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1부 <6> 짝퉁 & 동백꽃

“조선사람 그 슬픈 눈물의 뜻을 미군 놈이 어찌 알까?”

글/김영권(소설가) | 기사입력 2019/07/12 [10:15]

김영권의 장편소설 '몽키 하우스' 제1부 <6> 짝퉁 & 동백꽃

“조선사람 그 슬픈 눈물의 뜻을 미군 놈이 어찌 알까?”

글/김영권(소설가) | 입력 : 2019/07/12 [10:15]

“블루문 클럽 홀 보이 구하는데 최하층 노동자로 생각하면 돼”
“미국과 미군 몰라선 이 한국이란 나라와 사회 알 수 없으니까”

 

머리에 꽃 단 여자 “함께 가실래요? 두 분 다 만족시켜 드릴게”
“꽤 인기 있는 양공주였대…공주처럼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 1950년 11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그때. 태백산맥 줄기를 타고 함백산 절벽들 속에 자리 잡은 마을, 동막골 이야기를 그린 영화 ‘웰컴 투 동막골’ 한 장면.    

 

청운이 술잔을 비우고 탁자에 놓는데 피에로가 분장을 지운 평범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물이 빠진 골덴 바지 위에 검은 외투를 걸치고 있었다.


“쇼는 끝났어. 이젠 호랑나비와 범나비들끼리 짝을 맞춰 하룻밤 사랑 유희 하는 일만 남았는걸.”
“응, 그렇군.”
“가자.”
“어디로?”
“아무튼 여길 나가서….”
“응.”

 

하류급 위안부들 사는 곳


둘은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공기가 시원스레 느껴졌다.
피에로는 환락가를 빠져나가 시멘트 다리를 건너서는 시골길로 접어들었다. 농촌 마을에 별로 어울리지 않는, 콘크리트 벽에 슬래브 지붕이 얹힌 삭막한 집들이 무리져 있었다.


“저긴 양갈보나 양공주라고도 불리는 여자들이 많이 세들어 살아.”


피에로가 골목을 돌아 벗어나며 중얼거렸다.
그들은 인적이 끊긴 오솔길을 계속 걸어갔다. 차가운 하늘에 별이 반짝이며 저들만의 밀어를 속삭이고 있었다.


“별들의 얘기를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지 않니?”


피에로가 물었다.


“글쎄… 그런데 형은 왜 무대에서 한국말을 쓰는 거야? 미군들이 알아들을 수도 없을 텐데 말야.”
“흥, 영어만 언어냐? 내가 영어를 씨부려 봤자 얼마나 잘 씨부리겠냐? 그리고 사실상 난 언어를 뛰어넘는 연기를 하고 싶어. 아마 미군 놈들도 딱딱한 의미보다는 미지의 동물이 지껄이는 소릴 더 좋아할걸, 하하….”


보산리의 낡은 철둑길 주변에 닥지닥지 붙은 하꼬방엔 하류급 위안부들이 살고 있었다. 철길 언저리엔 마흔 살, 쉰 살을 넘은 늙어빠진 히빠리들이 지나가는 미군들의 팔을 잡아 끌었다. 하지만 대부분 질겁하며 뿌리치곤 했다. 푼돈밖에 없는 녀석이나 술과 마약에 취해 해롱거리는 놈들만 그녀들을 따라갔다.


한동안 오솔길을 걸어가자 산기슭에 초가집으로 이루어진 아담한 마을이 나타났다.
간판의 칠이 다 벗겨진 허름한 가게에서 피에로는 소주와 오징어를 사 들고 나왔다. 완만한 길을 좀 에돌자 문득 오두막 한 채가 보였다. 나무 기둥과 판자벽은 낡아빠져 곧 쓰러질 듯했고 볏짚을 엮어 얹은 지붕은 몇 년이 지났는지 모르게 삭아 마치 빈민 노인의 머리카락 같은 몰골이었다.


