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1부 지푸라기 (2)

절름발이인 그 창녀는 꼭 살아 돌아오라고 했다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19/06/07 [10:08]

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1부 지푸라기 (2)

절름발이인 그 창녀는 꼭 살아 돌아오라고 했다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19/06/07 [10:08]

북파공작원이라는 특수체험은 청운을 겉늙어 보이게 했다
‘박꽃 누나부터 네가 좋아한 여자들은 모두 절름발이잖아’

 

남한과 북한 아웅다웅하는 한반도야말로 비정상적인 불구자
그게 우리를, 나를 이렇게 절뚝절뚝 꼴사납게 걷게 만들었다

 

▲ 사진은 북파공작원 이야기가 등장하는 영화 ‘실미도’ 한 장면.    

 

1년쯤 전, 청운은 특수공작 부대에 입대하기 위해 이곳에 서 있다가 한 여인의 꾐에 빠져 반 자발적으로 불그무레한 그 골목 속으로 들어갔었다. 작별할 때, 절름발이에다 폐병쟁이인 그 창녀는 언제까지고 기다리고 있겠으니 꼭 살아 돌아오라고 신신당부했던 것이다.


고작 1년 좀 넘게 지난 세월인데도 청운의 모습은 꽤 많이 변해 있었다.

청소년이 청년으로 바뀌어 가는 시점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청춘은 청소년일 때에 비해 몸은 강인해 보였지만 그 속의 생명력은 마치 녹이라도 슨 듯싶었다. 총상을 입고 절뚝거리는 다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북파공작원이라는 특수한 체험은 아직 10대 후반인 실제 나이보다 어딘지 좀더 겉늙어 보이게 했다.

 

‘넌 절뚝거리는 게 좋니?’


‘난 지금 폐물과 같다. 아니, 왠지 그렇게 느껴진다. 만약 주어진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고 돌아왔다면, 그래서 지금 명예로운 제대를 한 상태라면 어떨까? 만일 그렇다면…. 저 청량리 길바닥을 개미나 혹은 베짱이처럼 걸어대는 인간들에게 엉뚱한 한 마디 귀여운 인사라도 건네볼 텐데…. 혹시 오만스런 선민의식에 빠져 영웅이라는 착각에 젖어들지나 않을까. 흐흐, 이 나라의 지도자와 그들의 새끼 새끼 새끼들처럼… 바퀴벌레의 애벌레보다 징헌 새끼들….’


청운은 번잡한 밤거리를 절뚝절뚝 헤쳐 나갔다. 다리가 아팠지만 악마산에서 극한훈련을 받을 때를 떠올리면 견딜 만했다.


‘넌 이렇게 절뚝거리는 게 좋니?’


청운은 자신에게 물었다.


‘그럴 리가….’

‘그런데도 썩 비극적으로 보이진 않는군.’

‘그런 티를 낼 필요가 어딨어.’

‘흐흥, 혹시 절뚝거림에 대해 모종의 은근한 취향이 있는 것 아냐?’

‘뭔 소릴 해?’

‘그러니까…. 맘속에 절뚝거리는 새의 둥지나, 걔들이 쪼아 먹는 비밀 씨앗이 있는 게 아니냔 말야.’

‘쳇….’

‘생각 좀 해봐. 박꽃 누나부터 시작해서 네가 좋아한 여자들이 모두 절름발이였잖아?’

‘나 참… 볼 게 없어서 다리만 보고 좋아했겠냐. 그건 사람의 부분일 뿐인걸.’

‘그런 경우는 많이 있어. 사내아인 엄마의 슬픈 모습에 빠져들고 계집앤 아빠의 멋진 모습을 흠모하듯이….’

‘하지만 엄마는 절름발이가 아니었어.’

