무사상 모형, 거북선 재현 모형 등이 눈길을 끈다. 제2전시관은 개항기와 일제강점기(1860년부터 1940년대까지) 우리 민족의 시련을 살펴볼 수 있고, 제3전시관은 일제에 항거한 의병 전쟁과 안중근 의사의 의거 등 구한말 국권 회복 운동에 관한 자료를 전시한다. 제4전시관은 독립운동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공간으로, 다양한 시각 자료가 감성을 자극한다. 국외에서 활동한 독립군과 광복군의 흔적이 있는 제5전시관,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의 밀랍 모형이 눈길을 끄는 제6전시관, 관람객이 독립 만세를 불러보는 등 국내외에서 전개된 다양한 독립운동을 체험할 수 있도록 꾸민 제7전시관도 발길을 붙든다.

 

▲ 한나절 가족 소풍지로 손색이 없는 독립기념관.   


전시관 위주로 살펴봐도 좋고, 인근 숲길 탐방 등과 함께 일정을 짜도 좋다. 독립기념관은 주변에 숲과 호수가 어우러지고 캠핑 공간과 꼬마열차, 어린이방 등 편의 시설이 잘 갖춰져 한나절 가족 소풍지로 손색이 없다. 첨단 디지털 시스템으로 화려한 영상과 특수 효과를 체험하는 입체영상관은 아이들에게 인기다. 홈페이지에서 전시관 해설 신청도 가능하다.


독립만세 운동이 전국으로 번지는 도화선이 된 것이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이다. 아우내를 한자로 쓴 지명이 병천(竝川)이다. 1902년 병천면 용두리에서 태어난 유관순 열사는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 1학년에 진학한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다. 3월10일 전국에 휴교령이 떨어지자, 열사는 같은 학교에 다니던 사촌 언니 유예도와 고향 천안으로 내려와 만세 운동을 주도한다. 이것이 4월1일 일어난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이다. 당시 3000여 명이 모였다고 한다.

 

▲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 영정.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으로 유관순 열사의 부모가 죽고, 자신도 체포되어 3년 형이 선고된다. 재판 당시 “다시는 독립운동을 하지 않고 대일본제국 신민으로 살아갈 것을 맹세하겠는가?”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유 열사는 “나는 왜놈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언젠가 네놈들은 천벌을 받아 반드시 망할 것이다”라며 재판장에게 의자를 던졌다. 옥중에서도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열사는 이듬해 4월 이왕세자(영친왕)가 도쿄(東京)에서 결혼하는 것을 기념해 1년 6개월로 감형됐지만, 1920년 9월28일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옥사한다.


유관순 열사의 생가는 아우내장터 만세 운동 당시 일본 관헌이 가옥과 헛간을 불태워 빈터만 남은 것을 1991년 12월30일 복원했으며, 봉화 터와 함께 사적 230호로 지정됐다. 생가 옆에는 박화성이 시를 짓고 이철경이 글씨를 쓴 기념비가 세워졌고, 열사가 다닌 매봉교회가 있다. 생가에서 유관순 열사 사적지까지 10여 분이면 걸어갈 수 있으며, 열사의 영정이 모셔진 추모각과 동상, 기념관 등이 그의 숭고한 뜻을 기린다.


유관순 열사가 만세 운동을 펼친 아우내장터 일대는 지금 병천순대거리가 조성됐다. 순대를 내는 식당 50여 곳이 들어서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1960년대 인근에 돼지고기를 가공하는 공장이 있었는데, 여기서 나오는 부산물로 순대를 만들어 팔며 시작됐다고 한다. 당면 대신 채소와 선지로 속을 꽉 채운 병천 순대는 누린내가 나지 않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


천안은 미술 테마 여행으로 즐겨도 좋다. 천안종합터미널 앞에 조성된 아라리오광장은 미술 애호가들에게 필수 순례지로 꼽히는 곳. 해외 관광객도 많이 찾는다. 세계적인 현대미술 작품이 전시된 야외 갤러리다. 데미안 허스트의 ‘찬가(Hymm)’와 ‘채러티(Charity)’, 키스 해링의 ‘줄리아(Julia)’, 코헤이 나와의 ‘매니폴드(Manifold)’ 등 세계적인 작가의 오리지널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광장 옆에 자리한 아라리오갤러리에서도 수준 높은 전시가 열린다.


상파울루비엔날레에서 조각가로 명성을 날린 이종각의 작품이 있는 리각미술관도 가볼 만하다. 대지 1만 5700㎡에 펼쳐진 야외조각공원과 830㎡에 이르는 실내 전시 공간으로 구성된다.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근사한 찻집도 있어 데이트 코스로 인기다.


아라리오광장과 리각미술관에서 미나릿길골목벽화마을이 가깝다. 예쁜 벽화가 그려진 800여 m 골목이 방문객을 반긴다. 골목을 걷다 보면 야외 미술관에 온 느낌이 든다. 천안역에서 택시를 타면 기본요금이 나오고, 걸어도 15분이 채 안 걸려 접근이 편하다.

