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제1회 프롤로그 & 제1부 지푸라기 1

미군 노리개 양공주나 일본군 위안부나 다를 게 뭐겠어?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19/05/31 [10:05]

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제1회 프롤로그 & 제1부 지푸라기 1

미군 노리개 양공주나 일본군 위안부나 다를 게 뭐겠어?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19/05/31 [10:05]

♠ 연재를 시작하며 ‘작가의 말’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과 상흔은 온 민족의 것이다!

 

▲ ‘언덕 위의 하얀 집’ ‘양공주 병원 감옥’이라 불리는 동두천 낙검자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작가 김영권. 

 

그녀들을 일률적으로 양갈보로 낙인 찍는 건 비겁한 짓 아닐까?
공터 여기저기 피어나 부슬비에 젖어 떠는 꽃들은 귀신의 원망?


‘몽키하우스’를 찾아가는 날엔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그래도 소요산 등반객은 꽤 많은 편이었다. 허나 그들 중에 옛 양공주 성병 환자 수용소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겨우, 어느 모시옷을 정갈히 갖춰 입은 할머니가 가리켜 주는 곳으로 올라갔다.


거긴 격주로 각설이 패들이 공연하는 데라는데, 공일(空日)인지 몇몇 남녀가 탁자 앞에 앉아 토론하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몽키하우스가 어디죠?”


“우린 원숭이 안 키워요.”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 부르기도 했고… 이 부근이라던데….”


“글쎄요.”


주위를 살펴보았으나 백색이나 회색 건물은 없었다. 나뭇잎 사이로 높다랗고 거무칙칙한 벽의 뒷면만 보일 뿐이었다.


잡초를 헤치며 슬슬 돌아갔다. 그러자 갑자기 옆면과 정면이 누르스름하게 변색된 2층짜리 건물이 나타났다. 1970년대엔 흰색이었다는데 언젠가 연노란 색으로 덧칠한 듯싶었다. 페인트가 벗겨져 희끄무레한 본디 색이 드러나고 군데군데 세월의 곰팡이가 거무스레 낀 모양이었는데, 뒷벽이 왜 그렇게 검은지는 짐작되지 않았다. 페인트나 곰팡이라기보다 검은 비닐막을 쳐 놓은 것 같기도 했으나, 대체 왜 그랬을지 의문이 일었다.


건물 앞의 공터엔 잡초가 무성히 자라나 전체적으로 하나의 폐허였다.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 벽면에 출입금지 경고문이 동두천 경찰서장 명의로 붙어 있었다. 일단 들어섰다. 폐허의 공간에서나마 과거의 진실을 캐내야 했기에 현재의 경고를 잠시 무시했다.


하지만 1970년대 경찰관의 엄포와 달리 현 시대 경관의 경고는 분명 일리가 있었다. 어둑스레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내 스스로 위험 지역임을 느꼈던 것이다. 건물 일부가 언제 어디서 무너질지 모를 만큼 낡았고 실제로 천장의 합판이 찢겨진 채 간혹 무언가 툭툭 떨어져 내렸다. 발밑에선 계속 유리조각 밟히는 소리가 났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풀썩풀썩 먼지가 일었다.


오랜 세월 동안 방치된 건물 내부는, 비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마치 수십 년 전에 숨진 거대한 괴물체의 내장 속 같았다. 네티즌이 올려놓은 동영상과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 찍어 방송한 화면을 이미 본 상태였으나 실제로 현장을 둘러보니 머리끝이 주뼛 설 지경이었다.


우선 밖에서 보기와 달리 방(room)이 엄청 많았다. 큰방, 작은방, 구석방…. 통로를 사이에 두고 좌우로 줄느런히 늘어섰다. 그 속엔 폐물로 변해 버린 군용 담요, 핸드백, 화장품통, 찢어진 원피스, 깨진 거울 따위가 먼지를 덮어쓴 채 나뒹굴어 있었다.


폐쇄되기 전까지 수용돼 있었을 여자들의 모습과 삶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활명수 병과 잡지책이 보이길래 집어내 오물을 털고 살펴보았더니, 상표가 거의 지워졌거나 책장들이 완전히 들러붙은 상태라 펼쳐서 어떤 의미를 파악하긴 어려웠다.