‘흠, 그렇지. 그런데 네가 문제일 뿐… 어린 시절 엄마를 잃은 깊은 상실감으로 인해 너의 마음속에 모종의 불구자 의식이 싹텄을 수도 있거든. 더구나 아버지까지 병석에 누워 올바른 생활을 못했기 때문에 실패 의식이 네게 큰 영향을 미쳤을 거야. 마음이나 정신에 씨앗이 심어지면 서서히 자라서 육신을 지배할 수도 있다는 얘기지.’

‘하지만… 난 북파됐다가 총알을 맞았기 때문에….’

‘물론 그래. 그렇지만 너무 축 처지지 말고 좀 활기차게 걸어 보란 말야.’

‘음….’

‘과거에 정상인보다는 부랑아나 불구자들을 사귄 것도 영향을 미쳤을지 몰라. 사실상 건달이나 깡패들도 겉으론 개폼을 잡고 거들먹거리지만 속으로 뭔가 부족하고 아쉬워서 그렇게 평범하지 않게 걷는 것이거든.’

‘쳇, 깡패들이 웃다가 뒤집어지겠다.’


그때 불현듯 청운의 마음속에서 제3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마음과 몸이 정말로 내 마음과 몸일까? 아무래도 아닌 것만 같아. 오히려… 남한과 북한이 반쪽으로 갈라져서 아웅다웅하는 이 한반도 자체야말로 비정상적인 불구자이고… 그게 우리를, 나를 이렇게 절뚝절뚝 꼴사납게 걷게 만들었다고 하는 게 오히려 더 실감난다구. 흐흣….’

 

▲ 세가 심한 홍등가에 이골이 난 짝코는 먼저 있던 여자들과의 몸싸움으로 일관하며 수많은 남자들과 밤을 지샌다. 사진은 홍등가 이야기가 등장하는 영화 ‘미아리 텍사스’ 한 장면.    

 

전혀 보지 못했던 신세계


혼자 중얼중얼하며 걷는 사이에 청운은 문득 풍전 나이트 홀 앞에 서 있었다.
현란한 네온사인을 잠시 쳐다보던 청운은 반들거리는 유리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섰다. 일반 나이트클럽처럼 길거리에서 바로 입장하는 구조가 아니었다.


‘흠, 로비가 꽤 넓군. 하지만 돈을 빼고 나면 과연 뭐가 남을까?’


중얼거리며 지하 나이트클럽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밟으려고 할 때였다.


“잠깐! 이리로 좀 와 보시우.”


한쪽에서 검은 정장 차림의 사내가 불렀다.


“왜 그러죠?”

“음, 여긴 미성년자 출입 금지라서 말이죠.”


꽤 거만스런 표정이었다.


“난 미성년자가 아녜요. 그리고 저기 춤추러 가는 것도 아니고….”


음악소리가 울려나왔다.


“그럼 뭐죠?”

“사람을 좀 찾으려고요.”

“누굴?”

“형이에요.”

“거 참! 이름 말이지.”

“피에로라고… 본명은 김순식이고… 코미디를 하는데….”

“비슷한 꺼벙이가 하나 있긴 했는데… 히힛, 또 뻥을 깠는가 보군… 무대에 서는 연예인이 아니라 하빠리 잡일꾼이었어. 지금은 여기 없어.”


사내는 차츰차츰 더 시건방져지고 있었다.


“그럼 어디로 갔어요?”
“그건 나도 모르지.”
“좀 알아봐 줘요. 꼭 만나야만 해요.”


사내는 눈살을 잔뜩 찡그렸다.


“모른다고 했잖아. 혹시 내가 여기 서 있다고 해서 수위나 카바레 기도 같은 것으로 오해하는가 본데…. 난 이 건물 전체의 수문장이야. 그리고 현재 상태도 나쁘진 않지만, 멋진 나만의 꿈을 꾸고 있다구.”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럼 내려가 보슈.”
“예?”
“가능하면 조용히 저 계단 밑의 홀로 내려가서 매니저한테 한번 물어 보란 말이지.”
“아, 예… 고맙습니다.”


