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今疏通-쌍관제하(雙管齊下)

오로지 한 길에만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글/이정랑(중국 고전 연구가) | 기사입력 2019/08/02 [10:17]

다시 읽고 새로 쓰는 古今疏通-쌍관제하(雙管齊下)

오로지 한 길에만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다

글/이정랑(중국 고전 연구가) | 입력 : 2019/08/02 [10:17]

자국의 생존과 승리의 희망을 우방국에 맡길 순 없는 법
우방과의 군사동맹 중요하다 해도, 자국의 실력이 최우선

 

▲ 아무리 외교와 그를 통한 우방과의 군사동맹이 중요하다 해도, 자신의 실력이 최우선이다. 그리고 단결 또 단결해야 한다. 사진은 문재인 대통령이 7월22일 단호한 표정으로 수석보좌관회의를 주재하는 모습.    

 

1. 쌍관제하


쌍관제하(雙管齊下). 두 자루의 붓으로 동시에 그림을 그린다.


장조(張璪, 어떤 사료에는 張藻로 되어 있다)는 자가 문통(文通)이며 당나라 오군(吳郡, 지금의 강소성 소주) 사람으로 소나무와 돌을 잘 그린 산수화가였다. 그는 독창적인 기법과 독특한 작품 스타일로 당·송 회화사에서 나름대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당나라 현종(玄宗) 때에는 검교사부원외랑(檢校祠部員外郞)이라는 벼슬을 지냈다. 그 뒤 강등되어 장안을 떠나 무릉군(武陵郡, 지금의 호남성 상덕)의 사마(司馬)가 되었다.


송나라 때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圖畵見聞志)’에 따르면, 장조는 회화 창작에서 절묘한 기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두 손에 붓을 하나씩 들고 동시에 소나무 두 그루를 그렸는데, 한손에 든 붓으로는 ‘봄의 윤택한 기운이 흐르는 생기발랄한’ 소나무를, 또 한손에 든 붓으로는 ‘가을의 처량한 기운이 완연한’ 비쩍 마른 소나무를 그렸다고 한다. 그런데 이 대조적인 두 소나무가 모두 생동감이 넘쳐서, ‘쌍관제하’라는 그의 특기에 감탄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두 자루의 붓으로 동시에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것을 ‘쌍관제하’라고 한다. 나중에 이 말은 하나의 고사성어가 되어, 두 가지 방법을 동시에 펼치거나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다.


이 ‘쌍관제하’는 일종의 계략으로 운용되면서 비교적 넓은 영역에 침투해 있는데, ‘남은 밑천을 다 걸고 최후의 승부를 거는’ ‘고주일척(孤注一擲)’이나 ‘외골수로 고집스럽게 한 길만을 고수하는’ ‘일조도이주도흑(一條道而走到黑)’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어떤 책략을 시행하려면 때로는 문(文)에 때로는 무(武)에 의존해서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해야 한다. 정치 수단을 사용한 다음 다시 경제·군사·외교 수단 등을 사용해야 할 때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쌍관제하’는 그저 기본적인 모략 방법일 뿐이고, 크고 많은 문제에 부딪치면 ‘삼관제하’ 내지는 ‘다관제하’도 활용해야 한다. 공장 생산의 경우 대량 생산 체계가 조직되고 난 다음 판매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시범 생산단계부터, 심지어는 설계가 완성되자마자 광고 선전을 병행하면서 판매를 연결시키는, 이른바 선전·판매·시험·생산을 동시에 진행시키기도 한다.


방법상 어떤 일을 하든 오로지 한 길에만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적어도 ‘두 가지 길’을 마련해서 좌우에서 근원을 찾아 들어가도록 힘써야 한다.

 

2. 부쟁천하지교, 불양천하지권


부쟁천하지교(不爭天下之交), 불양천하지권(不養天下之權). 천하의 외교를 다투지 않고, 천하의 패권을 기르지 않는다!
“무릇 패왕(覇王)의 군대를 동원하여 대국(大國)을 정벌하면 그 나라는 미처 자국의 군대를 집결시키지 못한다. 또 세력이 서로 엇비슷한 나라에 무력으로 위협을 가하면 그 나라는 제3국과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없다.”