‘시대를 착각하면 안 돼. 이 속엔 아마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가 뒤섞여 있을 테니까….’


생각하며 폭 좁은 가파른 시멘트 계단을 걸어 2층으로 올라갔다. 귀신이라도 나올 듯이 음산한 느낌이었다. 죄 아닌 죄로 갇힌 몸일지언정 여자들의 숙소라 그런지 황폐해진 수많은 방들엔 화장품과 거울의 누추한 잔해가 여기저기 나뒹굴었다. 거울을 닦아서 혼령의 모습이나마 한번 새겨볼까 하다가 옥상으로 올랐다.


하늘을 쳐다보며 심호흡을 했다. 잔뜩 흐리긴 했지만, 그곳은 쇠창살로 인해 갈기갈기 찢기지 않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자유를 향해 날아가려던 무수한 여인들이 떨어져 죽거나 불구 신세가 된 곳이기도 했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볼 땐 좀 긴가민가 했는데, 실제로 가녘으로 가서 내려다보니 일반 건물과 달리 까마득히 높아 만약 뛰어내린다면 즉사 또는 중상을 입고 말 듯싶었다.


‘나라 힘이 약해… 어쩔 도리 없는 상황에서, 벼랑을 뛰어내리는 심정으로 몸을 버린 경우도 있을 텐데… 그녀들을 일률적으로 양갈보니 똥치니 화냥년으로 낙인 찍는 건 비겁한 짓이 아닐까? 여자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채 왕을 닮은 친일파·친중파·친미파 놈들은 희희낙락거리며 부귀영화를 누렸으면서….’


바람이 불자 저쪽 멀리 허연 감시초소를 둘러선 나무의 푸른 잎새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그런데 그중에서 좀 외떨어진 한 나무의 잎새는 유난히 파르르 떨어댔다. 무엇엔가 잔뜩 겁먹은 듯…. 몸통과 이파리에 납빛이 감도는 게 은사시나무가 아닐지 짐작해 보았다. 을씨년스런 분위기 때문인지, 문득 그건 오래 전 이곳에 갇혀 고통당하거나 억울하게 죽은 여인들의 겁먹은 혼령이 스며든 게 아닌가 싶어 애처로웠다. 그리고 공터 여기저기 피어나 부슬비에 젖어 떠는 꽃들은 귀신의 원망이나 소망인 양 느껴져 한참 바라보았다.


‘아, 왜 이렇게 방치해 두는 걸까? 건물을 헐어내 버리기보다 잘 활용해 기념관을 만들고 작은 위령비라도 세운다면 어떨까. 하기야 신성한 한미혈맹을 위해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해 있는 동안엔 쉽지 않은 일이겠지. 그렇지만 과거의 치부라 할지라도 모른 척하기보다 진실되게 기억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좋지 않을까? 의존과 종속 관계를 끝내고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존중할 때 참다운 한미동맹의 우정이 더욱 돈독해지지 않을까 싶은걸. 우리 스스로 자존감을 버리고 비굴하게 굴어서 그렇지, 성숙한 인간답게 당당해진다면 미국 사람들도 오히려 멋진 친구라며 존중해 줄 텐데…. 다른 분야에서는 그런 저력을 많이 갖췄는데, 유독 국방 부문에선 왜 그리 미숙한 꺼병이처럼 의타심을 못 버리고 자꾸 어리광이나 부리려는 사람이 많은지 몰라….’


언제 다시 올지 몰라 다시 한 번 찬찬히 둘러본 후 건물 밖으로 나와, 혼령인 듯 떨고 있는 이름 모를 하얀 꽃들에게 작별을 고했다.


‘보지가 내 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보지였어!…’


어느 할머니의 구슬픈 절규가 떠오른다. 미군 기지촌 여성들의 고통과 상흔 그리고 수치심은 그녀들만의 것이 아니라 온 민족의 것이다. 동두천·평택 등을 비롯한 미군 주둔지만 기지촌이 아니라 한국 땅 전체가 그런 상황이라고 말한다면 과연 지나친 확대해석일까?