청운은 꾸벅 절을 하고 무지갯빛 조명이 언뜻언뜻 비쳐 오르는 클럽의 입구로 다가갔다. 한 발짝씩 계단을 내려갈수록 빛이 현란해지고 음악소리도 점점 커졌다.


이윽고 홀 안으로 들어선 청운의 눈앞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빙글빙글 돌아가며 색색가지로 조합되어 비치는 사생아 같은 조명 아래 수많은 사내와 계집들이 얼려 미친 듯이 육체를 비틀어대며 춤추고 있었다.


청운은 현실을 잊어버린 듯싶은, 혹은 잃어버리려고 애쓰는 그 군상의 틈을 어렵사리 지나갔다.


‘좋군 좋아. 정말로… 인간의 신체를 극대화하여 그 속의 욕망을 발산하는 건 우리가 악마산에서 받은 훈련과 비슷한 데가 없진 않아. 흐, 하지만 우린 국가를 위해 고통당하다가 죽고… 여기서는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다가 욕망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추어탕집 앞에 놓인 바케스 속의 미꾸라지들 같군.’


청운은 광란의 인파를 헤치고 카운터 앞으로 다가갔다. 그곳은 상대적으로 땡볕 속의 나무그늘처럼 좀 서늘한 기색을 풍겼다. 인형 같은 얼굴에 눈빛이 냉정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사람을 좀 찾으려는데요….”


청운이 말하자 여자는 눈살을 살짝 찌푸리더니 묵묵히 턱짓을 했다. 청운은 둘러보았지만 누굴 지칭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물어 보려도 덧정없어서 그는 연주 중인 밴드 쪽으로 걸어가 마냥 기다렸다.


이윽고 짧은 막간의 틈에 청운은 드럼 치던 사내 쪽으로 다가갔다.


“혹시… 피에로라는 사람을 아십니까?”
“피에로가 한두 명이어야지.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있고, 아마 미래에도 있을 거야.”


드러머는 허연 이빨을 내보이며 말했다.


“얼마 전까지 여기 있었던 사람인데요.”
“흠, 박 피에로도 있고 이 피에로도 있었고, 최 피에로도 있겠지.”


사내는 빙글빙글 웃었다.


“앞니 빠진 피에로예요. 본명은 김순식이고….”
“진작 그리 말할 것이지. 그 앤 이미 떠났어.”
“아니, 어디로요?”


청운은 놀라서 물었다.
“동두천 쪽으로 빠졌을 거야. 계집앨 뒤따라갔거든. 미군부대 클럽에서 한국의 찰리 채플린이 될 꿈에 젖어 있는지도 모르지. 허허….”
“동두천 어디로 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그 허풍선이 피에로 놈하곤 어떤 사이길래 그리 찾아 헤매지? 혹시 빚쟁이슈?”
“결의형제입니다.”
“흠, 그럼 저기 주방 쪽으로 가서 주방 보조한테 한번 물어봐. 걔하구 가장 친했으니까.”


사내는 상체를 문어처럼 흔들거리며 다시금 드럼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식칼의 퍼런 날 앞에 선 소년


청운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홀 한 구석에 붙은 주방으로 다가섰다. 하얗고 투명한 커튼이 반쯤 쳐진 창문 앞에서 그는 멈춰 섰다.


안쪽에서 어떤 소리가 새어나왔다. 비명은 아니지만 겁에 질려 허덕거리며 떨리는 목소리였다. 청운은 슬쩍 훔쳐보았다. 바깥 홀의 현란함에 비해 의외로 어두워 보이는 공간 속에서 어떤 자가 식칼을 든 채 킬킬거리고 있었다.


“너 계속 그렇게 멍청하게 굴래? 왜 아직도 메뉴를 제대로 못 외워서 이 주방궁의 황제인 나를 욕먹이냐구! 뱃대길 콱 찔러 버릴까, 응?”
“아으으… 주방장님… 한번만 살려 주시면 다음엔 잘할게요. 흐으….”


