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보다 재미있는 발굴 명당야사

한산이씨 아전이 금계포란형 명당 얻은 사연

글/장천규(풍수연구가) | 기사입력 2019/04/05 [11:20]

소설보다 재미있는 발굴 명당야사

한산이씨 아전이 금계포란형 명당 얻은 사연

글/장천규(풍수연구가) | 입력 : 2019/04/05 [11:20]

고려 때 풍수지리 해박했던 사또, 금닭이 알 품은 穴 발견
풍수 실력 검증하려고 아전에게 “달걀 삼칠일 묻어라” 분부


그 아전 상한 달걀 묻고 眞穴 감춰뒀다 훗날 부친 유골 묻어
이후 그 후손 큰 부자 되고 고려·조선 걸쳐 숱한 대학자 배출

 

한산이씨 시조 묘는 충남 서천의 건지산에서 내려온 맥이 마치 집터처럼 큼직한 혈을 형성하고 있는 명당으로,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금계포란형’으로 알려져 있다. 이 묘소 앞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알봉이 있는데 이를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보는 것이다. 또 묘 앞쪽에 탑이 하나 있는데, 그 탑은 이곳이 절터였음을 짐작케 한다. 묘소 옆에는 동원을 옮긴 자리인 한산면 행정복지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 한산이씨 시조 묘는 충남 서천의 건지산에서 내려온 맥이 마치 집터처럼 큼직한 혈을 형성하고 있는 명당으로,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금계포란형’으로 알려져 있다.    

 

한산이씨 시조 묘에 얽힌 얘기


이제 한산이씨 시조 묘에 얽힌 야사로 눈을 돌려보자.


원래 이곳은 고려 때 관청이 있던 자리였다. 어떤 이가 사또가 되어 부임했는데 그는 역학에 능통하고 풍수지리도 해박하여 은연중에 자신이 도사의 반열에 오를 정도가 되었다고 자부하는 편이었다.


하루는 사또가 우연히 동원 마루를 지켜보다 궁금증이 치밀었다. 
‘아니! 저 마루판이 왜 썩는 것일까?’


사실 그 자리는 해마다 마루판을 새로 교체해도 얼마 안 가 썩어 버리는 바람에 보수를 거듭했던 곳이기도 했다.
사또는 무릎을 탁 치며 중얼거렸다.
“아! 여기가 바로 명당 혈이렷다!”


자신의 풍수 실력을 믿은 그는 동헌이 명당이고 마루판이 썩은 그 자리가 명당의 혈임을 간파했다.
그러면서도 사또는 그 자리가 진짜 혈인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궁리 끝에 ‘만일 이곳이 금계포란형이 분명하다면 달걀을 묻어두고 삼칠일(21일)이 지나면 병아리가 나올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달걀을 묻어보기로 작정했다.


사또는 아전을 불러 이렇게 분부했다.
“동헌 마루가 자꾸 썩으니 내 생각에는 저곳이 명당의 진혈(眞血)이 틀림없다. 저곳에 달걀을 묻어 놓아라! 삼칠일(21일)이 지나면 병아리로 부화할 것이다.”


사또의 분부를 받은 아전이 달걀을 준비하면서 문득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아! 내 아버지의 유골을 이곳에 모시면 좋겠구나!’


아전은 하나의 꾀를 생각해 냈다.
‘사또께서 이곳에 달걀을 묻으면 병아리가 나올 것이라고 하셨지만 사또의 생각이 틀렸다는 쪽으로 결말이 나도록 해야지!’
아전은 그 자리에 곯은 달걀을 묻어 놓았다.


삼칠일이 되던 날 사또가 아전에게 명했다.
“저곳에 묻어놓은 달걀을 꺼내 보아라! 병아리로 부화했는지 확인해 보자.”


그러나 막상 그 자리를 파보니 병아리는커녕 곯은 달걀에서 썩은 내가 진동했다.
사또는 자신의 풍수 실력이 미천함을 한탄하며 지금까지 자신의 실력이 도사의 경지에 올랐다고 생각한 것이 자만이었음을 자책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한산면을 떠나 다른 고을로 발령을 받았다.