<글·사진/최갑수(여행작가)>

 

2. 안동의 3·1정신 찾아서


1919년 3월1일 경성(서울) 종로에서 시작된 만세의 함성은 독립을 염원하는 기운을 타고 3월13일, 경북 안동에 이르렀다. 이날 울려 퍼진 만세 소리는 보름간 계속됐으며, 14회에 걸쳐 약 1만여 명이 조국의 광복을 부르짖었다. 100년 전 만세 함성을 따라 ‘독립운동의 성지’ 안동을 찾았다.

 

▲ 안동의 독립운동사를 살펴볼 수 있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전경.    


일제강점기 많은 사람이 독립운동에 나선 안동은 시·군 단위로 전국에서 독립 유공자(약 350명)가 가장 많은 지역이지만, 그동안 역사의 뒤편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다. 안동의 독립운동사를 살펴보기 위해 먼저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으로 가자. 1894년 갑오 의병부터 1945년 광복까지 줄기차게 이어진 안동과 경북 독립지사의 투쟁을 문헌과 자료, 영상으로 소개한 곳이다. 전시 관람은 해설사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좋다. 의병 항쟁과 대구의 국채보상운동, 만주 지역의 항일 투쟁, 의열단과 광복군 전투 등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주며, 깊이 있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안동은 유학이 뿌리 깊은 지역이지만, 의병 활동이 실패한 뒤 신학문을 받아들인 혁신 유림이 생겨난다. 혁신 유림은 국권을 빼앗긴 이후 만주로 건너가 항일 투쟁을 이어가는데, 가족과 친지 등 이들을 따라 망명한 사람이 1911년에만 25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험난한 상황에 물심양면 독립군을 도운 이들이 없었다면 만주의 항일 투쟁은 더욱 어려웠을지 모른다.


전시관을 둘러보다가 낯익은 이름을 발견한다. 도쿄(東京)에서 법정투쟁을 벌인 박열은 문경, 의열단 김시현은 안동이 고향이다. 김시현은 영화 〈밀정〉에서 의열단 리더 김우진(공유)의 모티프가 된 인물이다. 영화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전지현)도 영양 출신 독립운동가 남자현을 모델로 한다. 남자현은 1933년 하얼빈(哈爾濱) 감옥에서 풀려나 숨을 거두면서까지 “독립은 정신으로 이뤄진다”는 말을 남겼다.


전시관에는 일제의 고문 시설인 벽관 체험을 비롯해 독립선언서 등사하기, 비밀 요원이 되어 미션 수행하기 등 체험 프로그램이 많아 아이들도 흥미롭게 관람할 수 있다. 야외에는 조국의 광복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기린 추모벽이 있다. 전국의 독립 유공자 1만5000여 명 가운데 경북 출신이 약 2160명이다. 추모벽에 끝없이 새겨진 이름을 하나씩 읽다 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추모벽에 새겨진 경북 출신 독립 유공자의 이름.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바로 곁에 의성 김씨 집성촌 내앞마을이 있다. 안동 지역 애국 계몽운동의 산실인 협동학교가 이곳에서 처음 열렸다. 당시 내앞마을은 신학문을 가르치고 민족의식을 고취한 독립운동가의 요람이었지만, 지금은 한적한 시골이다. 내앞마을 사람들은 일제 치하에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여러 방면으로 싸웠다.


이 가운데 ‘만주벌 호랑이’로 불린 김동삼과 일가를 데리고 만주로 망명한 김대락이 있다. 자기 집을 내주며 협동학교를 후원한 김대락은 나라를 잃은 뒤 만주로 떠났는데, 이때 마을에서 150여 명이 그와 함께 망명했다고 한다. 김대락은 힘겨운 상황에도 만주의 생활과 활동을 기록한 《백하일기》를 남겼다. 마을에는 과거를 잊어선 안 된다는 듯 일송 김동삼의 생가와 협동학교 교사(校舍)로 쓰인 ‘백하구려(白下舊廬)’가 여전히 자리를 지킨다.


안동의 독립운동 명소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임청각이다. 활짝 연 임청각 대문에는 ‘국무령 이상룡 생가’ 현판이 걸렸다. 고성 이씨 종택인 이곳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의 생가이자, 3대가 독립 투쟁에 나선 명실상부 독립운동가의 집이다. 지난해 이상룡의 손부 허은 여사가 건국훈장 애족장에 서훈되며 이 집에서 독립 유공자 10명이 배출됐다. 임청각 안에 있는 군자정에는 퇴계 이황이 쓴 현판과 독립 유공자 증서가 나란히 걸렸다. 임청각 내부에 마련된 작은 전시관에는 이상룡과 그 가족이 걸어온 험난한 여정이 자세히 기록됐다.