식칼의 퍼런 날 앞에 선 소년이 주춤주춤 구석 쪽으로 물러나며 애걸했다. 식칼을 쥔 사내는 눈알을 희번득거리며 점점 공포에 질린 소년 쪽으로 다가서며 위협을 했다. 소년은 털썩 무릎을 꿇곤 두 손을 모아 비벼댔다.


“제발… 앞으론 제왕님의 명령대로 따를게요. 미라 누나에게 편지도 잘 전달하고 팬티도 자주 훔쳐 올 테니….”
“쌍놈 새끼, 넌 항상 피맛을 좀 봐야만 정신을 차리니까 어쩔 수 없어.”


사내의 칼날이 소년의 목에 닿는 순간 청운은 창문을 톡톡 두드렸다.
사내는 피를 보겠다며 위협하던 칼을 마술처럼 숨기고 돌아서 도마 위의 오이를 재빨리 썰기 시작했다.
위기 상황에서 벗어난 소년이 창 쪽으로 다가왔다. 키는 어린애 같아도 얼굴은 생각보다 훨씬 더 나이가 들어 보였다.


“혹시 김순식 형을 아세요?”


청운은 부드럽게 물었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천사 같은 그 얼굴을 보자 어조가 저절로 바뀌었다.


“혹시, 그 형, 친구세유?”


늙은 소년이 더듬더듬 물었다.


“어, 그래요.”
“보니까, 바로, 알겄네유. 순식이 형이, 자주, 얘길, 했었지유.”
“그랬군요. 혹시 그 형이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요?”


소년은 머리를 끄떡거렸다. 그러고는 주머니를 한참 뒤적거리더니 접혀진 편지봉투를 꺼냈다.
청운은 손목에다 주소를 옮겨 적고는 소년의 눈을 바라보았다.

 

광란의 인파 속을 헤치고


“고마워요.”
“피에로 형을, 찾아가려는, 거예유?”


소년이 어눌하게 물었다.


“그래요.”
“나도, 같이, 가고 싶은데….”
“그럼 그렇게 해요.”
“아, 지금은, 안 되구, 나중에, 꼭, 간다구, 좀 전해, 주세요….”
“그럴게요.”


청운은 소년의 손을 잡고 흔든 후 목청을 좀 높였다.


“여보시우, 형씨… 혹시 소림사 주방장이란 영화 보았수?”


과일을 깎고 있던 사내가 고개만 돌린 채 이맛살을 잔뜩 찌푸렸다.


“거기서는 사람을 썰어 죽이지만… 만일 이 사람을 또 다시 괴롭히면… 댁을 산 채로 끌고 가서 온몸에 대못을 서른 개쯤 박아 버리겠어. 눈알과 혀와 생식기에도 한 개씩… 명심하라구.”


사내의 입술이 말없이 푸르르 떨리는 것을 본 청운은 발길을 돌려 절뚝절뚝 광란의 인파 속을 헤쳐 나갔다. 인간의 오감과 정신마저 바꿔 놓을 듯 현란하게 돌아가는 홀의 조명을 겨우 벗어나 아스팔트 위에 섰을 땐 왠지 계단 밑의 아비지옥이 슬쩍 그리워지기도 했다. <다음 호에는 ‘사창굴의 약속’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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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김영권은 누구인가?       

                             

진주에서 태어나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으며 농민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소>가 당선되고 <작가와 비평>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이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仙甘島) 수용소의 비밀> <소년 북파공작원> <보리울의 달> <동상의 꽃꿈> 등이 있다.


소설 <몽키하우스>는 ‘언덕 위의 하얀 집’ ‘양공주 병원 감옥’이라 불리는 동두천 낙검자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소설로서, 한미관계에 얽힌 우리 사회의 비극적인 삶을 그릴 뿐 아니라, 한 걸음 나아가 분단된 남북대결 시대에 미국과 미군은 대체 무엇인지 깊은 물음을 던지고 있다.  이메일 주소: nammuns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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