미군이 이 땅에 주둔한 이후로 이른바 양공주·양색시·양갈보 등으로 불린 ‘미군 위안부’ 들의 비참한 삶을 그린 작품은 무척 많았다. 대부분 미군부대 주변의 클럽을 무대로 술과 춤과 몸을 파는 여자들의 얘기였다. 물론 성병치료소를 단편적으로 언급한 경우도 없지 않았으나, 동두천 몽키하우스를 본격적으로 탐사해 다룬 장편소설은 이 작품이 처음이지 않을까 싶다.


이 작품은 그 모든 이전 문제작들의 도움을 입어 씌어졌다. 그리고 고통스런 옛 기억을 떠올려 어렵사리 증언해주신 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더불어, 그분들의 애달픈 삶을 살펴 정리하고 여생을 조금이나마 따뜻이 보살피려 애쓰는 의정부의 두레방, 동두천의 새움터, 평택의 햇살사회복지회의 도움에도 감사드린다.

 

2019년 봄
연신내에서 김영권

 

 

제1회 프롤로그 & 제1부 지푸라기 1

 

‘입에 발린 창녀 말을 믿는 거야?’ 자신이 같잖다는 듯 웃었다!
여인들을 인간 아닌 창녀라는 이름의 일회용 소모품 인형 취급

 

▲ 마지막 남은 경성 제일의 기생학교 ‘대성권번’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해어화’ 한 장면.    

 

프롤로그-인연


구룡마을 가는 날은 황사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지하철을 내려 마을 입구로 들어서자 포장되지 않은 길바닥에서 뿌연 먼지가 일어 시야를 가렸다.


‘참 지랄 같군. 옛날엔 흙먼지가 복사꽃을 날리며 로맨틱하게 감정을 자극하는 경우도 있었건만… 이젠 미세먼지 속의 독소를 걱정해야 할 판이니…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마치 외계인처럼 느껴져….’


나는 입속으로 중얼거리며 거센 바람을 등지고 돌아섰다. 먼지 때문에 흐릿하긴 했지만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저쪽엔 거대한 타워팰리스의 빌딩 군(群)이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구룡산엔 용 열 마리가 승천하는 것을 본 사람이 놀라 소리치는 바람에 한 마리가 떨어져 죽고 아홉 마리만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지. 하늘에 오르지 못한 한 마리는 좋은 재물(財物)이 흐르는 물로 변해 양재천이 됐다더군. 그 구룡산이 품고 있는 마을이 구룡마을인데, 안타까이 전설도 무망하게 서울에서 가장 못 사는 동네이지.”


윤 노인이 말하곤 웃었다.


“강남 개발이 한창이던 1980년대 초, 개발에 밀려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몰리면서 1000여 가구에 3000여 명이 사는 무허가 판자촌이 됐지. 양재대로를 사이에 두고 가장 잘사는 동네와 빈민 판자촌이 마주보고 있으니 강남의 빛과 그림자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성싶어. 주민 대부분이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기반시설이 형편없어 거주환경이 아주 열악할뿐더러 화재 위험도 높아 아슬아슬한 지옥이랄까.”


윤 노인이 중얼거렸다.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이곳이 과연 사람 사는 동네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서울의 대표적인 빈민 거주 지역 중에서도 중계동 백사마을은 궁핍하나마 일종의 청빈한 삶을 어렵사리 이어갈 만한 가능성이 한 줄기쯤 보이는 데 반해 구룡마을은 마치 지옥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물론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면 안 되겠지만 너무 참혹한 상태였다. 과연 저걸 집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아스러울 지경이었다. 양식도 아니고 한식도 아닌 일종의 기묘한 움막집이라고나 할까. 입구 쪽엔 허름한 대로 가게가 있고 잿빛 블록으로 담을 쌓은 하꼬방도 보였지만, 점차 들어갈수록 삭막해졌다. 겨우 지나갈 만한 골목 양쪽으로 움막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벽은 대부분 썩고 낡아빠진 합판이었는데, 겨울철 방한용인지 그 위에 검은 비닐이 덮어 씌워진 상태였다. 여기저기 찢어진 비닐 사이로 잔뜩 삭아빠진 양탄자 같은 게 드러나 보였고, 합판 쪼가리는 아주 조금만 눈에 띄어, 마치 움막 자체가 뼈대 없이 검은 비닐과 양탄자 조각으로 이루어진 기이한 건축물 같았다.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지.”