“구름아, 들어가자. 여기가 내 임시 간이역이야.”


피에로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는 선감도 수용소에 갇혀 있을 때부터 청운을 구름이라고 불렀다. 푸른 하늘의 흰 구름….


누가 무슨 목적으로 지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오두막 안쪽엔 방 비슷한 공간이 있긴 했다. 하지만 잔뜩 찌그러진 상태라 머리를 숙인 채 기듯이 겨우 들어갔다.


“히히, 대충 앉아 봐라. 그래도 난 이 정도나마 감사하고 싶다. 청량리 나이트클럽에서는 한 방에 대여섯 명씩 껴 누워 잤지. 오사리 잡놈들의 인생 얘기도 들을 만했지만 독이 되는 것도 많아. 거기 비하면 여긴 작은 천국이야. 히히….”


피에로는 양초에 불을 붙이고 나서 술과 안주를 꺼내 놓았다. 낡은 군용 담요로 외풍 구멍을 차단하고 바닥에도 두껍게 깔아 놓아, 바깥에서 불어대는 거센 바람마저 오히려 안온하게 느껴졌다.

 

▲ 양공주 이야기가 등장하는 영화 ‘오발탄’ 한 장면.    

 

나비 아닌 나방 같은 삶


“이렇게 다시 만나니 기적 같구나야. 너도 나도 어찌 살았을까. 나비가 아닌 나방 같은 삶… 싫은데도 어쩔 수 없이….”
피에로는 소주잔을 홀짝 비웠다.


“쓸쓸할 땐 늘 형의 미소를 생각했었지.”
“헤헤… 나도 구름이 니가 어딘가에 살아 있으리라 믿으면서도 찾아 나설 생각은 하지 못했어. 형편이 돼야지. 그래서 내가 우선 배우로 성공하면 좀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야.”


“그랬구나. 그래, 그 거친 바다에서 어찌 살아났어? 듣기론 반쯤 죽은 상태로 파도에 밀려 다시 선감도로 돌아갔다던데… 믿기지가 않아. 상어 밥이 된 줄 알았다니까.”
“흐흐… 나도 저승 길목의 삼도천까지 갔다 온 셈이야. 자연의 힘은 생명을 죽이기도 하지만 살려 주기도 하나 봐. 바람결과 물결… 삼신할미의 가호로 알고 남은 생은 감사하면서 살려고 해. 히히….”


“사실 난 아직도 진짜루 형인지 유령인지 좀 헷갈려. 헤헤….”


둘은 건배하고 소주를 마셨다.


“그건 그렇고 구름이 넌 그동안 어떻게 살았었냐?”


피에로가 정색을 하고 물었다.


“난… 난 그냥 거센 물살에 시달리다가 여기로 떠밀려 온 느낌이야.”


청운은 사이비 종교단체에 잠입했다가 쫓겨나온 이야기, 그곳의 사악한 실상, 그리고 특수부대에 들어가 겪은 체험 따위를 대충 들려주었다. 너무 속속들이 늘어놓을 계제도 아니었지만, 피에로 자신이 암담하고 처참한 얘길 싫어했던 것이다. 그는 앞니 빠진 자리를 내보이며 히벌쭉 웃었다.


“그랬구나. 어쩐지 전보다 몸도 강건해졌지만 기운 자체가 다르게 느껴졌어. 다리만 예전 같으면 좋을 텐데….”
“지금보다는 차츰차츰 나아진다니까 크게 걱정할 것 없어. 흐흐….”
“그렇구나. 그래야지. 그럼 미래의 완쾌를 위하여 건배!”


둘은 잔을 쭉 비우곤 웃었다.


