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양승태·임종헌 ‘재판받던 날’ 중계

양, 모든 혐의 부인…임, 헌재 내부정보 요구

김수정 기자 | 기사입력 2019/05/31 [13:06]

사법농단 양승태·임종헌 ‘재판받던 날’ 중계

양, 모든 혐의 부인…임, 헌재 내부정보 요구

김수정 기자 | 입력 : 2019/05/31 [13:06]

구속 92일 만에 법정에 선 양승태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
헌재 내부정부 전달한 현직판사 “임종헌 지시 받았다” 증언

 

▲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기소돼 5월29일 첫 재판에 출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법정에서 “검찰의 모든 공소사실을 부인한다”고 밝혔다. <뉴시스>    

 

사법농단의 정점으로 꼽히는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에 대한 재판이 지난 5월29일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양 전 대법원장이 지난 2월26일 보석 심문에 나온 이후 92일 만이다.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최종 책임자로 재판에 넘겨진 양 전 대법원장이 이날 열린 첫 재판에서 “검사들이 정력적으로 공소사실을 말했지만 그 모든 것들은 근거가 없고 어떤 건 소설, 픽션 같은 이야기”라고 혐의 전부를 부인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이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들은 뒤 시작한 모두진술에서 “(공소사실) 모든 걸 부인하고 그에 앞서서 공소 자체가 부적합하다는 걸 말하고 싶다”면서 추후 변호인 진술 이후 다시 보충 진술을 할 뜻을 밝히기도 했다.


박병대 전 대법관은 “구체적 개별 공소사실, 사실관계, 법리 문제를 다투는 취지로 공판준비기일에 변호인 의견서를 낸 걸로 안다”며 “그것과 같은 내용”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고영한 전 대법관은 6분이 넘는 시간을 할애해 비교적 상세한 입장과 소회를 밝혔다.


고 전 대법관은 우선 “제가 그토록 사랑하고 지냈던 법정에 서보니 가슴이 미어진다”며 “제가 여기 선 것만으로도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드리고 사법부에 부담을 주게 된 거 같아 송구스럽다”고 입을 열었다.


고 전 대법관은 그러면서도 “이 사건의 공소사실을 보면 제가 노심초사하면서 행정처장으로 직무수행을 했던 부분 모두를 직권남용했다고 적혀 있다”며 “법률해석을 둘러싸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 간 헌법적 긴장 상태를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한 것을 부당한 이익도모, 반헌법적 재판개입으로 묘사했다”고 했다.


그는 또 “법관 비위로 인한 상황에서 국민의 신뢰 회복을 위한 대응조치들을 부당한 보고를 하게 했다고 하고, 모든 조직에 있을 수 있는 광범위한 인사 재량에 속하는 부분에 일부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부분을 인사 불이익으로 인한 탄압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며 “제가 행정처장 재직할 때 벌어진 일이란 사실만으로 제가 직접 지시하고 공모했다고 단정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앞서 양 전 대법원장이 이날 법정에 나오자 두 전직 대법관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우했다. 구속 상태지만 수의를 입지 않고 양복 차림으로 나온 양 전 대법원장은 무표정하게 자리에 앉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자신의 직업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직업은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박 전 대법관도 “직업이 없다”고 하자, 재판장은 “무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고 전 대법관 역시 같은 대답을 한 뒤 자리에 앉아 기록을 보거나 간략한 메모를 하기도 했다.


재판장은 수십 년 동안 재판을 한 이들을 상대로 주소 변경 고지 의무 등 재판 절차를 꼼꼼하게 공지했다.


불구속 상태인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이날 처음 출석하면서 ‘양 전 대법원장을 법정에 대면한 소감’이나 ‘후배 법관들이 피고인이나 증인으로 서고 있는데 기분이 어떤지’ ‘혐의 계속 부인하는지’ 등을 묻는 취재진 질문에 아무 말 없이 법정으로 향했다.


이날 재판은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가장 큰 규모인 417호 대법정에서 진행됐다. 수십 명의 시민 방청단과 취재진 등이 방청석에서 재판을 지켜봤다.


양 전 대법원장은 강제징용 소송 등 재판 개입 혐의, 법관 부당 사찰 및 인사 불이익 혐의,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 및 동향 불법 수집 혐의, 공보관실 운영비 불법 편성·집행 혐의 등 47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기소된 직후 보석을 청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실행에 옮긴 혐의로 먼저 재판에 넘겨진 임종헌(60) 전 법원행정처 차장에 대한 속행 공판도 5월29일 같은 시각 다른 법정에서 별도로 진행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부장판사 윤종섭)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임 전 차장에 대한 속행 공판을 진행했다.

 

▲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월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사법농단’ 관련 24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시스>    


이날 재판에서 헌법재판소 파견 당시 헌재 내부정보를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진 현직 판사가 법정에 나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해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2015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헌재에서 파견 근무했던 최모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당시 헌재 사건 정보 및 연구보고서를 법원행정처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 부장판사는 당시 임 전 차장이 두 차례 전화를 했는데, 첫 번째는 지난 2015년 10월 한·일청구권협정 관련 사건 정보를 물었고, 두 번째는 2017년 2~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임박 시점에 전화해서 예상 결과 및 방향, 이정미 전 헌법재판관 후임 지명권 행사 등에 대한 정보를 물어본 적 있다고 진술했다.


최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직접 연락한 당시 상황에 대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헌재 부장연구관 근무 기간 동안 헌재 결정이 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치거나 미칠 우려가 있으면 대법원에 알리는 역할도 했냐’는 검찰의 질문을 받자 “그런 지시를 받았다”고 답했다.


이날 최 부장판사의 진술에 따르면 헌재 파견 법관과 법원행정처 사이에 연락을 주고받는 통로는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상임위원이었다고. 최 부장판사는 “이 전 위원이 ‘처음에 법원에서도 알고는 있어야 하니 중요한 일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했다”고 언급했다.


검찰에 따르면 최 부장판사는 당시 논란이 된 한·일청구권협정 사건과 관련해 담당 연구관에게 내용을 물어보고 추가보고를 하기도 했다.


‘담당 연구관에게 내용을 왜 필요로 하는지 사유를 알려줬냐’는 질문에는 “어떻게 들어야지 해서 물어보지는 않고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다 보니 그런 와중에 내용을 알게 돼서 쓴 것”이라고 말했다.


최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으로부터 (그런) 지시를 받았을 때 거절할 생각은 안 했냐’는 질문에 “지금 같으면 거절했을 것 같다”며 “후회되고 그렇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면서 ‘임 전 차장에게 전해준 헌재 정보가 강제징용 전범기업 소송대리인(김앤장)에게 전달된 사실을 알았냐’는 질문에는 “전혀 몰랐다, 알았으면…”이라고 말끝을 흐렸다.


최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이 어떤 이유로 보내달라고 한지는 몰랐지만 헌재와 대법원 판결을 조화롭게 하려는 걸로 알고 전달한 건가’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임 전 차장은 2012년 8월~2017년 3월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으로 근무하면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실행에 옮기고 지시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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