이것은 이쪽에서 미리 외교적인 선수를 치고, 지리적 이점을 완전히 이용하며, 정통한 정보원을 채용하여 군사 행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굳이 천하의 외교 무대에서 외교적 승리를 쟁취하려 하지 않고 천하의 강자가 될 수 있는 패권을 기르려 하지 않으며 자신의 힘을 믿고 팽창시켜 세력이 엇비슷한 나라를 힘으로 위압하면, 그 성을 함락시킬 것이고 그 나라를 패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상은 손자병법 구지편(九地篇)에 나오는 외교의 중요성을 설파한 대목으로, 그 해석을 놓고 논란이 많은 부분이다. 정치·군사 투쟁에서 모든 행동은 일정한 이해관계에서 나온다. 자국의 생존과 승리의 희망을 우방국에만 맡길 수 없으며, 또 다른 나라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의 인력과 물자를 지나치게 지출할 수도 없다.

 

가장 요긴한 점은 자신의 의도를 믿고 자신의 역량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계략의 기본 의의다.


전쟁은 고립된 현상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정치·경제·외교 정세에 의해 좌우된다. 때로는 매우 공고해 보이던 동맹도 전쟁에서 어느 한쪽이 불리해지면 금세 금이 가고, 우방도 관망 내지는 중립의 자세를 취하기 일쑤며 심하면 적으로 돌변하는 현상도 심심찮게 나타난다.


수·당 시대는 여기저기서 군벌이 날뛰던 시대였다. 두건덕(竇建德)은 황하 이북을 차지하고서 하왕(夏王)으로 자처했으며, 왕세충(王世充)은 하남에 거점을 두고 낙양에 도읍을 정하여 정왕(鄭王)으로 자처했고, 당 태종 이세민의 아버지 이연은 장안을 차지하고 당왕(唐王)이라 했다.

 

당의 이세민이 정을 공격하자 정은 하에 구원을 요청했다. 하의 중서시랑 유빈(劉彬)은 당이 강하고 정이 약하기 때문에 추세로 보아 정이 버티기 힘들 것인 바, 만약 정이 망하면 하도 혼자 버티기 힘들다고 판단하여 정을 구하려고 했다. 동시에 정이 안에서 버티고 하가 밖에서 공격하면 당이 물러갈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당이 퇴각하기를 기다려 정세를 관망하다가 정을 빼앗을 수 있으면 빼앗기로 했다. 그런 다음 하·정 연합군이 지친 당군을 공격하면 천하를 얻을 것이라는 계산이 섰다. 유빈은 즉시 정나라 왕세충에게 사신을 보내 하가 군대를 보내 지원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별도로 예부시랑 이대사(李大師)를 당에 보내 낙양 공격을 중지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이세민은 이대사를 붙잡아놓고 적은 병력으로 낙양을 포위케 하는 한편, 주력부대로 하여금 호뢰(虎牢) 지구에서 하의 군대를 섬멸시켜 버리게 했다. 정이 곧바로 항복했음은 물론이다.


이 전투는 우리에게 정치·군사 투쟁에서 친구라고 꼭 믿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일깨워주고 있다. 두건덕은 명분상 왕세충을 구원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정을 손에 넣으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이세민은 ‘굳이 천하의 외교 무대에서 외교적 승리를 쟁취하려 하지 않고 천하의 강자가 될 수 있는 패권을 기르려 하지 않으며’, 자신의 힘만을 믿음으로써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제후들의 전쟁에서 각 제후국들은 자신의 이익을 축으로 행동을 계획하고 결정해야 했다. 이들의 싸움에서 신용이니 명예니 하는 말은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손자는 승리란 자기 역량의 기초 위에 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현대 전쟁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외교와 그를 통한 우방과의 군사동맹이 중요하다 해도, 자신의 실력이 최우선이다. 그리고 단결 또 단결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굳이 천하의 외교 무대에서 외교적 승리를 쟁취하려 하지 않고 천하의 강자가 될 수 있는 패권을 기르려 하지 않는다’는 대목은 여전히 현실적인 의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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