“형은 왜 여기로 들어온 거야? 서울에 질려서 도피…? 흐흐, 어떤 여자를 따라왔다는 소문도 있던데 말야.”
“히히, 사실 여자가 웅지를 품은 남자 뒤를 따라오는 게 예쁜데 말이지… 흠, 내가 뒤따라오긴 했지만 여자 꽁무니를 쫓아온 건 아니니께 오해랑 말랑께. 서로 콤비를 이뤄 무대에 서야 하니 왔을 뿐야.”


“그렇구나. 아까 그 꽃팔이 아가씨…?”
“응.”
“연인 사이는 아니구?”
“야, 그런 게 어딨냐. 진짜 채플린은 부자에다가 감독에 유명한 배우였으니까 고다르를 연인으로 챙겨…사랑과 연기를 함께 하는 행복을 누렸겠지만…나 같은 새우야….”
“새우보다는 차라리 곤쟁이라고 해. 우리가 선감도에서 질리도록 먹은 곤쟁이젓… 그런데 형은 꿈이 뭐야? 공상 속에서 꾸는 꿈 말고 현실에서 이루는 것….”


“음, 일단은 미8군 연예단에 들어가는 거야. 치사스럽지만 그래야 좀 알아주니까. 한국 사람들은 미군이나 미국인들이 꺼림칙한 듯 쌍을 찡그리면서도 속으론 은근히 좋아하거든. 히히, 그래도 양놈들의 노리개가 되고 싶진 않아. 언젠가는 순수한 금수강산의 엿장수로 떠돌아야지. 히힛….”

“클럽에서 홀 보이 구하는데…”


청운은 잔을 들어 투명한 소주를 바라보았다.


“난 저격수가 되고 싶어.”
“뭐? 특수부대에서 총질은 많이 해봤을 텐데 지겹지도 않니? 사실 난… 니가 그런 델 다녀왔다는 게 아직도 잘 믿기질 않아.”


“형, 꼭 총으로만 저격하는 건 아니잖아.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세상엔 아마 이 세상에서 통하는 저격 방도가 꼭 있을 거야. 그 전에 나 자신부터 저격해야겠지.”
“뭔 소리야?”
“내 속에도 더럽게 악한 요소가 많이 있으니까. 흐흐….”


청운은 주절거리며 술을 쭉 들이켰다.


“야, 뜬구름 잡는 소리 그만두고… 너 앞으로 어찌 살 작정이니?”
“뭐 그냥 구름처럼 떠돌면서 세상 공부나 하다 보면….”
“얼뜨기 같은 소린 집어치고 현실을 봐야지, 임마! 세상살이가 삼팔선을 넘나드는 것보다 결코 쉽지 않을 거야.”
“음, 그렇겠지. 선감도 수용소든 특수부대 훈련소든… 최하급이나마 일단 의식주는 보장되니까, 흐흣….”
“그래, 이게 우리가 사는 현실이야.”
“흐흐흐….”


“구름아, 방랑벽을 잠시 멈추고 여기서 살아보지 않을래?”
“형한테 붙어 벼룩새끼처럼 피를 빨아 먹으라구?”
“그건 아니지. 일을 해서 니 입은 니가 먹여 줘야지.”
“어떤 일인데?”
“까라면 까야지, 특수부대원이 지 하고 싶은 일만 하냐?”
“그래, 알았어. 형을 믿고 무슨 일이든 할게.”


“아까 그 블루문 클럽에서 홀 보이를 구하고 있어. 미안하지만, 최하층 노동자라고 생각하면 돼. 청소와 잡일을 비롯해 심부름 따윌 하는 거지.”
“참 좋은 곳을 소개시켜 주는군.”
“야 이 자식아, 그럼 흙수저가 밑바닥부터 기어야지 별 수 있냐? 히히… 하지만 미국과 미군을 몰라서는 이 한국이란 나라와 사회도 제대로 알 수가 없을 것 같아. 어쩔래?”