윤 노인이 말하곤 웃었다. 미로 같은 길을 걸어가자 여기저기 파괴된 가옥이 보였다. 재개발 정책으로 인해 이주한 집을 아예 반쯤 파괴한 뒤 문에 자물통을 채우고 검붉은 스프레이로 ×표나 해골을 그려 놓았다. 그곳은 시간이 더 이상 제대로 흐르지 못하는 폐허랄까….


‘왜 어떤 사람은 자기가 직접 살지도 않는 궁전 같은 집을 열 채씩 보유하기도 하는데 어떤 사람은 이런 곧 무너져 내릴 듯한 움에서 허덕여야 하는가?’


나는 상념에 잠겼다. 비탈진 골목을 오르는데 바로 옆집에서 기도 소리가 들려왔다.


“남묘호렝게쿄… 남묘….”


그 소리는 곧 죽어가는 사람의 단말마처럼 처연스레 울렸다. 손바닥만한 비닐 창을 통해, 어둑한 골방에 꿇어앉아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간구하는 늙은 여인의 옆모습이 보였다.


윤 노인은 머리를 흔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번에 백사마을의 허름한 쪽방에서 만났을 때, 그는 자신의 엄마도 이상한 종교에 빠져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고 얘기하곤 긴 한숨을 쉬었었다.


윤 노인은 앞장서서 비탈진 골목을 오른 끝에 어느 움집 앞에 멈춰섰다.


“어이, 선아씨… 나, 왔네.”


윤 노인은 부드럽게 말하고 나서 낡은 문을 연 다음 안으로 들어섰다. 밖은 청명한 대낮이었지만 방안은 어두컴컴한 암굴 같았다. 형광등이 켜지자 흐릿한 빛을 뿌리며 죽어가는 쓰르라미가 우는 듯한 소리가 났다. 작고 초라한 탁자 앞에 앉아 염주를 굴리고 있던 할머니가 돋보기를 벗으며 보일락말락 어렴풋이 미소 지었다.


“동상, 불은 꺼 버리랑게. 좀 있으문 편안히 보일 거라.”


“동생은 무슨 동생… 동갑에다 생일은 내가 몇 달 빠른데… 예전엔 오빠라더니….”


“흥, 그때하구 지금하구 같으냥? 옛날엔 쫌 멋이 있었으니까 그렇게 불렀었지만… 하긴 지금도 가끔은, 그때 동상 말을 안 들은 게 아슴아슴 후회가 돼 오긴 해.”


“그러니 지금이라도 이 오래비 말을 듣고… 여길 떠나 상계동 백사마을로 가자니까… 자꾸 고집을 부리고 그래.”


“싫어. 다 늙은 마당에 같이 살면 뭘해.”


“누가 같이 살쟤? 같은 동네에서 살자는 거지. 흥, 김칫국부터 마시지 말라구.”


“호호, 김칫국은 옛날 몽키하우스에 있을 때 다 마셨으니 이젠 술이나 한잔 해요. 쫌 그윽하게….”


막걸리에 갓김치가 안주였지만 잘 익어서 그런지 아주 상큼했다.
그들도 추억을 효모로 삼아 서서히 발효돼 갔다.
나는 옆에 앉아 그들이 주고 받는 구슬픈 인생담에 서서히 젖어들었다.

 

제1부 지푸라기


별이 푸른 건 허공 하늘이 있기 때문이다.


빌딩 숲으로 산맥을 이룬 도시의 하늘 선(線)이 만일 콘크리트 장벽에 완전히 가려 버린다면 별은 사라지리라. 아마 하늘보다 먼저 사람의 가슴속에서… 그리고 그 별은 검은 아스팔트 위에 떨어져 깨어진 채 구르다가 지하의 나이트 홀이나 살롱으로 가서 유리조각처럼 반짝일는지도 모른다.


청운이 쉬엄쉬엄 걸어서 청량리역 앞에 도착한 건 어둠이 꽤 짙어져 길가의 네온사인이나 질주하는 차량의 헤드라이트들이 반딧불처럼 명멸할 무렵이었다.


청운은 역사 지붕 밑 정면의 푸른 글자 중에 ‘량’자가 흐릿하게 빈사 상태로 깜박이는 것을 무심히 쳐다보다가 낡은 시계탑으로 눈길을 돌리기도 했다. 얼핏 ‘청리역’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시곗바늘은 모른 척 9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초겨울의 스산한 바람이 이따금 역 광장을 휩쓸어 불며 휴지 조각이나 비닐봉지 따위를 이리저리 흩날렸다.