 

▲ 집 앞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도가 놓이는 바람에 수십 칸이 강제 철거된 임청각 전경.    


임청각은 원래 민간 살림집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99칸 가옥이지만, 지금은 절반가량이 남았다. 독립운동가가 많은 임청각을 눈엣가시로 여긴 일본이 맥을 끊겠다며 집 앞마당을 가로질러 중앙선 철도를 놓았기 때문이다. 이때 대문과 행랑채 등 수십 칸이 강제 철거됐다. 이 사연은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소개하며 널리 알려졌다. 다행히 임청각 복원이 결정돼, 몇 년 뒤에는 온전한 모습을 볼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임청각은 내부 관람이 가능하며, 고택 체험도 운영한다. 독립운동가의 집이자 500년 역사가 있는 고택에서 묵어가는 하룻밤은 그야말로 특별하다. 한지를 곱게 바른 전통 한옥의 고풍스럽고 아늑한 기운에 마음이 편안해진다. 아직 쌀쌀한 초봄, 뜨끈한 아랫목에 손발을 넣으면 추위에 움츠러든 몸도 사르르 녹는다. 이왕이면 이상룡 선생이 태어난 사랑채에 묵어보자. 긴 밤 꿈속에서 한평생 독립을 향한 길에 섰던 그의 삶과 마주할지도 모른다. 이른 아침에는 임청각 뒤쪽 담장을 따라 난 소담길을 걸어보자. 무궁화가 곱게 핀 길을 걷다 보면 이상룡 선생의 강인한 정신과 신념이 가슴 깊이 스며든다.


밤이 길게 느껴진다면 월영교를 추천한다. 안동댐 아랫자락에 놓인 월영교는 밤경치가 아름다운 곳으로, 늦은 시간에도 방문하는 사람이 많다. 월영교에는 ‘원이 엄마 편지’로 알려진 절절한 사랑 이야기가 숨어 있다. 안동시 택지조성 중 발견된 무덤에서 무려 400년이나 된 미라 상태의 시신과 한글 편지가 발견됐는데, 병든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의 슬픔과 사랑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고 한다. 월영교에는 남편의 쾌유를 바라며 자기 머리카락을 넣어 미투리를 만든 원이 엄마의 마음이 담겼다. 미투리 모양을 본뜬 다리를 건너면 괜스레 마음이 애틋해진다. 월영교 앞에 음식점과 카페가 있어 안동의 음식을 맛보며 쉬었다 가기도 좋다.


다음 날은 도산서원과 이육사문학관을 방문해보자. 도산서원은 조선의 대표적인 유학자 퇴계 이황을 모신 곳이다. 일찍이 관직에서 물러난 퇴계는 고향에 내려와 학문에 힘썼다.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는 한가로운 풍경 속에 이황이 제자들을 가르친 도산서당과 퇴계 선생 사후에 제자들이 건립한 도산서원이 앞뒤로 자리한다. 1575년(선조 8)에 ‘도산(陶山)’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도산서원 현판은 명필가 한석봉이 썼다.


도산서원 곳곳에 이황의 교육과 학문에 대한 철학이 묻어난다. 제자들이 기거한 ‘농운정사(?雲精舍)’는 퇴계가 직접 설계한 건물이다. 농운정사는 평면이 일반적으로 잘 짓지 않는 ‘工 자형’인데, 공부(工夫)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옥진각에는 퇴계의 유품과 저서를 전시하며, 그의 학문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도산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육사문학관이 있다. 저항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이육사 선생과 만나는 공간이다. 독립과 민족정신을 담은 시를 쓴 이육사는 교과서에 실린 〈청포도〉 〈광야〉를 비롯해 수십 편을 남겼다. 일제에 항거하며 독립을 염원한 작품을 이곳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이육사는 국외를 오가며 독립운동에도 뛰어들었다. 본명은 이원록(李源祿)으로, ‘이육사’라는 필명에서 그의 투철한 독립 의식과 굽힐 줄 모르는 신념이 엿보인다. 이육사는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발 사건(장진홍 의거)에 연루돼 1년 7개월간 옥살이하는데, 이때 수인 번호가 264였다. 이후 일본에 저항하는 의미로 이름을 이육사(李陸史)로 지었다. 대구형무소에서 첫 옥고를 치른 이래, 1944년 베이징(北京) 감옥에서 순국하기까지 총 17차례 수감 생활을 한 그는 모진 고문과 협박에도 굴하지 않았다. 독립을 향한 불꽃같은 열망은 그의 작품에 남아 여전히 활활 타오른다. 전시관 2층 끝에 이육사의 고향 마을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 ‘문학카페 노랑나븨’가 있다. 차 한 잔 마시며 이육사 시인을 추모하는 마음을 글로 남겨보자.

<글·사진/정은주(여행작가)>
<콘텐츠 제공=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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