청운은 망설였다. 그 야릇한 기지촌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일렁이긴 했지만, 일단 응낙하면 마음속에 깃든 파랑새의 날개가 꺾일 듯한 기분이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서울로 가더라도 까마득하긴 해. 푸른 창공을 향해 날아 보려고 애쓰다가 혹시 아스팔트 위의 비둘기처럼 날개가 부러지거나 다리를 절뚝거리는 꼴이 될 수도 있어. 더군다나 경찰이 일거일동을 주시한다는 얘기도 있으니 새장 속 참새만큼 답답하지 않을까 싶군. 차라리 한동안 여기 박혀서 재충전하는 것도 괜찮을 듯해.’


청운은 머릿속으로 생각을 굴리며 술을 마셨다. 그러고는 피에로에게 물었다.


“형, 내가 할 수 있을까 걱정되네.”
“처음부터 잘하는 놈이 어디 있냐. 처음엔 고롭겠지만 하다 보면 요령이 생길 거야. 하다 안 맞으면 때려치더라도 하는 데까진 바락바락 해보자구. 너도 나도….”
“응, 그래. 형을 보니 정말 좋아.”


둘은 건배를 하고 마지막 잔을 비웠다.
피에로는 방바닥에 드러눕자마자 곧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청운은 바깥에서 불어대는 삭막한 바람 소리를 들으며 어둠 속에 눈을 뜨고 있었다.

 

▲ 양공주 이야기가 등장하는 영화 ‘오발탄’ 한 장면.    

 

동백꽃


다음날 아침, 느지막하게 일어난 둘은 서둘러 오두막 밖으로 나갔다.
흐린 하늘에서 눈발이 바람에 날리며 차츰 굵어졌다가 가늘어지곤 했다.
피에로는 하품을 하려던 입으로 하얀 눈송이를 받아먹으며 히히득거렸다. 마치 과거나 미래는 모르고 현재만 아는 아이 녀석 같았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겠지만… 피에로 형은 결코 순진한 어린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을 거야. 저것은 자기도 모르게 하게 되는 연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진정한 배우가 되기까지는… 꿈과 현실이 뒤섞여서….’


청운은 생각하면서 피에로의 뒤를 따라 걸었다. 피에로는 음유시인인 양 조용히 중얼거렸다. 황량한 논밭이 눈발에 조금씩 덮이고 있었다. 오솔길을 벗어나 신작로로 들어서자 피에로의 발걸음이 좀 빨라졌다. 청운은 절룩절룩 따랐다.


눈발에 묻혀 그런지 아직 뚜렷이 드러나는 건 없지만, 어젯밤에 본 클럽 거리의 풍경이 떠올라 갈수록 도발적이고 역겨운 냄새가 풍겨오는 듯싶었다.


“히히히….”


문득 이상스런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청운은 고개를 들었다.


저쪽에서 한 여자가 사뿐사뿐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 노란 종이꽃 같은 걸 달고 입속으로 이상야릇한 소릴 중얼거리고 있었다. 원래는 하야 빛깔이었으나 더럽혀진 블라우스 위에 눈송이가 내려앉아 더 누추해 보였다. 찢어진 치마 아래 낡은 보라색 구두를 신고 있었다. 바람이 불자 치마가 팔락팔락 날리며 허연 맨살을 드러냈다. 봄옷 속으로 겨울 추위가 매섭게 스며들 텐데도 천연덕스러웠다. 퍼르스름하게 질린 입술로 그녀는 노래를 불렀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그녀가 몇 걸음 가까이 다가왔을 때 청운은 속으로 뜨끔 놀랐다. 얼굴은 웃고 있었지만 눈에선 눈물이 방울져 흘러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허 참, 가슴 시리게 애잔스런 모습이로군. 그 곱던 아가씨가 어찌 저렇게….”


피에로가 한숨을 머금은 채 중얼거렸다. 여자는 살포시 눈웃음을 치며 다가섰다.


“함께 가시겠어요? 두 분 다 만족시켜 드릴게요. 히히히….”