‘악마산에 있을 때보다 더 황량한 느낌이군.’


청운은 혼잣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천천히 역전식당으로 가서 소주와 국밥을 한 그릇 시켜 먹은 후 다시 역 광장으로 나와 슬슬 거닐었다.


발길이 저도 모르게 588번지 쪽으로 갔다. 희미한 핑크빛 조명이 마술을 부릴 듯한 사창가 골목 입구에서 그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청소년기를 벗어나 막 청년기로 접어든 청운은 어릴 때부터 겪은 고생 때문인지 어쩐지 그 실루엣이 퍽 서글픈 인상을 풍겼다. 안색도 창백해 보였다. 하지만 단아한 풍모는 조금쯤 남아 있었는데, 그건 아마 실의에 젖었을지언정 마음속에 깃든 자기 나름의 꿈과 소망 또는 의지(意志)가 깃든 눈빛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가볼까 말까? 기다리고 있겠다고 하긴 했지만….’


청운은 자신의 생각이 같잖다는 듯 빙긋 웃었다.


‘흐흥, 세월이 많이 흘렀는데 과연 그럴까?’


‘괜한 소리였겠지. 하지만 그땐….’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창녀의 입에 발린 말을 믿는 거야?’


‘그건 아냐.’


‘그럼 됐어. 그냥 돌아가자구.’


‘흠, 해어화(解語花)란 사람 말을 알아듣는 기이한 꽃이라고 했었지. 하기야 제대로 꽃봉오리를 피웠더라면 미인다운 구석이 없지도 않았어. 하지만 시대를 잘못 만나 폐병 든 창녀가 되었으니…. 아마 지금쯤은 동백꽃 송이처럼 피를 토하고 떨어져 버렸을지도 몰라. 갔다가 없으면 더 허전할 거야.’


그는 고개를 흔들었다.


‘일단 가보면 되지 뭘 그래. 고민할 것 없잖아!’


그러자 마음속의 또 다른 목소리가 의문을 제기했다.


‘아무리 약속을 했다지만 벌써 1년이 넘은 듯한데… 설령 살아 있더라도 날 기억하고 있을까?’


‘그래, 흐흐흐… 하지만 저 정육점 같은 불빛 속엔 다른 여자도 있지 않을까.’


그는 망설이던 발을 한 걸음 옮겼다.


‘그럼 넌 혹시 묵은 성욕을 해소하려는 게 목적이야?’


자문자답하며 창녀굴 입구에 서 있던 청운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만일 그렇다면… 나처럼 정욕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이 이 땅에 많다면… 미군들의 노리개인 양공주나 먼 옛날의 일본군 위안부와 다를 게 뭐겠어? 수십 년을 지난 오늘날 또… 가련한 여인들이 인간 아닌 창녀라는 이름의 일회용 소모품 인형으로 취급받는 게 아닌가 말야.’


‘그래도… 혹시 지금도 있다면 얼굴이나 한번 보고… 몇 푼 안 되는 돈이나마 쥐어주면 좋지 않을까?’


그는 매음굴 쪽으로 한 걸음 옮겨 놓았다.


‘아냐, 그래 봤자 결국엔 허무의 늪에 빠질 뿐이야. 그리고 지금은 더 중요한 일이 있잖아. 인연이 되면 다음에 또 만날 수도 있겠지….’


청운은 발길을 돌려 절룩절룩 도시 쪽으로 걸어나갔다. 차량들이 질주하는 굉음과 매연 냄새가 현실을 깨닫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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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권은 누구인가?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으며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고 <작가와 비평>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仙甘島) 수용소의 비밀> <소년 북파공작원> <보리울의 달> <동상의 꽃꿈> 등이 있다.


소설 <몽키하우스>는 ‘언덕 위의 하얀 집’ ‘양공주 병원 감옥’이라 불리는 동두천 낙검자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소설로서, 한미관계에 얽힌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삶을 그릴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분단된 남북대결 시대에 미국과 미군은 대체 무엇인지 깊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메일 주소: nammun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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