 

▲ 한산이씨 묘소 앞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알봉이 있는데 이를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마루 밑에 부친 유골 묻고


아전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그곳에 멀쩡한 달걀을 묻어놓고 삼칠일을 기다렸다. 그리고 달걀을 꺼내 보니 병아리로 변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전은 결심했다.
‘아! 이곳이 진정한 명당 혈이구나. 이곳에 아버님을 모셔야겠다. 그래서 나의 집안도  부귀영화를 누려야겠다.’
아전은 아무도 모르게 동헌 마루 밑에 아버님의 유골을 묻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아전의 집안은 한산면에서 큰소리를 칠 만큼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또 수백 년이 지난 후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를 알고 있는 한산이씨 후손이 사또로 부임하게 되었다.


사또는 부하 아전들에게 지시를 했다.
“저 동헌 마루를 열어 보아라! 그리고 조심해서 흙을 파보아라!”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유골이 발견되었다. 사또는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는 이야기가 사실임을 확인하고 한산이씨 종친들을 모셔와 회의를 한 후 이곳이 한산이씨 시조 묘인 것을 확인했다. 사또와 한산이씨 종친들은 낡은 관아를 지금의 한산면행정복지센터 자리로 옮겨주고 시조 묘를 조성했다.

 


아전은 동헌 마루 밑에 몰래 아버님을 암장하고 부를 형성하여 한산면의 중심세력이 되었다.


동헌 마루 밑에 묻힌 한산이씨 시조 호장공의 5대손이 고려 말 대학자인 가정 이곡 선생이고 6대손은 목은 이색 선생으로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함께 고려삼은의 한 분이다. 또 목은 선생의 6대손은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토정 이지함 선생이며, 토정 선생의 조카는 영의정을 지낸 아계 이산해다. 뿐만 아니라 한산이씨는 조선 역사에서 과거 급제자, 공신, 대제학 등 200명이 넘는 인물을 배출해 조선 역사의 한 획을 긋는 집안이 되었다.


한산이씨 집안은 풍수지리의 수혜를 입고 번성하여 후손들도 그 정신을 이어받아 조상을 명당에 모신 것으로 보인다. 한산면에는 문헌서원이 있는데, 이 문헌서원은 가정 이곡 선생과 목은 이색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1576년(선조9)에 한산군수 이성중과 지방 유림들의 공론으로 효정사라는 사우를 짓고 가정과 목은 선생을 배향했다.


서원 안쪽에는 목은 선생의 묘소가 있는데 이 묘 자리는 무학대사가 소점한 자리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그곳에서 무학대사의 풍수 실력을 엿볼 수 있다. 기린산에서 내려온 줄기가 혈을 맺었는데 청룡이 길게 묘를 감싸고 있어 그 자손 중에 남자들이 득세할 것으로 보인다. 무학대사가 이색 선생의 묘를 잡을 때 아들 자손이 세상에 이름을 떨치라고 잡아준 자리인 것 같다.

 

명당은 하늘이 정하는 것


현대에 이르러 우리들 대다수가 풍수지리를 미신으로 여기고 있지만 실제 풍수지리는 권력자의 사후세계와 후손들의 번영을 위해 사용되는 학문이다.


필자는 여러 곳의 명당을 돌아보면서 가장 큰 장점으로 느낀 것이 하나 있다. 한산이씨 시조인 호장공이 벼슬을 하면서 사리사욕을 차리지 않고 원리원칙대로 행하여 적덕을 쌓아 명당을 얻은 것처럼, 명당을 얻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봉사하고 백성을 아끼고 사랑하며 바른 일을 하고 덕을 많이 쌓으며 산 사람들이다.


악행을 저지르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명당을 얻지 못한다는 옛말이 있듯이 명당의 주인은 하늘에서 정하는 것이다. 명당을 얻은 사람들은 후손이 번창하고 그들의 유전자가 영원히 이어지도록 하려는 것이라 여기고 있다. 그래서 명당을 얻은 집안은 자손이 번창하는 특징이 있다. 그것이 바로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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