피에로가 머금고 있던 한숨을 내쉬자 여자는 하늘을 쳐다보며 스쳐갔다.


“아는 여자야?”


청운이 물었다.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어. 사연이 기구하더라만… 다 남한테 들은 얘긴걸.”
“무슨 사연인데?”


피에로는 고개를 돌려 눈발 속으로 허청허청 사라져 가는 여인을 바라보았다.


“꽤 인기 있는 양공주였다나 봐. 공주처럼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저 먼 섬마을 고향의 병든 홀어미와 어린 동생들을 구하려 하다 보니 슬픈 양공주가 되었대. 여긴 아마 대한민국 전체보다 더 많은 기구한 사연들이 모여 있을 거야. 그건 니가 천천히 알아보면 실감이 날 테고… 아무튼 저 여잔 어느 미군 하사관과 살림을 차렸는데, 예전에 청계천변 공단에서 기계인간처럼 고생할 때 오빠 동생 하며 사귀던 남자가 불쑥 나타났더래. 저 여자… 지금 눈송이를 쳐다보며 깔깔거리고 있는 저 여자는… 그 남자가 노동운동을 하다가 소리 소문 없이 어디론가 끌려가 죽은 줄 알았대나 봐. 귀신 만난 듯 서로 끌어안고 우는데 동거남인 미군이 들이닥친 거야.”


피에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청운이 재촉하듯 물었다.


“조선 사람의 그 슬픈 눈물의 뜻을 미군 놈이 어찌 알았겠냐? 오해하거나 무시했는지 모르지만 대검으로 난자해서 죽이고야 말았어. 혹시 한 마리의 동물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여자도 많이 맞았다고 하더군. 머리채를 잡고 기둥에 쿵쿵 찧어 기절해 버렸대. 죽지 않고 저렇게 사는 걸 과연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아름다울 미(美)의 미국이 아니라 미친 미국 놈들이네.”
“암튼 추억 속의 옛 한국 애인은 죽어 버리고, 잠시나마 믿고 기대던 미국 놈은 도망쳐 버렸으니… 제정신이라 한들 저 여자의 심정이 어떻겠어.”


콘크리트 다리 밑의 흐린 강물을 바라보던 청운은 고개를 돌려 보았다. 그 여인은 눈송이를 하얀 나비로 착각했는지 잡으려 하며 까르륵거리고 있었다.


“가자. 늦겠어.”


피에로가 재촉했다.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걸었다.


“형, 대체 미군들은 왜 그다지 한국 여자들을 잔인하게 다룰까.”
“아마, 한국 남자들이 시시해 보여서 그런 게 아닐까?”
“그 미군 놈이 이국의 동거녀를 조금이라도 사랑했다면… 아니, 애정은 아니더라도 성욕을 만족시키는 인형이나 암캐로 여기지 않았다면… 조금이라도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다면… 인생의 사연이라도 한번 들어 봐야 하는 것 아냐?”
“흠….”


“그 살인자는 경찰의 추적도 받지 않고 미꾸라지처럼 부대로 숨어 들어가 있다가 아름다운 나라인 미국으로 날아가 버렸겠지. 흐흐흣….”
“구름아, 너무 흥분하지 마라. 앞으로 이곳에서 살다 보면 더 흉악하고 억울한 사실들을 자주 보게 될 테니….”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자 다른 마을이 나왔다. 피에로는 한 골목 속으로 접어들었다.


좁은 길 양쪽으로 시멘트 벽에 함석지붕을 얹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조그마한 흐린 창문엔 왠지 의심쩍게 모두 견고한 쇠창살이 달려 있었다. 길바닥엔 녹슨 깡통이나 빈 담뱃갑 그리고 깨어진 술병 조각 따위가 나뒹굴었다. 그 위엔 하얀 눈송이도 내려앉자마자 곧 사그라져 버렸다.


<다음 호에도 ‘동백꽃’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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